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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 • 현대사)/사건

사건- 48.07 : 대한민국 대통령 (1대) 선거 → 이승만 당선 (간접선거)

by 당대 제일 2022.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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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초대 정 • 부통령 선거"는 1948.07.20일, 당시의 헌법 제53조에 의거하여 국회에서 "제헌국회 국회의원들의 간접선거"로 실시했고, 제1대 정∙부통령 선거로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이시영"을 초대 부통령으로 각각 선출했다.

 

1. 대한민국 초대 정 부통령 선거 절차

1948.07.24일 취임식을 가진 뒤, 08.15일 대한민국의 정부수립이 국내외에 선포되었다 당시의 헌법 제53조에 의거하여, "국회"에서 "간접선거"로 실시되었다.

대통령과 부통령은 국회에서 무기명투표로써 각각 선거한다.

재적의원 2/3 이상의 출석과 출석의원 2/3 이상의 찬성투표로써 당선을 결정한다 , 2/3 이상의 득표자가 없는 때에는 2차 투표를 행한다 2차 투표에도 2/3 이상의 득표자가 없는 때에는 최고득표자 2인에 대하여 결선투표를 행하여 다수득표자를 당선자로 한다. (이승만은 180표를 얻어 제1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서는 재적의원 200명에 134명 이상이 출석해야 하고, 출석의원의 2/3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대통령 선거에는 196명이 출석하였고 196명의 2/3, , 131표 이상의 득표를 얻어야 한다.

선거 절차

2. 1948.07.20일 오전10~ :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선거 → 이승만 당선

3. 1948.07.20일 오후 2~ : 초대 부통령 선거 → 이시영 당선

부통령

초대 헌법 제정 : 국회 간선제ㆍ1차 중임ㆍ임기 4년ㆍ광복 3년 만에 "제헌 국회"에서 "초대 대통령 선거"가 "간선제"로 실시      • 07.20일, 대통령에 선출된 이승만은 "부통령 선거" 직전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부통령에 김구가 나오면 합작할 의사가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없다"며, 자신의 "단정 안"에 반대해 "평양"을 다녀온 "김구"에게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대신 "임정을 대표한다"는 차원에서 "이시영"을 언급했고, 이런 이승만의 의향이 의원들에게 영향을 주어, 결국 "이시영"이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4. 1951.05.16 -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 선거 → 김성수 당선

2대 부통령 선거 실시배경 :  "부통령 이시영""국민방위군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의 비민주적 통치에 항의해, "시위소찬 (尸位素餐)"이란 말을 던지고 사임한다. 3차 결선투표 결과에 따라, "김성수"가 당선되었다 (시위소찬 : 뜻하는 일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면서, 녹을 받아먹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5. 이승만 내각 구성원 (초대 내각)

대 통 령 : 이승만(李承晩)부 통 령 : 이시영(李始榮)ㆍ국회의장 : 신익희(申翼熙)국회부의장 : 김동원(金東元), 김약수(金若水)

대법원장 : 김병로(金炳魯)국무총리 : 이범석(李範奭)국방장관 : 이범석(李範奭)겸임ㆍ외무장관 : 장택상(張澤相)내무장관 : 윤치영(尹致暎)법부장관 : 이인(李仁)

재무장관 : 김도연(金度演)문교장관 : 안호상(安浩相)농림장관 : 조봉암(曺奉岩)ㆍ 상공장관 : 임영신(任永信)사회장관 : 전진한(錢鎭漢)교통장관 : 민희식(閔熙植)ㆍ체신장관 : 윤석구(尹錫龜)무임소 장관 : 이청천(李靑天), 이윤영(李允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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