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양/인물 - 시성ㆍ철학ㆍ음악ㆍ미술ㆍ작가

시성 작품 ① 일리아스 (Ilias)ㆍ오디세이아 (Odysseia) ①최고 서사시

by 당대 제일 2023. 1. 16.
반응형

 

"일리아스 (Ilias24장/ 15,693행(行))ㆍ오디세이아 (Odysseia24장/ 12,110행(行))"는 "호메로스 (HomerosㆍHomerㆍBC 800?~750?ㆍ50세?맹인 시인ㆍ최고 서사시 작가"의 작품으로, 두 작품의 성립연대는 BC 800~750년경이다. 분량으로는 "일리아스" 쪽이 많지만, 내용의 풍부함으로는 "오디세이아"가 단연 압권이다.

 

1. 일리아스 (Ilias)ㆍ오디세이아 (Odysseia) : BC 800∼750년경 서사시

① 일리아스 (Ilias) :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전쟁

"일리온 (Ilionㆍ트로이ㆍ트로이아ㆍ소아시아의 서북부에 위치한 도시)의 노래 (서사시)"라는 뜻"트로이그리스간의 전쟁을 다룬 서사시로, "트로이 전쟁최후 10년간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ㆍ슬픔ㆍ싸움, "헥토르"의 처자와의 결별ㆍ용맹ㆍ부친의 비탄해 하는 장면이 특히 유명하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 책을 잠시도 손에서 놓지 않고, 읽었다고 하는데,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젊은 영웅인 그가 "아킬레우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킬레우스(잔혹함ㆍ분노)"가 친구 "파트로클로스" 죽음에 분노하여, "헥토르"를 죽여, 전차로 친구무덤을 12바퀴를 돈다.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가 "아킬레우스" 막사로 찾아가, 식사를 하며, 감정을 공유한다. 시신을 돌려받고, 장례기간(12일)동안 "트로이ㆍ그리스"는 전쟁을 멈춘다.

② 오디세이아 (Odysseia): 흔히 "일리아스"의 속편으로 간주되나, 내용이 곧바로 이어지진 않는다.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쓴 "서사시""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귀국하는 "오디세우스"의 모험ㆍ역경을 담은 영웅 서사시

2. 사상 최고의 서사시 : 일리아스ㆍ오디세이아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서사시 "일리아스ㆍ오디세이아"는 서양 문학의 최초이자,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BC 8C경, 구전으로 성립되고, BC 6C경에 문자로 기록되었다고 추정되므로 지금으로부터 무려 수천 년 전의 작품이지만, 이 작품들이 지닌 감동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줄어들지 않는다. 단순히 오래 되었다는 사실 하나에만 경탄이 집중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토록 오래 된 작품이 그토록 짜임새 있는 구조와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경탄을 자아내는 것이다.

① 일리아스 (Ilias)

 "트로이ㆍ그리스" 간의 전쟁을 다룬 서사시로, "트로이 전쟁" 최후 10년간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황금 사과"에서 비롯된 세 여신의 불화와 "파리스의 선택", 지상 최고의 미녀 "헬레네"의 납치와 도주로 시작돼 "트로이의 목마"로 끝난 이 전쟁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일리아스"는 이 유명한 신화를 일목요연하게 서술하지는 않는다. 어느 고전학자는 어린 시절 "일리아스" 번역본을 선물 받고 나서 그 책을 판매한 서점 주인이 사기를 친 것은 아닌가? 의심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왜냐하면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 이야기가 그 책에는 전혀 안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의 기원과 경과에 관한 설명이 나오긴 하지만, 시간 순서가 아니라 중간에 회고 방식으로 설명되며, 이것은 그리스 서사시의 특징인 동시에 그 영향을 받은 유럽 역대 서사시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대신 "일리아스"는 10년여에 달하는 "트로이 전쟁" 가운데 단 며칠 동안의 이야기에 집중된다. 

이 서사시의 실제 주인공은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다. 서두에서 "아킬레우스"는 그리스 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싸우고 나서, 더 이상 전투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이후 그리스 군은 "헥토르"가 이끄는 "트로이 군"에게 처참하게 유린당하며,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앞서의 맹세를 철회하고 전투에 복귀한 "아킬레우스"는 결국 "헥토르"를 죽여서 원수를 갚게 되는데, 그 와중에 아가멤논ㆍ오디세우스ㆍ아이아스ㆍ디오메네스ㆍ헥토르ㆍ아에네아스ㆍ프리아모스 등 양편의 주요 영웅들의 용맹과 지략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전투를 감상하며 종종 여기저기 참견하는 신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② 오디세이아 (Odysseia)

"일리아스"의 마지막 장면 이후, 계속된 전쟁의 와중에서 "아킬레우스"는 "아킬레스 건"에 화살을 맞고 죽으며, "트로이"는 "트로이의 목마"에 속아 무너진다. 승자들은 저마다 전리품을 잔뜩 챙겨 고향으로 향하는데, "오디세우스"는 이런저런 불운이 겹치며 10년 동안이나 더 바다를 떠도는 신세가 된다. "오디세이아" 역시 "일리아스"처럼 이야기가 중간에서 시작되어 과거를 회고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바다 요정 "칼립소"의 섬을 떠나, "알키노스 왕"의 궁전에 도착한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모험을 회고하는 긴 이야기가 끝나면, 드디어 고향에 돌아간 그가 오랜 세월 동안 자기 집을 유린한 자들에게 복수하고, 아내와 재회하는 것으로 서사시는 마무리된다.

그 웅장함이며 긴박감에 있어서는 "일리아스"에 미치지 못하지만, "오디세이아"는 오랜 방랑 생활 동안 주인공이 맞닥트리는 갖가지 기이한 사건과 사물(대표적인 것이 감미로운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하는 "세이렌", 오디세우스 일행을 가둬두고 1명씩 잡아먹는 "키클로페스(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 "파이아케스"에 도착한 오디세우스를 구출해 준 "나우시카 공주",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구혼자들을 속이기 위해 매일 베를 짜고 또 풀었던 "페넬로페", "텔레마코스"에게 부친을 찾아갈 방법을 조언하는 "멘토르" 등이다)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또 수많은 비유를 낳은 바 있다.

3. 트로이아 (Troia) 전쟁 : BC 1260~1180

"헬레나(스파르타의 왕비)"를 "파리스(트로이아의 왕자)"가 납치하면서 시작된 전쟁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ㆍ오디세이아"에 나오는 그리스 신화 속의 전쟁이다. 이야기는 발굴 이전까지 신화로만 여겨졌으나, 1871년 "하인리히 슐리만(독일 고고학자)"가 "트로이아"의 발굴에 성공하면서, 실제 있었던 전쟁임이 밝혀졌다.

① 지 휘 : 아킬레우스 (그리스)헥토르 (트로이) 

그리스 – 아킬레우스ㆍ아가멤논ㆍ메넬라오스ㆍ오디세우스 (헤라ㆍ아테나ㆍ포세이돈 ) /  트로이 – 헥토르ㆍ프리아모스 / 아프로디테ㆍ아레스ㆍ아폴론ㆍ아르테미스        

② 결 과 : 아카이아( 고대 그리스의 민족 집단)의 승리ㆍ트로이아 대부분 전사/ 포로/ 망명

"트로이아"의 성벽은 강해서, "그리스 병사들"이 뚫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10년 동안, "트로이아"는 성공적으로 방어를 했고, 지지부지 싸우던 "그리스"측이 묘안을 내어, 목마를 두고 철수하는 척 하였다가, "그리스" 측의 군사들은 밤에 다시 성 밖에 와서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신화에서는 "트로이아"의 멸망이 목마 때문이라 되어 있는데, "트로이아" 측은 이 목마를 승리의 전리품이라고 생각하여, 성 안에 들였으나, 그날 밤 목마 안에서 "오디세우스"를 선두로 "그리스 특공대"가 나왔고, "오디세우스"를 선두로 하는 특공대는 성문을 열고, "그리스" 측의 본군을 들여보냈다. 그리스의 본군은 "트로이아 왕"을 죽이고 도시를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헬레나"는 다시 "그리스"로 돌아오게 되었다. "트로이아"가 정복될 무렵, 망명한 "트로이아인"들도 적지 않았는데, "아이네이아스"가 대표적인 예였다.

아이네이아스 : 트로이 전쟁 영웅ㆍ전설상 아프로디테와 안키세스(트로이 사람)의 아들

"트로이"가 "그리스 연합군"에 의해 함락된 후, 아버지와 아들 율루스와 함께, 7년 동안의 유랑 끝에 "이탈리아 라티움"에 상륙하여, 그곳의 왕 "라티누스"의 딸 "라비니아"와 결혼하여, 새로운 도시 "라비니움"을 건설하였고, 이후 로마 제국의 건국 시조로 묘사되었다  또한 "아이네이아스"의 증손이 "영국"으로 이주하여, 최초의 "영국 왕"이 되었다고도 한다.

4. 퀴프리아 :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로, 지금은 전편이 전해 내려오지 않는다.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한 일련의 서사시인 서사시 작품 중, 1번째 작품으로, "일리아스"가 순서상 다음의 이야기가 된다.  "트로이아 전쟁"의 발단과 초기 부분을 그 내용으로 한다.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이야기 부터 시작해서, "파리스"의 재판과 "헬레네"의 납치, "그리스군"의 집결과 출항, "트로이 상륙"까지가 줄거리로 알려져 있다. 전쟁의 유래는 "퀴프리아"에 상세하게 나와 있다.

"제우스"는 너무 증가한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테미스 (질서의 여신)"과 머리를 맞대었고, 결국 큰 전쟁을 일으켜, 인류의 대부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결의를 다졌다. "올림푸스"에서는 "펠레우스 (인간의 아들)"과 "테티스 (티탄 족의 딸)"의 혼담이 오가고 있었다. 그러나 "에리스(불화의 여신)" 만이 잔치에 초대받지 못하자, 화가 난 그녀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바치라"는 "헤스페리데스의 황금 사과(불화의 사과)"를 신들의 자리에 보냈다. 이 제물을 놓고, 3명의 여신(헤라(제우스 아내)ㆍ아테네(지혜의 여신)ㆍ아프로디테(미의 여신))은 격렬한 대립을 벌였고, "제우스"는 이 사과가 누구에 적합한 지를 "파리스(트로이의 왕자)"에게 맡겼다. 3명의 여신은 모두 가장 아름다운 옷차림을 하고, "파리스" 앞에 섰다.(파리스의 심판)

"헤라"는 세계를 지배할 힘을, "아테나"는 어떠한 전쟁도 승리를 할 수 있는 힘을,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각각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파리스"는 젊었기 때문에, 부ㆍ권력을 제쳐두고, 사랑을 선택하였고, "아프로디테"의 권유에 의해 "헬레네(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왕비)"를 빼앗아 갔다. "파리스"의 여동생이자,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 만이, 이 사건이 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라고 예언했으나, "아폴론"의 저주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메넬라오스 왕"은 형인 "뮤케나이의 왕 아가멤논"에 그 사건을 말하였고, 또한 "오디세우스"와 함께 "트로이"로 가서 "헬레네"를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파리스"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기 때문에, "아가멤논ㆍ메넬라오스ㆍ오디세우스"는 "헬레네" 반환과 "트로이" 징벌하기 위해 원정군을 조직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