"주희 (朱熹ㆍ1130~1200ㆍ호- 염계(濂溪): 위대한 성리학자ㆍ합리주의자ㆍ후에 주자란 극존칭)"에 의해 확립된 "이기론(理氣論)"은 "성리학"의 토대가 되는 "존재론"이다.
1. 이기론 (理氣論) : 이황 : 이(理)= 이상세계ㆍ기(氣)= 현실세계
• 이 (理) : 이황(영남)→ 관념ㆍ이상 / 만물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절대적인 법칙ㆍ원리 / 이학 (理學)ㆍ체 (體)ㆍ성 (性)ㆍ형이상 (形而上)ㆍ절대적인 선
• 기 (氣) : 서경덕ㆍ기대승ㆍ이이 (기호 호남)→ 경험ㆍ현실 / "선ㆍ악"이 섞여 있음ㆍ모종의 에너지 / 기학 (氣學)ㆍ용 (用)ㆍ정 (情)ㆍ본체- 형이상 (形而上), 발현- 형이하 (形而下)
"자연의 존재법칙"을 연구하는 "성리학"의 이론이다. "이기론"은 "이학(理學)ㆍ기학(氣學)"이라고도 부르며, "우주론"보다 "심성론"에 치중했기 때문에 "심학(心學)"이라고도 부른다.
"중국 송 대"에 "이기2원론"을 창설한 철학자는 "정이(1033~1107)"로, 그 이전의 "주돈이·소옹(召雍)·장재(張載)·정호(程顥)"등에 있어서는 아직 "이기론"이 확립되지 않았다. 그런데 "주희(朱熹ㆍ1130~1200ㆍ호- 염계(濂溪)ㆍ위대한 성리학자ㆍ합리주의자ㆍ후에 주자란 극존칭)""의 철학, 즉 "성리학"은 이 모든 학설을 종합하여, 집대성한 것이며, 특히 "주돈이의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정이의 이기설"을 종합한 것이다.
① "이 (理)"와 "기 (氣)"의 본래 의미
"이"는 본디 "옥(玉)의 결이나, 무늬를 뜻"하는 단어로 "사물의 자연스러운 조리ㆍ순조롭게 일을 이루기 위해 지켜야 할 질서"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그러한 바탕 위에서 "이"개념은 사상사적 변천을 거쳐, 의미를 확장해 가게 되는데, 특히 "한(漢)ㆍ당(唐) 대" 불교적 사유의 영향을 받으며, 그 추상적 성격이 강해진다. "송(宋)대"에 "정주학"이 정립되면서, "이"는 우주를 이루고, 만물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절대적인 법칙이나 원리를 의미하게 된다.
"기" 역시, 중국 전통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개념 가운데 하나다. "기"는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운동 작용을 통해, 세상만사를 이루는 "모종의 에너지"로, 인간을 비롯해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생명은 기의 유행에 따른 것"으로 간주되어왔다. "기"는 비록 가시적으로 눈에 보이는 사물은 아니지만, 만물을 이루는 기본요소라는 점에서 물질적인 속성을 가진다. 자연현상과 인간 삶의 물리적ㆍ질료적 기반을 "기"로 보는 세계관은 신유학의 "기" 개념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② "이기론"의 성립 (주희 철학- 이기이원론 (理氣二元論) )
"주희"에 의해, 확립된 "이기론"은 "성리학의 토대가 되는 존재론"이다. "이ㆍ기"는 본래 짝을 이루는 개념이 아니었으나, "중국 송(宋)대"에 "신유학 체계"가 정립되면서 세계를 구성하는 2개의 범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주희"는 별개의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이(理)"와 "기(氣)"를 대치시킴으로써, 자연과 인간을 아우르는 거대한 이론체계를 구성한다. "주희"에 따르면, 우주만물은 "이"와 "기"의 결합으로써 존재한다.
"이"는 천하의 사물이 그와 같이 이루어진 "근거(所以然之故)"이자,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법칙(所當然之則)"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기"는 그러한 근거와 법칙에 의거하여, 현상세계를 구성하는 "실질적인 질료"가 된다.
"리"는 추상적인 원리로서, 형체를 갖지 않는 존재인 까닭에, 현상세계에서 "이"의 실현은 "기"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 면에서, 존재론적으로 "이"와 "기"는 상호보완적이며,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不相離)라 할 수 있으나, 반면 "이ㆍ기"는 각각 "형이상(形而上)ㆍ형이하(形而下)"의 존재로 그 범주를 달리 하기에 엄연히 구분되어야 하는 관계(不相雜)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ㆍ기"에는 도덕적인 "선ㆍ악"의 의미가 부여된다. "선ㆍ악"의 관점에서 볼 때, "리"는 절대적으로 선한 반면, "기"에는 "선ㆍ악"이 섞여 있다. "성리학"에서는 각각의 사물에게 부여된 "리"를 "성(性)"이라고 하는데, "이"가 보편적으로 동일한 만큼 만물의 본성 역시 똑같이 "선"하다고 본다. 그러나 동일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각각의 사물을 구성하는 "기"에는 "맑음과 탁함ㆍ온전함과 치우침(淸濁偏全)" 등의 차이가 있다.
그러한 "기"의 차이에 따라, 각각의 존재마다, "선ㆍ악"의 정도차가 발생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리"는 만물에 공통적으로 내재한 "동일성"과 보편적인 "선"을 보장하는 개념이며, "기"는 만물 간에 존재하는 "차별성"과 "선ㆍ악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ㆍ기"는 서로가 전연 다른 것(決是二物)이지만, 현상의 세계는 모두 "이"의 이치ㆍ이법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므로, "이ㆍ기"는 항상 서로 떠나려 아니한다.(不可分開) 그러므로 우주의 시원(始源-본체)에 있어, 벌써 현상으로 될 가능성을 가진 "이ㆍ기"는 동시에 실재한다. 따라서 주희의 철학을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라 한다.
"이ㆍ기"는 본래 "선ㆍ후"를 말할 수 없으나, 근원적으로는, 먼저 "이"가 있어야 한다. "주희"는 "기"가 있으면 "이"가 있고, "기"가 없으면 "이"가 없다하여, "이기동시(理氣同時)"를 명백히 하였다.
③ 논쟁
"이ㆍ기"에 대한 설명은 "주희의 어류(語類)"에 산재해 있으므로, 전체적ㆍ체계적인 것이 아니어서 후대의 학자들의 이해가 서로 달라, "조선 유학"에 있어, 시비의 불씨가 되었다. "4덕ㆍ5상ㆍ4단ㆍ7정ㆍ4정" 등은 조선 유학에서 치열하게 논쟁을 일으킨 문제들로, "이ㆍ기ㆍ성ㆍ정"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4덕 (四德) : 인ㆍ의ㆍ예ㆍ지 (仁ㆍ義ㆍ禮ㆍ智)
5상 (五常) : 인ㆍ의ㆍ예ㆍ지ㆍ신 (仁ㆍ義ㆍ禮ㆍ智ㆍ信)
4단 (四端) : 측은지심ㆍ수오지심ㆍ사양지심ㆍ시비지심(惻隱之心ㆍ羞惡之心ㆍ辭讓之心ㆍ是非之心)
7정 (七情) : 희ㆍ노ㆍ애ㆍ구ㆍ애ㆍ오ㆍ욕 (喜怒愛懼哀惡欲)
④ 주리파ㆍ주기파로 분리
"주희의 성리학"이 조선왕조에 수입되어, "이황이 이발(理發)ㆍ이이가 기발(氣發)"을 주장하게 되자, 조선의 철학계는 "주리파ㆍ주기파"의 양대 진영으로 크게 갈라져, 양대 산맥을 이루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와서, "이기론"은 심오하게 탐구되었는데, "기"를 주로 보는 "주기파(主氣派)", "이"를 주로 보는 "주리파(主理派)", "이ㆍ기"를 다 같이 "동(動ㆍ즉 發)하는 것"이라고 보는 "이황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과 "기대승의 이기공발설(理氣共發說)", 또 "주리설ㆍ주기설"을 절충한 "이항ㆍ장현광의 절충파" 등이 있으며,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극단적 "유리론(唯理論)ㆍ유기론(唯氣論)"으로 발전한다.
더욱이 중국 명대의 "양명학(陽明學)"이 조선에 유입되어, 일부 학자들이 전공하게 됨으로써, "양명학파(陽明學派)"가 형성되었고, 심학이 크게 융성하여, 이른바 "사단칠정논쟁(四端七情論爭)" 또는 "사칠이기설(四七理氣說)"이 성행하였고,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2. 기본 : 주리파 (主理派)ㆍ주기파 (主氣派)
① 주리파 (主理派) : 이황ㆍ남인ㆍ영남학파 (嶺南學派)→ 영남지방
• 이 황(李滉ㆍ1502~1571) : 이기이원론에 입각,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ㆍ이발(理發) 주장 → "이(理)ㆍ기(氣)"가 시ㆍ공간적으로 분리되어, 발동한다 → "이(理)" 일변도의 "심즉리(心卽理)"를 주장
② 주기파 (主氣派) : 이이ㆍ서인ㆍ기호학파 (畿湖學派)→ 경기ㆍ호남지방
• 기대승 (奇大升ㆍ1527~1572) : 이기공발설(理氣共發說)→ "이(理)ㆍ기(氣)"가 시공간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 이 이 (李珥ㆍ1537~ 1584) : 심즉기(心卽氣)ㆍ기발(氣發) 주장
• 서경덕 (徐敬德ㆍ1489~1546) : 성리학계에서 일찍이 "주기론(主氣論)"을 주창하였으나, 얼마 동안은 그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기이원론(理氣二原論)"을 "일원론적"으로 보려고, 노력하였다. "일기"가 음기ㆍ양기의 "이기(二氣)"로 갈라져, 후천(後天)이 생긴다고 주장하여 주기적(主氣的) 경향을 보였다.→ 화담학파ㆍ도가 사상가
③ 주리파 (主理派)
"이황"을 지지하는 "주리파"는 "영남지방"에서 성행하였으므로, "영남학파"라고도 했다. "이황"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에 대해서, "이황의 문하"에서는 거의 이론이 없었다.
"이황 문하"의 석학인 "유성룡ㆍ김성일" 등은, 스승과의 왕복서한에서 "기대승"이 굴복하였고, 또한 "이황의 학설"은 "주자의 학설"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므로, "이황의 학설"에 대한 시비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이"가 "이황의 이기호발설"에 반대, "기호지방"에서 "이이"의 사상이 보급되고, 정치성도 가미되어, "서인" 학자 전체가 "이황의 설"을 배척하자, 이를 "남인"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 "영남학파"에서는 "이황의 학설"을 맹렬히 옹호하여, "심즉리(心卽理) 이론"을 굳혀서, "주리파"의 철학이 확립되었다.
"이이의 학설"을 공격하고, "이황의 학설"을 공공연히 옹호하기 시작한 것은 "이황"의 사후 약 100여 년 이후부터의 일로, 이러한 경향을 현저하게 드러낸 사람은 "이현일"이었다. 그는 "4단의 공(公)이요, 7정은 사(私)니, 공은 불선(不善)이 없으므로 "이발"이라 하는 것이며, 사는 혹은 선하고, 혹은 불선하여, "기발"이라 하므로, "이발ㆍ기발"의 구별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라며, "이황의 설"을 옹호하였다.
그러나 "이현일"은 "4단은 순전한 이(理)발일 뿐, 기(氣)가 섞이지 않았다"든가, "7정은 순전한 기발일 뿐, 이(理)가 섞이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4단에는 "이"가 주가 되고, 7정에는 "기"가 주가 된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정치적 대립의 격화와 함께, "영남학파ㆍ기호학파"의 대립도 첨예화되어, "영남학파"는 "이이의 기발설(氣發說)"에 반대한 나머지, "기"를 버리고, "이" 만을 취하는 "주리설"의 방향으로 나갔다.
④ 주기파 (主氣派)
"심즉기(心卽氣)"를 주장하는 "이이"가 "기발설(氣發說)"을 옹호한 조선시대 성리학의 2대 분파중의 하나로, "경기ㆍ호남지방"에서 성행하였으므로, "기호학파(畿湖學派)"라고도 한다. 성리학계에서 일찍이 "주기론(主氣論)"을 주창한 것은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이었다.
그 후 얼마 동안은 그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이ㆍ율곡학파"가 "이황의 이기호발설"을 공격하자, "퇴계학파"는 "이기호발설"을 옹호하며 "율곡학파"를 "주기파"라고 불렀다. 그뿐 아니라, "율곡학파"도 "이기호발설"을 공격하며, 자파의 이론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기(氣)"를 중심으로 보는 입장이 선명해져서, 마지막에는 "주기설"을 주장하는 단계에까지 도달하였다.
이리하여 "이이"는 최초로 "심시기(心是氣)"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이"는 "심(心)의 주된 작용은 허령불매(虛靈不昧)한 지각(知覺)에 있으며, 이 지각은 "이"가 아니라 "기"에 속하는 것"이라 하여, "심시기(心是氣)"라고 하였다.
그 후 "송시열"은 "이이"의 해석을 따라, "심(心)의 허령은 분명히 기(氣)"라고 하였고, "한원진(韓元震)은 "성(性)과 심을 구별하여, 성이 이에 속한다고 한 이상, 심은 기에 속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또한 임성주(任聖周)는 "심즉기(心卽氣)"가 진리일 뿐 아니라, 심과 성은 둘이면서도 하나이므로, 성도 기라는 입장을 취하고, 우주나 심의 본체가 오로지 "기" 하나뿐이라고 주장하여, "주기론"의 정점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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