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운 (白南雲ㆍ1894~1979ㆍ85세)"은 "연희전문학교 상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조선사회경제사(1933)"를 비롯한 "사회경제사 연구 저술"로 유명했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사관"에 입각해 "조선총독부" 어용 학술단체인 "조선사 편수회"에서 주창하는 "정체성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글을 여러 편 썼다.
1. 백남운 (白南雲ㆍ1894~1979ㆍ향년 85세)
일제 강점기 당시, "이순탁"과 함께, "사회주의 경제학자"의 대표적인 인물ㆍ일제강점기 경제학자ㆍ조선공산당 경제이론가ㆍ연희전문학교 경제학 교수ㆍ경성제국대 법문학부 교수ㆍ남조선신민당 주도ㆍ최고인민회의 의장ㆍ북한 문교상(초대)ㆍ과학원 원장ㆍ사회주의운동 (2년간 투옥)
광복 후, 일부 자산계급과 연대를 전제로, "조선 민족의 진로"라는 글에서 "연합성 신민주주의(민족 통일전선)"를 제창하였다. "박헌영"과는 갈등ㆍ대립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해방 후, "김두봉ㆍ허정숙ㆍ최창익" 등과 연결, "남조선신민당ㆍ민족주의민주전선"에서 활동하다가 1948.04월, 남북협상 차 "김구ㆍ김규식ㆍ장건상" 등과 함께 월북한 후, 내려오지 않았다.
• 출 생 : 전라북도 고창군 • 사 망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사 인 : 병사
• 학 력 : 수원농림학교 → 동경고등상업학교 → 도쿄상과대학(현, 히토쓰바시 대학)
• 저 서 : 조선사회경제사ㆍ조선봉건사회경제사ㆍ조선민족해방투쟁사ㆍ조선력사교재의ㆍ조선 민족의 진로
• 경 력 : 강화보통학교 교원 → 연희전문학교 상과(경제학) 교수ㆍ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교수 → 1948 :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ㆍ초대내각 교육상 → 1961~1962 : 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회 부위원장ㆍ조선노동당 중앙위원 ㆍ마르크스 레닌주의방송대학총장 → 1967 : 최고인민회의의장 → 1974 :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
• 월북 중개인 : 1946.01월, 1번째 북행 때, 북으로부터 남한 과학자ㆍ예술인ㆍ교수 등의 월북을 주선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지식인들을 포섭하여, 월북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역사학자(김석형/박시형)ㆍ섬유분야 권위자(계응상)ㆍ물리학자(도상록)ㆍ기술자(최재우/강영창)ㆍ예술인(문예봉/황철/박영신)

1937년, 기고한 "조선봉건사회경제사"에서, 그는 "유물론적 사관"에 입각해 "식민사관의 정체성론"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했다. "유물사관"에 입각해, "한민족의 역사가 원시씨족공동사회에서 출발해 삼국시대의 노예경제사회를 거쳐, 통일신라와 고려의 아시아적 봉건사회에 이르렀으며, 현재에 와서 상품생산제사회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았으며, "식민사관의 정체성론"을 정면으로 비판하였다.
일제강점기 시기, "이재유"를 비롯한 정통파 공산주의자들은 그가 "유물론적 관점"에서 저술한 "조선사회경제사"에 대해 "사민주의적이고, 민족개량주의적 성향"라면서 부정적 견해를 드러내기도 했었다.
남북협상에 참여하기 위해 북행(12번째 북행)한 그는 "남북협상"이 끝난 뒤, "평양"에 눌러앉았다. 북행길에 올랐던 남한 사람들은, 특히 정치인들은 거의 모두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러나 그는 "홍명희"처럼 매우 예외적으로 비교적 평탄한 출세 길을 걸었다. "북조선"의 초대 내각에서 "교육상"으로 선발되어 8년 동안 재직하였고, "과학원 원장"을 겸했다.
이후 "연안파"와 거리를 두어, 1961년 "김두봉ㆍ최창익" 등이 숙청당하고, "허정숙"이 좌천당했을 때도 무사하였다. 1961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에 뽑혔고, 1967년 "최고인민회의 의장"으로 피선되어 5년 동안 근무하였고, 그 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 의장"으로 활동하다가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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