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

기독교 : 템플 기사단ㆍ시온 수도회

by 당대 제일 2022. 9. 4.
반응형

 

"템플 기사단 (Ordre des Templiers)"은 "시온 기사단ㆍ신전(神殿) 기사단ㆍ기사 수도회"으로도 불리며,  중세 십자군 시대의 "3대 종교기사단" 가운데 하나이다. 최초의 "기사수도회"로서, "십자군 전쟁"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1. 템플 기사단 (Ordre des Templiers)시온 기사단신전(神殿) 기사단기사 수도회

기부로 받은 토지가 많았으며, "금융업"으로 거액의 부를 축적하였다. 이런 그들의 부권력의 질주는 대략 200년 후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 그들의 지나친 부권력 확장에 "교황청유럽 각국 영주"들은 우려감을 품게 되고, 마침내 1307.10.13"프랑스 왕 필립 4""교황"과 밀약하여, 함께 전격적으로 "템플 기사단"을 습격검거하였다.

여담으로, 이날이 "13일 금요일"로 후에, "기독교계 재앙의 날"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비밀문서에 의하면, "시온기사단(처음에는 이 명칭이었던 것 같다)""템플 기사단"의 모체가 되는 조직으로, "템플 기사단"1312년에 완전 궤멸되었어도, 그 모체는 유지되었다고 한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기득권적 기독교 보수단체들에게 탄압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그런데, 이런 "템플기사단"은 근대로 오면서, 그들의 기독교 정체성이 극우적 성향으로 서구 기독교적 가치를 수호한다는 이론으로 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표면화 된 것이 "2차 대전 히틀러" 선전장관 "괴벨스의 인종주의적 가치론"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져 있다.

일 시 : 1118~ 13071312년 완전 궤멸

목 적 : 순례 보호성지 수호

활 동 : 십자군 원정 참가

"시리아팔레스타인" 각지에 성을 쌓고, 성지 방어를 주력으로 활약

본 부 : 솔로몬 신전 터 (예루살렘 시온산 "시온산""예루살렘"의 교외이며, 문서에는 "예루살렘"에 대해 단순히 "시온"이라고 표현된 경우가 많다.

1118, "샹파뉴 기사""위그 드 파양스"가 순례 보호를 목적으로 결성하고, "성 베르나르두스"의 후원으로, 1128"수도회"로서 교황의 공인을 받았다.

1118, "1차 십자군""성지 예루살렘" 차지하고, "그리스도교도 순례자들"에게 개방한 후, 많은 크리스트교인들은 이곳에 위험을 무릅쓰고 순례를 하던 중, "휴 페이언즈위그 드 파양스" 등 일단의 프랑스 귀족 젊은이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는데, 그것은 이들 "성지 순례자"들을 경호해주고, 국적 여행모험도 하자는 것이었는데, 이는 생각을 뛰어넘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왜냐하면, 순례자들은 답례로 감사하며, 그들에게 많은 헌금 등을 하게 되어, 엄청난 부를 모으게 되었는데, 그것은 후에 전설이 될 정도였다당시 "가톨릭 교황""템플기사단"을 인정해 권한을 받게 되었고, "솔로몬 신전 터 (예루살렘 시온산)"에 본부를 설치하는 것도 허가되었다.

"기사단"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성지의 강력한 권력과 함께 실질적인 금융 지배자가 되었다이어, 그들은 본국(유럽)에서 그 거대한 재물로 막대한 부동산금융업(고리 대업 등)을 통해, 더욱 많은 부권력을 쌓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2세기 후에 그들에게 몰락이 찾아온다.

1307.10.13일에 이르러, "프랑스 왕 필립 4(1268~1314)"가 왕권 신장의 수단으로 이들을 "이단"으로 간주, "프랑스" 각지에 있는 3,000여 수도원의 회원들을 모두 체포하고 전격적인 검거를 시작했다재산 까지 몰수한 뒤, 6년간 이단 심문을 단행하였다"교황 클레멘스 5"의 항의와 별도 조사를 위한 "빈 공의회"12년간 계속된 끝에 이 "기사단"은 결국 해체되고, 재산도 "요하네스 기사수도회"로 승계되었다.

"템플기사단"은 거의 전원이 불시 습격에 체포되었는데, 그들의 죄목은 "신성모독외설 혐의지어 "악마 바포메트" 숭배 혐의"까지 있었으며, 수십 명이 고문에 처해졌고, 처형되었다.

"악마 바포메트""숫양의 머리인간의 몸을 가진 악마", 현재에도 볼 수 잇는데, "타로카드 악마" 그림이 그것이다체포된 지도급 수십 명은 심한 고문화형에 처해 졌고, 1312년 마침내 완전히 궤멸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왕 필립 4""기사단"을 궤멸에는 성공했지만, 그들의 최대 기지로 알려진 곳에서 막대한 재물보물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고 한다.

역사 사실에 의하면, 당시 많은 "영주들교회 주교들""기사단"에 막대한 빚을 지고 있어, 습격에 가담하거나 묵인했다고 한다. "프랑스 필립 4" 역시 그들에게 거대한 채무를 지고 있었고, "기사단" 막대한 재물을 탐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일설에 의하면, "기사단" 최대 거점 중 하나인 "베즈"가 공격당할 때, 마지막 기사단 수장인 "자크"인들은 항복하여 사로잡혔는데, 이때 일부 "기사단원들"이 비밀 통로를 이용해, 요 보물을 가지고 탈출했다고 한다. " 베즈"라는 곳은 "렌 르 샤토" 근방이라고 한다.

후에 알려진 설은 "기사단"의 거점으로 알려진 요새는 표면적인 장소이며, 실제 "기사단"의 보물재물은 은밀한 비밀 장소에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곳이 현대에 미스터리로 알려진 "프랑스" 남부 "렌 르 샤토 보물이야기"라는 것이다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기사단"이 최대 보물로 여긴 것은 "" 같은 것이 아니고, "최후의 만찬에 사용된 성배"라는 것이다. 성경역사 연구자들 일부는 "기사단"의 보물은 "예수가 마지막에 걸쳤던 성의"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최근에 다시 붐 일고 있는 "고대 우주비행사 설" 주장자들은 "템플기사단"이 보물로 여긴 것은 "고대를 방문한 UFO의 흔적(?)"이라고 추정하였다

 

2. 시온 수도회 (시온교단)성체회장미 십자단

현재 "시온교단""시온 수도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시온 수도회"는 중세~ 현재까지 "프랑스 막후"에서 정치를 휘두른 비밀조직이다.

몇 번이나 왕위를 찬탈하려고 했었고, "프랑스 정부"를 위기로 몰았던 "비밀조직 성체회"는 조직체계가 "시온 수도회"와 일치했는데, "시온 수도회"의 분체이거나, 지도부는 "시온 수도회"일 것이 분명하다"장미 십자단" 등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실체가 알려지지 않는 막후의 비밀세력이다.

또한, "프리메이슨 단" 역시 "시온 교단"과 관련이 있다.

"시온 교단"의 단장 중 1명이었던 "고드프라 드 부용" 이라는 사람은 "십자군 원정"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다녔고, 그 전쟁을 선동하였으며, "십자군 원정"을 떠나기 전에 자기 재산을 모두 처분했다주변 인물들은 "성지"를 회복하면, 그가 그곳의 ""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십자군 원정"을 주도한 것은 "고드프라"였으며, "예루살렘 탈환"에도 가장 큰 공을 세웠다그 즈음에 "시온 교단"에 의해, "템플 기사단"조직되었다.  또한, 유대인이 썼다고 알려지는 "시온 선언문"은 사실 그다지 유대적이지 못하며, "프리메이슨" 열의 조직이 결의한 선언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