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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 일반ㆍ명리학

고집 (固執) : 최家는 왜 고집이 쎌까?

by 당대 제일 2022.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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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固執)이란, "자존심"과도 상당히 관계가 깊은 것으로,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티는 성미를 말하며, "고집"과는 다르게, 자신의 논리가 틀렸음을 인식해도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은 "쇠고집아집"이라고 한다.

 

1. "최씨 고집"을 나타내는 속담으로,

최(崔)씨 앉은 자리엔 풀도 안 난다.

최(崔)씨에다, 옥니이고, 곱슬머리인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마라.

산 김()셋이 죽은 최()하나를 못 당한다.

죽은 최()하나가 산 김()셋을 당한다.

"강씨ㆍ황씨"와 더불어 "최씨 고집"은 우리 문화에서 알아준다. 그 중에서도 최씨는 "강씨ㆍ황씨"보다 인구수도 많아, 두 성씨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씨이다. 모두 "최씨 고집"이 얼마나 센지를 나타내는 속담으로, 확실한 근원이나 연원을 찾기는 힘들다. 이것은 우리 민족인 오랜 생활과 경험에서 축적되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2. 최씨 앉은 자리엔 풀도 안 난다

이것은 아마도 "최영 장군(崔瑩1316~138872고려 말 장군정치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최영 장군"은 신념과 절개가 곧고 충정이 높으신 분으로, 그것을 잘 설명해주는 말로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汝當見金如石)"라는 명언이 있다.

"최영"은 고려에 충성을 다하다가, "이성계" 세력에게 죽음을 당하게 된다"최영"이 죽음에 이르러 유언을 남겼는데"내가 생전에 조금이라도 부끄러운 일을 했다면, 내 무덤에 풀이 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풀이 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는데, 그의 무덤에 "풀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이 세간에 와전되면서 "최씨 앉은 자리엔 풀도 안 난다."라는 속설이 생긴 것이다"최영"의 굳은 신념과 결백을 위한 유언이 곡해되어, 자연의 섭리마저도 꺾을 정도의 독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변형이 된 것이다"최영"과 관련된 이 일화가 최씨의 고집을 강하게 어필하고, 다른 속담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여 진다.

3. 최씨에다 옥니이고, 곱슬머리인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마라.

여기에서 "옥니"란 앞니가 안으로 굽은 것으로 "옥니박이"하면 "옥니"를 지닌 사람을 말한다곱슬머리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이다"옥니곱슬머리"를 가진 사람은 성격이 매섭고, 깐깐하다는 뜻으로 많이 쓰이는데, 거기다가 고집이 다는 최씨와 결부되니, 그 고집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일 것이다는 추측을 낳게 된다.

과학적으로 "옥니""유아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날 때, 어린이의 생활 습관 때문에 일어난다고 한다. 영구치가 날 때, 엄지손가락을 빤다거나, 혀를 내밀고 숨을 쉴 경우 발생한다고 한다.

그리고 곱슬머리는 유전이다하지만, 곱슬과 직모라는 인자가 만나, 우성과 열성이라는 배합을 거쳐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 중 한쪽이 곱슬이라 해서 자녀가 모두 곱슬이라는 법칙은 없다.

옥니나 곱슬머리는 우리에게 흔한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모습과는 다른 형태의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그런 요소들이 인간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신체적 불구는 아니지만, 일반적이지 않기에 아마도 그런 편견이 주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과거에는 쌍거풀 있는 여자를 혐오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봤는데, 요즘은 쌍거풀 없는 여자를 오히려 상하게 생각하지만.

4. 산 김() 셋이 죽은 최() 하나를 못 당한다.

여기에는 "김씨최씨"에 대한 성질을 나타내고 있다"김씨"는 흔히 성격이 후하고, "최씨" 성을 가진 이는 단단하고 매섭다는 것이다역사적인 인물들로 볼 때, "최영"을 제외하더라도 최씨들의 고집을 나타내는 위인들이 있다.

고려시대 무신정권을 이끌던 "최충헌(崔忠獻1149~121970)"과 그의 가문은 "강화도"로 피난하면서도 "몽고군"에 저항하였다물론 항복은 곧 "최씨 정권의 몰락"이라는 것도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전국토가 유린되는 자포자기할 상황에서도 고집을 세운 것이다.

"최치원(崔致遠857~90851신라 말기 문신문장가)"은 신라의 부정부패에 반감을 느껴 관직을 버리고 유랑생활을 하게 된다. 반골기질로 현실과 타협할 줄을 몰랐던 것이다.

구한말 "최익현(崔益鉉1833~190774정치인독립운동가의병장)"은 일본 수교와 단발령에 강하게 반발하는 상소를 올렸고, 의병활동을 하다 체포되었을 , 일본이 주는 음식은 아예 먹지도 않았을 만큼 기질이 강했다.

현대에서도 "파스퇴르유업의 최명재(1927~2022951987파스퇴르 설립한국시장에 최초로 저온살균공법을 도입2011년 롯데제과에 흡수합병)""민족사관학교"라는 것을 세워,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외골수 물로 정평이 나 있다.

물론 이런 몇몇 인사들이 최씨의 고집을 명확하게 드러낸다고 할 수 없고, 다른 성씨들의 인물에도 이에 못지않은 고집과 성품을 가진 인물들이 있다그러나 우리가 최씨가 고집이 강하고, 외골수적인 성품을 지녔다는 뜻의 속담들이 나온 것은 분명 오랜 경험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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