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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 마키아벨리 ② 요약 : 군주론 (君主論ㆍIl Principe)

by 당대 제일 2023.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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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君主論ㆍ이탈리아어: Il Principe)"은 이탈리아의 외교관이자 정치철학자인 "니콜로 마키아벨리 (Niccolò Machiavelliㆍ1469~1527ㆍ57세)"가 저술한 16C의 정치학 저술로 "좋은 군주"란, "자력ㆍ판단력ㆍ포르투나 앞에선 겸손한 군주"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비도덕적 수단의 사용을 정당화 시킬 수 있는 군주의 목적에 대한 수용"이 "군주론의 목적"이라고 흔히 알려져 왔다.

 

1. 군주론 (Il Principeㆍ1512~1513 저서)

"메디치 군주정 (로렌초 2세)"에게 헌정한 책이지만, 로렌초 2세는 읽지도 않고 죽었고, 딸(카트린 드 메디치)가 "프랑스 왕가"와 결혼ㆍ왕비ㆍ군주론을 정독함→"노스트라다무스"가 "그대의 아들 3명이 왕이 될 것이다"고 예언→ 아들 3명이 차례로 왕이 되고, 섭정을 함.

메디치 가문 : 15~16C "피렌체"를 주름잡던 부자가문ㆍ유력인 다수 배출ㆍ예술가 후원

금융업 (최고 145조원)ㆍ교황청과 정경유착 (국고은행)ㆍ예술을 사랑한 만석꾼 (미켈란젤로/보티첼리/도나텔로/레오나르도다빈치/갈릴레오 갈릴레이 지원)→ 최후 상속자인 "안나 메디치"가 재산ㆍ예술품을 피렌체 시(토스카나 정부)에 기증→ 당부 : 1점이라도 피렌체에서 옮기지 말 것ㆍ모든 민중의 유익을 위해 쓰일 것

 "군주론"에서 1번째 모델은 "체사레 보르자"를 1류 정치가의 전형으로 삼았다.

"로마냐(이탈리아 중부지방)"을 통치하기 원했던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체사레 보르자(장남)"을 "교황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였고, "군주론"의 모델이 "체사레 보르자"이다.  "체사레 보르자"의 군주론은 위험한 사람의 "성공전략"이다.

 2번째 모델은 제216대 교황 "율리오 2세 (Pope Julius II재위 1503~1513전임 비오 3세)

스스로를 제2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줄리어스 시저BC 100~44) 장군"이라 생각했다.  본인 스스로가 교황 복을 벗고, "교황군 총사령관"으로 군복을 입고, 이탈리아를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예측불허의 "포르투나 (Fortuna행운의 여신)"- 운명의 힘은 강력하지만, 그 운명은 어디로 갈지 모른다. 결단성이 우수했으며, "브라만테ㆍ미켈란젤로ㆍ라파엘로"와는 절친한 사이면서, 그들의 후원자였다.  "기독교 역사가"들에 의해 "무서운 교황ㆍ전사 교황"이라는 별명이 있으며, 재위기간 동안 활발한 대외 정책과 "성 베드로 대성전 신축" 등 야심적인 대규모 건축 공사를 추진하였으며,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를 그릴 것을 지시하는 등 예술에 대한 애호가로도 유명하다.

마키아벨리의 서한으로 보건데, "De Principatibus(군주국에 관하여)"라는 라틴어 제목의 한 소책자가 1513년에 이미 널리 읽히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인쇄본은 "마키아벨리"가 죽고 5년 뒤인 1532년까지 출간되지 못했다. "메디치 가"의 "교황 클레멘스 7세"의 허락으로 출간될 수 있었는데, 그 훨씬 이전에 사실상 "필사본 군주론"의 첫 등장 이래로, 그의 저서에 관해 많은 논란이 일었다. 비록 "군주의 거울(mirrors for princes)" 형식의 고전적 저술처럼 쓰였지만, 이전과는 사뭇 다른 형식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단테"의 "신곡"과 더불어 다른 르네상스 작품들의 출판 이래로, 점차 통용되는 추세였던 라틴어보다는 부분적이나마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로 씌어졌기 때문이다.

"군주론"은 때로 근대 철학, 특히 어떠한 관념적 이상보다도 실질적인 진리를 이끌어 내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근대 정치 철학"에 관해서 "선구자 격의 저서"라고 일컬어진다. 또한 당대에 지배적이었던 "가톨릭"과 더불어 "스콜라 주의"와의 직접적인 갈등 속에서 "군주론"은 정치와 윤리를 바라보는 시각에 방점을 찍은 것이었다. 비교적 짧은 내용임에도 "군주론"은 "마키아벨리"의 저술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데, 비아냥 거리는 의미의 "마키아벨리즘"이란 단어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또한 "악마"라는 의미의 영어 표현인 "Old Nick"의 유래와 관련이 있고, 심지어 현대 서구에서 "정치"와 "정치가"라는 단어에 함축된 "부정적인 의미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군주론"의 주제에 있어서 훨씬 길고 몇 년 후에 쓰인 "로마사 논고"와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 "정치를 위해 범행을 자행하는 인간의 사례"로서 당대에 근접한 시대의 이탈리아인을 차용한 "군주론"과 비교되는 마키아벨리의 다른 저술로서, "카스루치오 카스트라카니 다 루카의 생애"가 있다.

2. 요 약

군주론은 대부분이 저자에 의해 명시되었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는 이해하기 쉬운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군주론 제16장  

대업을 이루려는 리더에게 필요한 2가지 덕목이 있다.   냉혹할 정도로 인색해 져라    권력은 나누지 마라.

군주론 제9장  

군주는 단 한번만의 잔혹함을 보여주고, 은혜를 베풀어, 민심을 잡아야 한다.  대중은 자기에게 해를 끼칠 것으로 생각했던 자에게 은혜를 입게 되면, 보통 때보다 몇 배나 더 큰 고마움을 느끼는 법이다.

 신생 군주국 (1~2장)

"군주론"은 앞으로 다루어질 주제를 서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첫 문장에서 마키아벨리는 "공화적이건, 전제적이건 모든 형태의 최고 정치권력 조직체"를 중립적으로 포괄하기 위하여 "국가(state)"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어떻게 "국가"라는 단어가 "르네상스 시대"에 이러한 근대적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는 마키아벨리의 저서 중 특별히 중요하게 여겨졌던 비슷한 문장과 함께 많은 학문적 논의의 주제가 되어 왔다. 그는 "공화국"에 대해 다른 곳에서 저술하였다고 언급하면서, "군주론"은 "군주국"에 대한 글이 될 것이라고 하였지만, 사실 그는 실질적으로 "공화국" 또한 많은 힘을 가졌으며 "군주국"의 한 유형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더 중요한 건, 덜 세태적으로 그는 "세습 군주국"으로부터 "신생 군주국"을 구별하고 있다. 그는 2장에서 "세습 군주제"는 "통치하기 용이하다"고 말하며, 짤막하게 "세습 군주제"를 다루고 있다. "세습 군주에게 있어서 군주가 상식 밖의 사악한 비행으로 미움을 사지 않는 한, 신민들이 그를 따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Gilbert (1938)는 1장과 2장의 독특함은 "군주를 위한 조언의 전례"와 대조적으로 "관습에 저항함으로써 권력을 취득해야 하는 통치자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한 계획적인 의도"라고 서술하였다. 그는 "마키아벨리"가 그의 경험과 더불어 "타키투스"의 영향을 받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뚜렷한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러한 정권 형태의 범주화는 "반 아리스토텔레스 주의"라고 불릴 뿐만 아니라, 예를 들자면 "1인 군주", "과두제 집권층", 혹은 "민주정"에서 사람들에 의해 통치되느냐에 따라 정권을 구분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 발견되는 "전통적인 범주화"에 비하면 분명히 간단하다.

"마키아벨리"는 예를 들어 "군주국"과 "독재국가" 간의 구분과 같은 바람직한 형태와 비도덕적 형태 간의 고전적 구분 또한 다루지 않았다. 반면에 "크세노폰"은 그의 저서 "키루스의 교육" 도입부에서 통치자의 형태에 따른 정확히 일치하는 구분을 사용하는데, 거기서 그는 인간을 통치하는 방법의 지식에 대해 거론하면서 그의 표본이 되는 군주, "키루스 2세는 자신의 권좌를 아버지에게서 물려받거나 자신의 노력에 의해 왕관을 손에 넣은 다른 모든 왕들과는 매우 다르다"고 하였다. 마키아벨리는 "신생 군주국"이라는 주제를 "복합 군주국"과 전적으로 새롭게 생긴 "군주국"의 두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복합 군주국 (3~ 5장)

"신생 군주국"은 전적으로 새롭게 생겼건, 종래에 있던 군주국에 수족처럼 병합되었다는 의미의 "복합 군주국"이건 간에 양쪽 모두를 의미한다. 

종래의 군주국에 병합된 새로운 점령지 (3장)

"마키아벨리"는 새로 점령한 지역의 유지를 위한 각각의 용기 있는 로마의 방식(사례로서 그리스의 경우를 인용하였다)을 신생 군주가 어떻게 처신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전례로서 보편화 시켰다.       • 새로운 정복지에 정주하는 것, 혹은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       점령한 지역의 약소 세력이 그들의 영향력을 증대시키지 않는 범주 내에서 마음껏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       강력한 세력을 진압하는 것       외세가 영향력을 얻지 못하도록 하는 것

전체적으로 봤을 때, "마키아벨리"는 "신생 군주"가 현재의 분규뿐만이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분규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시간은 이익은 물론 해악을 가져오기 때문에, 신생 군주는 "시간의 이익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역량과 현명함에서 비롯되는 이익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복된 왕국 (4장)

• 정복된 왕국의 군주가 그의 제후들에 의존하는 통치 유형이 있다.  이러한 국가는 정복하기는 쉬우나, 유지하기는 어렵다.  16세기 프랑스, 다시 말해 "군주론"이 씌어졌던 시기의 프랑스 왕국이 바로 그 예이다.

• 왕이 중심이 되는 국가일 경우에는, 정복하기는 어려우나 유지하기는 쉽다. 그 유지의 해법은 군주의 가문을 단절시켜 버리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그 사례로 "알렉산드로스"에게 정복한 "다리우스 3세"의 "페르시아 제국"을 들고 있는데, 그는 이러한 요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당대의 "투르크 왕국(오스만 제국)"과 닮은 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자신들의 법에 따르는 자유로운 국가를 다스리는 법 (5장)

Gilbert (1938)는 이 장이 "군주론" 이전의 저술에서는 볼 수 없는 상당히 이례적인 장이라 언급하고 있다. Gilbert는 "자유로운 공화국을 정복하는 논의의 필요성"이 일부의 자유로운 공화국을 포함하여 "이탈리아를 통일하려는 마키아벨리의 목표"와 관련되어 있다고 추측하였다. 또한 그가 언급하기를, 어쨌든 이 장은 그러한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 군주에게 있어서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고 하였다. 마키아벨리는 3가지 방법을 제시하였다.

• 로마인들이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것과 같이, 그 나라를 파괴하라        • 그 나라에 가서 직접 살아라        그들 자신의 법대로 살게 내버려두되, "괴뢰 정권"을 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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