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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고대 • 불가사의 (7대) • 로마 • 신화

7대 불가사의 (고대) ⑦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燈臺)

by 당대 제일 2023.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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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에 있던 "파로스 등대 (燈臺ㆍPhaus)"는 "프톨레마이오스 2(BC 285~246 재위)"의 명령으로 "소스트라투스"가 만들었다7C 이후, "이집트"를 정복했던 "아랍인"들에 따르면, "램프 뒤쪽의 반사경"으로 비치는 타오르는 불길은 43km정도 떨어진 바다에서도 볼 수 있었고, 맑은 날에는 "콘스탄티노플"까지도 반사경이 비쳤으며, 또 햇빛을 반사시키면, 160km 정도 떨어져 있는 배도 태울 수 있었다고 한다.

1. 파로스 등대 (燈臺)ㆍH= 135m재료 : 대부분이 "대리석"

꼭대기 전망대: 수십km 떨어진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고, 먼 본토까지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2. 파 괴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등대"가 파괴될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와 같이 "아라비아 인"에 의해 정복되어 있었는데, 적대국은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한 "비잔틴 제국"이었다. 이 제국의 황제는 간계에 대단히 능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황제는 "칼리프(회교의 교권ㆍ왕권을 통합한 지위) 알와리드"의 궁정에 비밀 지령을 가진 사자를 보냈다. "황제의 사자"는 "칼리프의 궁전"에 도착하자마자, 앞잡이들을 풀어, "등대" 밑에는 "이집트 국왕"이 지녔던 "금은보화가 가득하다"고 거짓 소문을 내게 했다. 소문을 들은 "이집트 고관들"은 이 사실을 "칼리프"에게 알렸고, "칼리프"는 망설이다가 등대의 철거 명령을 내렸다. "등대" 철거가 진행되어, 거의 반을 허물었을 때, "칼리프"는 자신이 어리석음을 깨닫고 중지명령을 내렸으나 때는 늦었다. 왜냐하면 이 등대를 건축할 수 있는 건축술이 당시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거대한 "구면 거울"도 파괴되어, 산산이 파괴되어 버리고 말았다. 반쯤 남은 등대도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해, "알렉산드리아"에는 배의 길잡이가 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이 등대는 14C까지 반 정도 부서진 상태로 계속 서 있다가, "대지진"으로 완파되었다. 

그 후, 여러 번 "등대를 재건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이를 축조할 기술이 없었다. 이 기술이 가능한 때는 20C에 들어와, "강철구조의 사용" 등 건축술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서야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대인들에게는 가능한 "건축술"이 그 후손들에게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은 묘한 느낌을 준다. 왜냐하면 우리의 상식으로는 역사가 발전한다는 발전사관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증거들을 살펴보면, "고대인"들이 우수한 과학 기술 문명을 보여주고 있는 예는 상당히 많다. 예를 들면, "이집트ㆍ마야의 피라미드"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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