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페르시아"라고 하면, "아케메네스 왕조"를 말하며, 최초로 "오리엔트 문명권" 전체를 통일하고, "중동 문명"의 기본틀을 제시한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제국"이었다.
1. 아케메네스 왕조 (B.C 559~ B.C 330): 페르시아의 통일
"키루스 대왕"은 "메디아"를 정복하고, "아케메네스 왕조"를 창시한다.
당시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던 "바빌로니아 제국"을 물리침으로써, 최고로 강한 나라에 이르게 된다. "키루스"는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후, "키루스 원통"이라는 인류 최초의 "인권선언문"을 발표했는데 이는 1879년에 발견되었다. 여기에 보면, 모든 시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질 수 있으며, 노예제를 금지하며, 궁궐을 짓는 모든 일꾼은 급여를 지급한다고 되어 있다.
"캄비세스 2세(키루스의 아들)"는 "이집트"를 병합한다. 제국의 영토는 "다리우스 1세"에 이르러 최고의 영토가 된다. "아케메네스"의 영토는 "인더스 강"에서부터 유럽에 이르렀다. "아케메네스 제국"은 "중국"을 제외한 그 당시 알려진 거의 대부분의 문명세계를 통일하였다.
"다리우스 1세"와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 때, "페르시아 제국ㆍ그리스"가 격돌하는데, 이를 "그리스 - 페르시아 전쟁"으로 부른다. "아테네의 마라톤 전투ㆍ테르모필라이 전투"(스파르타 300명이 나라를 지켜냈던 것ㆍ살라미스 해전"이 "아케메네스 제국"과의 전쟁이야기다.
• 아시리아 : 우수한 철제 무기ㆍ기병 보유, BC 7C 경 "서아시아"를 최초로 통일, 이민족에 대한 강압적 통치로 1C 만에 멸망
• 조로아스터교 (Zoroastrianism) ㆍ마니교의 탄생
"조로아스터교"는 BC 7C 경 창시되었다. 이 세상을 선(빛)의 신과 악(어둠)의 신의 대결 장소로 여기고, "선의 신을 믿는 세력이 천국으로 간다는 것"을 주된 교리로 삼고 있다. "사산 왕조" 역시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았는데, 이때 "조로아스터교"에 "불교ㆍ크리스트교"의 요소가 더해진 "마니교"가 성립하였다.
2.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점령 시대 (B.C 330~ B.C 250)
"알렉산드로스 대왕 (마케도니아 왕국)"은 "다리우스 3세"를 무찌르고 "아케메니아 제국"의 영토를 그대로 이어 받는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쉽게 큰 땅을 복속할 수 있었던 것은 "아케메니아"를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대제"는 자신들을 "페르시아의 계승자"로 부르면서 "다리우스 3세"에게 장엄한 장례식을 해주었다. 또한 "알렉산더"는 "스타데이라 (다리우스의 딸)"와 결혼하였다.
3. 파르티아 (BC 247~ 226)
"알렉산드로스"가 분열된 뒤, "이란 고원 동부" 지역에서는 "페르시아 계" 유목민이 "파르티아"를 세웠다. "파르티아"는 "페르시아어와 페르시아 문자"를 사용하는 등 페르시아 제국의 전통을 계승하였으며, "중국 한나라ㆍ로마 제국ㆍ인도"를 연결하는 중계 무역을 했다.
4. 사산 왕조 (226~ 651)의 번영
3C 초, "페르시아 제국"의 부흥을 목표로 건국된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인더스 강 유역"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지배하였으며, 동서 교역의 중심지로서 중계 무역을 통해 번영을 누렸다.
"사산 제국"은 "로마 제국"과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루면서, 서로 뺏고 뺏기는 영토 전쟁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훗날 "비잔티움 제국"에게 크게 패하고, 새롭게 일어나는 "이슬람 제국"에 의하여 멸망의 길로 가게 된다. "사산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야즈데게르드 3세"가 "이슬람 제국"에게 패하고 무너지고 만다.
5. "아케메네스 제국"의 특징
• 성 립 : 이란 고원에서 성장, "키루스 2세" 때, 서아시아 통일의 토대를 닦음.
• 전성기 : "다리우스 1세"(이집트ㆍ마케도니아ㆍ인도 서북부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 지배)
• 쇠 퇴 : "페르시아 전쟁" 패배 이후 쇠퇴(BC 5C 초)→ 알렉산드로스의 침략으로 멸망(BC 4C)
• 문 화 : 여러 문명을 통합하고 더욱 발전시켜 국제적인 문화를 이룩하였는데, 특히 "비단길"을 이용하여 문물 교류를 활발히 하였고, 한반도에 유리 공예ㆍ철기 문화가 전해졌다.
"아케메네스 제국"은 다민족 국가로서, 초민족적 사회ㆍ문화가 특징이었기 때문에 "이란" 적인 것, 특히 "아케메네스 조"의 특성을 가려내기는 힘들다. 황제의 주된 거주지인 제국의 수도는 "엘람의 수사(Susa)"였으나, 겨울철에는 "바빌론"이었다.
그러나 "다리우스"는 "페르세폴리스"에 궁성을 차려 겨울을 보냈다. "아케메네스 제국"은 세계 제국으로서, 결국 "그리스 도시국가"와 오랜 기간 대결(B.C 546~466)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그리스" 도시국가를 통일한 "알렉산드로스 대왕"과의 전쟁에서 BC 331년에 멸망하였다.
① 권력 구조
본래 "고대 페르시아 어"를 사용했으나, 제국의 유일한 언어로 쓰여진 흔적은 없으며, "엘람 어"는 엘람 지역에서, "아람 어"는 행정 기구와 더불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사회 조직은 일반적으로 경제ㆍ사회적 기능에 따라 생긴 봉건 질서에 바탕을 두었다.
20C 초까지 사용된 "왕 중 왕(Shāhānshah)"이라는 칭호는 "피라미드식의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 구조는 시대의 변천 속에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후대에까지 존중되어 이란 문화로 남게 되었다.
특히, "다리우스 1세"는 "이집트"에 의해 시작되었던 "홍해ㆍ나일 강"을 연결하는 운하개설 계획을 완성하여 무역을 촉진하였다. "서아시아ㆍ그리스"에 이르는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였고, 예술ㆍ철학ㆍ문학ㆍ종교ㆍ경제ㆍ과학 등에 훌륭한 업적을 이룩하여 "헬레니즘"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수메르 인"이 시작한 고대 문명을 종결시키고 세계사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공헌했다.
제국의 "황제"는 광대한 영역과 많은 인종을 다스려야 했기 때문에, 20개의 "주(州ㆍSatrapys)"로 나누었고, 각 주는 황제가 임명하는 "총독(Satrap)"에 의하여 다스려졌다. 총독은 귀족 또는 왕족 출신이 대부분이었으며, 행정ㆍ사법ㆍ재정권의 행사는 물론, 심지어 외교와 주내 문제의 처리에 상당한 자치권을 누리고 있었다.
② 정 책
"키루스 2세ㆍ다리우스 1세"는 예속 종족에게 그들의 종교와 관습, 상업 활동 등을 허용하는 획기적 정책을 펼치기도 하였다. 또, 제국 말기에 빈번했던 반란에 대해서도 관용적 태도를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제국의 법체계는 행정부를 이끌어 나가는 데 중요했으며, 여기에 대한 자료는 그리스 문헌에 풍부하게 남아 있다.
"다리우스"는 법률 개혁을 통해 위대한 입법자인 동시에 통치자로 기억되기를 바랐으며, 그 구조는 이중적이어서, 각 지역 거주 민족의 법과 제국 전체를 포괄하는 "이란법"이 있었다. 모든 정복지는 "황제의 재산"이라는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법률과 조세의 개혁이 하나로 통합되었으며, 각 주의 총독은 특산물과 금ㆍ은으로 세금을 바쳤다.
"아케메네스 조"의 토지는 대부분 "이란 족"이 차지하고 있었으나, 일부 비(非)이란 인들도 비슷한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 "아케메네스 조"는 농업의 발달과 무역 증진을 위해, 도로의 보수ㆍ해상로 개척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③ 군 대
군대는 제국의 중요한 요소로, 정예 부대의 경우, 10,000명의 "페르시아 인ㆍ메디아 인"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중 1,000명 가량은 "황제의 친위 부대"였다. 따라서 이 정예 부대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제국을 지배하게 되었다.
각 지방에서 징집된 제국의 정규 병력은 "이란 인 장교"의 통제를 받으며 제국의 전략적 요충지에 주둔하였다. 또, 그 중에는 "이란"의 값진 은화를 벌려고 지원한 "그리스 용병"도 상당히 섞여 있었다
④ 페르시아 제국 유물 (페르세폴리스의 유적)
현존하는 가장 두드러진 유물은 "만나이 (Mannai) 족"의 수도인 "하산루 (Hasanlu)"의 성곽ㆍ궁성 ㆍ사원 건물, 현 이란의 "쿠르디스탄" 내의 "지비예 (Ziviye)"에서 나온 장식품과 가구 제품 등의 보물, "까즈윈" 근처 "말리크 (Marlik)ㆍ루리스탄"에서 발굴된 무덤 등이다.
이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은 B.C 10 C~ B.C 7 C에 만들어진 것으로, 정교한 금은 세공품과 청동가구 제품 등이다. 이 제품은 이란의 정착민이 지나가는 유목민에게 팔려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메디아 인"이 "북서 이란"을 통치했을 때인 B.C 8 C 초의 수도 "엑바타나(현, 하마단)"에서 건축 기술이 크게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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