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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 • 현대사)/사건

사건- 73.10 : 유류 파동 (Oil Crisis)①차 : 73.10 ②차 : 78.12

by 당대 제일 2022.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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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 파동 (Oil Crisisㆍ석유 파동)"은 원유값이 급등하여, 전 세계 각국에 경제적 타격을 준 경제 위기를 말하며,  현재까지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2차례의 유류 파동은 각각 1973년ㆍ1978년에 일어났다.

 

1. 1차 석유 파동 (1973.10)

1973.10, "4차 중동전쟁" 발발 이후, "페르시아 만"6개 산유국들이 가격 인상과 감산에 돌입, 배럴당 2.9$였던 "원유(두바이유)" 고시가격은 4$를 돌파했다 1974.01월엔 11.6$까지 올라 23개월 만에 무려 4배나 폭등했다 이 파동으로 1974년 주요 선진국들은 두 자릿수 물가상승과 마이너스 성장이 겹치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어야 했다.

한국의 경우, 19733.5%였던 물가상승률은 197424.8%로 수직 상승했고, 성장률은 12.3%에서 7.4%로 떨어졌다. 무역수지적자 폭도 크게 확대(10$24$)됐다 산업구조가 경공업에서 에너지 수요가 많은 중화학공업으로 전환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 컸다. 1975년에 이르러 성장률은 6.5%로 더 떨어졌고, 물가는 24.7%의 고공비행을 이어갔다 후폭풍은 2년간 지속됐고, 1976년에서야 비로소 경제는 정상을 되찾았다.

1차 유류 파동 당시에는 1개월 만에 국제유가가 약 3.9배로 올랐고 한국의 환율도 21.9% 올랐다 경제성장률은 3%선으로 급락했다 1973, 당시 서울의 자가용 승용차는 54,331대였으나 1차 유류 파동으로 인해 9,518대가 줄어 1974년에는 44,813대가 되었다 1차 유류 파동으로 6%대였던 "미국의 국채수익률"8%대로 상승했다.

석유 파동

2. 2차 석유 파동 (1978.12)

1978.12, "호메이니" 주도로, "이슬람 혁명"을 일으킨 "이란"은 전면적인 석유 수출 중단에 나섰고, 배럴당 13$대였던 유가는 20$를 돌파했다 1980.09,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30$ 벽이 깨졌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무기화를 천명한 1981.01, "두바이유"39$의 정점에 도달했다

선진국들의 충격은 1차 파동 때보다 적었지만, 한국경제는 오히려 반대였다 대내적으로 "1026 사건"1980년 정치 혼란이 겹치면서, 1980년의 실질성장률은 경제개발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2.1%)를 기록했다 물가상승률은 무려 28.7%에 달했고, 실업률도 5%를 넘어섰다.

1981, 성장률이 6%대로 높아졌지만, 기술적 반등 수준이었으며, 물가는 여전히 20%를 웃돌았다 "2차 오일 쇼크" 역시 꼬박 2년간 한국경제에 치명적 충격을 주었다 "2차 유류 파동" 때는 6개월 만에 국제유가가 2.3배가 올랐고, 한국 환율이 36.5% 상승했다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성장이 되었다.

2차 유류 파동 때는 8~9% 수준이었던 미국의 국채수익률이 15% 수준까지 올랐다 한국의 회사채 수익률도 2차 유류 파동 당시 20% 초반에서 30%대까지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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