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국가의 고대 이름인 "폴리스 (Polis)"는 행정중심지를 나타내는 "성채(Acropolis)"에서 그 이름이 나왔다. "폴리스"의 영토는 보통 너무 좁아서, 시민들"(Politai)"이 서로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유럽" 국경형성의 배경은 크게 3개 (프랑스ㆍ독일ㆍ이탈리아)의 나라이다.
1. 그리스
• 약 2,500~2,600년 전 처음으로 "도시"를 중심으로 나라를 만들고, "지중해 해안"지방에 그 영토를 늘려 커다란 세력으로 발달. "알렉산더 대왕 (마케도니아)" 때는 "페르시아"를 치고, "인도"서쪽까지 영토 확장
• "페르시아 인"의 수차례 공격을 막아내어, 유럽대륙의 왕자로 남게 됨. (페르시아 : "오리엔트"의 큰 세력으로, 유럽대륙을 손에 넣고자 수차례 침공)
2. 로마제국
• "라인강"서쪽의 모든 유럽대륙, "영국"까지 점령→ 유럽대륙에 "라틴문명" 전파. 서양은 "그리스ㆍ로마 문화"를 바탕으로 통일된 문화를 이루게 됨.
• "카이사르 (시저) 장군"이 "알프스"산맥을 넘어 야만족의 땅인 "갈리아(현, 프랑스)"에 와서 쓴 "갈리아 전기"를 보면, 상당히 발전된 문명을 갖고 있었음. "카이사르(시저)"는 힘으로 제압 하지 않고, 융화정책을 펼쳐, "갈리아" 사람들은 융화정책에 의해, 로마사람 말인 "라틴어"를 자랑스럽게 쓰고, 이름도 스스로 바꾸게 됨.
• 현재 "프랑스ㆍ스위스" 등의 문화인 "갈리아-로마문명"인 "갈로-로만"문명을 꽃피우게 됨.
• 태평성대가 계속되며, 군인들도 점차 "로마인"은 없고, "게르만 족"으로 채워지게 됨. 그러나, "라인강"의 동쪽 땅에는 습기 차고, 음산한 날씨의 "게르마니아 땅(독일 땅)"은 로마인이 들어가지 않아, 수백년 간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야만족"으로 생활함.
3. 게르만족 대이동 (4C ~ 6C)
375년경 "구 소련"의 남쪽, "볼가강"근처에 살던 "훈족(무섭고 사나운 야만족)"이 쳐들어오자, "로마제국" 영토 밖에 살던 "게르만족"들이 "훈족"을 피해 "로마제국"으로 들어오기 시작함. → "게르만족" 군인들인 방어하지 않고 받아주게 됨.
4. 서로마 (로마)ㆍ동로마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 제국
• 313년 "콘스탄티누스" 로마황제의 "밀나노 칙령"에 의해, 크리스트교 인정
• "게르만족 대이동" 이후, 내부적으로 "로마 시민"은 사치와 허영에 빠져있고, "크리스트 교"는 날로 늘어남.
• "로마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 현재의 이스탄불)"로 옮김.
•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동로마 제국"으로 갈라짐.
• "로마제국"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죽은 후, 큰아들인 "아르카디우스(395~408 재위)가 "동(東)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된 데 대하여, 둘째 아들인 "호노리우스"가 서방의 황제로서 "서(西)로마 제국"을 통치하기 시작. 그러나, "서로마 제국"은 국력이 약하여, 내외로 많은 어려움을 겪다가, 476년 "게르만"인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게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황제"가 폐위되자, "서로마 제국"은 멸망.
• "서로마 제국"이 멸망함으로써, 유럽을 "라틴족"이 지배하던 시대에서 "게르만족"이 지배하는 시대가 된 것으로,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로마제국" 북쪽 국경은 사라지고, 유럽은 몇 개의 "게르만족"의 왕국으로 갈라지게 됨.
5. 서로마 제국 (로마) 멸망이후, "클로비스 (프랑크 족)"의 등장
• "라인강" 근처에 살던 "프랑크"왕족 중, "메르빙거" 가문의 "클로비스 (465~511)"에 의해 통일 (현재 "프랑스ㆍ벨기에ㆍ스위스의 화폐단위 "프랑(Franc)"인 것도 "프랑크 족"에서 유래됨)
• "클로비스"가 죽고, 왕자들끼리 싸움 → 700년경, "오리엔트"에서 일어난 "이슬람교"를 믿는 "아라비아 인"들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을 정복하고,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크 왕국"을 쳐들어 옴 → 732년, "카롤루스 마르텔"이라는 재상이 "피레네 산맥" 남쪽으로 몰아내고, 유럽을 지킴 → 그 아들 "피핀"이 교황의 승인을 받아, "메르빙거"가문을 쫒아내고, "카롤루스"이름에서 비롯된 "카롤링거"왕조가 시작됨. → 왕의 권력과 "가톨릭"의 교회가 서로 손잡은 첫 사건으로, 가톨릭교회의 정치 간섭의 시작이며, 왕들과 권력 다툼을 시작하게 되는 첫 출발점이 됨.
6. 서로마 제국 (로마) 멸망이후, "동로마 제국"
• "동로마제국"은 여전히 번창하여, "동로마제국"의 황제는 "가톨릭교회"의 "교황"의 자리까지 차지→ 그래서, "황제"이며, "교황"임.
• "서로마"가 망했어도, "가톨릭교회"는 번창하여, "로마"는 여전히 "서유럽 가톨릭"의 중심지였음 →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의 "동로마 제국"의 황제이며, 교황이 "로마 서유럽 교황"을 사사건건 간섭을 함 → 잦은 참견으로 인해, 서로 간에 불만이 많이 쌓이게 됨.
• 726년, "동로마제국"의 교황이며, 황제가 "성상(예수그리스도, 성모 마리아등의 성스러운 조각)"을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림 → 이로써 충돌위기에 처한 "서로마 교황"을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된 "피핀"이 "동로마제국"으로부터 로마교황의 독립을 지켜주게 됨.
• 이를 계기로 크리스트교는 "서로마의 가톨릭", "동로마의 그리스 정교"로 영구히 갈라지게 됨. 또한, "피핀"이 "이탈리아"일부를 떼어, "서로마 교황"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이것이 "교황령"의 시초가 됨.
7. 800~ 900년경, "프랑스ㆍ이탈리아ㆍ독일"의 역사가 시작된다.
• "피핀"의 아들인 "카를(Karl)대제", 즉 "샤를마뉴"는 유럽 대륙의 크고 작은 나라를 몽땅 "프랑크 왕국"으로 합치고, "스페인 땅"의 "이슬람 족"을 "피레네 산맥"너머로 완전히 몰아냄으로써, 서방기독교 세계를 통틀어 커다란 제국을 이룩한 왕이 됨.
• 이에 "서로마교황"은 "서로마제국"을 다시 부흥시켜, "동로마"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800년12.24일에 로마의 교황 "레오3세"가 "샤를마뉴"에게 "황제"의 관을 바침. 이로써, "프랑크 왕국"은 "게르만 민족"만의 왕국이 아닌, "라틴ㆍ게르만족"을 통틀어 가장 힘센 제국이 됨 → 그러나, "샤를마뉴"가 죽고, 아들끼리 싸움이 일어나, "로마제국"은 다시 3등분이 됨 → 870년 "메르센'조약으로 "서 프랑크, 프랑크, 동 프랑크"로 나뉘어, 현재의 "프랑스ㆍ이탈리아ㆍ독일"의 바탕이 됨 → 이때부터, 비로소 "프랑스 역사ㆍ이탈리아 역사ㆍ독일 역사"가 시작이 됨.
8. 프랑스 민족
• "프랑크 왕국"이 갈라져 힘이 약해지자, "북쪽 오랑캐"와 "스페인 땅의 이슬람교도"들이 왕국을 넘보게 됨.
• 현재 "노르웨이ㆍ스웨덴ㆍ덴마크" 지방에 살던 "바이킹 족"의 일파인 "노르만 족"(북쪽사람이란 뜻)은 "영국"과 "프랑스 센 강" 남쪽 땅에 자리 잡아, "노르만 족"이 사는 땅이라 하여, 현재도 "노르망디"라 불림.
• 현재의 프랑스 민족은 원주민인 "켈트족인 갈리아 인","로마군대와 함께 온 라틴민족", 커다란 왕국을 일으켰던 "게르만 민족의 하나인 프랑크 족", "바이킹 족의 하나인 노르만 족" 등 4개 민족이 얽히고 설킨, 그러나, "라틴문화로 하나로 통일된 나라"라 할 수 있음.
9. 신성 로마제국
• 870년 "메르센 조약"으로 "서 프랑크ㆍ프랑크ㆍ동 프랑크"로 나누어 졌다.
• 900년대에 "동 프랑크(독일)"에서 "오토1세(912~973)"가 나타나, 국경을 침범하는 오랑캐와 교황의 땅을 훔치려는 외적을 물리쳐, 962년에 "로마교황"은 또다시 "오토1세"를 황제로 받들게 됨, 이리하여, "오토1세"의 "동 프랑크(독일)"은 "신성 로마제국"이 되었고, 이로써 진짜 독일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이때부터 "신성 로마제국", 즉, 오늘의 "독일 왕"이 "로마의 황제"를 겸하게 됨.
• 그러나, "신성 로마제국"은 곧 300개의 크고 작은 나라로 나뉘어져 서로 다투기만 하다가, 결국은 힘센 "오스트리아 왕"이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후로 "오스트리아 왕"은 "왕"이 아닌 "황제"로 불리게 됨.
• 1806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에게 최종 멸망하기까지, "신성 로마제국"은 이름뿐이나마, 900년 가까이 지속하게 됨.
10. 아메리카 대륙 발견
① 이사벨라 여왕 (이사벨 1세ㆍ카스티아의 공주ㆍ1474~ 1504)
• 1492.01.02 스페인 통일한 여왕 (스페인의 세종대왕)
• 스페인이 "아라곤 + 카스티아 (크리스트교)+ 그라나다 (무슬림)"로 분열되어 있던 시기
• 결혼 : 이사벨라 (카스티아) + 페르난도 (아라곤) = 동맹국으로 출발 → 그라나다(무슬림) 공격→ 항복 할테니, 알람브라 궁전을 지켜주라→ 스페인 탄생 (음악 :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② 이사벨라 여왕의 "콜럼버스 (괴짜 모험가)" 선택
• 1492.08.03 : 콜럼버스(이탈리아인ㆍ괴짜 모험가ㆍ선원) 선택ㆍ인도로 가는 안전한 길을 찾고자, 동쪽이 아닌 서쪽 방향 선택
• 산타페 협약 : 이사벨라의 투자 : 사비 출연→ 3척 배(산타마리아호ㆍ핀타호ㆍ니냐호) / 혜택 : 인도의 제독으로 임명 + 대대손손 가져오는 후추와 금의 10% 지분
• 콜럼버스의 롤 모델 : 몽골의 "칸"을 만난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마르코 폴로가 27년 동안 체험한 여행기)
③ 콜럼버스 항해 (4차례 항해)
• 배(산타마리아호ㆍ핀타호ㆍ니냐호) 크기 : 테니스 코트 정도, 선원수 : 100명
• 1492.10.12 새벽2시경 신대륙 발견 (2달 9일 소요) - 멕시코와 쿠바 사이의 섬 : 인도 땅인 줄 앎→ 서인도제도
• 이사벨라 기 + 십자가를 땅에 꽂고, 스페인의 땅을 천명ㆍ토착민을 만남 : 인도 + 사람 = 인디안
• 스페인으로 귀국 : 중앙아메리카 지역의 원주민(쿠바 인)데리고, 귀국 / 후추가 없어서, 주변 사금을 선물로 가져감ㆍ담배(쿠바산 시가), 해먹 전파
• 4차례 항해에도 금ㆍ후추가 없어 담배만 가져감→ 콜럼버스를 의심하기 시작 → 원주민을 노예로 바치기 시작 → 지원자 이사벨라 여왕 사망 → 금ㆍ후추가 없자, 스페인 정부가 배신 → 콜럼버스는 노후에 쓸쓸이 비참하게 굶고, 병들어서 생을 마감
④ 아메리카의 어원
• "아메리고 베스푸치 (이탈리아 항해사)"가 인도가 아닌 신대륙임을 확인하여, 자신의 이름에서 따옴
⑤ 콜럼버스가 최초 발견자인가?
• 발견 : 500년 전, "바이킹 (스칸디나비아 노르만족)"이 미 대륙을 먼저 발견
• 11C "에릭손 (바이킹 지도자)"이 "빈란드(현, 캐나다 뉴펀들랜드 섬) "발견
⑥ 토르데시야스 조약
• 교황이 아메리카 영토를 나눠주는 것 • 1494년 :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영토분쟁을 로마 교황이 중재하고자 맺은 조약
⑦ 남아메리카로 이주
• 16C 포르투갈ㆍ스페인→ 남아메리카로 이주→ 약탈 위주→ 브라질(포르투갈 어)
• 17C 프랑스ㆍ영국 → 남아메리카로 이주→ 진출 위주 (프랑스 (십자가를 먼저 꽂는다)ㆍ영국(울타리를 먼저 친다))
영국은 가톨릭과 청교도 (프로테스탄트) 대립→ 청교도 인이 신대륙으로 대거 이주 → 인디언의 대학살 시대
• "신교"가 퍼진 북유럽에서도 가장 엄격했던 것이 "영국의 청교도"라서, 반대파에게 쫓겨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신대륙에 상륙했고, 이들이 만든 "미국"이란 나라는 "신교", 즉 "프로테스탄트"의 나라이다. 이런 "미국식 신교"가 8ㆍ15 해방과 더불어 "한국"에 들어와 "샤머니즘"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한국 기독교"가 만들어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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