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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고대 • 불가사의 (7대) • 로마 • 신화

시저 (Caesar) ③ 달력 : 그레고리력 (1582~)ㆍ율리우스력 (BC 46~)

by 당대 제일 2023.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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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력 (Gregorian Calendarㆍ1582~)"은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양력 (陽曆)"으로,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1년은 365일 또는 366일이다. 현재(1900~2099년), "그레고리력"과 "율리우스력"의 차이는 13일이다. ("그레고리력" 01.14일은 "율리우스력"으로 01.01일이다)

 

1. 양력의 기준 : 그레고리력 (Gregorian Calendar): 1582.10.04 ~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양력 (陽曆)"으로,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1년은 365일 또는 366일이다. 현재(1900~2099년), "그레고리력"과 "율리우스력"의 차이는 13일이다. ("그레고리력" 01.14일은 "율리우스력"으로 01.01일이다)

"그레고리력"에 따르면, 1년은 365.2425일이 되어, 천문학의 회귀년보다 0.0003일(26초)이 길고,  3,300년마다, "1일의 편차"가 난다. 1582.10.04일,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율리우스력"을 개정하여, "율리우스력"의 400년에서 3번의 "윤년을 제외시키는 방법"으로 이를 해결했다. BC 46,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만든 "율리우스력"의 단점을 보완한 "역법"이다. "율리우스 력"은 4년마다 02.29일을 추가하는 "윤년 계산방법"을 두었는데, 이 경우에 한 해의 길이는 365.25일로서, 천문학의 회귀년 365.2422일보다, 0.0078일(11분14초)가 길어서, 128년에 1일의 편차가 났다.

 채택 동기 : "부활절 계산"의 기준점이 된 "춘분"

"그레고리력"의 채택 동기는 "부활절"을 언제 지켜야 할지에 대한, "로마 가톨릭교회" 내의 의견 차이로부터 시작되었다. 4C 초, "소아시아(현, 터키)"에 위치한 도시 "에페소스"의 주교인 "폴리크라테스"는 "부활절의 날짜"를 "로마"에서 공식적으로 정한 날짜와 달리 정함으로써, 의견 충돌을 빚었다. "폴리크라테스" 역시 "부활절의 날짜"를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부활에 대한 요한복음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요한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가 부활한 날"은 "니산 14일(춘분 즈음 시작하는 달의 보름 : 유월절)" 이후, "첫 안식일의 다음날"이었는데, "부활절"을 "히브리력(태음력)의 유월절"에 따라 정해야 한다는 교단과 이에 반대하는 교단 간의 대립이 생겼다. 325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소집된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부활절"을 모든 기독교인들의 기념일로 통일하기 위해, "춘분 이후, 첫 보름 다음"의 "일요일"로 정하였고, "춘분"을 그 해 "율리우스력"에 따라, 03.21일로 확정하였다.

②.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의 역법 개정(1582년)

그러나 "율리우스력"은 실질적인 장점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 햇수와 날의 계산에서 작은 편차가 있었다. 즉, "율리우스력"의 한 해의 길이는 정확히 365일 6시간이며, 이는 천문학적으로 계산한 1년의 길이보다  11분 14초가 길다. 이 편차가 "제1차 니케아 공의회"로부터, 16C까지 1,250년이 누적되자, "춘분일"이 325년 당시보다 10일이 빨라진, 03.11일 즈음이 되어, "달력"에 큰 오차가 생겼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 "교황"에게 "역법 개정"에 대한 권한이 부여되고, 이 오차를 줄이기 위하여, 1582.10.04일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율리우스력"을 개정하였다. 개정한 달력은 그의 이름을 따서 "그레고리력"으로 부르게 되었다.

 개정 내용 : "윤년" 계산방법

 1582.10.04일 다음날을 1582.10.15일로 한다. (위에서 설명한 10일의 편차를 제거함)              2,100년마다 윤일을 공제시키며, 이는 오직 해당 해가 400으로 나눠서 떨어지지 않을 경우에 한한다.  (율리우스력보다 편차가 적게 나는 윤년의 계산 방법을 도입함)  "그레고리력"은 1년을 365.2425일로 보아, "율리우스력"의 400년에서 3일을 빼야 했고, 이를 위해 400년에서 3번의 "윤년"을 제외시키는 방법을 썼다. 즉, "율리우스력의 윤년" 중에서 100으로 나눠서 떨어지는 해는 "윤년"에서 제외하되, 그 중 400으로 나눠서 떨어지는 해는 윤년으로 두었다. (ex : 1700년ㆍ1800년ㆍ1900년은 "윤년"에 해당되지 않지만, 1600년ㆍ2000년은 "윤년"이다)

 나중에 개정한 나라들

현재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그레고리력"이 통용되고 있지만, 가톨릭 국가들이 "그레고리력" 제정 후 1년 만에 대부분 이 "역법"을 시행한 것에 비해, 종교적 이유 때문에 "개신교 국가들은 18C 초"까지, "정교회 국가들은 20C 초"까지도 기존의 "율리우스력"을 고수해왔다. "영국"은 1752.09.02일 다음날을 09.14일로, "러시아"는 "러시아 혁명" 직후, 1918.01.31일 다음날을 02.14일로 "그레고리력"을 채택하였다.

이렇게 나라마다 "역법"이 달랐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어떤 사건이 정확히 언제 일어났는지를 규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 예로서 "안톤 체호프"가 "독일의 바덴바일러"에서 사망했을 때, 그곳 경찰이 기록한 사망 날짜는 "그레고리력"에 따른 1904.07.15일이지만, 당시 "러시아"에서 쓰이던 "율리우스력"으로는 07.02일이며 "체호프 연구학회"에서는 지금도 "체호프"의 사망일을 07.02일이라고 한다. 

한국은 1895년 음력 09.09일에, "조선 정부(을미개혁ㆍ김홍집 내각)"가 같은 해 음력 11.17일을 1896.01.01일로 하고, "태양력 채택"을 기념하여, "건양(建陽)"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이래 "대한제국"을 거쳐, 대한민국도 "그레고리력"을 쓰고 있다.

 교황 그레고리오 13세 (1502~1585ㆍ향년 83세ㆍGregorius PP. XIII)

 재 임 : 제226대 교황1572~1585         본 명 : 우고 본콤파니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태양력인 "그레고리력"을 제정한 것이다.  기독교 역사상 널리 회자되는 인물 중 하나로, 재위기간 동안 그는 "교회 내부의 개혁"을 추진하여 "트리엔트 공의회"의 정신을 구체화시켰으며, "예수회"를 적극 지원하였다.  특히 아시아의 일본ㆍ필리핀에 "외교 사절단"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1579.02.09일, "필리핀 군도"의 수호성인으로, 원죄 없이 잉태된 "성모 마리아"를 지정해주었다.

2. 율리우스력 (Julius Calendar): BC 46 ~

"율리우스력"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고대 로마의 정치가)"가 BC 46년에 제정해, BC 45년부터 시행한 "양력(陽曆) 역법"으로, "율리우스력"의 1년은 365일 또는 366일(4년에 1번)이다. BC 46년 이전까지, "고대 로마"에서는 "태음력"을 사용하였으며, 점차 "계절의 변화(즉, 태양의 일주)"를 고려해, "태음력ㆍ태양력"을 섞어서, "년(年)ㆍ월(月)"을 계산하였다. 이에 따라, 특히 "달"을 계산하는 데, 적지 않은 혼란과 계산의 착오가 생겼으며, 이러한 착오는 "제사장"이 임의로 수정하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채택한 달력은 "태양력"을 기준으로, 2월을 제외한 달은 모두 30일 또는 31일로 정함으로써, 이전에 있던 번거로움을 한꺼번에 해소하였다. "율리우스력"은 4년마다 02.29일을 추가하는 "윤년"을 두어, "율리우스력"의 한 해 길이는 365.25일이다. 이는 365.2422일인 태양년보다 0.0078일(11분 14초)이 길어서, 128년마다 1일의 편차가 났기 때문에, 1582년부터 보다 정확한 "그레고리력"으로 점차 대체되었다.

 "동방 정교회"의 교회력

"그레고리력"을 "교회력"으로 채택하고 있는 "서방 교회(천주교ㆍ개신교)"와 달리, "동방 교회"는 "율리우스력"을 "교회력"으로 쓰고 있다. "동방 정교회"의 성탄절은 "율리우스력" 01.07일로, 이는 "그레고리력"으로 12.25일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Gaius Julius Caesarㆍ시저ㆍBC 100~ BC 44.03.15ㆍ향년 56세)

"로마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변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함ㆍ달력개정(율리우스력)ㆍ율리우스력 창시자(July는 탄생 월)ㆍ곡물 의무매입ㆍ이자율 제한ㆍ치안대 설치ㆍ신문 기획ㆍ교통 규제ㆍ해방노예 등용1차 삼두정치 : 크라수스폼페이우스 (BC 60년대 말~ 50년대 까지) 종신 독재관 취임 : BC 44.02.15 "원로원민회"로부터 "종신 독재관"에 임명되었고, 성대한 취임식을 거행. 이로써 "공화정"은 붕괴하고, "제정"이 사실상 시작되었다. 무덤은 없다. (유해는 "포로 로마노"에서 화장되었는데, 불길이 꺼져갈 무렵, 내린 세찬 "비"에 유해를 태운 "재"가 씻겨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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