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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1929 : 미국의 세계 대공황 (1929~1939)ㆍGreat Depression

by 당대 제일 2022.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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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공황 (世界大恐慌ㆍGreat Depression)"은 "미 뉴욕 증권 거래소"의 주식 가격 폭락과 함께 "세계 대공황"이 시작됐다. 이후 1930년대 내내 전 세계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은 길고 혹독한 경기 침체 속으로 빠져든다. 미국 역사상 장기적으로 가장 길고, 깊게 스며드는 경제위기로 1929~1939년까지 지속되었다.

 

1. 세계 대공황 (世界大恐慌ㆍGreat Depression)

• 일 시 : 1929.10.24

• 발 생 : "검은 목요일"로 알려진 1929"월스트리트 대폭락"에 의하여 생긴 그 영향들은 사실상 세계의 모든 구석들에서 느껴져, 역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최악의 경제 위기였다 역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최악의 경제 위기였다.

2. 원인ㆍ배경

미국 경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번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기업의 이윤이 커져 "주식 배당금"이 늘어나자,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은행에서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했다. 주식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주식 시장은 거품처럼 부풀어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주식 가격이 곧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기자, 사람들이 앞 다퉈 주식을 팔려 내놓으면서 가격이 폭락한 것이다.

"만성적인 과잉 생산" 또한 중요한 원인이었다.

기업들은 성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에 힘입어 과도한 설비 투자를 했고, 농민들도 지나치게 많은 농산물을 생산했다. 그러나 유럽 나라들이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에서 벗어나 공업과 농업 생산을 회복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물자가 남아도는 상황이 벌어졌다. 성장이 그 한계에 도달한 셈이었다.

3. 전개

주식 시장이 붕괴하자, 주식에 투자했던 많은 사람들이 파산했다. 사람들은 소비를 줄였고, 기업들은 줄어든 소비에 발맞춰 생산을 줄이고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더욱 허리띠를 졸라맸으므로, 소비ㆍ생산ㆍ고용은 "악순환의 고리" 속으로 빠져들었다. 기업들은 문을 닫고 거리에는 실업자들이 넘쳐 났다.

공업 생산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으며, 4명 가운데 1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은행들이 기업ㆍ개인에 빌려 준 돈을 받지 못해 파산 위기에 처하자, 돈을 맡긴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에 은행으로 달려가서 예금을 모두 찾으려 했다. 급기야는 정부가 모든 은행의 업무를 한동안 중지시켜야 할 정도였다. 사람들이 은행에 돈을 맡기기보다 안전한 현금으로 갖고 있으려 했으므로, 돈의 흐름이 막혀 경기 침체는 더욱 악화됐다.

4. 전 세계로의 확산

1933년에 이르러, "대공황"은 "대서양"을 건너, "영국ㆍ프랑스ㆍ독일" 등 유럽 나라들로 빠르게 확산됐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국경을 넘어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던 데다, "정부가 경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자유방임주의"가 힘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유럽에도 기업 도산과 실업의 폭풍이 들이닥쳤다. 

이런 와중에 "미국ㆍ영국" 정부는 돈을 많이 찍어 내, 경기 침체를 극복하고자 "금본위제"의 중단을 선언했다. "금본위제"가 중단되자 세계 경제는 여러 개의 블록으로 쪼개지고, 블록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금본위제 : 정부가 자국의 화폐를 일정한 비율에 따라 "금"으로 교환해 주겠다고 보증하는 것으로, 여러 나라들이 안심하고 서로 무역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제도였다)

5. 각국 정부의 대처ㆍ사후 영향

"미 정부"는 "뉴딜(미 루스벨트 대통령 취임 참조)"이라는 정책을 통해 공황을 타개하려 했다. "자유방임주의"에서 벗어나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 정부"는 여러 공공사업을 펼쳐 일자리를 창출하고, 노동자의 권리와 임금을 보장하며, 사회 보장 제도를 확대했다. 고용을 늘려 소비와 생산을 되살리기 위함이었다. 금융 산업 등에 대한 규제도 새로이 도입했다.

이처럼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는 형태의 자본주의를 "수정자본주의ㆍ혼합자본주의"라고 부른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대동소이하게 이러한 경향을 따랐다. 그 덕분에 서서히 대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 실업이 없는 "완전 고용"과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루게 된다.

6. 2차 세계대전의 원인 제공

"대공황"은 "독일ㆍ이탈리아" 등의 나라에서 "파시즘"이 등장하고 확산하는데 큰 영향을 끼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제공한다(독일에서 나치당이 제1당이 되다 참조).

"파시스트 정부"들은 "군수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함으로써 고용을 창출하려 했는데, 이러한 정책은 필연적으로 전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국제 무역의 축소로 인한 "경제 블록"들 사이의 적대 관계도 전쟁의 분위기를 더욱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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