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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① 최태민 (최순실 부친ㆍ정윤회 장인)

by 당대 제일 2022.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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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 (崔太敏ㆍ1912~1994ㆍ82세)"은 "새마음봉사단의 명예총재(총재 : 박근혜)"를 맡았고,  1979년 "10ㆍ26사건" 때, "전두환"이 지휘하는 "합동수사본부"의 수사를 받았다.  그는 "강원도 양구군" 산골에 있는 "제21보병사단" 군부대에서 6개월간 가택연금을 당했다. 연금이 해제되자, 다시 "박근혜" 곁으로 돌아왔고, "전두환"은 "박근혜"에게 "최태민이 문제가 많으니, 새마음봉사단을 해체해 달라"고 했으나, 그녀는 "국가를 위한 일인데 꼭 해체해야 하나요?"라고 반문했고, "새마음봉사단"은 1980.11월에 강제로 해산되었다.

1. 최태민 (崔太敏1912 (1918?)~ 1994향년 82세 (76세?))

경찰승려대한구국선교단 총재사이비 교주최순실 아버지(박근혜-최순실 게이트)ㆍ"박근혜와 친분이 두터웠다"는 사실이 있으며, 막역한 관계를 이용하여 부정 축재하였다고, 이를 자녀에게 상속하였다는 의혹이 있다.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 소장(신흥종교이단문제 전문가)" 생전의 기록에서 "최태민의 재산"에 대해 강한 의혹을 제기한 적이 있다.

최태민1

•  출 생 : 황해도 봉산군 사원면 (현, 황해북도 사리원시)     •  사 망 : 서울     •  학 력 : 재령보통학교    •  별 칭 : 최도원(崔道源)최상훈(崔尙勳)최퇴운(崔退雲)공해남(孔亥南)

•  사 인 : 독살설 - 최재석(최태민 아들)"1994년 아버지가 1000억대 부동산과 골드바 등 전 재산을 박근혜에게 되돌려 주겠다고 했으며, 이를 눈치 챈 누군가에 의해 4월 중순쯤 독살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

•  1945.09~47.03 : 미 군정청 강원도 경찰국 경찰관47.04~ 48.08 : 미 군정청 경기도 경찰국 인천경찰서 사찰주임경관

•  : 6명    •  자 녀 : 36녀 본 처 - 장남 최광언 (1946~ ) 의붓아들 : 조순제 (1940~2008)      •  1: 순영(1947~)2: 광숙(1948~)2: 광현(1949~)3: 광희(1951~)3: 재석(1954~)      

•  5째 처 : 임선이 (林先伊1920~ 2003)      •  4: 최순득 (1952~ )      •  외손녀 : 장시호     •  5: 최순실 (1956~ ) 강남 200억 원 빌딩 소유자      •  외손녀 : 정유라   : 정윤회       •  6: 최순천 (1958~ ) 150억 원 규모의 부동산 소유자

최태민2

2.  의혹​ : 박근혜와의 내연관계

1989년 무렵부터 "최태민박근혜의 내연관계 설"이 시중에 돌았고, 이는 10"청와대 민정수석실" 보고서를 통해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가, 2016.11"조선일보"의 보도로 알려졌다보도에는 "최태민 보고서"의 원문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종이 신문으로 보도된 "최태민과 내연의 관계로 동거하고 있다."는 구절이 온 라인판에서는 삭제되어 의문을 자아내었다최태민은 다른 목사에게 "박근혜와 나는 영의 세계 부부이지, 육신의 부부는 아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한때 최태민을 만났던 "전기영 목사""박근혜"와의 관계에 대해 묻자, 최태민이 "내가 나이가 있는데,"라고 반문하여, 둘 사이에 아무런 일이 없었다고 생각하였으나, 다만 최태민은 "박근혜와 나는 영의 세계 부부이지, 육신의 부부는 아니다"는 말을 했다고 전하였다.

공식적으로 미혼인 "박근혜"가 최태민과의 사이에서 숨겨둔 "사생아가 있다"는 의혹은 여러 번 제기된 바 있으며, 특히 2007년 대선 직전 이것이 공론화되었다. 이에 대해 그녀는 2007.07"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한 검증위원이 최태민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묻자, "숨겨둔 아이"가 나오면 DNA 검사까지 받겠다고 말하였다. 그녀는 "내게 애가 있다면, 데리고 와도 좋다", "DNA 검사까지 해 주겠다", 자신에게 숨겨둔 자식이 있다는 일부 주장도 강력 부인했다.

2007, "인사검증회"에 참여한 어느 참관인으로부터 "독신인데, 저출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질문을 받자, 박근혜는 "사실 저도 결혼을 하고 싶었지만 사람 운명이 생각하지 않은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숨겨둔 자녀가 아들이라는 설, 딸이라는 설 등의 소문은 무성했으나 근거는 밝혀지지 않았다.

3.  논란비리 

1970년대, "중앙정보부"에서 최태민에 대해 조사하여 작성한 보고서 "최태민 관련자료(崔太敏 關聯資料"에 따르면, 자신이 설립한 "구국봉사단"을 활용하여 인사 청탁을 하였다고 한다.  "최태민"은 박근혜와의 친분관계를 내세워, 정계ㆍ재계ㆍ정부 관료와 접촉해 인사ㆍ승진ㆍ공천ㆍ공사수주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하고, 입회비ㆍ후원금을 빼돌리는 등 공금을 횡령한 것으로 나타난다. 중정수사 자료에는 총 44 3억1700만원(현재 약 40억원 상당)의 비리 사실이 적시돼 있다.

 1975.09 : " OO (2군 이모 대령"의 부인)"에게 "국방부 장관"에게 청탁하여 이 OO "준장" 진급시켜준다고 하고, 대가로 200만 원을 수수                       1976.06 : " OO (H사 사장)"에게 "서울시장"에게 청탁하여, "서울시 비상유류 저장탱크 공사" 맡게 해준다고 하고, 대가로 5,000만 원 수수

 1976.10 : " OO (한국 소방기구공업 협동조합 이사장)"에게 "내무부 차관"에게 청탁하여 "소방기구 신규제조 허가"를 억제해주고, "기구 검정권"을 동 조합에 주도록 해준다는 조건으로 200만 원 수수                        1976.08 : " OO (, 중앙정보부 강원지부장 김 OO의 부인)"에게 남편을 "중정"에 복직시켜준다 하고, 대가로 2차에 걸쳐 150만 원 수수

 1976.09 : " OO (S관광 대표)"에게 차기 "공화당 국회의원 후보(대덕-연기 지역구)" 공천을 받게 해준다고 하고, 1976.09.17~12.10 5회에 걸쳐 500만 원 수수                         1977.03 : "K 회장 (H)"에게 "구국봉사단 부산 지단장"에 임명해준다 하고, 대가로 200만 원 수수                         1977.09 : "K 회장 (H)"에게 "대한화재보험협회"에 청탁하여, "협회 청사 신축공사"를 맡게 해준다고 하고, 대가로 7,000만 원 수수

4.  약력

최태민은 해방 전후, 경찰공무원으로 있다가, 1949년 육군헌병대 문관으로 근무했다1954년에는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됐고, 이후 중학교를 설립해 교장이 되기도 했다"영세교"를 만들어 사이비종교의 교주를 하다가, 박근혜를 만난 뒤 목사 안수를 받았다7개의 이름을 가지고 활동했으며, 결혼도 6차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승려이기도 하고, 목사이기도 했다스스로 자기를 "단군"이라고도 하고, "미륵"이라고도 했다어디 가서는 선사, 거사. 굉장히 좀 미스터리한데 여러 이름을 달고 다녔다불교의 "조계종태고종" 같은 큰 종파는 아니었고, 기독교의 "기장예장합동"도 아니었다"소수파의 목사소수파의 승려"라고 본인이 주장하고 다녔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시절에 조사를 했던 조사관 최 아무개 씨의 중정 보고서에는 "사이비 목사", "사이비 승려"이고, 나중에는 스스로 교단을 만들었는데, 종교의 이름은 없다교단을 만들어서 "미륵"이라고 칭하고, 자기가 교주라고 했는데. "사이비 교주"라고 보면 된다.  가장 번성했을 때도 수십 명이었고, 보통 10여 명이서 모여서 지내는 그런 공동체 집단으로 보면 된다보고서에는 박근혜 대통령은 최태민 말만 들었다고 나온다박지만과 박근령은 "언니를 최태민의 손아귀에서 보호해 주세요."라고 주장했다.

아버지 "최윤성 (崔崙成ㆍ1892-1945)"은 독립운동가로, 191931 운동 당시,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 읍"에서 "독립선언서"를 배부한 적이 있으며, 1920년에는 "상하이 임시정부의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약 1년 수감되었다1990,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한편 최태민의 동생은 "부산 세관"에서 일하다가 밀수꾼들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1942 (30): "황해도경 소속 일제순사"로 재직하다가, 해방 이후 월남  1945 (33): 강원도경 소속 경찰  1947 (35): 대전경찰서 경사인천경찰서 경위 (사찰주임)  1949 (37): 육군 제1사단 헌병대 (비공식 문관)  1950 (38): 해병대 (비공식 문관)

1951 (39): ""에서 나온 뒤, 사단법인 대한비누공업협회 이사장대한행정신문사 부사장(부산)으로 활동 1954 (42): 최퇴운 승려 (스님)  1955 (43): 경남 양산군 개운중학교(비인가 학교) 교장 이후, 대한농민회 조사부 차장전국 불청년회 부회장한국복지사회 건설회(임의단체) 회장

1963 (51): 민주공화당 중앙위원 1965 (53): "유가증권 위조" 혐의로 입건 1970 (58): "영세교"라는 종교 창시 : "대전시 대사동 196"에서 "불교기독교천도교"를 종합. 당시, 자신을 "영의 세계에서 온 칙사""원세경"으로 칭하였다. "영세교"1975년이 되기 전에 스스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상의 시기에 헌금을 내고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조현종"으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아, 이후 "목사 직함"을 사용하였다.

• 1975 (63세): 03.06 : 박근혜와 청와대에서 첫 만남  04.29 : "대한구국선교회(大韓救國宣敎會)"를 조직, 총재가 되었다.

1976.12.10 : 대한구국선교회 구국봉사단(救國奉仕團)으로 개명  1979.05.01 : 구국봉사단새마음 봉사단으로 개명  1979.10.26 : 사태 이후, "최태민 재산"에 대하여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최태민은 자신의 재산을 축적한 모든 경위가 "박근혜의 지시에 의해서였다"고 증언하여 수사에서 벗어났다.

5.  당시  "합동수사본부"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최태민 가계도"

가계도1

6.   딸 바보 "박정희 대통령"의 직접 친국

위험 요소를 보고도 어쩌지 못하는 "철권 통치자 박정희""딸 바보"로 유명했다. 다른 아빠들도 어느 정도는 그렇겠지만, 그는 정상적인 한도를 많이 넘어섰다"박근혜최태민"의 비행을 "중앙정보부민정수석비서관실" 등으로부터 여러 차례 보고받고도 "태민"을 비호하는 "박근혜"를 끝내 어쩌지 못했다이는 그의 사후 38년 뒤, "박근혜 탄핵유신체제 잔존세력의 몰락"을 부르는 원인이 됐다.

"김형욱 회고록"에 따르면,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으면, (최태민)을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보낸다"중앙정보부"의 조사보고서도 "최태민은 영혼합일법(일종의 최면술)등 사이비 종교 행각으로 전전하던 752월말 경, 박근혜에게 3차례에 걸쳐 꿈에 "육여사가 나타나 근혜를 도와주라는 현몽이 있었다." 내용의 서신을 발송하여"라고 나온다.  최태민은 편지는 보냈지만, "위로말씀을 전하며, 기회 있으면, 한번 만나주시길 바랍니다." 정도였다고 "현몽설"을 부정하였다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된다근혜는 그에게 구국봉사단 총재를 맡겼고, 최태민은 박근혜와의 관계를 내세워 기업들로부터 운영비와 입단 찬조금을 걷으며 각종 이권에 개입한다.  당시, 청와대 공보비서관이었던 선우련의 1977.09.20일자 비망록에는 박정희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백광현 정보부 7국장과 박근혜를 배석시켜, 최태민의 비리와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직접 친국을 한 장면이 묘사돼 있다.

"박대통령은 오늘 나에게 큰 영애인 근혜양과 관련해 물의를 일으켰던 최태민 구국봉사단 총재를 거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대통령이 나에게 지시한 내용은 3가지였다. "최태민을 거세하고, 향후 근혜와 청와대 주변에 얼씬도 못하게 하라. 구국봉사단 관련 단체는 모두 해체하라."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나는 곧 근혜양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 근혜양은 얼굴이 하얘지더니, 낙담한 표정으로 눈물을 지었다."

오죽했으면 아버지가 딸을 친국했을까박정희는 "최태민과 관련된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고 말했다고 한다최태민과 딸 박근혜의 관계가 어땠으며,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당시 세간에서는 최태민을 "박근혜의 그림자"라고 불렀다.

당시 중앙정보부도 특별수사를 했다. 관련된 수사는 조심스럽게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영애이자 퍼스트레이디인 박근혜와의 관계 때문이다중정에 의해 밝혀진 "인간 최태민"의 모습을 보면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어떻게 저런 사람을 훌륭하고, 고마운 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최태민은 박근혜와의 친분과 관계를 내세워 정계와 재계, 정부 관료와 접촉해 인사, 승진, 공천, 공사수주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하고, 입회비와 후원금을 빼돌리는 등 공금을 횡령한 것으로 나타난다중정수사 자료에는 총 4431700만원(현재 약 40억원 상당)의 비리 사실이 적시돼 있다.

7. "김재규"의 1979.10.26일 "박정희 사살" 이유 중, 하나가 "최태민"

"박정희"에게 총격을 가한 "김재규"는 10.26사건의 정당성을 설파하면서, 항소이유서에 "최태민 사건" 거론했다사기횡령 등의 비위사실과 여자들과의 온갖 추문까지 있는 사이비 목사가 자칭 "태자마마"라며, 청와대를 드나들고, 박근혜를 내세워 부정을 저질러, 국민과 여성단체들의 원성이 되고 있어, 이를 박정희에게 호소했지만, 박정희가 듣지 않았다는 얘기다.

김재규 변호인은 "(박정희가)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했으면서도,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 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 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주변의 비리에 대해 직보하고 충언을 했지만, 딸을 감싸기만 한 채,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박정희에 대해 그의 측근 중 한사람으로서 크게 실망했고, 박정희 제거의 1가지 이유가 됐다는 주장이다.

8. 전두환까지 "박근혜최태민" 관계를 우려했다

"박근혜가 최태민을 크게 의존했다"는 주장과 증언이 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자신의 저서에 "박근혜에게 최태민과의 관계를 끊도록 건의한 비서 3명이 모두 잘렸고, 최태민이 추천한 사람만 박근혜의 비서가 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최태민은 탁명환(작고) 당시 현대종교연구소장에게 "박근혜의 지프를 타고 왔으며, 청와대를 수시로 출입하고 있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1979년, "박정희" 피살이후, "최태민 거세"가 흐지부지 되자, 박근혜를 걱정한 "청와대 비서관"이 "전두환(당시 합동수사본부장)" 에게 최태민을 처리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선우련 (1929~1997ㆍ육군소령ㆍ국회의원)"의 부탁을 받은 "전두환"은 최태민을 강원도 인제의 군부대로 보냈다가, 12.12직후 사기와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16개월을 선고했다.

9. 두 동생(박근령ㆍ박지만)"박근혜최태민" 관계를 걱정했다

1982년, "박근혜"는 "전두환 정권"의 암묵적 배려로 1969년 "육영수"가 설립한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한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두 동생(박근령ㆍ박지만)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청와대 시절부터 "박근혜의 그림자"로 불리던 최태민이 육영재단 운영등에 깊숙이 관여해 재산을 착취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갈등과 반목이 깊어지던 1990, 드디어 일이 터진다. "박근령과 박지만" 두 남매가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냈다. 그 탄원서의 일부다"진정코 저희 언니(박근혜)는 최태민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합니다 대통령의 유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고 또 함부로 구원을 청할 곳도 없었습니다.결국, 박근혜가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육영재단의 난"은 박근령과 박지만의 승리로 끝난다""의 목적은 "박근혜 사퇴" 보다 "최태민 제거"에 있었다형제들은 박근혜가 최태민에게 철저하게 속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10. 주변의 반대 속에도 이어진 "30년 관계"

아버지 박정희도, 형제들도, 비서진도, 전두환도, 중앙정보부도, 당시 언론과 사회단체들까지 부정적으로 봤던 "박근혜ㆍ최태민"의 관계는 30년 동안 이어진다1979년, 박정희의 사망사건이 터지고, 전두환 군부에 의해 최태민이 격리되며, 소원해졌던 관계는 박근혜가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복원된다.

최태민은 육영재단의 이사로, 고문으로 활동하며 운영에 깊숙이 개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최태민 뿐만 아니다. 그의 사위까지 육영재단에 관여했다최태민이 사망(1994)한 뒤, 5째 부인의 딸인 "최순실"의 남편 "정윤회"는 1996년부터 2004년까지 박근혜의 보좌관 혹은 비서실장으로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2002년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 미래연합"을 창당하고, 총재가 됐을 때, 정윤회는 총재 비서실장이었다최태민의 딸 "최순실"은 강남에 빌딩 2채를 보유한 수백억대 재산가로 알려졌다. "최순실"이 부동산을 사들인 때와 최태민이 육영재단의 운영에 깊숙이 개입했던 시점이 일치해 이와 관련된 의혹도 무성하다. , 항간에는 2004년 이후에도 "정윤회 보고라인"이 가동돼 왔고, 4.11 총선 공천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도 있다.

11. 최태민인척 : 육영재단영남학원까지 좌지우지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박근혜에게 영남대 재단을 맡긴다이사장에 취임했지만, 이에 반대하는 학생시위가 일어나, 몇달 만에 이사장직에서 물러난다하지만 "부정입학장학금 횡령영남대병원 비리" 등이 불거져 관선이사 체제가 들어선 1988년까지 이사직을 유지했다부정한 방법으로 "영남대 교주(校主)"가 된 아버지 덕분에 영남학원을 맡았지만, 여기에도 "최태민의 흔적"이 발견된다.

영남학원 비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재단운영을 좌지우지해 온 4명중 2명이 최태민의 인척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영남학원 산하 영남투자금융 등을 관리하며, 재단의 실세였던 조순제는 최태민 처의 전남편의 아들이었다영남대병원 관리부원장을 맡아 의료원 관련 비자금 총책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손윤호는 조순제의 외삼촌이었다. 편법과 비리가 판쳤다병원장 해외출장비가 박지만의 항공료로 지급되고, 육영재단에 수천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육영재단이 발행하던 "어깨동무보물섬" 등에 영남투자금융이 장기 광고를 제재하거나, 거액을 기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12. 맡은 곳 마다 부실, 이런데도 "빅토리아(승리) 여왕?"

"박근혜"가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가졌던 직함 중 대표적인 것이, "육영재단영남학원 이사이사장"이다. 2곳 모두 부실운영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영남학원"은 공금 횡령ㆍ기금 전용ㆍ부정 입학등이 문제가 돼, 1988년 사학재단 처음으로 국정감사를 받았다이후 20년 동안 관선이사 체제로 운영되다가, 2009년에야 정상화가 됐다.

"육영재단"은 방만한 운영ㆍ경영부실에 2차례의 "형제의 난"까지 겹치며,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2008년부터 "박지만 "이 추천한 임시 이사 9인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선거에서는 "여왕"일지는 모르겠으나, 경영에는 재주가 없나 보다. "박근혜"가 맡았던 두 기관 모두 풍비박산의 위기를 겪었다두 기관의 부실운영에 공교롭게도 "최태민"이 있었다. "육영재단ㆍ영남학원", 모두 현존해 있는 기관들이고, , 관련 인물들 상당수가 생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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