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세봉 (梁世奉ㆍ1896~1934ㆍ38세)" 장군은 민족주의계 독립 운동가로, 1920~ 1930년대 초반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에 참여, 수많은 국내 "진공작전"과 "만주"에서의 전투를 성공적으로 이끈 인물이다.
1. 양세봉 (梁世奉ㆍ1896~1934ㆍ향년 38세)
조선혁명군 총사령관ㆍ만주지역 한중 항일 연합군 결성ㆍ"영릉가 전투"를 비롯한 20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를 치르며, 맹활약했다ㆍ"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크게 감명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ㆍ "북한 애국열사릉ㆍ남한의 애국지사 묘역"에 동시에 안장돼 있다.
• 출 생 : 평북 철산군 • 사 망 : 만주국 환인현 대랍자구 • 묘 지 : 북한 애국열사릉 - "양세봉 유해"가 매장 / 한국 국립 서울현충원- 유골 없는 묘지 • 사 인 : 암살 (일본군에 매수된 "밀정 박창해"가 사주한 "중국인 자객")
• 호 : 벽해 (碧海) • 별 칭 : 양서봉 (梁瑞鳳)ㆍ양세봉(梁世鳳)ㆍ양윤봉(梁允奉) • 자 녀 : 양의준 (梁義準)
• 지 휘 : 1922~ 1934ㆍ만주 조선인 항일군 (조선혁명군 총사령관)
• 경 력 : 천마산대ㆍ대한통의부ㆍ참의부ㆍ정의부ㆍ국민부ㆍ조선혁명군
• 참 전 : 만주지역 항일무장투쟁 (영릉가 전투ㆍ흥경성 전투ㆍ노구대 전투ㆍ쾌대모자 전투 등)
"일제"에 맞서는 "반일연합전선"의 형성에도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남만"에서 활동하던 "중국 의용군"과 "한중 연합군"을 편성하여 활동하였다. "일본군"은 "연합군"에 "밀정"을 보냈다. "일본군 밀정"은 "중국군 사령관"이 협의할 군사 문제가 있으니, "대갑자구로 오라"는 전갈을 보내 "양세봉"을 유인하였다. 그는 "조선인 밀정"과 함께 부하대원 4명을 거느리고, 수수밭을 지날 때, 숨어 있던 "일본군" 수십여 명이 나타나, 항복을 권유했다. 그러나 "양세봉"은 저항하였다.
1934.08.12일, "일본군"에 매수된 "밀정 박창해"가 사주한 "중국인 자객"에게 살해당했다. 사후, "조선혁명군" 세력은 급격히 위축되었고, 몇 차례의 개편이 있었지만 세력을 회복하지 못하였다.
"김일성"이 특별히 "양세봉" 유족들을 "평양"에 불러 살게 하는 등 높이 평가하고 있다. 또한 "김일성"이 독립하여, 독자적인 "항일유격대"를 형성하기 이전에는 "양세봉 부대"에 속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세봉"은 "김일성"이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오동진" 등과 함께 "김일성"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인물 중 1명이었다.
"김일성"은 "회고록"에서, "김형직(아버지)"가 이 일찍 사망한 뒤, "오동진ㆍ손정도ㆍ장철호ㆍ현묵관ㆍ양세봉"에게서 학비를 후원받은 사실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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