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 갈릴레이 (Galileo Galileiㆍ1564~1642ㆍ78세)"는 이탈리아의 철학자ㆍ물리학자ㆍ천문학자ㆍ과학 실험과 지동설 주장 등으로 "과학의 아버지ㆍ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과학자"로 평가받는다. 노년에 시력이 상실되기 직전까지, 천문 관측을 했으며, 끝까지 연구를 계속하였던 과학자로, 수학에 매료되었으며, 우주에 눈이 먼 과학자였다.
1. 갈릴레오 갈릴레이 (Galileo Galileiㆍ1564~1642ㆍ향년 78세.)
근대 관측 천문학/ 물리학/ 과학의 아버지ㆍ과학의 아버지 : 지동설을 확립ㆍ운동의 법칙을 만든다.(근대과학의 방법론을 처음 제시)ㆍ일생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론"과의 투쟁ㆍ"요하네스 케플러"와 동시대인
"코페르니쿠스(1473~1543)"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라는 한 마디 말을 남기고 죽은 후,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통해, 그 말이 사실임을 입증했다.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에 의해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통한 실측으로 그 근거를 제시했다면, "케플러"는 "철저한 수학적 계산"에 의해 "지동설"을 증명해냈다. (그레고리력을 만든 그레고리우스 13세 교황시절(10일 조정))
• 업 적 : 고전 역학/ 망원경/ 태양 중심설ㆍ망원경을 개량하여 관찰한 것 : 제작 후에 천체 관찰→ 달의 표면은 매끄럽지 않았다. 목성 주위를 도는 위성 발견ㆍ운동 법칙을 확립한 것ㆍ"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옹호하여, 태양계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 태양임을 믿었다. (당시에는 지구가 중심이라는 것이 진리였다)
• 출 생 : 피렌체 공국 토스카나 지방의 피사 • 사 망 : 토스카나 대공국 아르체르티 • 분 야 : 수학ㆍ물리학ㆍ광학ㆍ천문학 • 학 력 : 피사 대학교 • 소 속 : 피사 대학교ㆍ파도바 대학교 • 종 교 : 로마 가톨릭 • 처 : 없음 (미혼) • 자 녀 : 아들 1명ㆍ딸 2명 (수녀가 됨) • 저 서 : 황금 계량자 • 명 언 : 철학은 우주라는 위대한 책에 쓰여 있다. 우주는 항상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 그러나 이것을 이해하려면, 우주의 언어를 먼저 배워야 한다. 자연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여 있다.
"천동설"을 흔드는 결과물인 저서 "별의 전령 (망원경으로 발견한 것들을 담은 것)" 출판 → 대히트 → 교회의 위협적인 존재 → 종교ㆍ학계 통틀어, 당시의 주류는 "아리스토텔레스" 학파 → 학파를 완전 격파 → 적이 많이 생기고, 교황청에 고발 → 1번째 조사 (혐의 없음) → "독일 30년 전쟁" 중이었는데, 분위기 파악 못하고, 1632년 "대화" 출판 (지구의 자전/공전을 더 명확히 다룬 것ㆍ3명이 우주체계에 관해 대화하는 형식 ㆍ출판이 불가하여, 네델란드(자유로운 사상의 중심지)로 보내서 출판 → 교황청 소환 → 재판 (유죄) → 배경ㆍ지지에 의해 사형을 면함 → 가택 연금 10년 후, 사망 → "새로운 두 과학(물체의 운동에 관한 내용을 총 정리한 것ㆍ연금 상태에서 쓴 책)" 출판 →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갈릴레이 재판"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하고, 사죄하였다.
※ 교황청 소환 → 재판 결과 : 종신 가택 연금에 처한다ㆍ3년 동안 매주 1번, "7대 고해 성시"를 하라ㆍ사후 장례식을 하거나, 묘비명을 세울 수 없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피사"에서 태어났으며, 7남매 중 장남이었다. 아버지 "빈센초 갈릴레이"는 유명한 "류트 연주가"로, 음악 이론에 관해 중요한 연구를 일부 남겼다. "과학 혁명의 주도자"로 "요하네스 케플러"와 동시대 인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반박했고, "교황청"을 비롯한 종교계와 대립했다. 그의 연구 성과에 대하여, 많은 반대가 있었기 때문에, 자진하여 "로마 교황청"을 방문, 변명했으나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지동설의 포기"를 명령받았다. 그러나 "황금 계량자"를 저술하여, "지동설"을 고집하였으며, "천문학 대화"를 검열을 받고 출판했으나 문제가 생겨, "로마"에 감금되었다가 석방되었다. "갈릴레오"는 결국 그의 "지동설"을 철회하도록 강요받았고, 그의 마지막 생애를 "로마 교황청"의 명령에 따라, 가택에서 구류되어 보냈다.
그의 최대 공적은 과학적 연구 방법으로써, 보편적 "수학적 법칙"과 "경험적 사실의 수량적 분석을 확립한 점에 있다"고 평가된다. 그는 "실험적인 검증에 의한 물리"를 추구했기 때문에, 근대적인 의미의 "물리학의 시작"을 대개 "갈릴레오의 것"으로 본다. 또한, 진리의 추구를 위해, "종교"와 맞선 "과학자의 상징적인 존재"로 대중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종교계"와의 대립과는 상관없이 "독실한 로마 가톨릭 신자였"으며, 그런 대립도 자신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물리학 입문 과정"에서 배우는 "등 가속 물체의 운동"은 운동학으로서 "갈릴레오"에 의해 연구되었다. 그의 "관측적 천문학"의 업적은 "금성의 위상"과, 그를 기리기 위해 "갈릴레이 위성"이라 불리는 "목성"의 가장 큰 "4개 위성의 발견"ㆍ"태양 흑점의 관측과 분석"이라 할 수 있다. 갈릴레오는 또한 "나침반 디자인의 개량" 등 과학과 기술에 기여하였다.
2. 지구 중심설 (여호수아 10장 13절ㆍ승리자와 큰 믿음)
①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 천상계는 "에테르"로 된 완전한 세계ㆍ천체는 완벽한 구형ㆍ궤도는 완벽한 원을 그린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마르틴 루터"는 "코페르니쿠스"를 "벼락출세한 점쟁이"라고 폄하했는데, 그 근거 역시 "여호수아 10장 13절"이었다 → "태양이 멈췄다"는 이야기는 "움직이고 있었다."는 뜻이구나 → 따라서, "태양이 정지해 있고, 지구가 움직인다."는 의견은 "이단"임. 또한 당시, 지배적인 이론은 "천동설"로, "우주의 중심은 지구"라고 했다.
3. 관련 인물
① 요하네스 케플러 (Johannes Keplerㆍ1571~1630ㆍ향년 59세)
저작 : 신 천문학ㆍ세계의 조화ㆍ코페르니쿠스 천문학 개요 : 저작들은 "아이작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확립하는 데 기초를 제공하였다.
독일의 수학자ㆍ천문학자ㆍ점성술사ㆍ17C 천문학 혁명의 핵심 인물ㆍ자신의 이름이 붙은 "행성운동 법칙"으로 유명ㆍ오스트리아 그라츠 신학교의 수학 선생ㆍ천문학자 튀코 브라헤의 조수ㆍ3명 황제(루돌프 2세/마티아스/페르디난트 2세)를 모신 신성로마제국의 제국 수학자ㆍ오스트리아 린츠의 수학 선생ㆍ발렌슈타인 장군의 점성술사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라는 한 마디 말을 남기고 죽은 후,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통해, 그 말이 사실임을 입증했다.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에 의해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통한 실측으로 그 근거를 제시했다면, "케플러"는 "철저한 수학적 계산"에 의해 "지동설"을 증명해냈다. 광학연구 분야의 초석을 닦았으며, "굴절 망원경"을 개조하여, 성능을 향상시켰으며(케플러식 망원경), 동시대의 인물인 "갈릴레오"의 망원경을 이용한 발견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데 공헌하였다.
"천문학"을 보편적 "수리물리학"의 한 갈래로 인식함으로써, 고대의 "물리학적 우주론"의 전통을 바꾸었고, 자신의 새로운 "천문학"을 이른바 "천체 물리학",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으로의 여행"ㆍ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에 관하여"의 보충"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천체의 모든 운동이 수학적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고 굳게 믿었으며, 이런 신념을 바탕으로 "천체의 운동"을 설명한 "케플러의 법칙"을 발표했다. 케플러의 법칙 (행성들의 회전에 대한 법칙) • 제1법칙 : 모든 행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형의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 • 제2법칙 : 각 행성은 궤도를 따라 움직이면서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빨리 회전한다 • 제3법칙 : 행성의 회전주기의 제곱은 태양으로부터의 평균 거리의 3제곱에 비례한다.
② 아이작 뉴턴 경 (Isaac Newtonㆍ1643~1727ㆍ향년 84세)
갈릴레이의 원리ㆍ모든 운동 법칙들을 "단 1줄의 수식"으로 정리한다. (F=ma)ㆍ우주의 수학을 완전히 정리한 사람
영국의 물리학자ㆍ수학자ㆍ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가운데 1명 ㆍ1687년 발간된 "Principia(프린키피아ㆍ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는 고전역학과 만유인력의 기본 바탕을 제시하며, 과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 중의 하나로 꼽힌다. 이 저서에서 뉴턴은 다음 3C 동안, 우주의 과학적 관점에서 절대적이었던 "만유인력ㆍ뉴턴의 3가지 운동 법칙"을 저술했다. 전통적인 "기독교 성직자"는 아니었지만, 신앙심 또한 깊었다. "삼위일체설"을 부정하였고, 유일신인 "창조주"를 믿었다. 오늘날까지 기억되도록 만든 "자연과학"보다도 "성서 해석ㆍ오컬트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케플러의 행성운동법칙"과 그의 "중력 이론" 사이의 지속성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그의 이론이 어떻게 지구와 천체 위의 물체들의 운동을 증명하는지 보여줌으로써, "태양중심설"에 대한 마지막 의문점들을 제거하고, 과학 혁명을 발달시켰다. 1번째 "실용적 반사 망원경"을 제작했고, "프리즘"이 흰 빛을 가시광선으로 분해시키는 "스펙트럼"을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빛에 대한 이론"도 발달시켰다. 또한, 그는 실험에 의거한 "뉴턴의 냉각 법칙"을 발명하고, "음속"에 대해서 연구했으며, "뉴턴 유체의 개념"을 고안하였다. "수학적"으로는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와 함께, "미적분학의 발달"에 대한 성과를 가지고 있다. 또한, 그는 일반화된 "이항정리"를 증명하고, 소위 "뉴턴의 방법"이라 불리는 "미분" 가능한 연속 함수 f인 f(x)= 0 를 푸는 방법을 발명하고, "거듭제곱 급수"의 연구에 기여했다. "뉴턴 운동 법칙(Newton's laws of motion)"은 "물체의 운동"을 다루는 3개의 물리 법칙이다. "뉴턴"이 도입한 이 법칙들은 "고전 역학"의 바탕을 이룬다. • 제1법칙 : 관성의 법칙 • 제2법칙 : 가속도의 법칙 • 제3법칙 :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 오컬트(Occultㆍ오컬티즘(Occultismㆍ라틴어 "오쿨투스(Occultus: 숨겨진 것ㆍ비밀)"에서 유래)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으로, 물리적 영역 이외의 다른 영역에 대한 탐구를 하는 "형이상학적인 과학"이라 할 수 있으며, "영성ㆍ영성주의"와 관련이 깊다.
4. 저 서
① 입문서
• 1586 : 작은 천칭 (The Little Balance) → 공기와 수중에서 물질들의 무게를 측정하기 위한 정확한 균형을 설명한 것
• 1606 : 기하학적 및 군사적 컴퍼스의 작동 → 기하학 및 군사 영역에서의 수행을 다룬 것
② 동역학부분
• 1590 : 운동에 관하여 (On Motion) → "아리스토텔레스ㆍ아르키메데스"의 유체역학에 근거했으며, 유동매질에서의 중력에 의한 낙하의 속도는 매질 위에 있는 물체의 특정한 무게에 비례하며, 진공상태에서도 물체의 특정질량에 비례하여 낙하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진공상태에서 힘이 스스로 분산될 수 있으며, 자유 낙하할 수 있다는 "히파르쿠스-필로포누스" 힘 역학은 초기 가속도 구간을 지나면, 특정 질량에 따른 본질적인 종단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에 찬성하였다.
• 1600 : 역학 (Mechanics)
③ 과학적 저서
• 1610 : 시데레우스 눈치우스 (별세계의 사자) → 망원경의 관찰을 기초로 한 것으로 발표될 예정이었던 1번째 과학적 저서였다. 그리고 갈릴레오의 "4대 위성의 발견"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하고 있다. 책을 출판하면서, 자기 관측 결과의 신빙성을 강화하기 위해, "케플러"의 의견을 구하였다. "케플러"는 "별의 메신저와의 대화"를 통해 매우 열심히 대답해 주었다. 그러나 그 뒤 "케플러"가 "갈릴레오"에게 더 나아간 지지를 제공하기 위해, 달에 대한 망원경 관측을 가지고 "목성의 위성에 대한 해설"을 출판했을 당시, "갈릴레오"는 왜인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케플러"는 실망하였다.
• 1613 : 흑점에 관한 편지들 (Letters on Sunspots) → "태양과 천체는 변할 수 있다"는 주장을 지지해주는, "태양의 흑점"에 대해 설명한 것. "천동설"을 완전히 반박하고, 17C의 "지동설"에 대한 전환을 증진시킨 그의 "금성 전체 형상"을 망원경으로 관측한 사실이 쓰여 있다.
• 1615 : 크리스티나 공작부인에게 보내는 편지 (Letter to Grand Duchess Christina) → "코페르니쿠스 주의"를 물리적인 사실이며, 성서와 일치한다고 옹호함으로써, "신학에 대한 침범"이라 하여 비난받았고, 조사를 받고 있던 "Letter to Castelli"의 개정판이었다.
• 1616 : Discourse on the Tides → 재판에 의해, 더 이상 "코페르니쿠스"의 지위를 옹호하거나 고수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진 후에, "코페르니쿠스적 지구에 입각한 조석현상"에 대한 논문
• 1619 : 혜성에 관한 논설 (Discourse on the Comets) → 제자 마리오 귀두치(Mario Guiducci)의 저서ㆍ이것은 "갈릴레오"의 강의를 정리한 것
• 1623 : 분석자 (The Assayer):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에 바탕을 둔 이론들을 공격하면서, 실험방법과 과학적 사고들의 수학적 체계를 발전시킨 것 → 이 책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심지어 가톨릭교회의 계층에게도 지지를 받았다.
• 1632 : 2가지 주요 세계관에 관한 대화 (Dialogue Concerning Two Chief World System) → 1616년 발간한 논문에 대한 조사가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에 우호적이었고, "태양계의 비(非) 지구 중심적 모델"로 말미암아, 갈릴레오는 재판을 받았고, 책은 출판이 금지되었다.
• 1638 : 새로운 두 과학에 관한 수학적 증명 (Discourses and Methmetical Demonstrations Relating to Two New Science) → 사법권의 범위 밖인 "네덜란드"에서 출판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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