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유신 (明治維新ㆍMeiji Restorationㆍ고잇신(어일신ㆍ御一新))"은 1868년 "일본"이 정치ㆍ경제ㆍ문화 전 분야에 걸쳐 근대화를 성공시킨 과정과 일련의 사건을 말한다.
1. 일본 역사의 기본개념
① 1192~1868 (700여년): "사무라이 정권"인 막부와 중심이 "쇼군"
② 1868~1912 : 메이지(明治)시대
2. 영국 산업혁명ㆍ중국과 아편전쟁
① 산업혁명 : 영국ㆍ1760~ 1820 (18C 중~ 19C 초)
② 아편전쟁 (장소 : 중국 청나라 동부 해안)
• 1차 (아편 전쟁) : 1840~ 1842 → 난징 조약 → 홍콩 영구 양도
• 2차 (애로호 전쟁): 1856~ 1860 → 톈진 조약ㆍ베이징 조약ㆍ영(홍콩, 주룽 반도)ㆍ프(광저우만)ㆍ러(연해주) 획득ㆍ아편무역 합법화ㆍ기독교 포교ㆍ텐진 개항
3. 1842 : 영국이 청나라와 "아편전쟁"에서 승리 → 서구열강의 "중국대륙" 침략의 발판 형성
미국도 중국에 진출하기를 원했고, 이를 위해 "일본의 개국"이 필요
4. 1854 : "미국 페리제독 (9척 군함)"이 일본에게 개항 요구
"일본 에도막부"는 요구를 받아들여, 1854.03월 "미일화친조약" 체결 → 항구 개항(시모다ㆍ하코다테 등) → 일 쇄국체제 종말
5. 1856 : "아편전쟁 (2차)"로 중국이 서구열강에게 다시 굴복
이를 빌미로 미국은 일본에게 재차 개항 요구
6. 1858 : "미일수호통상조약" 체결 → 서구열강에게 문을 활짝 개방
항구개항ㆍ무역에 대한 일본의 불간섭ㆍ일본 내 미국영사재판권 인정 등 → 이 불평등 조약은 약 700년간 이어진 "막부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ㆍ불만의 목소리는 "일본 서남지역(사쓰마번ㆍ조슈번 등)"에서 두드러지고, "삿초도히(사쓰마ㆍ조슈ㆍ도사ㆍ히젠)"라 불린 이들은 무능한 "막부" 때문에 서구열강에게 짓밟히고 있다고 생각
→ 그 지역 하급무사들을 중심으로 "막부"에게 뺏긴 정권을 "덴노(일왕)"에게 돌려주고, 서양오랑캐를 배척하자는 "존왕양이(왕을 높이고, 오랑캐를 배척)"하자고 주장 → "도쿠가와 에도막부"와 "존왕양이 파 (왕정복고를 주장)"로 분할ㆍ하급무사들(존왕양이 파)은 막부에 대항할 세력이 되지못하고, 대규모 처형을 당함
7. 1858 : 안세이의 대옥 - 100여 명의 "존왕양이 파"를 대량 숙청한 사건
"막부"가 혁명세력에게 위세를 떨친 사건
8. 1863 : "사쓰에이 전쟁ㆍ시모노세키 전쟁"으로 인해, 서구열강의 힘을 절실히 느낀 "존왕양이 파(사쓰마번ㆍ조슈번 등)"은 "양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깨닫고, "개국"으로 노선을 선회
"조슈번의 존왕론"을 펼치던 하급 무사중에는 "이토 히로부미"도 있었음. "개국"으로 노선을 변경한 개혁세력은 내부적으로 개혁방법에 대해, 온건ㆍ급진으로 분할되고,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전쟁을 벌이고 있었음. 이때 등장한 인물이 "사카모토 료마(도사번 출신)"
※ 사카모토 료마 (坂本 龍馬ㆍ1836~1867ㆍ향년 31세): 일본의 무사 (도사 번 (현, 고치현 고치) 고시(鄕士)계급)ㆍ사업가ㆍ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위인
9. 1866 : "사카모토 료마(도사번 출신)"의 제안으로, "사쓰마ㆍ조슈"는 동맹 결성(삿초동맹)이 비밀리에 결성
이런 밀약을 모르던 "막부"는 "조슈번"을 자신 있게 공격했으나 패배 → 일개 "번"이었던 "조슈"에게 패했다는 것은 "막부"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음 → 결국 "도쿠가와 요시노부(막부의 마지막 쇼군)"가 "메이지 덴노(천황)"에게 정권을 이양하는 "왕정복고"가 이뤄짐
10. 1867 : 대정봉환 - 막부의 "쇼군"이 왕인 "덴노"에게 통치권을 돌려준 사건
11. 1868 : 보신전쟁 - 막부는 마지막까지 "보신전쟁"으로 새로운 정권에 대항했으나, 신무기로 무장한 "삿초"의 적수가 되지못하고, 완전한 항복 선언
12. 1868 : "메이지 덴노"를 중심으로 근대적인 일본이 시작
9월 "에도(1603~1868 막부의 중심지)"의 명칭을 "도쿄"로 바꾸고, 새로운 수도로 정함 → 젊고 진보적인 "삿초 출신" 무사들이 주축이 된 "메이지" 정부 (유신 3걸 : 기도 다카요시ㆍ오쿠보 도시미치ㆍ사이고 다카모리)
"폐번치현(번을 없애고, 현을 설치)"을 공포 → 전국의 다이묘를 없애고, 중앙정부에서 공무원을 파견 → 새로운 정부를 일으키고, 서양과 같은 선진국을 희망ㆍ100여 명의 핵심요원을 선발하여, 미국ㆍ유럽에 파견
13. 1871~ 1873 : 이와쿠라 사절단 (사절단 : 이토 히로부미ㆍ오쿠보 도시미치ㆍ이와쿠라 토모미)
전면 개방의 불가피성을 절감하는 계기 → 정부의 엄청난 재정투입 속에 사절단은 "미국"을 시작으로 유럽 주요국 순방 (오쿠보 도시미치 : 미친 듯이 배워 일본도 그 수준에 도달하겠다고 다짐) → 사절단은 미국ㆍ유럽 등 12개국을 순방ㆍ사찰기록 : "미구회람실기(구메 구니다케 저)" 100여 권 → 서구열강 중, "독일"을 성장 모델로 삼음 → "비스마르크"의 정부주도식 공업발전에 동조하여,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한 "압축성장"을 시작 → "독일 프로이센 몰트케 참모총장(1800~1891)"의 영향으로, "메이지 육군"을 "독일식 군제"로 전환 → "이타가기 다이스케" 중심으로,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을 만들고, 의회를 개설할 것을 주장
14. 1889 : "메이지 덴노"는 "이토 히로부미" 등이 "독일 헌법"을 모방한 헌법 초안을 "메이지 헌법"으로 제정하고, 1890년 "의회"를 개최 → 1889 : 메이지 헌법 (대 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은 큰 성장 → 군사 조직을 서구식으로 완전히 개편하고, 군사력을 증강한 일본은 자신들의 힘을 "동아시아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략"에 이용하게 된다 → 1894년, "청일전쟁"으로 "대만"을 병합 : 1895~1945ㆍ일본의 주도하에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요동 반도(랴오둥 반도)ㆍ만주ㆍ타이완 섬(대만)ㆍ펑후 제도(팽호열도ㆍ타이완 해협 상의 군도, 약 90개)"를 일본에 할양 → 1905년, "러일전쟁"으로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
15. 서양에게 배운 1가지 : 제국주의적 대외확장
"미구회람실기" 중 "비스마르크"와의 대화 : 세계 각국은 모두 친목, 예의로 서로 사귄다고 하지만, 그것은 겉치레로, 내면은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고,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깔보는 것이 실정이다. 대국은 이익을 다툴 경우, 불리해지면 군사력을 동원한다. → "비스마르크"의 가르침은 사절단의 뇌리를 강타했다. 국제 관계의 본질은 만국의 공법보다는 힘이라는 독일통일제국의 수상ㆍ이것은 근대적 개혁을 낳은 "메이지 유신"을 이끌고, "제국주의적 침탈의 길"로 나아가는 바탕이 됨. → 전 국민이 황국신민으로 일체화되고, 비판은 철저히 탄압되었고, 배타적 민족주의를 강요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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