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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물 • 악녀 (10인) • 부덕 (6인)

화가 : 정선 (영조ㆍ1676~1759)ㆍ인왕제색도ㆍ심사정의 스승

by 당대 제일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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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鄭歚ㆍ1676~1759ㆍ83세)"은 "심사정(沈師正ㆍ1707~1769ㆍ62세)"의 스승이며, "영조"의 왕자 시절, "그림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덕으로 만년에 명예직이기는 하지만, 종2품까지 승진하게 되는데, 이는 조선 역사를 통틀어서도 거의 전례가 없는 파격적인 대우였다. "인왕제색도ㆍ금강전도"가 특히 유명하다.  여행을 즐겼기에, "금강산ㆍ반구대" 등의 전국 명승을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1. 정선 (鄭歚1676~1759향년 83)

조선의 화가문신정선 생가 터가 "경복고등학교" 안에 위치하고 있다.

삼재 (三齋): 겸재 정선 (謙齋)현재 심사정 (玄齋)관아재 조영석 (觀我齋)

사인삼재 (士人三齋): 겸재 정선 (謙齋)현재 심사정 (玄齋)관아재 조영석 (觀我齋)공재 윤두서 (恭齋)

  : 겸재 (謙齋)ㆍ겸초 (兼艸)ㆍ난곡 (蘭谷)

작 품 :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국보 216)금강전도(金剛全圖, 국보 217)입암도(立巖圖)혼혼해색도(混混海色圖)선인도해도(仙人渡海圖)산창유죽도(山窓幽竹圖)의송관란도(倚松觀瀾圖)노산폭포도(盧山瀑布圖)사직노송도(社稷老松圖)청풍계도(淸風溪圖)금강산 정양사도(金剛山正陽寺圖)해금강도(海金剛圖)노산초당도(盧山草堂圖)통천ㆍ문암도(通川門巖圖)봉래산 불정대도(蓬萊山 佛頂臺圖)석굴암도(石窟庵圖)

산수화 : 박연폭포(朴淵瀑布비단에 수묵119.5x 52.2cm이우복 소장)ㆍ인곡유거도(仁谷幽居圖종이에 담채27.3x 27.5cm간송미술관 소장)ㆍ인곡정사(仁谷精舍종이에 담채간송미술관 소장인왕산 아래 있던 정선의 집을 그림)ㆍ압구정(鴨鷗亭)창의문(彰義門)청풍계(淸風溪)청송정(聽松堂)귀래정(歸來亭) 광진(廣津)이수정(二水亭)하동(紫霞洞)낙건정(樂健亭)삼승정(三勝亭)석실서원(石室書院)소요정(逍遙亭)양화진(楊花津)소악루(小岳樓)

정선

2. "인왕제색도금강전도"가 특히 유명하다.

20, "김창집(金昌集)"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이 되어, 관직에 나가, "현감(縣監)"에 이르렀다"문재(文才)"가 없었던 탓으로, 다만 서명과 1~2개의 "낙관(落款)"만이 화폭 구석에 있을 뿐, "화제(畵題)"가 없는 것이 이채롭다. "정선"의 그림에는 다채로운 숨은 그림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중국 남화(南畵)"에서 출발했으나, 30세를 전후하여 "한국 산수화"의 독자적인 특징을 살린 "산수사생(山水寫生)의 진경(眞景)"으로 전환하여, "동방 진경산수화"의 종화(宗畵)가 되었다"강한 농담(濃淡)의 대조" 위에 "청색"을 주조(主調)로 하여, "암벽(岩壁)의 면질감"을 나타낸 로운 경지를 개척했으나, "후계자"가 없어 그의 화풍은 일대에 그쳤다.

18세기 당시, "조선 화단"을 이끌었던 "강세황(姜世晃문신서화가평론가1713~179178)""정선이 실제 경치를 잘 그린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강세황""진경을 그릴 때는 각 장면에서 알맞은 화법을 찾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기준에 따라, "정선의 산수화"를 다음과 같이 비평하였다.

"()은 그가 평소에 익숙한 필법을 가지고, 마음대로 휘둘렀기 때문에, 돌 모양이나 봉우리 형태를 일률적으로 "열마준법(裂麻皴法)"으로 함부로 그려서, 그가 진경을 그렸다고 하기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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