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02.06일 발생한 "국제공산당 자금사건 (레닌 자금)"으로 "김립 (金立ㆍ김익용(金翼容)ㆍ1880~1922ㆍ42세)"은 암살된다. 1922년 "임시정부 경무국"의 "김구"가 보낸 "오면직ㆍ노종균"등의 총격을 받고 암살당했다. (당시 60만 금화 루블은 2012년 오늘의 구매력으로 환산하면 약 600억 원에 해당하는 거금이다.그러므로 200만 금화 루블은 2,000억 원에 해당한다)
1. 김립 (金立ㆍ김익용(金翼容)ㆍ1880~1922.02.06ㆍ향년 42세)
독립 운동가ㆍ사회주의 운동가ㆍ언론인ㆍ교육인ㆍ이동휘의 측근/책사ㆍ중국으로 망명, "고려공산당(상해파)ㆍ한인사회당"에서 활동했다. 1921년, "한형권"등과 함께 "한인사회당"의 대표자로 "소비에트 연방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에 참석, 1921.11월 "코민테른 회의"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으로부터 "200만 루블"을 지원받고, 그 중 "한형권"이 받은 "40만 루블"을 "한인사회당"과 "사회주의" 청년들을 위한 지원금으로 운반하던 중, 1922년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경무국"의 "김구"가 보낸 "오면직ㆍ노종균"등의 총격을 받고 암살당했다. (당시 60만 금화 루블은 2012년 오늘의 구매력으로 환산하면 약 600억 원에 해당하는 거금이다.그러므로 200만 금화 루블은 2,000억 원에 해당한다)
임정에 반하는 인물로 낙인찍힌 탓에 사후에도 오래도록 조명을 받지 못했다. 사후 "김구"가 "백범일지"에 기록한 대로, 그가 "군자금 40만 루블"을 "임시정부"에 내놓지 않고, 사적으로 유용, 낭비한 것으로 알려져, 부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와서 "구소련 비밀문서" 등이 공개되면서, 그가 "임정"의 자금을 횡령하지 않았다는 것이 알려졌다.
• 출 생 : 함북 명천군 • 사 망 : 중국 상하이 자베이 • 사 인 : 암살 (화기에 의한 사망ㆍ과다출혈)
• 호 : 일세 (一洗) • 별 칭 : 양춘산 (楊春山) • 본 명 : 김익용 (金翼容ㆍ金益庸)
• 학 력 : 한학 수학 → 보성전문학교 • 가 족 : 오영선(사위)
• 경 력 : 1911 : 권업회 (勸業會) 동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직된 항일독립운동 단체) → 1912 : 광성학교 (光成) 설립 (시베리아에서 "이상설ㆍ이동휘"와 함께 한인 자녀교육)ㆍ길성학교 (吉成) 설립 (시베리아에서 "이동휘"와 함께 설립)→ "이동휘"의 측근ㆍ책사 → 1913 : 동림무관학교 교수 (만주 왕칭현 (汪淸縣) 소재) → 1917 : 독일 스파이"라는 혐의로 제정 러시아 경찰에 체포ㆍ투옥ㆍ한인시보 발행인 (재정러시아의 "연해주" 한인사회 언론기관지) → 1918 : 신민회"의 망명 간부회의에 참여ㆍ"한인사회당" 창당 참여 ("상하이"에서 "이동휘"등과 함께)
1919 :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서실장"에 임명되었지만, 사퇴ㆍ신한민회 조직 ("이동휘ㆍ문창범ㆍ황병길ㆍ오영선"등 200여 명의 독립운동 대표들과 함께) →1921 : "고려공산당"의 결성 참여 ("이동휘"등과 함께, 한인사회당을 발전적으로 해산)ㆍ"국민대표자회의" 참여 (창조파(참여)ㆍ개조파ㆍ임정고수파)
1922 : "국제공산당 자금사건" 발생 → "국제공산당"의 "레닌"은 "한인 독립운동"에 "200만 루블"을 원조하기로 결정 → "이동휘ㆍ한형권" 등과 함께 "60만 루블"만을 받아가지고 와서 사용 → 지원자금을 "상해 임시정부"에는 알리지 않고, "한국인 사회주의자"들의 활동비와 "한인사회당" 등 "한ㆍ중ㆍ일 좌파 혁명가"들의 사업비로 쓰게 하였음. . (하단 맨 오른쪽)
2. 평 가
1913년 초,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을 방문하여, "이종호ㆍ정재관ㆍ이동녕ㆍ오주혁ㆍ홍범도ㆍ엄인섭"등 한인사회의 지도자들을 만난 바 있는 "이광수"는 해방 후 발간된 자신의 "나의 고백"에서, "권업회"의 핵심간부들이었던 "김립ㆍ김하구ㆍ윤해"와의 만남을 회고하면서 "김립은 책사요, 윤해는 논객이어서 당시 권업회의 중심인물들이었고, 김립은 기미운동에는 상해임시정부 이동휘 내각의 비서장으로 소련정부와 처음으로 연락을 지은 인물이다."라고 하였다.
"이동휘"와 의형제 관계였고, 김립의 가까운 동지였던 "계봉우"는 1920년 당시 "상해 정계에서 그를 능가할 인물이 없었다."고 하였다. "계봉우"는 김립을 회상하며 "정치수완이 민활한 것만은 나로 하여금 탄복하게 하였는데, 그에게는 파괴도 잘하고, 전설도 잘하는 수단이 있다"고 평했다. 러시아 시절 "이동휘"의 측근이 된 이후 그는 "이동휘"의 책사로 활동하였다.
3. 비 판
"장건상(라이벌이자 이르쿠츠크 파)"은 그가 "이동휘"의 측근이자, 책사였다고 하였다. "장건상"은 그가 "이동휘"를 유혹했다고 비판하였다. "김립이야, 세상이 다 아는 더러운 놈입니다. 이동휘는 원래 착한 사람입니다. 이동휘 신세를 망친 사람이 김립입니다. 이동휘가 김립만 아니었더라면 독립운동가들 가운데서도 굉장히 존경을 받았을 것입니다. 순전히 김립 때문에 신세를 망쳤지요. 조화를 가장 많이 부린 사람이 김립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옳게 못 죽었습니다."라고 하였다.
4. 1922.02.06 : 국제공산당 자금사건ㆍ김립 암살사건
"국제공산당"은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하는 한민족을 도우려고 하였고, "국제공산당"은 "한인 독립운동"에 "200만 루블"을 원조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1922년 "레닌"이 지원한 자금 중, "이동휘ㆍ한형권" 등과 함께 "60만 루블"만을 받아가지고 와서 사용하였으며, 그는 레닌이 지원한 자금을 "상해 임시정부"에는 알리지 않고, "한국인 사회주의자"들의 활동비와 "한인사회당" 등 "한ㆍ중ㆍ일 좌파 혁명가"들의 사업비로 쓰게 하였다. "이동휘ㆍ한형권"등과 함께 "상해파 고려공산당" 자금으로 보관 중이던 금액 내용이 누군가에 의해 폭로되면서, "이동휘ㆍ김립ㆍ한형권"과 "상하이 한인 공산주의자"들은 "임정"의 표적이 되었다.
"이르쿠츠크파" 사람인 "장건상"의 증언에 의하면, 김립이 다시 사람을 소련으로 보내서 자금을 가져왔다 한다. "김립이 러시아말을 잘하는 박진순(朴鎭淳) 등 심복들을 보내서 그것을 인수해 가지고 왔다. 인수를 해서, 몽고 고륜(庫倫)을 경유해서 가지고 오게 되었다."고 하였다. "한형권" 등이 1920.11월 "치타"에 도착하여, 김립에게 자금을 넘겨주었고, 김립은 "상하이"로 가져왔으며, "이동휘"는 이 사실을 비밀로 한 채, "임정"이 아니라 자신의 "공산당 조직"을 위해 썼다.
"임정"에서는 "레닌"의 자금을 "한ㆍ중ㆍ일 좌파 혁명가"들의 독립운동과 혁명운동에 사용하고, "상해 임시정부"에는 내주지 않자, "임시정부"는 그가 "레닌"이 보낸 "독립운동 자금"을 유용했다고 성토하였다. 한편 "이태준"은 김립에게서 돈의 일부를 받아 "베이징"으로 가져가다가, "몽골"을 점령한 "백군파"에게 붙들려 총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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