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 - 역사 • 사건 • 인물

삼국지 (三國志) ① 나관중(명ㆍ1330?~1400)ㆍ진수(진ㆍ233~297)

by 당대 제일 2022. 11. 29.
반응형

 

"삼국지 (三國志)"는 "서진(西晉) 시대"의 역사가인 "진수 (陳壽ㆍ 233~297ㆍ64세)"의 작품이고,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는 "명나라 시대"의 작가인 "나관중 (羅貫中1330?~140070)"의 작품이다.

 

1. 삼국지 (三國志)

① 290년경에 저술된 책

"진(晋)"나라 "진수(陳壽)"가 편찬했다. "후한서"보다 오래되었다. 전 65권. "위서(魏書ㆍ10권)ㆍ촉서(蜀書ㆍ15권)ㆍ오서(吳書ㆍ2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후한"이 멸망한 뒤, "위(魏)ㆍ촉(蜀)ㆍ오(吳)" 세 나라가 다투던 세상을 그렸다. "삼국지"의 "지(志)"는 "기록"이라는 뜻이다.

② "삼국지" 평가

청 대의 "장학성(章學成)" : 작품 중 7할은 사실이고, 3할은 허구이다.      • 인 물 : 400여 명 등장ㆍ중요 인물 300여 명

인물 묘사 : 유비 (정통ㆍ인애)ㆍ관우 (의리)ㆍ장비 (용맹)ㆍ제갈공명 (지략)ㆍ조조 (교활한 간웅, 간사하며, 잔혹한 통치자로 왜곡하여 묘사ㆍ역사적 사실- 걸출한 정치가ㆍ군사가ㆍ대단한 문학가)

③ 옛말에 "小不讀水滸, 老不看三國 (소불독수호, 노불간삼국)"이라는 말이 있다.

의미는 "어릴 때 "수호전"을 읽어서는 안 되고, 늙어서 "삼국지연의"를 보아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이는 인성이 아직 완성되지 못한 젊은 나이에 "수호전"을 읽으면, 젊은 혈기가 솟구쳐 역심을 품을 수 있으며, 또 늙어서 평온한 여생을 보내야 할 말년에 "삼국지연의"를 보게 되면, 공연한 영웅심리가 되살아나 인생을 망치기 쉽다는 데서 기인된 말로, 경계를 삼기위해 전해져 내려오는 말이다.

④ 삼국지 (三國志)ㆍ삼국연의 (三國演義)

• 삼국지 (三國志): 290년경에 저술ㆍ진수 (陳壽ㆍ233~297ㆍ64세) 진(晋)나라 관리→ 조조 중심으로 기술ㆍ삼국지의 "지(志)"는 기록이라는 뜻

• 삼국연의 (三國演義): 1522년에 판각본ㆍ나관중 (羅貫中ㆍ1330~1400ㆍ70세) 명(明)나라 사람ㆍ연의 : 당시의 경향에 따라, 역사를 소설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ㆍ이전까지 민간의 구전으로 전하던 삼국시대의 이야기를 "삼국지통속연의"란 책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삼국지(진수 저) + 삼국지주(三國志註ㆍ배송지 저)에 수록된 야사ㆍ잡기를 근거 로,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의 줄거리를 취하여 쓴 작품이다.

⑤ 184~280 : 영웅들끼리 싸우다가, 위ㆍ촉ㆍ오가 세워지고, 진 나라가 통일한 이야기 (조위(曹魏)ㆍ촉한(蜀漢)ㆍ손오(孫吳))

인구변화(5,600만→ 3,000만→ 1,600만(4,000만 명 사망): 당시 중국인구사에 따르면, 한나라 중기 5,600만 명이었던 인구가 한나라 말 극심한 혼란기에 3,000만 명으로 줄었으며, 삼국지 시대에는 1,600만 명으로 인구가 급감한, 전란으로 인한 참담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 주요전투 : 관도대전(官渡大戰)ㆍ적벽대전(赤壁大戰)ㆍ이릉대전(夷陵大戰)         • 전쟁터 : 화북(현 하북-하남-산동)ㆍ관중(현 섬서성)ㆍ양자강 유역ㆍ사천성

2. 나관중 (羅貫中ㆍ1330?~1400ㆍ70세):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ㆍ명나라 작가

호(號) : 호해산인(湖海散人)ㆍ산시성 (山西省) 루링(廬陵) 출신ㆍ원말명초 (元末明初) 사람ㆍ1364년에 살았다는 기록 외에 "전기(傳記)"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최하급 관리"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나관중"에 대한 기록은 의외로 적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금도 그의 "본적시대이름" 등에 많은 이설을 가지고 있다.

"송원시대(宋元時代)"에 유행한 "강담(講談)"의 이야기책을 기초로 하여, 구어체 장편소설을 지은 선구자이다. "원말명초"에 "반원운동(反元運動)"에도 참가하는 등, 왕성한 정치력을 보이다가, "명나라"가 건립된 후에는 오히려 정치생활을 청산하고, 조용히 소설과 희곡의 창작에 전념하였다고 전해진다. 말년에 그는 많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했지만, 통속문학에는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작품으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시내암(施耐庵)"과의 공저인 "수호지(水滸誌)"의 2대 걸작을 비롯하여 "수당양조지전(隋唐兩朝志傳)ㆍ잔당오대사연의(殘唐五代史演義)ㆍ삼수평요전(三遂平妖傳)"등이 있고, "잡극(雜劇)"으로 "풍운회(風雲會)ㆍ비호자(蜚虎子)"등이 있다.  희곡은 3편의 작품이 있는 것으로 기록돼있으나, 현존하는 것은 "조태조용호풍운회(趙太祖龍虎風雲會)" 하나뿐이다.

나관중

3. 진수 (陳壽233~29764) : 삼국지 (三國志) 작가서진(西晉) 시대의 역사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국지(三國志)"의 작가로 "나관중"을 떠올린다좀 더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삼국지"의 작가는 "진수(陳壽)"이고, "삼국지연의"의 작가가 "나관중"이라고 단언한다엄밀히 따져, "나관중""삼국지연의"의 창작자로 확언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오히려 "편찬자"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그 이유는 "삼국지연의"의 탄생비밀을 따져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4.  삼국지 (三國志)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

먼저 "삼국지""정사(正史)""25" 중의 하나로, "()촉한(蜀漢)()" 삼국 정립시기인 60 동안의 역사를 "서진(西晉)의 진수"가 기술한 역사서이다"진수"는 이 책을 "위지(魏志)30촉지(蜀志)15오지(吳志)2065"으로 구성하여 기술하였는데, 이 책에서 중국 역사에 있어서는 처음으로 "정통론"을 제기하였다"삼국" 가운데, "나라" 정통으로 삼아, "촉한오나라"보다 한단계 위로 설정하여 기술하였는데, 이는 "삼국지연의"에서 "유비" "한나라"의 정통으로 삼아 묘사한 것과는 상당한 대조를 이루어 후대에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또 일반적으로 "나관중"의 저작으로 알려진 "삼국지연의""나관중" 한 사람의 창작이 아니다이미 "당나라" 때부터, "삼국 이야기"가 야담(野談)으로 전해진 기록이 있고, "송나라" 대에는 당시 설화인(說話人)들의 이야기 대본으로 사용되었던 "화본(話本)"가운데에 "삼국의 이야기"가 들어있다"송 대"에 유행하였던 "설화인"이란, 직업적으로 행하여졌던 "전문적인 이야기꾼"으로 이들이 설강하였던 이야기 줄거리를 간추려 놓은 것이 "화본"인데, 이것이 곧 "화본소설(話本小說)"의 기원이다

그 후 "화본소설"에서 한 단계 발전하여, "평화소설(平話小說)"이 되었고, "명 대"에는 독자의 수요와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장회소설(章回小說)"로 발전하였다이것이 현재 우리가 읽는 "중국 장회소설"이며, "중국 통속소설"의 기원인 것이다.

"삼국지연의"도 처음에는 "설화인"들의 이야기로 구전(口傳)되어 내려왔는데, 특히 "북송", "곽사구(四究)" "설삼분(說三分)"이 유명하고, "송나라" 인종 때에는 삼국의 이야기를 공연하는"피영희(皮影戱)" 있었다고 한다그 후 "금나라원나라" , 희곡으로 개작하여 공연된 것만도 30~40종이나 된다고 "종사성(鍾嗣成)" "녹귀부(錄鬼簿)"에 전한다. 또한 "원 지치(至治)"년간(1321~1323)"신안 우씨(新安 虞氏)"가 간행한 "전상삼국지평화(全像三國志平話)"라는 책이 있었는데, 이 책은 상3권으로 위에는 그림이 아래에는 문장으로 구성된 "삼국지연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책이 있었다

이상의 자료에서 알 수 있듯이, "삼국지연의""진수의 삼국지""배송지"의 주()에서 인용한 야사잡기화본평화소설 등을 취하여, "나관중"이 새롭게 편찬한 것이다"삼국지연의"의 최초 판본은 "가정원년(嘉靖元年, 1522)"에 출판된 "삼국지통속연의"라는 책으로 총 24240()으로 되어있다그 후 "" , "이탁오(李卓吾)""나관중 본 240()"을 다시 120회로 재정리하였고, "" "종강(毛宗崗) 부자"는 작품전체에 대해, 수정윤색을 가하여, 작품의 치밀성예술성을 크게 향상시켜 놓았다그렇다고 "이탁오모종강 부자"가 작품전체를 마구 개작하여, 다시 쓴 것은 아니다주로 "나관중 본" 위주로 그리 심하지 않은 정도에서, 부분적으로 "첨삭"이 이루어 졌다.

이처럼 "삼국지연의"는 후대에 "이탁오모종강 부자" 같은 대 문장가들에 의해 "첨삭"이 가해지면서 더욱 충실하고 짜임새 있는 소설로 자리매김 하였다특히 "모종강 부자"의 상세한 교정가필이 있은 후, "모본(毛本)"만이 널리 통행하였는데, 현재 우리가 읽는 "삼국지연의"가 바로 이 판본인 것이다이렇게 "삼국지연의""나관중"에 의하여, 단지 재편성되었다고 하여, "나관중"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나관중"의 탁월한 문장력이 있었기에, "연의체 소설(演義體 小說)"이란 새로운 소설양식이 만들어졌고, 또 오늘날 "삼국지연의""중국 4대 기서" 중의 하나로 우뚝 설수가 있었던 것이다"삼국지연의""" 세 나라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 사실만을 기록한 것은 아니다"" 대의 "장학성(章學成)""이 작품 중 7할은 사실이고, 3할은 허구여서, 보는 사람을 어지럽게 한다." 지적하였듯이 "유비"를 정통으로 놓고, "조조"를 교활하고 간사하며, 잔혹한 통치자로 왜곡하여 묘사하였다.

사실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조조"는 걸출한 정치가이고, 군사가였으며, 대단한 문학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교활한 "간웅"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삼국지연의"라는 통속 소설로 말미암아, "조조"라는 인간상은 너무나도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세에 오명을 남겼다가 최근에서야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다소나마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삼국지연의"의 예술적 성과는 전형적인 인물형상의 부각에 있다이 책에는 약 40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 중 중요인물만도 300여 명이나 된다"인물 묘사"에 있어서는, 의리의 인물로 "관우", 인애의 인물로 "유비", 용맹의 인물로 "장비", 지모의 인물로 "제갈공명조조"를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그 외에도 갖가지 인물의 형상개성을 창출하여, 생동감 있고, 박진감 넘치는 소설로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러한 인물묘사가 모두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유비"를 너무 중후한 인물로 표현하다보니까, "위군자(僞君子)"가 되어 버렸고, "제갈공명"의 지혜로운 모습이 지나쳐, "요괴"에 가깝게 묘사된 것은 이 작품의 옥의 티라 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가 국내에 유입된 것은 대략 1500년대 초기로 추정된다국내에 유입되어 문인들 사이에 크게 유통되어 졌는데, 급기야 1569년에는 원문으로 출판까지 이루어졌다그 후 1627년 인조 5년과 숙종 년간(1674~1720)에도 출판되어 널리 읽혀졌다과거문제를 "삼국지연의"에서 출제한 시험관이 유림들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는 기록도 있어 눈길을 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