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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인물 - 시성 • 철학 • 작가

시성 작품 ② 신곡 (神曲ㆍLa Divina Commedia) : 단테

by 당대 제일 2023.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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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神曲ㆍLa Divina Commedia)"은 현대 "이탈리아 어"의 뿌리를 이루었고, "근대 문학"에 사랑의 원형을 제공한 "단테 (알리기에리 단테ㆍAlighieri Danteㆍ1265~1321ㆍ56세ㆍ이탈리아 피렌체)" 필생의 대작이고, "단테"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여인이 바로 "베아트리체 (Beatrice실제 이름은 비체1266?~1290ㆍ24세)"이다.

"단테"는 오직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으로, 인류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신곡"을 창조했다. "단테"는 평생 단 하나의 사랑이었던 "베아트리체"를 "영원한 여인상"으로 찬미했다. 그리고 이 "위대한 시인"의 문학적 기념비 속에서, "베아트리체"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영원한 "사랑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세계 4대 시성"이라 불리는 "단테"에게, 그러나 "베아트리체"가 없었다면, 아니 "단테"가 그녀를 그토록 열렬히 사랑하지 않았다면, "신곡"은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1. 단테 (알리기에리 단테ㆍAlighieri Danteㆍ1265~1321ㆍ56세ㆍ이탈리아 피렌체)

"두란테 (Durante)"의 약칭인 "단테 (Dante)"로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의 시인ㆍ13C 이탈리아의 시인예언자신앙인이탈리아의 가장 위대한 시인(西)유럽 문학의 거장ㆍ후에 "신곡(La divina commedia)"으로 제목이 바뀐 기념비적인 희극 서사시 "La commedia"으로 널리 알려졌다"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단테"를 가리켜, "최후의 중세 시인인 동시에최초의 대시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문예부흥의 선구자가 되어인류문화가 지향할 목표를 제시하였다.          • 작 품 신생(1295)신곡(1308~1321)농경시향연(1306~1308)             • 명언 기권은 중립이 아니다, 암묵적 동조다.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자리는 정치적 격변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예비되어 있다.

2. 단테 (Dante)베아트리체 (Beatriceㆍ비체)신곡 (神曲)

"단테"는 자신의 삶을 바쳐 쓴,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를 "숭고한 사랑의 이상형"으로 창조했다. "베아트리체"가 없었다면, "단테"도 없었을 것이다.  "베아트리체"라는 영원한 연인은 사실상 "단테의 펜 끝"에서 태어났다.  "내 시는 이전에 존재한 적 없고 앞으로도 나오지 못하리. 그것을 쓰기 전까지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쓰지 않으리." "베아트리체"를 가슴에 묻은 단테가 장장 20여 년의 집필기간을 두고 탄생시킨 필생의 역작 "신곡"의 시발점이 된 말이다.

①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 (일상어)"를 "시어 (詩語)"로 선택함으로써, "단테"는 문학발달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조국에서 태동하기 시작한 "시가(詩歌) 문화"에 표현 능력을 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어"가 수백 년 동안, "서유럽"에서 문학어로 쓰이게 되는 데 기여했다.

② 이 서사시는 "기독교ㆍ신화ㆍ철학ㆍ이탈리아의 역사"를 포함한, "당시의 사회상ㆍ단테의 일생ㆍ베아트리체에 대한 지식ㆍ각운ㆍ운문형식의 음악성과 리듬"까지 두루 아우르는 "서사시"인 탓에 많은 지식을 요하기 때문이다.

③ 이 위대한 중세 문학작품은 "인간의 속세ㆍ영원한 운명"을 심오한 "그리스도교적 시각"으로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면,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시인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지만, 아주 포괄적인 차원에서 보면, "지옥ㆍ연옥ㆍ천국"을 여행하는 형식을 취한 "우화(寓話)"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④ 여기에 나타난 "시인의 박학다식함ㆍ당대 사회문제의 예리하고, 포괄적인 분석ㆍ언어와 시상(詩想)의 창의성" 등은 놀라울 정도이다. 

"박학다식함ㆍ당대의 뜨거운 정치논쟁"에 개인적으로 연루된 사건들로 인해, "중세 정치철학"의 주요 논문 가운데 하나인 "제정론(De monarchia)"을 썼다.

 

3. 신곡 (神曲ㆍLa Divina Commedia)

① 1307년경부터 쓰기 시작하여, 1321년에 사망 전에 완성하였다.

"지옥 편(地獄篇)ㆍ연옥 편(煉獄篇)ㆍ천국 편(天國篇)"의 3부로 이루어졌다.  각 편 33가(歌)ㆍ각행 11음절(音節)ㆍ3운구법(韻句法)을 취했으며, 서가(序歌)를 합하면 100가에 총 행수 1만 4233행에 이른다.  제명(題名)을 중세의 관용(慣用)에 따라, 희곡(喜曲)이라 붙인 것은 비참한 인상을 주는 것은 "지옥 편"뿐으로, 나머지 "연옥 편ㆍ천국 편"에는 쾌적하고, 즐거운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표면에 나타난 주제는 사후(死後)의 세계를 중심으로 한 "단테의 여행담(旅行談)"이다. 사후세계의 공간을 빌리기는 했지만, "단테"가 "신곡"에서 구현한 것은 착잡한 당대 이탈리아의 현실이었다. 20여년을 매달린 이 작품을 통해 "단테"는 뼈를 깎는 회개와 이웃에 대한 사랑만이 구원을 기약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② 그는 그 구원의 길잡이로서, 자신의 영원한 사랑인 "베아트리체"를 설정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베아트리체"는 "단테" 만의 사랑이 아닌 만인의 연인이자, 구원자가 되어, 우리 모두에게 구원의 손을 내밀고 있다.  "베아트리체"의 안내로 천국을 여행하면서, 그는 "베아트리체"를 "내 마음의 영광스러운 여주인"이라 묘사한다. 어두운 "지옥편"은 "신곡" 중 가장 무섭고 흡입력이 높다. "왜 사랑이신 하느님은 사람을 영원한 형벌의 늪에 몰아넣은 것일까. 거기에 지옥의 깊은 뜻과, 악 그리고 신앙의 심오한 뜻이 있다."  인간의 구원은 어떻게 가능한가. 신을 통해야 하나, 사랑을 통해야 하나.  "단테"는 "사랑"이라고 했다. 아니 "신과 사랑은 같다"고 했다.

"단테"가 33살 되던 해의 "성(聖)금요일" 전날 밤 길을 잃고 어두운 숲속을 헤매며, 번민(煩憫)의 하룻밤을 보낸 뒤, 빛이 비치는 언덕 위로 다가가려 했으나, 3마리의 야수(野獸)가 길을 가로막으므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때 "베르길리우스 (단테가 최고로 존경한 로마 최고의 시인BC 70~BC 19)"가 나타나 그를 구해 주고 길을 인도한다. 그는 먼저 "단테"를 "지옥"으로, 다음에는 "연옥의 산(山)"으로 안내하고는 꼭대기에서 "단테"와 작별하고, "베아트리체"에게 그의 앞길을 맡긴다.  "베아트리체"에게 인도된 "단테"는 "지고천(至高天)"에까지 이르고, 그 곳에서 한순간 신(神)의 모습을 우러러보게 된다는 것이 전체의 줄거리이다.

③ "신곡"에서 "지옥ㆍ연옥"의 안내자는 "단테"가 최고로 존경한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다. 

두 곳은 지성으로 감당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천국은 인간 지성이 아니라, 지고한 사랑으로 이를 수 있는 곳이다.  "베르길리우스(로마의 시인)"과 "지옥ㆍ연옥"을 여행한 "단테"는 "천국의 문" 앞에서 "베르길리우스"와 헤어지게 되었다.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전 사람인 "베르길리우스"는 "천국"에 갈 수 없었고, "이교도"인 까닭에 "림보"에 떨어지게 된 것이다.

"연옥"의 지상 낙원 앞에 도착한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에게 작별을 고한다. "베르길리우스"와 헤어진 "단테"는 홀로 냇가를 거닐다, 천상의 음악인양 아름다운 노래 소리에 이끌린다.  그리고 그에게 꽃이 가득 뿌려진 길을 달려온 화려한 마차가 나타난다.  그 마차에는 바로 "베아트리체"가 타고 있었다.  "천국의 안내자"가 바로 영원한 사랑의 이름 "베아트리체"인 것이다.  "흰 옷을 입은 베아트리체가 수레에서 사뿐히 내리며, 단테에게 그리포네를 소개한다. 괴물은 하늘을 가릴 만큼 커다란 황금빛 날개를 활짝 펴고 있다. 베아트리체 왼편에는 세 여인이 축제의 춤을 추고 있는데, 흰 옷을 입은 천사는 믿음, 녹색 옷은 소망, 붉은 색 옷은 사랑을 의미한다.  단테가 그토록 동경하던 거룩한 여인 베아트리체는 이제 연옥에서 신의 나라인 천국까지 그를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었다. 그녀의 청정한 영혼은 가문에 지친 단테의 영혼을 해갈해 줄 것이며, 신의 사랑과 완전한 평화가 있는 낙원으로 그를 데려갈 것이다."

④ 참고 내용 

이 작품이 포함하는 영역의 광대함과 거기에 의탁(依託)된 메시지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에 사용된 상징의 대요를 설명한 "제정론(帝政論)"을 읽을 필요가 있다. 그 책에 의하면, "인간은 신이 정했다"고 하는 자연계에서의 목적과 초자연계에서의 목적을 향하여 살아간다. 현세에 있어서의 "행복(지상낙원을 상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윤리적ㆍ지적 미덕이 명하는 바에 따라 살아가며, "제2의 목적(영원의 행복)"을 얻는 길은 "신의 은총"에 힘입으면서, 그리스도교의 믿음ㆍ 소망ㆍ사랑에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인류를 "현세의 행복"으로 안내하는 것은 "황제의 의무"이고, "천국의 행복"으로 인도하는 것은 "교황의 의무"이다. 이것이 "신곡"의 중요한 장면에 나오는 이미지와 일치하는 점이다.

따라서 "단테"의 상상 속에서 나온 "우의적(寓意的) 여행담"은 실제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생활체험에서 얻은 진실을 의식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조잡(粗雜)한 생활ㆍ이성과 덕이 결핍된 생활"을 상징하는 "어두운 숲"은 "3마리의 야수"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데, 이들 "야수"는 원죄(原罪)에 유래하는 3가지 "아집(我執 - 색욕(色慾)ㆍ교만(驕慢)ㆍ탐욕(貪慾))"의 상징이다. 그러나 "베르길리우스"에 인도된 "단테"는 이 숲을 벗어나, 이성과 덕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걸 맞는 현세에 있어서의 "지선(至善 : 지상낙원)"에 이른다. "우의적인 면"에서 볼 때, "신곡"에 명문화(明文化)된 여러 가지 체험은 파란만장한 인생체험을 통하여 "단테" 자신의 영혼의 성장과정을 나타낸 것이며, 망명 이후 심각한 "정치적ㆍ윤리적ㆍ종교적" 문제로 계속 고민했던 그가 자신의 양심ㆍ영혼 속에서, 그 해결방법을 찾아내기까지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4. 베아트리체 (Beatrice1266?~1290ㆍ24세실제 이름은 비체)

"단테"가 9세 때, 첫눈에 반해 (단테는 "그때부터 사랑이 내 영혼을 압도했네."라고 씀) 1321년 죽을 때까지 자신의 생애 대부분과 시 작품을 바치며 사모한 여인. "베아트리체"가 실제 살았던 인물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위대한 문학가 "단테"에 의하여, 그녀는 순결하고, 고상한 여자의 대표처럼 그려져 있다. "베아트리체"를 "마리아"와 동렬(同列)에 세운데 대하여, 일부에서 "신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피렌체 시"의 명문 귀족인 "폴코 포르티나리"의 딸로, 1288년 이전, 은행가인 "시모네 디 발디"의 아내가 되었으나, 아이를 낳다가 24세인 1290년에 요절하였다. "보카치오"는 "단테 전"에서 이의 사실설(史實說)을 들고 있으나, "단테"가 만들어낸 가공의 이상적 여성이라는 "이상설(理想說)", 혹은 어떤 이상을 상징화한 것으로서 "사랑ㆍ진리ㆍ신학ㆍ천계(天啓)"등의 관념의 상징이라고 하는 "상징설", 또는 실재하기는 했으나, "폴코 포르티나리의 딸은 아니었다."는 "베아트리체 실재설"도 있다.

"단테의 사랑"으로 "베아트리체"의 존재는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시인"이 써내려간, 그 거대하고 감동적인 사랑의 묘사 덕분에, "베아트리체"는 많은 사람들이 연모하는 연인들의 상징이 되었다. 첫눈에 반한 사랑, 하지만 결코 소유할 수 없었던 여인, 젊음의 절정에서 요절했기에 더욱 애달프고 안타까운 여인, 이런 극적인 요소들은 많은 화가들을 자극했다. "단테 문학"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여자로서, "단테"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여인이 바로 "베아트리체"이다. "베아트리체"가 없었다면, "단테"도 없었을 것이다.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천사와 같이 순진한 처녀로서, 숭고한 정신의 상징으로 보았다.

"단테"의 걸작 중의 하나인 "신생" 속에는 다음과 같은 "베아트리체의 이야기"가 있다. 

"단테ㆍ베아트리체"가 만난 것은 9세ㆍ8세 때이며, 1274년으로 되어 있다. 1274년, "단테"는 9세 때, 1살 아래인 그녀와 만나 사랑과 찬미의 감정을 품게 되고, 9년 후에 우연히 길에서 다시 만나, 그녀의 정중한 인사를 받자 지극한 행복을 느꼈으며, 그 후로는 영원한 여성으로 그의 마음속에 살아남게 되었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난 것은 9살 때였다. 1274.05월 봄, 아름다운 꽃들이 화창하게 비어난 피렌체. 명문 귀족 "폴코 포르티나리(Folco Portinari) 가문"은 저명인사들을 초청해 축제를 베푼다. "피렌체"에서 내로라하는 귀족들은 모두 가족과 함께 참석하게 되었고, "단테"도 아버지 "알리기기에로"와 함께 파티에 갔다가, "포르티나리"의 귀엽고 예쁜 딸 "베아트리체"를 처음으로 만났다. 어린 "단테"의 눈에 비친 "베아트리체"는 천사 그 자체였다. 아름다운 용모와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베아트리체"는 파티의 꽃이었다.

"단테"는 첫눈에 "베아트리체"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꼈다. 새하얀 피부에 눈부신 에메랄드빛 눈을 한 소녀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우아한 매너와 상냥한 응대로 소년 "단테"의 가슴을 고동치게 했다. 그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인 듯했다. 그날 이후, "단테"에겐 오직 "베아트리체"를 보는 것만이 생의 유일한 위안이요, 행복이 되었다. 8살의 아름다운 소녀는 소년의 마음 안에서 사랑으로 자리 잡았고, 그 사랑은 "단테"의 인생행로를 좌우하게 되었다. 그 순간의 잊을 수 없는 감격을 뒷날, "단테"는 자신의 저서 "새로운 인생"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진실을 말하자면 바로 그 순간 심장의 은밀한 방 안에서 기거하고 있던 생명의 기운이 너무나 심하게 요동치는 바람에 가장 미세한 혈관마저도 더불어 떨리기 시작했다."

"베아트리체"를 향한 단테의 사랑은 시작부터 이렇게 가혹할 정도로 맹렬했지만, 두 사람은 숨결은 커녕 손바닥의 온기도 교환해보지 못했다. 만남이라고 하기엔 너무 미약한 첫 만남 후, 2번째 만남까지 두 사람은 9년을 기다려야 했다.

전하는 얘기에 따르면, "피렌체 베키토 다리(이탈리아 피렌체를 가로지르는 아르노 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에서 우연히 만났다. 2번째 만남도 미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단테ㆍ베아트리체"는 길 위에서 스치듯 눈인사를 했고, 그리고 그것이 그들 만남의 거의 전부였다. "저 경이로운 여인이 두 귀부인 사이에서 빛나는 흰 옷을 입고 나타났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예의를 갖추어 나한테 아주 정중히 인사했다."

그러나 당시 "피렌체"의 관례대로 일찍 약혼한 "단테"는 20살에 명망 높은 가문의 딸인 "젬마"라는 여인과 1285년 결혼을 해야 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마음에 품은 채, 다른 여인과 결혼을 한 것이다. 몰락한 귀족의 아들인 "단테"와 당시 "피렌체"에서 최고의 부와 명에를 자랑하던 가문의 딸이었던 "베아트리체"와의 사랑은 어찌 보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일설에는 "단테"는 정말 못생겼다고도 한다) 그녀는 대부호인 자신의 집안과 어울리는 재산가 "바르디 가문의 시모네"에게 시집을 갔다.

③ "단테"의 평생의 사랑이었지만, 결코 가까워질 수 없었던 이 연인은 1290년 24살로 이승을 떠났다.

"단테"는 우연히 "베아트리체"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된다. 16년간 자신의 가슴에 자리해온 여신을 잃은 상실감은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가슴 떨리게 사랑했던 그녀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한마디 고백도 감히 하지 못한 채, 멀찌감치 떨어져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단테"에게 "베아트리체"의 죽음은 그야말로 청천벽력, 일생일대의 충격이었다. 그녀의 죽음 이후 실제로 10년 동안 타락한 채 외지를 방황했다고 하니, 첫사랑에 상처 입은 외로운 영혼이 짊어진 고통의 무게가 얼마나 되었을지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18세 되던 해, "단테"는 "구이토네 다레초"의 영향을 받아 시를 쓰게 되었고,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평생 동안 문학적 스승으로 받들게 되었다. 그러나 "단테"에게 그들보다 더 문학적 영향을 미친 사람은 "베아트리체"였다. "단테"는 자신의 아내가 아닌, 한 번도 소유하지 못하고 끝나버린 한 여성에 대한 불타는 사랑을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러나 "단테"는 자신의 부인에 대해서는 자신의 "시" 속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결혼생활의 사랑은 그에게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내 마음의 여주인인 베아트리체"를 로맨틱한 열정을 기울여서, 또한 그녀의 죽음까지도 초월하여 정열적으로 사랑했다. 찬양받아 마땅한 여성, 천국과 같이 해맑은 그녀는 살아생전에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으나, 사후에는 하늘에 올라가게 되었고, 동정녀 마리아와 견주어지게 되었다.

"단테ㆍ베아트리체"는 우연한 만남으로 맺어져 있을 뿐이었는데, 이는 중세의 "궁정식 연애"의 기준에 부합한다. "궁정식 연애"란 다른 사람에게 비밀스럽고 보답을 바라지 않는 찬양과 존경을 바치는 것이었다. "단테"는 그렇게 실존했던 "베아트리체"와 자기 자신만의 방식으로 진실한 사랑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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