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020 조선총독부 ② 청사 (2곳?)ㆍ남산 왜성대ㆍ경복궁 청사 "조선총독부 (朝鮮総督府)"는 1905.11.17일,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12.20일에 "통감부 및 이사청" 관제를 공포하였다. 1906.02.01일, "통감부" 개청식을 열었고, "광화문 육조거리"의 "대한제국의 외부(外部)청사"를 "통감부 청사"로 사용하다가, 1907.02.28일에 "남산 왜성대"에 "르네상스" 양식의 "2층 목조건물"로 "통감부 청사"를 건립하였다. 1. 남산 왜성대 (통감부 청사 → 총독부 청사)• 건 축 : 1907.02.28 • 위 치 : 남산 왜성대 (현, 중구 예장동 8번지 일대ㆍ서울 애니메이션센타 자리)• 사 용 : 1907.02.28~ 1926.01 • 파 괴 : 1950년 6ㆍ25전쟁1905.11.17일, "을사조약"을 강제.. 2022. 10. 13. 조선총독부 ① 총독ㆍ직제ㆍ조선인 귀족원 의원 "조선총독부 (朝鮮総督府)"는 "일본 제국"이 한반도에 대한 통치를 위해, 운영하던 직속기관으로, 1910.10.01일 (한일병합조약 체결일)~ 1945.09.02까지 존속되었다. 1. 조선총독부 (朝鮮総督府): "일본 제국"이 조선 통치를 위해, 운영하던 직속기관 • 일 시 : 1910.10.01일(한일병합조약 체결일)~ 1945.09.02 • 본 부 : 경기도 경성부 (현, 서울) 1905년 (광무8), "대한제국" 시기에 설치된 "한국통감부 (韓國統監府)"를 전신으로 하여. 1910년 "한일병합조약" 직후에 출범하였으며, 초대 "조선총독"으로 "데라우치 마사타케 (寺內正毅)"가 취임하였다. 1914.03.0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1913.12.29일 공포)를 통해, 지방 행정.. 2022. 10. 13. 일제강점기 ② 내선일체 (內鮮一體)ㆍ총독부의 식민 정책 "내선일체 (內鮮一體)"에서, "내 (內)"라 함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전, 그들의 해외식민지를 "외지 (外地)"라 부른 데 대한 일본 본토를 가리키는 "내지 (內地)"의 첫 자이며, "선 (鮮)"이란 조선을 가리키는 말로, 일본ㆍ조선이 "일체(하나)"라는 뜻이다. 1. 내선일체 (內鮮一體): 1937년 일제가 전쟁협력 강요를 위해 취한 조선 통치정책그들은 이미 1931년 만주사변 때, "일만일체(日滿一體)"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1937년 일본이 중국 침공을 개시하자, 당시 조선총독 "미나미지로(南次郞)"는 이 대륙 침공에 조선을 전적으로 동원ㆍ이용하기 위한 강압정책으로 "내선일체"라는 기치를 들고 나섰다. 한민족의 저항을 초기부터 말살, 차단하려는 철저한 민족 말살정책이었다. 이른바 ".. 2022. 10. 13. 일제강점기 ① 주요사건ㆍ시기별 특징ㆍ대동아공영권 "일제 강점기 (日帝强占期)" 36년 동안, "조선총독부"의 한반도 지배는 시대에 따라 다소 정책의 변동이 있었으나, 일관된 정책은 "효율적인 식민 지배를 위한 탄압ㆍ영구예속화를 위한 고유성(固有性) 말살ㆍ우민화(愚民化)ㆍ철저한 경제적 수탈" 등이었다.※ 대동아 공영권 (大東亞共榮圈ㆍ1937)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동남아시아 지역"을 침략하며 내세운 것으로, 아시아의 민족이 서양 세력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려면 일본을 중심으로 조선ㆍ만주ㆍ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나라들이 단결하여 대동아 공영권을 결성해서 아시아에 침투해 있는 서양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관동군 (關東軍ㆍ1906~1945) "중국ㆍ소련"을 침략할 목적으로 1906~1945에 중국 동북지방을 강점하고 .. 2022. 10. 13. 친일파 대표 인물 (분야별)ㆍ총독부 중추원 "을사오적 (乙巳五賊)"은 "을사늑약" 체결을 찬성했던 5명의 "매국노"는 "이완용 (학부대신)ㆍ이근택 (군부대신)ㆍ이지용 (내부대신)ㆍ박제순 (외부대신)ㆍ권중현 (농상공부대신)"이다. 대신 중 "수상격인 한규설 (참정대신)ㆍ민영기 (탁지부대신)ㆍ이하영 (법부대신)"은 조약에 반대했고, "이재극 (궁내부대신)"은 조약 체결과 직접 관계가 없었다. 1. 을사오적 (乙巳五賊) : 1905.11.17 - 제2차 한일협약 (을사조약ㆍ을사늑약ㆍ을사보호조약)• 이완용 (총리대신) : "한일합방"의 주역이었던 매국노 대명사• 박제순 (외부대신) : "을사조약" 체결에 도장 찍은 외교책임자 • 권중현 (농상공부대신) : 친일로 한평생 걸은 "대세 영합론자" • 이지용 (내부대신) : 나라 판돈으로 도박에 .. 2022. 10. 13. 을사 5적 ⑤ 이완용 ④ 비서 이인직ㆍ혈의누ㆍ소설가 "혈의 누"를 쓴 소설가 "이인직 (李人稙ㆍ1862~1916ㆍ54세)"은 "이완용"의 후원을 받으며, 그의 비서 역할을 수행했으며, "일본ㆍ한국의 강제병합을 모의하는 밀담"을 나누는 등 "일제강점기의 서막"을 연 인물이다. 1. 이인직 (李人稙ㆍ1862~1916ㆍ향년 54세)이완용 비서ㆍ친일행위자ㆍ일본 육군성 조선어 통역관ㆍ경학원 사성(經學院)ㆍ언론인(대한신문사 사장ㆍ국민신보(일진회 기관지) 주필ㆍ만세보(천도교 기관지) 주필)ㆍ소설가(혈의 누ㆍ최초의 신소설ㆍ낙관적 개화주의ㆍ한 문구 배제ㆍ현대소설을 태동시키는 초석)1907.07월, 재정적 이유로 "만세보(천도교 기관지)"가 폐간되자, "조중응"의 후원으로 "대한신문사(친일 이완용 내각의 기관지)" 사장으로 임명→ 이후 "이완용"의 후원을 받으며, 그의 .. 2022. 10. 12. 을사 5적 ⑤ 이완용 ③ 의사 "이재명"의 테러 (명동성당) 1909.12.22일 낮, "명동성당 정문" 근처에서 "이재명 (李在明ㆍ1890~1910.09.13ㆍ향년 20세)"에게 칼에 찔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완용"은 칼에 "왼쪽 폐"가 관통됐는데, 마침 일본인 치료목적으로 파견 와 있던 "일본인 외과의사들"과 당시의 최신의료기술을 총동원, 구사일생으로 약 2개월간의 입원 치료 끝에 살아났다. 1. 이재명 (李在明ㆍ1890~1910.09.13ㆍ향년 20세)독립 운동가ㆍ불과 약관의 나이로 이완용을 처단하려 했으나, 실패 후 형장에서 순국ㆍ1909.12.22일, "종현 천주교회당(鍾峴 天主敎會堂ㆍ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벨기에 국왕 레오폴 2세 추도식"에 참석하려는 "이완용 처단" 실패 • 출 생 : 조선 평안도 선천군 • 사 망 : 일제 강.. 2022. 10. 12. 을사 5적 ⑤ 이완용 ② 흥선대원군과 사돈?ㆍ독립문 글씨ㆍ고종 복심 "이완용 (李完用ㆍ1858~1926ㆍ68세)"은 변신의 귀재로, 명문가 양자 출신 (중추부 판사 이호준)ㆍ왕실과 사돈 (이호준이 흥선대원군과 사돈)→ 이완용 과거 급제(1882ㆍ24세) → 친미파 (1886ㆍ28세- 육영공원 입학ㆍ1887 주차미국참찬관 (당시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 → 친미파ㆍ친 러시아파 (1895ㆍ37세) → 친일파 (1905ㆍ47세)가 되었다. 1. 관계 : 흥선대원군과 이호준 (양부ㆍ큰아버지ㆍ흥선대원군과 사돈)의 교분 → "조대비"에게 접근"대원군"은 "이호준 (이완용의 양아버지)"과도 교분을 쌓게 되는데, "이호준"은 첩에게서만 아들 (이윤용)이 있었고, 정실부인에게는 아들이 없어, "이완용"을 양자로 맞이하였다. 대원군은 "이완용ㆍ이윤용(이완용의 이복 서형)" 형제를 신임하여.. 2022. 10. 12. 을사 5적 ⑤ 이완용 ① 총리대신ㆍ묘는 어디에?ㆍ송병준과 친일 쌍벽 "이완용 (李完用ㆍ1858~1926ㆍ68세)"은 "고종의 복심"이었으나, 을사오적(1905)ㆍ정미칠적(1907)ㆍ경술국적(1910)의 1명으로, "한일 합병 과정"에서 맺은 조약에서 "조선의 탁월한 협조자"가 되었다. 그는 "매일신보 (1919.05.30일)"에 "조선이 식민지가 된 것은 구한국이 힘이 없었기 때문이며, 역사적으로 당연한 운명과 세계적 대세에 순응키 위한, 조선민족의 유일한 활로이기에 단행된 것이다"라고 글을 썼다. 1. 이완용 (李完用ㆍ리노이에 칸요ㆍ1858~1926ㆍ향년 68세ㆍ162~164cm 추정)명문가 양자 출신 (중추부 판사 이호준)ㆍ왕실과 사돈 (이호준이 흥선대원군과 사돈)→ 이완용 과거 급제(1882ㆍ24세) → 친미파 (1886ㆍ28세- 육영공원 입학ㆍ1887 주차미국참.. 2022. 10. 12. 을사 5적 ④ 이근택 (군부대신) "근황주의자"에서 "친일매국노"로 "이근택 (李根澤ㆍ1865~1919ㆍ54세)"의 출사 계기는 1882년, "임오군란" 때, "충주"로 피신한 "명성황후 민씨"에게 싱싱한 생선을 진상함으로써, 눈에 들어 발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명성황후 민씨"가 환궁하면서 벼슬길에 들어섰다. 1. 이근택 (李根澤ㆍ1865~1919ㆍ향년 54세)1910년, "한일 병합 조약"에 협조하여, "일본 정부"로부터 "훈1등 자작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고문에 임명되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일가가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ㆍ"한규설(1856~1930ㆍ조선 말기 무신)"과 사돈관계원래 "이근택"은 "친러파"로 분류되는 인물이었다. "이용익"과 함께 "고종"의 군비증강정책을 이끌던 인물이었지만, "이근택"은 해군 양성을 주장했기에, 육군 양성을.. 2022. 10. 12. 을사 5적 ③ 권중현 (농상공부대신) "친일"로 한평생ㆍ대세 영합론자 "권중현 (權重顯ㆍ본명 : 권재형(權在衡)ㆍ1854~1934ㆍ80세)"은 "공신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났고, "음서"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일찍부터 "일본어"를 익혀서, "개화파 관료"로 "갑오개혁"에 참여하였고, "독립협회"에 참여하였으며, 이후에는 "친일 행보"를 보였다. 1. 권중현 (權重顯ㆍ본명 : 권재형(權在衡)ㆍ1854~1934ㆍ향년 80세)대한제국 관료ㆍ군인ㆍ농상공부대신ㆍ법부대신ㆍ군부대신ㆍ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ㆍ조선사편수회 고문ㆍ1906.11월, "군부대신서리"로 임명되어, "의병전쟁" 진압에 앞장ㆍ"개화파 정치인"이었으나, "친일파"로 변절ㆍ"중추원 고문ㆍ조선사편수회 고문" 등으로 활동• 출 생 : 충북 영동군 • 사 망 : 조선 경성부 • 호 : 경농(.. 2022. 10. 12. 을사 5적 ② 이지용 (내부대신) 나라 판돈을 "도박"으로! "이지용 (李址鎔ㆍ1870~1928ㆍ58세)"은 대한제국 황족 (고종 5촌 조카ㆍ고종과는 5촌 당숙부와 당질의 관계)ㆍ"흥선대원군"의 3째 형 "흥인군 이최응(李最應ㆍ1815~1882)"의 손자로, "광흥령 이희하(李熙夏)"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큰 아버지인 "이재긍(李載兢)"에게 입양되었다. 1. 이지용 (李址鎔ㆍ1870~1928ㆍ향년 58세)대한제국 황족 (고종 5촌 조카ㆍ고종과는 5촌 당숙부와 당질의 관계)ㆍ"흥선대원군"의 3째 형 "흥인군 이최응(李最應ㆍ1815~1882)"의 손자로, "광흥령 이희하(李熙夏)"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큰 아버지인 "이재긍(李載兢)"에게 입양되었다.관료ㆍ"나라를 판돈으로 도박에 미쳤던 백작이었다."는 말도 전해진다ㆍ일제 강점기, "조선귀족 가운데서도, 가장 부유하게 .. 2022. 10. 12. 이전 1 ··· 128 129 130 131 132 133 134 ··· 16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