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테일러 (Elizabeth Taylorㆍ1932~2011ㆍ79세)"는 "미(美)의 화신 (The Beauty Incarnate)ㆍ세기의 미녀"로 불리며, 애칭은 "리즈(Liz)"이고, 8번의 결혼식을 올렸으며, 키는 약 160cm였는데, 그녀의 키 역시 미인의 기준이 되었다고 한다. "리즈의 눈, 먼로의 입술" 이라는 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역대 최고의 아름다운 눈을 가진 배우로 평가받는다. 또한 속눈썹이 2겹으로 나서 더 예뻐 보인다.
1. 엘리자베스 테일러 (Elizabeth Taylorㆍ1932~2011ㆍ향년 79세ㆍ160cm)
단순히 외모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2회)ㆍ골든 글로브(4회)ㆍ영국 아카데미 (2회) 수상자(1942~2003 활동)ㆍ"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은 할머니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보라색 눈"으로 유명하다. 다만 엘리자베스가 사실 "짙은 파란색"으로 사진과 조명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실제로 확인한 눈 색깔 역시 "짙은 파란색"이라고 한다. 1963년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리처드 버튼(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역)"과 열연한 주인공 "클레오파트라 7세" 역은 그녀가 아니면 소화하지 못했다고 할 정도였다. "녹원의 천사"에서 승마하는 연기를 하다가 척추를 다쳤다. 이후 이 고질병으로 고생을 많이 하고 말년에 휠체어 신세를 지기도 했으며, "뇌종양"에 걸려 고생했다.
• 대표작 : 젊은이의 양지ㆍ자이언트ㆍ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ㆍ클레오파트라ㆍ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 본 명 : 엘리자베스 로즈먼드 테일러 (Elizabeth Rosemond Taylor) • 출 생 : 영국 런던 햄스티드 • 사 망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 (울혈성 심부전증 투병) • 자 녀 : 2남 2녀 : 1남 (1953)ㆍ2남 (1955)ㆍ1녀 (1957)ㆍ2녀 (1961))
• 어 록 : 나는 남편 이외의 남자와 잔 적은 한번도 없다ㆍ당신이 스캔들에 휘말릴 때 진짜 친구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ㆍ내가 아는 이탈리아 단어는 오직 불가리뿐.(이탈리아 최고의 보석상, 리즈는 불가리의 뮤즈였다)ㆍ나는 항상 남편과 아이들을 원했지만, 가정주부로서의 내 삶은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 내 자리는 관객들이 봐주는 영화 속이다ㆍ나는 평생 화려한 보석에 둘러싸여 살아왔다. 하지만 내가 정말 필요로 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진실한 마음과 사랑, 그것뿐이었다ㆍ성공은 탈취제 같다. 과거의 향기를 다 앗아가 버리니까ㆍ나는 많은 남편과 보석을 얻으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내게도 삶은 그저 발생했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서 "리처드 버튼"과 함께 출연하여, 외모를 잊게 하는 리얼한 막장 부부 연기를 보여준 걸로 유명한데, 4명의 남녀 주ㆍ조연들(엘리자베스(여우주연상)ㆍ리처드 버튼ㆍ조지 시걸ㆍ샌디 데니스(여우조연상)까지 전부 아카데미의 해당 분야에 노미네이트 된 정도로 모든 출연자들의 연기 앙상블이 뛰어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가족이 "미국 LA"로 귀국하였다. 어릴 때부터 예쁜 외모로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1942년 10세 때 배우로 데뷔했으며, 인기를 얻은 것은 "녹원의 천사"라는 영화에 아역배우로 출연했을 때부터였다. 이후 2001년까지 50편의 영화를 찍으며 세계 최고의 미녀로 뽑히기도 했다. 10살에 첫 영화에 출연했고, 12살에 할리우드 영화에 데뷔했으며, 1951년,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로 스타덤에 올랐다. 그녀 나이 불과 19살 때였다.
제작사의 혹독한 훈련, 연극배우였던 어머니의 치밀한 계획과 관리에 의해, 그녀는 "아역배우는 나이를 먹으면 인기를 잃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어머니 "세라 비올라 웜브롯"은 엄청난 극성파였다. 무명배우 출신이어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특출한 외모와 재능을 가진 어린 딸을 스타로 만들려고 애를 썼다. "리즈"의 생활을 사사건건 간섭하며 조종하려고 들었다. "리즈"는 한창 뛰어놀 나이에 어른들 틈에 끼어 영화를 찍고 관리를 받으며 성장했다. 18살(1950년)에 했던 첫 결혼을 봐도 알 수 있다. 유대인과 무관했으나, 유대인 남편인 "마이크 토드"와 결혼하면서 유대교로 개종하여 "시오니즘"에 지지를 보냈기에 아랍권에서 반발을 일으켜 입국금지를 당했다.
2. 결혼 (8번 )ㆍ이혼
① 1950~1951 (1년): 콘래드 힐튼 주니어 (Conrad Hilton Jrㆍ1926 (6살 연상))
힐튼 호텔의 창업자의 미남 아들ㆍ결혼 당시 테일러는 18살ㆍ이혼 사유 : 남편의 폭력ㆍ너무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해 어른의 세계를 알아버린 조숙한 소녀는 결혼의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어머니의 간섭과 집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이 결혼을 서둘렀다는 말이 있다. 일종의 도피성 결혼이었던 셈인데, 사랑에 빠져서 결혼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결혼했던 것이다.
당시는 "리즈"의 미모와 "힐튼가"의 재력이 결합한 "세기의 결혼"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나, 어린 신부는 불과 7개월 만에 이혼녀가 됐다. "힐튼"의 알코올 중독ㆍ가정 폭력이 원인이었다고도 하고, "리즈"가 배우답게 가식을 즐겼으나 "힐튼"이 이를 견디지 못해 신혼여행 후 바로 이혼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혼 후, "리즈"가 "이 남자는 지옥 같다"고 했다.
② 1952~1957 (5년): 마이클 와일딩 (Michael Wildingㆍ1912 (20살 연상))
영국 출신의 영화배우ㆍ아들 2명을 낳았다. 20살의 "리즈"는 40살의 남편에게서 자상함과 편안함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태어나서 20년을 살면서 절반의 시간 동안 영화 촬영을 했고, 10대에 이미 단역이 아닌 주요 배역으로 6~7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1번의 결혼ㆍ이혼이라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겪었다. 시끄러웠던 첫 결혼을 잊어버리려는 듯 화려한 웨딩드레스 대신, 성숙한 분위기의 투피스 정장을 입고, 아버지뻘 되는 남편의 손을 잡고 2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와일딩"은 신사적이고 다정다감한 성격이었지만, "리즈의 남편"이라는 꼬리표에 큰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그도 배우로서 상당한 커리어를 갖고 있었으니 자기 이름으로 활동하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젊은이의 양지(1951)"로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음한 "리즈"는 "와일딩"과의 결혼 기간에 "내가 본 마지막 파리(1955)ㆍ자이언트(1956)"와 같은 힛트작에 연이어 출연했다.
※ 1956 : 제임스 딘 (지미 딘ㆍJames Byron Deanㆍ1931~1955ㆍ24세ㆍ1살 연상)
특히 "자이언트"는 당대의 스타였던 "록 허드슨ㆍ제임스 딘"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역할이었는데, 실제로 "리즈"는 "제임스 딘"과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결혼한 상태였고, 두 아들을 낳은 후였지만, 가죽 점퍼가 잘 어울리는 반항적이고 터프한 "제임스 딘"은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리즈"는 사랑에 솔직하고 본능에 충실했던 여자였다. 그녀에게 도덕적 잣대나 세간의 평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제임스 딘"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그녀는 크게 절망했다. 불같은 사랑이 끝났지만, 그녀는 남편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강력하고 열정적인 사랑의 감정을 경험한 그녀에게 수동적이고 무능력한 남편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1957년 이혼했다. "리즈"의 나이 불과 25살이었다.
③ 1957~1958 (1년): 마이크 토드 (Mike Toddㆍ1909 (23살 연상))ㆍ본명 : 아브롬 히리쉬 골드보겐
영화 제작자ㆍ유태인으로 매우 재능 있는 사람이었지만, "테일러 남편"으로 더 알려졌다. 결혼 1년 만에 비행기 사고로 사망ㆍ딸 1명을 낳았다.
④ 1959~1964 (5년): 에디 피셔 (Eddie Fisherㆍ1928 (4살 연상))
"프랭크 시나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팝 가수ㆍ딸이 유명한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역을 맡은 "캐리 피셔"ㆍ"캐리 피셔"는 "테일러"의 딸은 아니다. "데비 레이놀즈"의 딸ㆍ "테일러"와 이혼한 "에디 피셔"는 슬럼프에 빠져 다시는 재기하지 못했다. "데비 레이놀즈"는 "테일러"가 죽기 직전, 병 문안을 가서 화해를 했다고 한다.
이 시기부터 "테일러"의 막장 행보가 시작되는데, "에디 피셔"는 유부남으로 "마이크 토드"의 친구였고, 부인인 "데비 레이놀즈(영화배우)"는 그녀의 친구였다. 즉 남편의 친구이자, 친구의 남편과 바람을 피운 것. 이때, 아들과 참석한 파티에서 "에디 피셔"가 그의 아들에게 "테일러"를 가리키며 "저 여자 죽이지 않냐"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교황청"에서도 이 불륜에 대해 비난했다. 그러나 "테일러"가 "클레오파트라" 출연 중, 상대 배우인 "리처드 버튼"이랑 눈이 맞아서 이혼했다. 사실 "에디 피셔"도 엄청난 바람둥이었다. 심지어 여기저기 사생아를 만들다 보니 할리우드 파티에 참석한 "에디 피셔"의 아들이 이상하게도 유난히 끌리는 여자가 있기에 작업을 걸었는데, 그 여자가 "우리 이복남매 사이예요. 울 아빠도 에디 피셔"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다.
⑤⑥ 1964~1975ㆍ1975~1976 (12년): 리처드 버튼 (Richard Burtonㆍ1925 (7살 연상))ㆍ4개월 만에 이혼
이혼하면서 한 명언 : 너무나 사랑하기에 헤어진다.
"드라마틱 했던 첫 만남ㆍ첫눈에 반한 사랑ㆍ불같은 사랑ㆍ불륜" 후대 사람들은 "리즈 테일러ㆍ리처드 버튼"을 "세기의 사랑ㆍ세기의 연인"이라고 부른다. 둘의 결혼식은 "세기의 결혼식"이라고 불리웠으며, 이때 "버튼"이 "리즈"에게 선물한 33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가 유명했는데, 후에 "한국의 이랜드 그룹"에게 낙찰되었다. "리즈의 보석 컬렉션 (2011.12)"이 화제가 되었는데, 낙찰 총액이 무려 115,932,000$에 달했다.
"리즈"는 진귀한 보석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버턴"이 사준 것이었다. "버튼"은 다혈질적인 성격에다가, 알코올 의존증까지 있어서 "리즈"와 엄청나게 싸웠지만 "리즈"가 가장 사랑한 남자였다. "버턴"은 성격이 기분파였고, 보석을 고르는 안목이 매우 뛰어나, "리즈"에게 불쑥불쑥 보석을 많이 선물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정신ㆍ육체를 불사르며, 서로를 사랑했고, 집착했다. 훗날 공개된 두 사람의 연서(戀書)를 보면, "당신이 나를 버리면 죽어버릴 거야. 당신 없는 삶은 없어"라며, 노골적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감정이 격렬하고, 맹목적인 면이 있다고 보여진다. 각각 8번ㆍ5번의 결혼을 했던 "리즈 테일러ㆍ리처드 버튼"은 생전 가장 사랑했던 사람으로 서로를 꼽았고, "리즈"는 죽기 전, "버튼의 묘지 옆에 안장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리처드 버튼"은 당대 최고의 터프가이로 유명한 "웨일즈" 출신의 배우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역"을 맡아 "리즈"와 함께 영화를 찍으며 사랑에 빠졌다. "리즈ㆍ에디 피셔 사이"에서 입양한 딸 "마리아"를 재입양하기도 하였다.
※ 1976 : 아르데시 자헤디 (주미 이란 대사)
"리처드 버턴"과 이혼하고, "존 워너"를 만나기 전, "아르데시 자헤디"와도 염문을 뿌렸지만, 당시 이란 국왕 "레자 팔레비"의 압력으로 헤어졌다.
⑦ 1976~1982 (6년): 존 윌리엄 워너 (John William Warner)
정치인ㆍ해군장관ㆍ테일러와 결혼한 이후 그 후광으로 상원의원이 되었으며, 이후 5선까지 당선
※ 1982 : 워런 비티(1937 (5살 연하))
한때 "할리우드 최고의 바람둥이 워런비티"와도 교제했다. 하지만 같은 바람둥이인데도 "사랑하면 결혼해야한다"는 "리즈"와 "사랑해도 결혼은 최대한 미루자"는 "워렌 비티"의 결합은 곧 깨어진다.
⑧ 1991~1996 (5년): 래리 포튼스키 (Larry Fortenskyㆍ1952 (20살 연하))
20살 연하의 건설 노동자ㆍ트럭 운전기사ㆍ"네버랜드(마이클 잭슨의 농장)"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절친 : 마이클 잭슨 (1958~2009ㆍ51세 (24살 연하))
1980년대 초에 처음 만났다. "마이클 잭슨"이 아무런 연유도 없이 LA에서 열리는 자신의 콘서트 티켓을 "리즈"에게 보냈는데, 마침 콘서트 날짜가 그녀의 생일인 02.27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리즈"는 콘서트를 구경하러 갔는데, VIP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대가 너무 멀다"는 이유로 불쾌해하며 자리를 떴다고 한다. "잭슨"은 공연이 끝난 뒤 그 사실을 알고 다음 날 울면서 그녀와 통화를 시도했고, "리즈"는 "마이클, 나 같은 유명한 스타는 절대 싼 좌석에 앉지 않아."라고 답을 하고 사과를 받아준 뒤 "잭슨"이 투어를 할 때마다 매일 통화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1989년, "잭슨"이 네버랜드로 이사하기 전, "리즈"가 "잭슨"에게 자기 집에 사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문제가 너무 복잡해질 것 같다고 느낀 "잭슨"은 계획대로 네버랜드로 이사를 갔다. 1991년, 이후 "잭슨"은 "리즈"가 "래리 포텐스키"와 결혼을 했을 때, 결혼식 장소로 네버랜드를 제공해주기도 하고, 1993년 성추행 논란에 휩싸였을 때, "리즈"에게 많이 의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잭슨"의 자녀 3명의 대모가 되었다.(대부는 맥컬리 컬킨) 2001년, "잭슨"의 마지막 공연 때도 함께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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