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로당 (남조선노동당)"은 1946.11월, "박헌영" 계열이 중심이 되어, 남한 지역 좌익진영의 통합을 강화할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민주주의 자주독립국가 건설ㆍ무상몰수ㆍ무상분배의 토지개혁ㆍ8시간 노동제와 사회보장제 실시ㆍ주요 산업의 국유화ㆍ언론/출판/집회/결사/시위/신앙의 자유ㆍ20세 이상의 국민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 부여ㆍ남녀동등권ㆍ초등의무교육제 실시ㆍ진보적 세금제 실시ㆍ민족군대 조직과 의무병제 실시" 등을 주장했다.
1. 남로당ㆍ남조선노동당 (南朝鮮勞動黨)
해방 정국에 결성되었던 "좌익 계열" 정당ㆍ3당이 합당 = 조선공산당 (박헌영 주도) + 조선인민당 (여운형 주도) + 남조선신민당 (백남운 주도)
1945.11.23~24일, "박헌영" 계열이 주도로 남한 좌익진영의 통합을 강화할 목적으로 결성된 후, 남한 지역에서 각종 투쟁과 같은 공산당 활동을 펼쳤다. 같은 시기 북한 지역에 만들어진 "김일성" 주도의 "북조선노동당"과의 세력 경쟁을 하는 가운데, "군정ㆍ정부"의 "좌익 탄압ㆍ토벌"을 통해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었고, 간부들은 북한으로 넘어가서 "북조선노동당"에 흡수되는 양상을 보였다.
일부는 무장투쟁을 벌였으나 1950년 6ㆍ25전쟁을 거치면서 완전히 붕괴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 대부분의 "남로당" 출신 간부들은 1953.08월ㆍ1955.12월 열린 "특별군사재판"에서 "간첩ㆍ이적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고 처형되었다.
• 활동 : 9월 총파업(1946.09)ㆍ10월 대구폭동사건(1946.10)ㆍ3·1절 충돌사건(1947)ㆍ2·7총선 방해투쟁(1948)ㆍ제주4·3사건(1948)ㆍ여수·순천사건(1948)ㆍ국회프락치사건(1949)
• 주장 : 민주주의 자주독립국가 건설ㆍ무상몰수ㆍ무상분배의 토지개혁ㆍ주요 산업의 국유화ㆍ사회보장제 실시ㆍ남녀동등권ㆍ초등의무교육제 실시ㆍ진보적 세금제 실시ㆍ민족군대 조직ㆍ의무병제 실시ㆍ8시간 노동제ㆍ20세 이상의 국민에게 선거권/피선거권 부여ㆍ언론·출판·집회·결사·시위·신앙의 자유ㆍ평화애호국가와의 친선강화 등 주장

2. 창당 배경
• 1945.08.20일, "조선공산당"은 "박헌영"을 중심으로 발족한 "조선공산당 재건준비위원회"에 의해 09.11일 결성되었다. "조선공산당"은 1928년 해체된 "조선공산당"의 전통을 이은 것으로 간주되어, 이보다 앞서 1945.08.16일, "이영ㆍ정백ㆍ안기성ㆍ이승엽" 등에 의해 결성된 "장안파 조선공산당"과 "최익한ㆍ이우적ㆍ하필원" 등에 의해 결성된 또 다른 "조선공산당" 들은 08.24일 해체하여 "박헌영"을 중심으로 결합했다.
• 1945.10.23일, "조선공산당"은 "평양"에서 발족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승인했고, 12월에는 "김일성"을 "북조선분국 책임비서"로 선출되었다.
• 1946.04월, "북조선분국"이 "북조선공산당"이라고 명칭을 변경함에 따라, "박헌영" 주도의 "조선공산당"은, "북조선공산당"에 대응하기 위해 "남쪽의 좌익 세력을 결집"하기로 하고, "조선인민당(여운형 주도)ㆍ남조선신민당(백남운 주도)" 등과 합당을 추진하게 되었다.
3. "남조선공산당" 창당
1946.08월, "여운형(조선인민당)"은 "조선 민족통일의 기초를 구축하고 민주진영의 주도체를 완성"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조선공산당ㆍ남조선신민당"에 3당 합동을 제안했다. 그러나 합동과정에서 "조선인민당" 내의 48인파ㆍ31인파, "남조선신민당 "내의 간부파ㆍ대회파, "조선공산당" 내의 추진파ㆍ반대파 등이 각각 찬성ㆍ반대로 분열했다.
결국 "박헌영" 계열이 중심이 되어, 11.23~ 24일에 "시천교(천도교의 한 분파) 교당"에서 "3당의 찬성파"를 중심으로 "남조선노동당"이 결성되었다. 결성 대회에서, "박헌영" 주도의 "남조선노동당"은 각 지방대의원 508명ㆍ중앙대의원 628명이 참석하여 "허헌"의 개회사에 이어 임원선출과 강령ㆍ규약 등을 통과시켰다.
"허헌"은 개회사에서 "근로인민의 역량을 결집하고, 좌익진영의 통일을 강화하여, 반동세력을 분쇄하고 조국의 민주독립을 전취할 수 있는 강력한 정당을 창건할 것"을 역설했다. 그러나 "여운형ㆍ백남운" 등은 "박헌영" 주도의 남로당에서 이탈, "사회노동당"을 결성했고, "좌우 합작" 등 보다 중도적이고, 점진적인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4. 정책ㆍ조직ㆍ활동
1946.09.04.일, "3당 합동준비위원 연석회의"에서 "남로당 강령"을 발표했다. 조직에는 "중앙상무위원회"를 두었고, "조직부ㆍ간부부ㆍ선전부ㆍ노동부ㆍ농민부ㆍ청년부ㆍ부녀부ㆍ구호부ㆍ재정부ㆍ협조부ㆍ문화부ㆍ조사부ㆍ총무부" 등이 있었다.
당시 세계적 조류인 "전위 정당의 대중정당"으로의 전환 추세와 "북조선노동당"의 창설에 맞추어 결성되었지만, 이미 1946.09.07일 "박헌영" 등 주요 좌익간부들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지고, 좌익에 대한 탄압이 강화됨으로써 오히려 "지하 조직화" 했다. 1950년 6ㆍ25전쟁을 거치면서, 대중 조직은 대부분 붕괴되었으며, 일부는 무장유격투쟁으로 전환했다.
5. 소멸
1948.0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남로당 무장세력"에 대한 토벌이 강화되자, 대부분의 "남로당" 간부들은 북한으로 도피했다. "남로당ㆍ북로당"은 연합을 위한 "연합중앙위원회"를 설치하고, 1949.06월 합당하여 "조선노동당"이 되었는데, 실질적으로는 "남로당"이 "북로당"에게 흡수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에 따라 "김일성(북로당 부위원장)"이 통합된 "조선노동당의 위원장"이 되면서, "남로당" 출신 인물들의 주도권은 완전히 상실되었다. 결국 "남로당" 조직은 1950년 6ㆍ25전쟁을 거치면서 완전히 붕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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