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용 (洪大容ㆍ1731~1783ㆍ52세)"는 천문학자(혼천의 제작ㆍ지구 자전설 주창하였다. 당색으로는 "노론"이었는데, 그는 그 중에서도 "노론 북학파"에 가담하게 된다. "북학파의 선구자"로서, 일찍이 "김원행(金元行)"에게 글과 학문을 배워, 당대의 국학(國學)으로 인정되던 "주자학"이 학문적 기초를 이루었다. "북학파(北學派)"의 학자인 "박지원ㆍ박제가" 등의 실학자들과 우정을 쌓으며, 교류를 계속하면서, 정치ㆍ경제에 관해 연구하였고, "유학"보다도 "군국ㆍ경제" 장려에 치중하였다. 그는 "박지원"과 친하게 지냈고, 문하생들인 "유득공ㆍ이서구ㆍ박제가" 등과도 가깝게 지냈다. 후일 "홍대용"의 외재종손인 "김정희"가 친하게 지냈던 "박제가"의 문하생이 되기도 했다.
1. 홍대용 (洪大容ㆍ1731~1783ㆍ향년 52세)
조선후기 문신ㆍ실학자ㆍ북학파의 선구자ㆍ"김정희ㆍ은신군(사도세자의 서자ㆍ흥선대원군의 양할아버지)"과는 인척간이 되는데, 사촌 동생인 "홍대현(洪大顯)"의 딸들이 "은신군부인 남양 홍씨"와 "김정희"의 큰어머니ㆍ양어머니인 "홍씨 부인"이다.
• 호 : 담헌(湛軒)ㆍ홍지(弘之) • 가 족 : 사촌 동생- 홍대현(洪大顯), 조카딸 : 은신군 부인 남양 홍씨 / 조카 사위 : 은신군 (사도세자의 서자ㆍ흥선대원군의 양할아버지) / 조카 사위 : 김노경 (추사 김정희의 양아버지)
• 저 서 : 의산문답ㆍ담헌서ㆍ담헌설총ㆍ사서문의ㆍ임하경륜ㆍ건정필담ㆍ주해수용 / 의산문답 : 인류의 기원ㆍ계급과 국가의 형성ㆍ법률과 제도 등에 관한 이론 발표 / 계방일기 : 놀고먹는 귀족 계급이 나라와 백성을 좀 먹는다 (所謂遊民倖位耗國病民) → 노동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 않는 양반 계급의 실체를 파헤쳤다.
"북학파"의 선구자로, 당시 굉장히 "혁신적인 철학자"였다. 대표적으로 "지구 자전설"을 처음 대중에게 설파했던 바 있다. 지금의 초등학교 입학조건 나이인 8세 이상의 모든 아동을 차별 없이 교육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과감한 개혁을 주장하였으며, 그밖에도 "천문ㆍ율력(律歷)ㆍ산수ㆍ과학" 등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이론을 전개했다. "천문"분야에서도 "지구 지전설"을 주장하였는데, 17세기 "중국"이 서양에서 이를 전해 받았을 때, 지지를 받지 못한 것과 대조된다.
"당나라" 때, 자취를 감추었고, 오랜 시간 농민들이 고대했던 2가지 제도인, "균전제 (均田制ㆍ농토를 균등하게 분할하는 것)"와 "부병제 (府兵制ㆍ병농일치(兵農一致)의 징병제로, 원래는 군부(軍府)에 속한 병사라는 의미였으나, 기본적으로는 농민 스스로 무기를 준비해 임무를 수행하게 되어 있었고, 균전제의 토대 위에 존재했기에, 균전제가 붕괴되면서, 함께 붕괴되었다.)"를 토대로 하는 경제개혁을 주장했다.
1765년(영조41), 35세 때, "숙부인 홍억"이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갈 때, "군관"으로 수행, 3개월 정도를 "북경"에 머물면서, "엄성(嚴誠)ㆍ반정균(潘庭筠)ㆍ육비(陸飛)" 등을 만나 담론하며, "경의(經義)ㆍ성리(性理)ㆍ역사ㆍ풍속" 등에 대하여 토론했다. 한편 "천문학ㆍ지리학ㆍ역사" 등에 관한 지식을 쌓고, 서양 문물을 배우고 돌아왔다. 또 "천주당(天主堂)"에서 서양 문물을 견학ㆍ학습하고, 독일 사람으로 "청나라"의 "흠천감정(欽天監正)"을 하는 "할레르슈타인(劉松齡)"과 "흠천감 부감(副監) 고가이슬(鮑友管)" 등을 만나 면담했으며, "청나라 관상대(觀象臺)"를 여러 번 방문ㆍ견학하여, 천문지식을 습득해 오기도 했다.
"홍대용"의 이 같은 "북경 방문"은 당시의 여러 "북학파 학자" 중에서도 제일 처음의 일로, "실학"의 도입에서 그 선구적 업적이 크다. 귀국하여, "천주교ㆍ천문학"의 이론을 기록한 "유포문답"과 과학사상을 담은 "의산문답"을 지었다. 특히 "지구의 자전설ㆍ경제 정책의 개혁"과 "신분제도 개혁"에 앞서, "과거 제도"를 폐지하고, "공거제(貢擧制)"를 통해 인재를 고루 등용하자며, 혁신적인 개혁 사상을 제창하였다. 또한 "박지원ㆍ박제가" 등의 실학자들과 교류를 계속하면서 정치ㆍ경제에 관한 학문을 연구하였다.
1774년(영조50), 나이 44세 때, 중국에서 귀국 후, 수차 과거에 실패하고, "음서제"에 의해, "선공감의 종9품" 관리로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그 뒤 1차례의 사직ㆍ"삼사의 사헌부 감찰직" 등을 거쳐, 1780년 "영주 군수"를 지내게 되었다. 관직에 있으면서도 쉬지 않고, 자신의 학설을 직접 사회에 도입해보려는 노력을 하였으나, 시대 환경에 억눌려 별다른 성과 없이 눈을 감았다.
2. 의산문답 (醫山問答)
• 1766년(영조42), 홍대용이 지은 책, "담헌서(湛軒書) 내집"에 "보유"로 포함되어 있다. 북학파 실학자인 "홍대용"의 "통합 과학적 사상"을 종합적으로 보여 주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① 의 의
"허자(虛子)ㆍ실옹(實翁)"이라는 대립적인 이름에서부터, "허자"로 대표되는 "세속 유학자"의 학문과 그 마음이 모두 헛된 것이었음을 드러낸다. "천지만물" 가운데 사람이 가장 귀하며,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유학의 사상을 타파하고, 사람이나 동식물이 모두 똑같으며, 내가 있는 곳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주장하며, 마음이 헛되어 "유학", 즉 "허학"을 탐구하면, 천하를 어지럽다고 말함으로써, "실심(實心)"으로 "실사(實事)"를 행해야 함을 주장한다.
② 저술 배경
저자인 "홍대용"은 "북학파"를 대표하는 "실학자"이다. "홍대용"은 벼슬을 하지 않고, 평생을 "실학공부"에 정진하여, "고학ㆍ상수학ㆍ수학ㆍ음악" 등에 통달한 학자였으며, 29세 때, "혼천의"를 만들고, 35세 때 "연행"에 함께한다. "의산문답"은 바로 이 "연행"의 체험을 포함한 "홍대용" 스스로의 학문적 성취와 철학을 집대성하여 엮은 책이다.
③ 내 용
"허자(虛子)ㆍ실옹(實翁)"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허자"는 "유학(주자학과 성리학)"만을 공부한 사람, "실옹"은 "새로운 학문을 터득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허자"가 묻고, "실옹"이 답하거나, "실옹"이 물어, "허자"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면서 진행되는데, "실옹"이 "허자"에게 가르치는 내용은 크게 "인물균 사상ㆍ우주무한론ㆍ역외춘추론" 등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④ 사상 : 인물균 사상
"사람ㆍ금수ㆍ초목이 모두 동등하다"는 사상이다. "사람ㆍ금수ㆍ초목, 3가지 종류의 생물에 귀천이 있느냐'는 "실옹"의 물음에, "허자"는 "금수ㆍ초목"은 "슬기ㆍ깨달음ㆍ예의가 없기 때문에, 사람보다 천하다"고 답한다. 이에 "실옹"은 "사람의 예의와 금수ㆍ초목의 예의가 다를 뿐, 하늘에서 바라보면, 사람과 물은 평등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동식물을 천하게 여기는 것은 자만심의 뿌리"라고 말한다.
⑤ 사상 : 우주 무한론
"사람ㆍ사물의 근본"을 묻는 "허자"의 질문에, "실옹"은 "생명의 근본은 천지"라고 하면서, 천지의 모습을 설명하는데, "실옹"이 생각하는 "천지"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하늘"은 텅 비어, "기(氣)"로 가득 차 있으며, "지구ㆍ달ㆍ해ㆍ별"은 그 기운이 모여서, 만들어진 형체이다.
"지구"의 형체는 원형이며, 공중에서 쉬지 않고 돌면서 떠 있다고 하자, "허자"는 "옛 사람들이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고 했다,"고 반문한다. 이에 "실옹"은 "월식 때, 달에 비친 지구의 그림자가 둥글다는 점, 높은 곳에 올라가도 먼 곳을 볼 수 없는 점 등을 들어, 지구가 둥근 모양이고, 지구 밖에서 보면, 위ㆍ아래ㆍ서남북의 개념이 없으므로 지구가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지구"가 돌 때, 지구 표면의 사람이나, 사물이 넘어지지 않는 이유를 묻는 "허자"의 질문에는 "지구의 몸체를 둘러싸는 두꺼운 기운이 지구와 같이 화전하므로, "맷돌에 붙은 개미"와 같이 회전을 느낄 수 없다"고 설명하고, "공자"와 같은 고대 성인(聖人)이 "땅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어리석은 일반 사람들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함이라고 덧붙인다.
지구에서 보기에 가까워 보이는 저 하늘의 별들은 실제로 몇 천ㆍ몇 만ㆍ몇 억의 거리에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고, "별"들의 수는 무궁무진하며, "하늘"의 둘레는 한량없이 멀다고 설명한다. 즉 "하늘"만 회전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즉 "지구가 회전한다"는 것이다.
⑥ 사상 : 역외춘추론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을 비판하는 주장"으로, "춘추"를 집필한 "공자"가 중국이 아니라 변방 오랑캐에서 나왔다면, "역외춘추"가 나왔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논어 자공 편 - 공자가 구이(九夷)에서 살고 싶어 하다."는 구절을 근거로 한다.
"공자께서는 구이(九夷, 예전 중국에서 이르던 동쪽의 아홉 오랑캐)의 땅에서 살고 싶어 하셨다. 누군가 말하기를 "그곳(구이의 땅)은 누추한데 어찌하시렵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가 사는 곳이 어찌 누추함이 있겠는가?" (子 欲居九夷 或曰陋 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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