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鄭歚ㆍ1676~1759ㆍ83세)"은 "심사정(沈師正ㆍ1707~1769ㆍ62세)"의 스승이며, "영조"의 왕자 시절, "그림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덕으로 만년에 명예직이기는 하지만, 종2품까지 승진하게 되는데, 이는 조선 역사를 통틀어서도 거의 전례가 없는 파격적인 대우였다. "인왕제색도ㆍ금강전도"가 특히 유명하다. 여행을 즐겼기에, "금강산ㆍ반구대" 등의 전국 명승을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1. 정선 (鄭歚ㆍ1676~1759ㆍ향년 83세)
조선의 화가ㆍ문신ㆍ정선 생가 터가 "경복고등학교" 안에 위치하고 있다.
• 삼재 (三齋): 겸재 정선 (謙齋)ㆍ현재 심사정 (玄齋)ㆍ관아재 조영석 (觀我齋)
• 사인삼재 (士人三齋): 겸재 정선 (謙齋)ㆍ현재 심사정 (玄齋)ㆍ관아재 조영석 (觀我齋)ㆍ공재 윤두서 (恭齋)
• 호 : 겸재 (謙齋)ㆍ겸초 (兼艸)ㆍ난곡 (蘭谷)
• 작 품 :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국보 216호)ㆍ금강전도(金剛全圖, 국보 217호)ㆍ입암도(立巖圖)ㆍ혼혼해색도(混混海色圖)ㆍ선인도해도(仙人渡海圖)ㆍ산창유죽도(山窓幽竹圖)ㆍ의송관란도(倚松觀瀾圖)ㆍ노산폭포도(盧山瀑布圖)ㆍ사직노송도(社稷老松圖)ㆍ청풍계도(淸風溪圖)ㆍ금강산 정양사도(金剛山正陽寺圖)ㆍ해금강도(海金剛圖)ㆍ노산초당도(盧山草堂圖)ㆍ통천ㆍ문암도(通川門巖圖)ㆍ봉래산 불정대도(蓬萊山 佛頂臺圖)ㆍ석굴암도(石窟庵圖)
• 산수화 : 박연폭포(朴淵瀑布ㆍ비단에 수묵ㆍ119.5x 52.2cmㆍ이우복 소장)ㆍ인곡유거도(仁谷幽居圖ㆍ종이에 담채ㆍ27.3x 27.5cmㆍ간송미술관 소장)ㆍ인곡정사(仁谷精舍ㆍ종이에 담채ㆍ간송미술관 소장ㆍ인왕산 아래 있던 정선의 집을 그림)ㆍ압구정(鴨鷗亭)ㆍ창의문(彰義門)ㆍ청풍계(淸風溪)ㆍ청송정(聽松堂)ㆍ귀래정(歸來亭)ㆍ 광진(廣津)ㆍ이수정(二水亭)ㆍ자하동(紫霞洞)ㆍ낙건정(樂健亭)ㆍ삼승정(三勝亭)ㆍ석실서원(石室書院)ㆍ소요정(逍遙亭)ㆍ양화진(楊花津)ㆍ소악루(小岳樓)
2. "인왕제색도ㆍ금강전도"가 특히 유명하다.
20세, "김창집(金昌集)"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이 되어, 관직에 나가,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문재(文才)"가 없었던 탓으로, 다만 서명과 1~2개의 "낙관(落款)"만이 화폭 구석에 있을 뿐, "화제(畵題)"가 없는 것이 이채롭다. "정선"의 그림에는 다채로운 숨은 그림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중국 남화(南畵)"에서 출발했으나, 30세를 전후하여 "한국 산수화"의 독자적인 특징을 살린 "산수사생(山水寫生)의 진경(眞景)"으로 전환하여, "동방 진경산수화"의 종화(宗畵)가 되었다. "강한 농담(濃淡)의 대조" 위에 "청색"을 주조(主調)로 하여, "암벽(岩壁)의 면ㆍ질감"을 나타낸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으나, "후계자"가 없어 그의 화풍은 일대에 그쳤다.
18세기 당시, "조선 화단"을 이끌었던 "강세황(姜世晃ㆍ문신ㆍ서화가ㆍ평론가ㆍ1713~1791ㆍ78세)"은 "정선이 실제 경치를 잘 그린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강세황"은 "진경을 그릴 때는 각 장면에서 알맞은 화법을 찾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기준에 따라, "정선의 산수화"를 다음과 같이 비평하였다.
"정(鄭)은 그가 평소에 익숙한 필법을 가지고, 마음대로 휘둘렀기 때문에, 돌 모양이나 봉우리 형태를 일률적으로 "열마준법(裂麻皴法)"으로 함부로 그려서, 그가 진경을 그렸다고 하기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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