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社會主義ㆍSocialism)"는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야기한 부정ㆍ불평등ㆍ피해ㆍ자유방임적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되었다.
1. 사회주의 (社會主義ㆍSocialism)
① 기 원
정치적으로 강력하게 등장한 근대적 사회주의는 1826년, "영국"의 사회개혁가 "로버트 오웬 (Robert Owenㆍ1771~1858ㆍ협동조합의 아버지)"이 자신의 사상을 일컬어 최초로 "사회주의(socialism)"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1927년 "런던"의 어떤 조합 기관지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862년 독일의 사회주의자 및 혁명사상가 "페르디난트 라살 (Ferdinand Lassalleㆍ1825~1864ㆍ독일 사회민주당의 전신인 전 독일 노동자협회의 창설자)"의 저서 "노동자 강령"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란 용어가 등장했지만, 훨씬 이전인 "생시몽의 집산주의ㆍ토머스 모어의 기독교 평등사상"에 이미 사회주의가 존재하고 있었다.
"로버트 오웬"은 "사회주의"란 용어를 정립화 했고, 그 후 유럽 각지에서 푸리에 같은 여러 공동체, 집산주의를 지향하며,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는 진보적 학자들에 의해 사회주의는 발전되었다. 오늘날 "사회주의"는 "사회민주주의ㆍ공산주의" 등 여러 분파로 나눠졌으며, 사회주의 본래의 의미를 지닌 용어로서 "민주사회주의"가 생기기도 했다.
② 그런데, 19C 사회 사상가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모순과 병폐들(즉 생산의 무정부성ㆍ자본의 집중ㆍ자원의 낭비ㆍ실업과 빈곤의 증대ㆍ주기적 공황ㆍ제국주의ㆍ전쟁 등)이 나타나는 것은 "자본주의"의 기본원리인 "개인주의에 근본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를 개조하기 위해서는 "개인주의를 폐지하고, 반대 원리로 대치해야만 된다"고 생각했으므로, "사회주의"란 말이 "개인주의"의 반대말로서 새로 생겨나게 되었다.
이리하여, 처음에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사회적 관리의 수단에 의하여, "자유ㆍ평등ㆍ사회정의를 실현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상 또는 운동으로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관리를 주장하는 사상의 종류는 19세기 이후만으로도 200여 종에 달할 정도로 많으며, 이들의 주장은 세세한 차이점은 있으나, 1950년 이전에 나타난 모든 "사회주의"는 사회개조의 근본방법을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계획경제에서 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1951.07월,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나옴으로써, "사회개조의 방법"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기 이전의 "고전적 사회주의"에서, "사회주의"는 일반적으로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기초로 하는 "사회개조"의 사상을 뜻하는 것으로 상식화되었다. 생산수단의 공유"는 사회개조의 유일ㆍ절대적 방법으로 여겨짐으로써, 이 제도를 "사회주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굳어지는 한편, 이 제도에 따라서 실현될 것으로 기대되는 사회, 즉 "자본주의"보다 한층 훌륭한 사회를 의미하는 말로도 쓰이게 되었다.
③ 사회주의ㆍ공산주의
"공산주의자"들은 "사회주의"를 제도 자체라고 생각하면서도, "공산주의"의 첫째 단계 또는 더 낮은 단계라고 규정함으로써, "사회주의"를 "공산주의"의 한 부분을 나타내는 말로 쓰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공산주의"의 한 부분인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가 "사회주의"의 한 부분이다. "공산주의"의 현 단계를 "사회주의"란 말로 표현하려고 할 때는, 그대로 "사회주의"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회주의 가운데 한 부분임을 나타내는 어떤 말, 예컨대 "볼셰비키"란 말을 붙여, "볼셰비키 사회주의"라고 하거나, "사회주의적 단계"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④ 1951.07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자유세계 30여개의 "사회주의 정당"이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을 만들면서, 발표한 "민주사회주의의 목적과 임무(흔히 민주사회주의 선언ㆍ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불림)"을 기점(起點)으로, "사회주의"의 성격과 방향에 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생산수단의 공유"를 사회개조의 유일하고, 무조건적인 방법으로 믿어 온 종래의 "사회주의"와는 달리, 이 선언은 "공유는 그 자체가 목적으로 간주될 것이 아니라, 수단으로서 간주되어야 한다."고 규정하는 한편, "공유는 사회의 경제생활과 복지를 지지하고 있는 기초산업과 공공사업을 관리하는 수단으로서, 또 비능률적인 산업을 합리화하며, 사적 독점이나 카르텔이 민중으로부터 착취하는 것을 방지하는 수단으로서 간주되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공유의 타당범위를 국한하고 있다.
또, 한걸음 더 나아가서 "사회주의적 계획은 모든 생산수단의 공유화를 예상하지 않는다. 그것은 중요한 부문, 예컨대 농업ㆍ수공업ㆍ소매업ㆍ중소산업 등에 있어서의 사적 소유의 존재와 양립한다."고 밝힘으로써, 종래의 고전적 사회주의와는 커다란 차이점을 명백히 보여 주고 있다.
"생산수단의 공유"를 사회개조에 있어서 제한된 경우의 하나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민주 사회주의"에 대하여, "소련의 경제학 교과서"도 "그들은 더욱더 적극적으로 국유화 반대를 외치고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사회주의에 있어서 충분히 허용될 수 있는 것, 필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것을 증언하고 있다.
이어서 선언은, "사회주의는 새로운 경제적, 사회적인 제도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고 말함으로써, 생산수단의 공유를 곧 사회주의로 생각해온 종래의 사회주의관의 잘못을 다시 한번 다진 다음, "경제적 및 사회적 진보는 인간의 개성을 해방하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됨으로써 가치를 가진다."
"사회주의는 … 모두 하나의 목적, 즉 사회정의, 보다 나은 생활, 자유와 세계평화의 체계를 위하여 노력한다."고 함으로써, 사회주의 본래의 목적을 재확인ㆍ재천명하는 동시에, "사회주의"의 목적ㆍ수단을 구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생산수단의 공유"를 여러 수단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는 선언은,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수단으로서, "민주주의"의 확대ㆍ발전을 들고 있다.
"사회주의자는 자유 속에서 민주주의적인 수단에 의하여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고 노력한다."(동 선언)
"정치적 민주주의를 견지(堅持)하는 것은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이다"(동 선언)
즉 "민주주의"를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국제적" 등 인간생활의 모든 영역에 확대ㆍ발전시키는 방법으로 사회를 개조하자는 것이다.
이 선언의 소제목이 "정치적 민주주의ㆍ경제적 민주주의ㆍ사회적 민주주의ㆍ국제적 민주주의"로 되어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민주 사회주의"의 주장은 "민주주의적 방법"에 의하여, "민주주의" 자체를 완성하려는 것이며, 따라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형태에 있어서의 "민주주의"가 바로 그 목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의 개념과 사상은 여기에서 새로운 성격과 방향을 취하게 된다.
2.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
① "사회주의" 사상의 기원은 시대적으로 고대까지 소급되며, 지역적으로는 동ㆍ서양 모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근대 사회주의 사상"은 서양에서 "봉건적 사회"가 해체되고, "자본주의"가 발전하던 때부터 싹텄고, 특히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자유ㆍ평등 사상"의 대두에 의하여 성장하였다. "영국"에 있어서는 "모어ㆍ윈스탠리ㆍ오언", "프랑스"에서는 "바뵈프ㆍ생시몽ㆍ푸리에ㆍ부오나로티" 등을 "근대 사회주의의 창시자"로 꼽을 수 있다.
"독일"에서는 사회주의 사상이 정치ㆍ사회적 후진성 때문에, "영국ㆍ프랑스"에 비해 한 발 늦게 1830∼1840년대에야 전파되었다. 대표적인 선구자로는 "바이틀링ㆍ로트베르투스ㆍ헤스" 등을 들 수 있다.
② 유럽의 "근대 사회주의"는 그것이 철학적 이상에서 나왔건, 합리주의에서 나왔건, 또는 노동계급 운동이나 농촌운동으로서 발생했건, 그리고 그 방법이 비폭력적이거나, 계급투쟁적인 혁명주의이거나를 막론하고 "자본주의"를 반대하면서, "자유ㆍ평등ㆍ사회정의"를 이룰 수 있는 이상적 협동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유럽의 초기 "사회주의"는 사상에 있어서는 "유토피아적"이고, 운동방법에 있어서는 순박하지 않으면, "모험주의적"으로 보이는 면이 많았다. 그러므로 당시의 "사회주의자"들의 꿈이 현대에서 그대로 실현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초기 사회주의는 "현대 사회주의"에 비판적으로 흡수되어 단절될 수 없는 전통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1840년대에는 "생시몽ㆍ푸리에ㆍ오언" 학파들이 모두 자유경쟁을 기조로 하는 "초기 자본주의 제도"의 결함을 비판하고, "생산ㆍ분배ㆍ노동"을 조직하는 힘을 개인적인 데서 사회적인 것으로 바꿈으로써, 즉 "사회적 공동 관리"에다 둠으로써, 사회의 경제적ㆍ윤리적 기반을 변혁할 것을 주장한 일련의 이론을 "사회주의"란 말로 표현하였다.
③ 그러나 후에 "마르크스ㆍ엥겔스"는 이들 초기 사회주의자들의 학설ㆍ사상에는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과학적 이론과 정책이 없다"고 하여, "유토피아 사회주의"라고 단정하는 한편, 자기들의 사회주의 이론은 "사적 유물론(史的唯物論)ㆍ잉여가치론(剩餘價値論) 등 과학적 이론으로 체계화되었다"고 하여 1870년 이후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불렀다.
이들은 비단 초기의 사회주의자들뿐만 아니라, 동시대에 활동하고 있던 선배 또는 동년배 사회주의자들, 이를테면 "바이틀링ㆍ헤스ㆍ프루동ㆍ블랑" 같은 사회주의자들에 대해서도 "유토피아적"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마르크스ㆍ엥겔스"는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적 휴머니즘 사상ㆍ헤겔의 변증법철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이것을 토대로 "사적 유물론"을 구성하였고, "영국의 고전경제학"에서 "노동가치설(勞動價値說)"을 흡수하여 "잉여가치론"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들의 "사회주의 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이었다.
④ "마르크스ㆍ엥겔스"는 자기들의 "사회주의 혁명이론"의 정수를 "공산당선언(1848)"에서 제시하였는데, 이 선언은 "사회주의" 문헌 중, 가장 유명한 논술로 평가된다.
여기서 이들이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르지 않고, "공산주의자"라고 강조한 것은 자기들을 다른 "평화적ㆍ개량주의적 사회주의자"들과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사회주의ㆍ공산주의"란 말은 비슷한 뜻으로 혼용되고 있었지만, 강조점은 약간 달랐다. 즉, "사회주의"란 주로 "지식인들 사이의 운동"을, "공산주의"란 "노동자들 사이의 운동"을 의미하였다.
"마르크스ㆍ엥겔스"는 이후, "공산주의"라면 곧 "마르크스주의"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는데, "마르크스주의"도 광범한 의미의 "사회주의의 한 유파(流派)"에 속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국제적으로 폭력혁명을 일으켜 "자본주의"를 전복할 것과, "자본주의"가 전복되면, 과도기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실시하여, 사적(私的) 생산수단을 사회화(국유화)하여 "부르주아 계급"을 소멸시키는 한편, 생산력을 고도로 발전시켜, 계급도, 계급적 억압기구로서의 국가도 없는 "자유ㆍ평등"이 완전히 실현되고, 물질적으로 풍부한 "공산주의사회"를 성취할 것을 가리키고 있다.
⑤ 이들은 "완전한 공산주의 사회"를 공산주의의 "보다 높은 단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실시되는 과도기를 "공산주의의 제1단계"라고 불렀다.
그 후 "레닌"은 "마르크스"가 말한 "공산주의의 제1단계"를 "사회주의"라고 이름 붙임으로써,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라는 정식(定式)을 만들어냈다.
그러므로 "레닌식 사회주의"의 개념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과도적 독재를 거부하고, 끝내는 국가가 소멸하는 "공산주의 사회"의 도래를 인정하지 않는 여타의 "사회주의"의 개념과는 구별되어, "사회주의"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
⑥ "마르크스"는 "제1인터내셔널 (국제노동자협회ㆍ1864~ 1872)"에서 한정된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가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제2인터내셔널(1889~ 1914)"의 시기였다.
당시 "마르크스주의"를 강령으로 채택하는 "사회주의 정당"들이 유럽에서 속출하여, "마르크스주의"는 "제2인터내셔널"의 주류가 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정당"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마르크스주의"의 분파도 그만큼 증가하여, 각국의 "사회주의 정당"들은 자당의 운동에 유리하도록 "마르크스주의"를 해석하였다.
당시 "혁명주의"를 표방했건, "의회주의"를 표방했건, 또는 "민주적 대중정당"이거나, "폐쇄적 전위당"(前衛黨)이거나를 막론하고, "사회주의" 정당들은 "사회민주당ㆍ사회당ㆍ노동당"이란 당명으로 호칭하였다. 한편 "제2인터내셔널"의 시기에는 유럽 각국에서 노동자의 생활수준과 지위가 상대적으로 향상되어갔고, "보통선거권"의 확대로 "사회주의자"들이 국회 내 의석을 급속히 늘려가고 있었다. 요컨대, "자본주의 사회"는 "민주주의"로의 방향에서 개혁되고 있었다.
이렇게 "자본주의"의 양상이 바뀌어감에 따라, 이에 대응하여, "사회주의운동"의 방법도 바뀌어갔고, 방법이 바뀌어 짐에 따라, 이론도 이에 부합되도록 수정되었다. 즉, "폭력혁명ㆍ프롤레타리아트 독재" 등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의 견해는 점차 포기되고, 평화적 개혁방법과 의회주의가 "영국"은 물론 "독일ㆍ프랑스" 등의 "사회주의 정당"들에서 일반적 경향으로 되었고 "극좌파(極左派)"는 소수파의 지위로 떨어지게 되었다.
⑦ 그러나 "민주주의적 기초"가 전무했던 "제정(帝政) 러시아"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러시아 사회민주 노동당"은 1903년의 당 대회(런던) 이후, "혁명적 전위당"이냐, "노동계급의 대중정당"이냐의 "당 조직 원칙"을 놓고, "레닌의 볼셰비키 파(다수파)ㆍ마르토프의 멘셰비키 파(소수파)"로 뚜렷이 분열되었는데, "볼셰비키 당"은 "소련 공산당"의 전신이었다. "레닌"은 "자파" 이외의 "사회 민주주의자"를 "우익 기회주의자ㆍ사회 개량주의자ㆍ수정주의자" 등으로 비난하면서, "의회주의 배격ㆍ폭력혁명의 절대화"를 강조하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ㆍ제국주의 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轉化)를 주장하면서, "자파"를 다른 사회주의자들과 구별하기 위해, "공산주의자"라고 불렀다.
1917년, "레닌"은 "10월 혁명"에서 승리한 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정권"으로서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하였다.
1918년, "볼셰비키 당"을 "전 러시아 공산당"으로 부르게 되었다.
여기서 "레닌"과 견해를 같이하는 다른 나라의 "마르크스주의자"도 "공산당"이란 이름으로, 독자적인 당을 결성하고, 자기들의 견해와 이론ㆍ정치적 입장을 "평화적 개혁주의"와 의회민주주의를 고수하는 다른 "사회(민주)주의"와 구별하기 위하여, "공산주의"라고 부르게 되었다.
⑧ 그리고 "스탈린 시대"에 와서는 자기들의 "이데올로기"를 "사회 민주주의적 마르크스주의"와 구별하기 위하여, "마르크스-레닌주의"란 말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공산주의"란, "사회주의" 안에서도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주의" 안에서도 "레닌주의"를 가리키는 것으로 되었으며, "레닌주의" 이외의 "사회주의"와는 철저히 분열ㆍ대립하는 별개의 정치사상 또는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레닌"은 1919.03월, "공산주의운동"의 국제적 조직체로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제3인터내셔널ㆍ1919~ 1943)"을 조직하고, "모스크바"에 본부를 두고,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통일ㆍ지도하였다. 그러나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스탈린 시대"에 와서, "국제주의적 이념"을 포기하고, "소련"의 국가이익을 옹호하는데, 급급한 "스탈린"의 외교적 도구로 전락하였다.
⑨ 이에 대해, 2차 대전 후, 각국의 "사회민주당ㆍ사회당ㆍ노동당"들은 전시에 소멸한 "제2인터내셔널"을 "사회주의 노동자 인터내셔널"로 부활시키고(1923), "점진적 개혁주의ㆍ의회민주주의 이론 및 정책"을 더욱 명백하게 표방하면서, 노동자들의 민주주의적 권리의 신장ㆍ대중적 사회정책ㆍ사회보장의 실시를 추진하여 "복지국가실현"에 노력하였다.
"사회주의 노동자 인터내셔널"은 "소련"에서 강행된 "산업기관의 국유화ㆍ농업 집단화"만으로는 "사회주의의 실현"이라고 간주하지 않고, 소비에트 정권의 "테러리즘ㆍ일당독재ㆍ관료주의ㆍ유혈숙청" 등에 신랄한 비판의 눈을 돌렸다.
이에 대해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사회주의 노동자 인터내셔널의 지도자"를 "자본가의 주구ㆍ노동계급의 배반자ㆍ기회주의자"라고 응수하였다. 그리하여 이 2개의 국제조직은 세계적 규모로 서로 대치하게 되었다. 1930년대 후반, "사회당ㆍ공산당"은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하여, "프랑스ㆍ에스파냐" 등에서 "인민전선(人民戰線)운동"으로 일시 제휴를 시도한 일이 있으나, 그것이 양자의 화해를 가져오지는 못하였다.
⑩ "제2차 세계대전" 후, "사회주의 노동자 인터내셔널"은 다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로 부활하여(1951), "사회주의 운동"의 이념으로써, "민주 사회주의"를 창달하는 입장을 택하였다.
"사회주의인터내셔널"은 "소련"에서 "스탈린의 전체주의적 폭정"이 노출되고, "동유럽ㆍ북한" 등 "소련군"이 진주한 지역에서, 무자비한 방법으로 "인민민주주의(人民民主主義)"가 강행된 시기에 결성되었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은 "소련ㆍ인민민주주의 국가들"이 그 자신이 표방하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배반하였다고 단정하는 한편, 경제적으로는 "사유자본주의를 국가자본주의로 바꾸어 놓았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경제적ㆍ정치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강조하는 동시에, "사회주의의 본질"을 휴머니즘적 전통에서 재검토하고, 특히 "개인과 국가ㆍ개인과 국유화 산업"과의 관계에 있어서, "시민의 기본적 권리와 민주주의적 자유"를 옹호하였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은 "영국ㆍ독일ㆍ프랑스ㆍ스칸디나비아 제국" 등 서유럽 민주주의 제국의 "사회주의 정당들"에 의하여 주도되어왔지만, 서유럽에 국한된 "사회주의적 국제조직"이 아니고, 그 영향력은 정치적 민주주의가 실시되고 있는 모든 나라, 이를테면 "오세아니아(호주/뉴질랜드)ㆍ아시아(일본/인도)ㆍ중동(이스라엘)ㆍ아메리카(미국/자메이카/페루)ㆍ아프리카(세네갈)" 등에까지 미치고 있다.
⑪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은 "히틀러ㆍ스탈린"의 "전체주의 독재"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 민주주의적 자유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있는 점에 사상적 특징이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를 공식적은 아니지만, 사실상 포기하고 있으며, "공산주의"와 스스로를 이념적으로나, 운동방법에 있어서나 엄밀히 구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부활되지 못하고, "중ㆍ소 이념분쟁"을 계기로 공산국가들은 저마다 국익에 따라, 복잡하게 분열되고 있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여전히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수사"에 불과하다.
⑫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 가입하고 있는 각국 사회주의 정당들은, 틀에 박힌 어떤 특정한 "사회주의 유형"을 따라,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고, 각국의 사정에 따라, "사회주의 정책ㆍ방법"을 달리하고 있다.
따라서 각국의 "당" 간에는 "국유화ㆍ부(富)의 분배" 등에서 정책상의 차이가 있고, 한 나라의 "당" 내에도 분파가 있다.
그러나 "의회민주주의ㆍ산업민주주의(산업의 민주적 관리)ㆍ광범한 사회보장ㆍ공정한 분배ㆍ시민적 자유원칙"을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공통된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산하의 "사회주의 정당들"의 운동이 비록 그 방법은 점진 주의적이라 하더라도 "사회주의 이념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⑬ 제2차 세계대전 후, "제3세계 여러 나라(중동ㆍ아프리카ㆍ라틴 아메리카ㆍ동남아시아 등)에서는 "공산당 정권"도 아니며, "사회민주당 정권"도 아니지만,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권이 속출하였고, 국호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바꾸었다.
"이슬람 사회주의ㆍ아프리카 사회주의ㆍ사회주의에로의 미얀마의 길" 등으로 대표되는 이 지역 신생국들의 경우가 그것이다. "시리아ㆍ이집트ㆍ알제리ㆍ튀니지ㆍ거의 모든 아프리카 신생국ㆍ멕시코ㆍ미얀마ㆍ싱가포르" 등은 모두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이 경우의 "사회주의"는 "민족주의"와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어, "국유화ㆍ국영기업"을 곧 "사회주의"로 인식하고 있다.
"민주주의적 자유ㆍ인권 존중"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일당 독재"를 실시하고 있으며, "군사독재정권"인 경우가 많다. 특히 "아프리카 사회주의"의 경우, 그 사상적 뿌리를 근대사회 이전의 고유한 "부족적 공동체"에서 찾고 있으며, 이것을 현대 국가에서 복원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따라서 "의회민주주의ㆍ복수정당제"를 "서유럽의 정치제도"라고 하여, 경원하는 한편, "계급대립ㆍ계급투쟁"의 개념도 배격한다.
이념적으로는, "독자적 사회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자유ㆍ평등"을 지향하지도 않고, 사회가 "관료ㆍ 대 자본ㆍ지주"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는 현상을 과연 "사회주의"로 규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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