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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미술사

화가 : 피카소 ② (Picasso)의 엄청난 여성 편력

by 당대 제일 2025.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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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ㆍ1881~1973ㆍ향년 92세ㆍ스페인ㆍ사망: 프랑스) >

 "피카소 (Pablo Picasso1881~1973ㆍ향년 92세ㆍ출생: 스페인ㆍ사망: 프랑스)"는 20C를 대표하는 "스페인 입체파" 화가입체주의 미술의 거장80여 년을 미술에 바쳐 회화/ 조각/ 소묘/ 도자기/ 시 등의 무수한 작품으로 20C 현대미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나는 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그린다. 평생동안 나는 사랑만 했다. 사랑 없는 삶은 생각할 수가 없다." 미술품 경매에서 작품이 가장 많이 판매된 "1위 작가", 남긴 유산만 10조원에 달하며, 작품 중 1 $(1,350억 원) 이상이 훌쩍 넘는 최고가 작품만 무려 6점에 달한다.

"피카소"의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려면, 그가 만난 여인들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여인들은 "피카소"의 창작의 에너지가 되었고, 여인들이 바뀔 때마다 화풍이 달라지기 때문이다"피카소" 입장에서는 "뮤즈"였겠지만, 여인들 입장에서는 "피카소의 바람기"에 희생당한 것이다.

여자를 꼬실 때, "당신을 어제보다 더, 내일보다 덜 사랑한다"는 작업멘트를 날렸다고 한다.

그와 공식적으로 사랑을 나눈 연인들은 7명이며, 그는 수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렸으며, 모든 여인들을 다 찼다.  그의 엄청난 여성 편력은 대중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나이 6070세가 넘어서도 20살 갓 넘은 손녀뻘인 여자들과 살림을 차려 자식을 낳기도 했다. 불륜을 저지르고, 혼외자식은 물론 친자식까지 내팽개치고, 자신에게 순종하는 여성을 곁에 두고, 그러다 "영감의 순간"이 끝나면, 일방적으로 "뮤즈"를 버리고 떠났으며, 아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외도를 일삼았고, 사창가를 전전하면서 수많은 여자와 어울렸다.

1. 페르낭드 올리비에 (23세ㆍ동갑ㆍ프랑스계 예술가ㆍ모델→ 이별)

동거 (1904~1912) 피카소의 첫사랑

그녀는 어릴 적 부모와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19세에 폭력적인 남편과 이혼하지 않은 채 집을 나와, 파리에서 가명의 이름으로 화가 모델로 일하게 되었다.  화가들의 모델로 활동하다가 우연히 그를 만나게 되었다. 1년의 연애 후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고, "피카소"는 그녀에게서 영감을 받아 "아비뇽의 처녀들"이라는 유명한 작품을 완성하였다. 하지만 서로 맞바람을 피웠으나, "피카소(23세)"는 그녀를 감금까지 했다.  피카소의 의처증과 그녀의 난임 문제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였으며, 결국 그녀는 피카소의 입양딸 사진을 발견하고, 근친관계를 의심하게 되었다.  이들은 서로 멀어지게 되었고, "피카소 " 는 경제적 지원을 끊고, 그녀와 이별을 선택했다.

초기 그의 그림 모델이 되었으며, 친구인 "아폴리네르"의 시에서도 등장한다. 피카소는 첫사랑 "올리비에"를 만나면서, 예술적 색채가 밝고 따뜻한 톤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사창가의 여성들을 그림)"에서 여성 1명의 얼굴이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여성인 그녀의 모습이다.

2. 에바 구엘 (26세ㆍ5살 연하ㆍ무용수→ 병사)

동거 (1912~1915) 암에 걸려, 피카소에게 버림받음

"페르낭드"는 피카소(31)의 집착을 피하기 위해, 친구인 "에바 구엘"을 소개해주었다가정적인 성격의 에바는 묵묵히 피카소를 잘 챙겨주었지만1915.12월 그녀는 암에 걸려 30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3. 올가 코클로바 (26세ㆍ10살 연하ㆍ러시아 출신의 발레극단소속 무용수ㆍ파울로의 모친→ 이혼)

동거 (1917~19351918년 결혼ㆍ1번째 부인): 아들 파울로 (1921~1975)

러시아 귀족 출신의 발레리나로그때만 해도 "땡전 한 푼" 없었던 그는 명문 집안의 딸인 그녀의 사교력으로 "러시아 상류층"과 교류한 그는 그들이 좋아할 법한 그림도 대량으로 그려내면서 막대한 돈까지 벌기에 이르게 되며, 이른 나이에 돈 걱정 없이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는데 매진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된다.

"입체주의 화풍"을 좋아하지 않아, 피카소(36)에게 자신을 그릴 때는 사실적인 "고전주의 화풍"으로 그려줄 것을 요구했다"올가"의 간섭에 질린 피카소는 점점 그녀에 대한 애적이 식어갔고, 갈등이 깊어졌다.

그의 "골든 뮤즈"로 알려져 있으며, 그에게 가장 창조적인 영감을 준 연인이었다. 그는 고전주의ㆍ 초현실주의의 요소들을 결합하여 그녀를 모델로 한 초상화들을 많이 그렸다. 그가 "마리 테레즈 월터"와 바람을 피운 것을 친구로부터 알자마자, "파울로(아들)"와 함께 집을 나가서 이혼 소송을 했으나, "피카소"가 재산 분할을 하기 싫어서, 이혼을 안 해준 덕에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결혼 상태였고, 죽을 때까지 따로 살았다고 한다(마지막까지 법적 부부).

4. 마리 테레즈 윌터 (17세ㆍ29세 연하ㆍ마야의 모친→ 자살)

동거 (1927~1937): 딸 마야 (1935~)

"올가"와 결혼 9년차인 1927, 피카소(46)는 파리에서, 17세의 금발소녀 "마리"를 만나 한눈에 반했다화가와 모델로 만나, 29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연인관계로 발전했으다. "마리"는 피카소를 처음 만났을 때, 이상형처럼 느껴졌으며, 둘의 관계는 "피카소"가 아직 "올가"와 결혼한 상태에서 비밀스럽게 이어졌다, 피카는 2집 살림을 즐기면서 "마야"를 얻었고, "마리"에게서 받은 영감으로 그의 화풍은 한결 자유분망해졌다.  "피카소"는 몹시 순종적인 그녀와의 불륜 관계에서 큰 영감을 받아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와 8년간 만남을 지속했고, 헤어지고 나서 한참을 방황하다가 결국 자살했다. 자신을 떠난 그를 평생 그리워하며 기다림 속에서 살았고, 그가 사망한 4년 뒤, "그와 함께 있어줘야 한다"는 이유로, 집 차고에서 목을 매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작품 중 1$(1,350억 원) 이상이 훌쩍 넘는 최고가 작품만 무려 6점에 달한며, 최고의 인기와 작품 값을 자랑하는 그림들 중 4점에서 그녀가 "뮤즈"가 등장한다. 그의 생애 통틀어 창작열이 정점에 이르렀다고 꼽히는 초현실주의 시기에 만난 여인이었다. 그는 "올가 코클로바"와 혼인관계였지만, 금발을 귀 뒤로 넘기며 이제 막 지하철역 계단에서 걸어 나오는 "마리"와 첫눈에 사랑에 빠졌고, 나이 차이는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난데없이 "마리"의 팔목을 잡고, "당신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매일 그의 작업실에 방문해 모델이 되었다. "마리를 만난 날, 나는 깨달았다. 내가 이전에 늘 바라고 꿈꾸던 것을 갖게 됐다는 것을"

5. 도라 마르 (29세ㆍ26살 연하ㆍ사진작가→ 병사)

동거 (1936~1943)

카페에서 기가 세고 도발적인 "도라"를 만난 피카소(55)는 한눈에 반했다26살의 나이차에도 예술적 영감을 나누는 사이로 발전한다아내 "올가"와 별거중이고, "마리"와 동거 중이었으나, "도라"와의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

"게르니카"의 제작 과정을 사진으로 남겼다. 1935, "마리ㆍ피카소" 사이에서 딸 "마야"가 태어나고, 1936년 대표작인 "게르니카"를 그리던 중에 만난 "도라 마르"와 급속도로 가까워 지면서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는 "마리ㆍ도라" 모두와 관계를 지속했고, 2명 중 1명을 고르라는 요구에 "내가 선택할 순 없으니, 둘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한다. 그는 걷잡을 수 없이 "도라"에게 빠져들었고, 결국 "마리"를 그의 생활에서 지워버린다. 그렇게 "도라"10여 년간 그의 예술세계에 새로운 뮤즈로 등장하기 시작했으나, 이후에도 "프랑수아즈 질로"에 한눈에 반해 쩔쩔매게 된다.

6. 프랑수아즈 질로 (21세ㆍ41살 연하ㆍ클로드/팔로마의 모친→ 병사)

동거 (1943~1953): 아들 끌로드 (1947~ )ㆍ딸 팔로마 (1949~ )

그에게 먼저 이별을 통보한 유일한 여자로,  "도라"와 헤어진 피카소(62)는 지적인 법대생 화가 "질로"를 만났다"피카소"는 미술계에서 자신의 명성을 이용하여, "질로"의 화가 인생을 막으려고 했지만"질로"는 유럽을 떠나 미국에서 화가의 길을 이어갔다또한 "피카소" 사후를 대비하여, 사생아가 된 자녀들을 호적에 올리는 소송을 벌려 승소했다.

전쟁사진으로 유명한 "로버트 카파""피카소와 질로"라는 사진이 유명한데, 그가 시종처럼 파라솔을 받쳐들고 "질로"의 뒤를 따라 걷는다. 그와 헤어진 후, 화가 활동을 하면서, 동료 화가인 "뤽 시몽"과 결혼한 후 딸을 낳고 이혼했으며, 이후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의학자 "조너스 소크"와 재혼했다. 그녀는 그와 이별한 후, "피카소와의 삶"이라는 책을 발표해, 그와 함께 한 10년간의 생활(피카소의 마초적인 성격과 여성 편력까지)을 솔직히 고백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저는 저희 아버지나 남자친구와는 대화가 되지 않는데, 저보다 3곱절 연상인 당신과는 말이 통하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라고 고백했다.

7. 재클린 로크 (27세ㆍ44살 연하ㆍ1961년 피카소와 재혼→  권총 자살)

동거 (1952~19731961년 결혼ㆍ2번째 부인)

"올가ㆍ질로"에게 연이어 시달리던 피카소(71)는 마지막 뮤즈 "재클린"을 만난다정신질환을 앓던 조강지처 "올가"와 사별로 자유의 몸이 된 그는 1961.03월 결혼한다"재클린"의 존재로 안정감을 찾은 그는 노년까지 활발한 작품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그가 죽은 지 13년 후, 피카소의 생일 날, 그의 무덤 앞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그동안 그렸던 다른 연인들보다도 그녀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400점 이상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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