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중 (羅貫中ㆍ1330?~1400ㆍ70세)"의 탁월한 문장력이 있었기에, "연의체 소설(演義體 小說)"이란 새로운 소설양식이 만들어졌고, 또 오늘날 "삼국지연의"가 "중국 4대 기서" 중의 하나로 우뚝 설수가 있었던 것이다. "삼국지연의"는 "위ㆍ촉ㆍ오" 세 나라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 사실만을 기록한 것은 아니다. "청" 대의 "장학성(章學成)"은 "이 작품 중 7할은 사실이고, 3할은 허구여서, 보는 사람을 어지럽게 한다."고 지적하였듯이 "유비"를 정통으로 놓고, "조조"를 교활하고 간사하며, 잔혹한 통치자로 왜곡하여 묘사하였다.
1. 흔들리는 후한 (後漢ㆍ25~220)
"시황제의 진"에 이어 2번째로 중국을 통일한 "유방의 한"도 400년을 이어온 구조적인 모순으로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황제는 어진 신하들을 멀리하고, 아첨을 일삼으며 쾌락을 부추기는 환관 무리들만을 가까이 했다. 외척들이 정치를 간섭하여, 매관매직을 일삼고, 관료들은 권력다툼에 여념이 없으니, 왕권은 있으나마나요, 사회 기강은 어지럽기 그지없었다.
민중을 내세의 허황한 믿음에 빠뜨리던 사이비종교 "태평도"를 세운 "장각"을 우두머리로 한 "황건적"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결국 왕의 군사들과 조정을 지지하는 "군벌"에 의해 제압당한다. 그 과정에서 조정의 권위는 더욱 약해지고, 반면 각 "지역 군벌들"의 힘은 강화되었다.
조정에서는 "황건적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무장들은 대접하지 않고, "십상시"라 불리는 환관들에게 아부한 이들과 심지어 "황건적"들과 내통한 자들이 중용되는 어처구니없는 부패인사를 감행한다. 이를 보다 못한 "대장군 하진"은 조정의 모든 환관을 주살하려는 생각으로, 여기저기에 사람들을 불러 모았는데, 이 때 "환관 타도"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사람들 가운데 "조조ㆍ원소"가 있다.
2. 하진의 죽음ㆍ동탁의 조정 장악
"하진"은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환관들"을 뿌리 뽑기 위해 유력한 호족이었던 "동탁"의 군사를 "낙양"으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을 알아챈 "환관들"이 선수를 쳐서 "하진"을 죽이고, 이에 분개한 "원소ㆍ원술" 등이 군사를 몰고 궁궐로 들어가, "환관들"을 모두 죽여 버린다.
"하진"의 부름을 받고, "낙양"을 향하던 "동탁"은 사태를 관망하다가, 20만 대군을 이끌고 궁궐로 들어가 난장판인 조정을 장악한다. "동탁"이 조정을 장악하자, "원소ㆍ원술" 등은 곧바로 자신들의 근거지로 돌아간다. 대권을 장악한 "동탁"은 황제를 폐하고 새로 황제로 세우고, 전 황제를 독살하고, 제멋대로 정사를 처리한다.
3. 조조의 "반 동탁연합군" 결성ㆍ강력한 제후로 등장
이에 "조조"는 모든 제후들에게 공문을 보내, "동탁"을 타도하기 위해 궐기할 것을 호소한다. "원소ㆍ원술ㆍ조조ㆍ마등ㆍ공손찬ㆍ손견" 등 제후들이 한곳에 모여, "원소"를 맹주로 삼은 "반 동탁연합군"이 결성된다. 이 소식을 들은 "동탁"은 "낙양"에 불을 질러 버리고, "황제ㆍ문무백관"을 데리고 "장안"으로 도망한다.
"반 동탁연합군"의 지휘부가 "동탁"이 버리고 간 "낙양" 땅을 바라보며 만족해하고 있을 때, "조조"는 혼자서 군을 이끌고 "장안"으로 쳐들어가지만, "동탁"의 군대에게 크게 지고 만다. 게다가 "손견"이 찾아낸 옥쇄는 각 제후들의 야망을 부추기는 촉매로 작용하고, 이로 인해 연합군은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동탁"이 "사도 왕윤"과 믿었던 심복 "여포"에게 죽임을 당하자, "동탁"의 장수였던 "이각ㆍ곽사"가 "장안"을 점령해, "왕윤" 등을 죽이고 "여포"는 패해 달아나고 만다. 황폐한 "낙양"으로 돌아온 황제 "헌제"는 "조조"를 불러, 도움을 청한다. 천자의 권위를 등에 업은 "조조"는 "이각ㆍ곽사"를 무찌르고, 이후로 가장 유력한 제후가 된다.
한편 "공손찬" 등을 토벌하고, "하북" 일대를 평정한 "원소"는 "조조"와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을 펼치는데, "관도의 전투"에서 2만의 "조조" 군사가 10만의 "원소"의 군대를 섬멸한다. "원소"는 싸움 이후 얼마 못가 죽고, 그의 아들들이 "조조"에 잠시 대항하지만 곧 평정된다. 중국대륙 북부 일대가 모두 "조조"의 세력 아래 들어온다.
5. 손책 (소패왕)의 뒤를 이은, 동생 "손권"이 "오나라" 초대황제로 등극
"강동" 일대는 "손견"이 죽고 난 뒤, 그의 아들 "손책"이 평정한다. "손책"은 "작은 항우"라는 뜻의 "소패왕"으로 불린다. "조조"는 "손책"을 "오후"에 봉하고, 혼인관계를 맺는다. 200년, "조조ㆍ원소"가 "관도"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손책"은 "허도"에 있던 "한나라 헌제"를 맞이하려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26세의 젊은 나이에 죽는다. 그 뒤를 이은 동생 "손권"이 바로 3국 시대 "오나라"의 초대 황제이다.
6. 유비 : 도원결의 (관우ㆍ장비)ㆍ삼고초려 (제갈량)ㆍ적벽대전
"조조ㆍ손책"에 비해, "유비"의 출발은 너무 늦고, 세력 또한 미비했다. "유비"는 20년 넘게, "공손찬ㆍ도겸ㆍ조조ㆍ여포ㆍ원소" 등에게 몸을 의탁하며 떠돌이 생활을 한다. 하지만 "유비"는 "한 황실"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을 다짐하며, "도원"에서 "관우ㆍ장비"와 "형제의"를 맺고, 3번이나 몸을 굽혀 찾아가 예로써 "제갈량"을 얻는 "삼고초려"의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형주" 땅의 "유표"에 몸을 의탁한 "유비"는 "형주"의 한 고을을 맡아 다스리게 된다.
"중국 북부"를 장악한 "조조"는 전국을 통일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대군을 이끌고 "형주"로 쳐들어간다. "유표"의 뒤를 이은 "유장"은 "조조의 대군이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항복해 버리고, "유비"는 "강하"로 도망하는데, "형주"의 주민이 모두 그를 따른다. 가까스로 강하로 온 "유비"는 "강동"에 "제갈량"을 보내, 힘을 합쳐 "조조"를 물리치자고 청한다. "손책"의 뒤를 이은 "손권"은 "제갈량"의 말을 듣고, "주유"를 대도독으로 임명하고, "조조"의 100만 대군을 맞서 싸우게 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적벽대전"이다. 수많은 계략들이 오가다가 결국 "조조"의 100만 대군이 괴멸하고 만다.
7. 촉나라 (유비)의 형주 장악ㆍ"관우"의 전사
"오ㆍ위"가 싸우는 동안, "유비"는 "제갈량"의 교묘한 계책에 따라, "형주" 일대를 장악한다. 대승을 거두고도 얻은 게 없는 "손권"은 "노숙"을 파견해, "형주"를 되돌려달라고 요청하지만, "제갈량"은 "노숙"을 설득하여 "익주(서촉)"를 얻을 때까지 "형주"에 머무르기로 합의를 이끌어낸다. "형주"에서 착실히 기반을 다진 "유비"는 "형주"를 "관우"에게 맡긴 채, "익주"로 쳐들어가고 마침내 "서촉ㆍ한중" 일대를 평정한다.
"유비"가 "서촉"을 차지하고도 "형주"를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자, "손권"은 "조조"와 긴밀히 연합해 "형주"를 쳐서 반으로 나누자 제안한다. 이에 응한 "조조"가 군사를 일으켜 "형주"로 향하자, 그 소식을 들은 "유비"는 "관우"에게 선수를 쳐서 "위"를 공격할 것을 명한다.
"관우"는 엄청난 기세로 "위"의 성들을 점령하고, "조조"의 장수들을 사로잡는다. "관우"의 기개를 너무나도 잘 아는 "조조"는 문무백관을 모아놓고 수도를 옮길 것을 제안하기까지 한다. "관우"가 "위"를 공격하러 가기 전, "오"의 침공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놨음에도 불구하고 "오"의 "육손"은 뛰어난 계략으로 "형주" 일대를 모두 점령한다.
"형주" 점령 소식에 급히 군사를 몰아 회군하던 "관우"는 "위ㆍ오"의 연합군에 쫓기다, 군사의 대부분을 잃고 "맥성"으로 도주한다. "오군"에게 포위당한 "관우"는 인근의 "유봉ㆍ맹달"에게 구원병을 보내 달라 요청하지만, 거절당한다. 무리하게 "서촉"으로 도주를 시도하던 "관우"는 곳곳에 매복해 있던 "오나라" 군사들에게 사로잡혀 끝내 죽임을 당한다.
8. 오나라 공격ㆍ"장비"의 전사ㆍ"유비"의 전사
한편, "조조"의 뒤를 이은 "조비"는 "헌제"를 핍박하여 마침내 선위를 받아 황제가 되고, "유비"도 "한나라의 정통성"을 이어 나가야 한다는 신하들의 권고의 따라, "촉(촉한)의 황제위"에 오른다. "성도"에서 "관우"의 죽음을 보고 받은 "유비"는 구원병을 보내주지 않은 "유봉"을 죽이고, "맹달"은 "위"에 투항한다. "유비"는 "제갈량" 등 여러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70만의 대군을 이끌고 "오"를 쳐들어간다. 이 때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장비"마저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유비"는 대군을 이끌고 파죽지세로 밀고 나가 전투마다 승전을 거두고, "관우"를 죽인 원수들을 모두 죽인다. "유비"의 연전연승에 당황한 "손권"이 사자를 파견하여 강화를 제의하는데, 이미 "촉"의 군사들이 "관우"의 원수들을 모두 죽인 뒤였다. "손권"이 "유비"에게 "장비"를 죽이고 투항한 두 부하를 돌려보내고, 형주를 되돌려줄 테니, 군사를 거두어 달라고 부탁하지만, "유비"는 거절한다.
마침내 "손권"은 "육손"을 대도독으로 임명해, "촉"과 맞서 싸우도록 한다. "육손"은 때를 기다리다가, "이릉의 전투"에서 화공과 야간 기습으로 대승을 거둔다. "이릉의 전투"에서 군사의 대부분을 잃고, "백제성"으로 피신한 "유비"는 "제갈량"에게 역적 "위"를 쳐서, "한" 황실을 다시 일으키라는 당부와 함께, "유선"을 부탁하며 숨을 거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