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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고대 • 불가사의 (7대) • 로마 • 신화

고대 이집트 ⑤ 이집트 왕조ㆍ투탕카멘ㆍ람세스2세ㆍ클레오파트라

by 당대 제일 2023.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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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는 BC 4000년경, "나일강" 유역에 2개 왕국(상ㆍ하 이집트)가 발생하였고,  BC 3100년경, "메네스"가 "상ㆍ하 이집트"를 통일하면서, 본격적인 "이집트 왕조"가 시작된다. (이집트 통일 왕조 : 고왕국ㆍ중왕국ㆍ신왕국)

 

1. 피라미드 (Pyramid)파라오 (Pharaoh)

① 피라미드 (Pyramidㆍ피라미스(고대 그리스어) ㆍ메르라 (이집트어))

죽은 "파라오"가 편히 쉴 수 있도록, 한줌의 햇빛도 들지 않도록 설계되었고, 침실ㆍ식탁ㆍ은쟁반ㆍ보물로 채워졌다.

파라오 (Pharaohㆍ왕ㆍ최고 통치자)

"고대 이집트 왕"을 가리키는 말, 고대 이집트어로 "태양신의 아들"이란 뜻"파라오"를 영원히 모시기 위해, 시신에 약품을 발라, 썩지 않는 "미이라"를 만들었다 1번째 왕은 "메네스"라고 하는데, "파라오"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파라오"라는 말은 "크고, 위대하며, 태양신의 아들"이라는 "이집트 식 왕의 호칭"으로, 아무한테나 쓸 수 있는 호칭이 아니라, "왕"에게만 사용 가능한 말이다. (가끔, 왕비ㆍ왕의 어머니에게 부치기도 한다) 

"서양ㆍ이집트ㆍ아랍" 쪽은 사람 이름이 몇 개 되지 않기 때문에, 같은 나라에서 같은 이름을 쓰는 왕이 있을 경우, 이들을 구별하기 위해 "왕조"와는 상관없이, 1번째부터 "1세ㆍ2세" 붙인다.  "세티 1세"는 "세티"라는 이름으로 "왕(파라오)"가 된 1번째 왕이고, "람세스 2세"는 "람세스"라는 이름을 가진 왕 중에서 "2번째"라는 뜻이다.

2. 요 약 (이집트 왕조) 

BC 2686?~2181 (3~6 왕조ㆍ고 왕국 : 최초의 융성기ㆍ피라미드 시대) BC 2181?~2040 (7~11 왕조1 중간기)   BC 2040?~1750 (11~12 왕조중 왕국)  BC 1750?~1570 (13~17 왕조2 중간기)

BC 1567?~1085 (18~20 왕조신 왕국 : 최고의 전성기ㆍ최대의 국토ㆍ화려한 문화)  BC 1070?~664 (21~25 왕조3 중간기)  BC 664?~525 (26~31 왕조말기 왕조)  BC 525~305 (아르게아스 왕조알렉산드로스 3)

BC 305~30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BC 30~ AD 640 (로마제국 지배) → 640~963 (이슬람 시대) → 963~1171 (파티마 왕조시대) 1250~1517 (맘루크 왕조시대) → 1517~1798 (오스만 제국시대) 1798("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으로, 잠시 "프랑스 영향권"에 들어가기도 한다.

3.  주요 파라오 (Pharaoh)

 투탕카멘 (Tutankhamenㆍ? ~ ?ㆍ재위 BC 1361~1352ㆍ향년: 19세?ㆍ키 167cm: 제18왕조 파라오 / 처 : 안케세나멘 (아크나톤ㆍ네페르티티 왕비(투탕카멘 이모ㆍBC 1370~1330) 사이 3째 딸

"투탕카멘"의 무덤은 1922년에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투탕카멘"은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투탕카멘"은 고대 이집트 18왕조 12대 왕으로서, 9살에 즉위하여, 18세에 요절했다.  재위기간이 겨우 9년에 불과하며 훌륭한 치적을 남긴 것도 아닌데, 유명해진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왕가의 계곡"에 있는 "투탕카멘의 저주"로 유명해 진 것이다. "왕을 방해하는 자에게 죽음의 날개가 펼쳐지리라." 

"아크나톤"의 아들로, 출생 시 이름은 "투탕카텐(아텐의 살아있는 이미지)"이었다. 재위 2년, "투탕카멘(아멘의 살아 있는 이미지)"으로 개칭하였다. 18살에 "투탕카멘"은 자기 어머니에게 독살당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아마르나"에서 왕자로 살아가던 그는 "아크나톤(아버지)ㆍ스멘크카레(삼촌)"이 죽은 후, "멤피스"에서 9세의 어린 나이로 "파라오"의 자리에 오르고, "아이(행정관)ㆍ호렘헤브(장군)"가 보좌하였다. 또한 이미 출산 경험이 있는 사촌 누나인 "안케세나멘"과 결혼하게 된다.

 람세스 2세 (람세 2세ㆍ라메세스 2세ㆍBC 1303~1213ㆍ재위 BC 1279~ 1213ㆍ90세): 신 왕국 19왕조 파라오

"람세스"란 이름은 "라"에 의해, 태어났다는 의미를 가진 "라 메스 시스"의 "그리스어 음"이다. 가장 유명한 왕인 "람세스 2세"는, 신전이 많으며, 세계 역사 최초의 "카데슈 전투"에서 "힛타이트 군"과 맺은 "조약서"가 "힛타이트"에서 발견되면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세티 1세ㆍ투야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 "세티"는 "람세스 2세"에게 "람세스 1세"의 힘을 이어받으라는 뜻으로 "람세스"라고 이름을 지었다.  치세 동안, "이집트"는 "리비아ㆍ누비아ㆍ팔레스타인"까지 세력을 확장해 번영하였다. 그는 호전적인 "히타이트"와 전쟁에서 명성을 얻었는데, 그 후 그들과 평화롭게 되었다.

 네페르타리 (NefertariㆍBC 1301?~ 1255ㆍ54세): "람세스 2세"의 부인

"네페르타리"는 "완벽한 아름다움"이라는 뜻이다.  "람세스 2세"의 부인 중 1명으로, "람세스 2세"가 매우 총애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녀를 위해, "아부 심벨"에 따로 "신전"을 만들었다 한다.  근처에 그녀의 무덤이 있는데, "네페르타리의 무덤"은 "왕비의 계곡(Valley of the Queens)" 중 가장 크고 화려한 무덤이다.  딸 "메리타멘(Meritamen)"을 두었고, "네페르타리"가 죽자, 아버지 "람세스 2세"의 왕비가 되었다.

 클레오파트라 7세 (CleopatraㆍBC 69~ 30ㆍ재위 BC 51~ 30ㆍ39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여성 파라오"로, 지식인인 "파스칼" 조차도 "그녀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역사가 바뀌었다"고 할 정도로, 남성들에게 성적인 관점에서 평가받았다.  그리고 생전에도 "옥타비아누스"로부터, "로마를 짓밟는 이집트 여인" 취급을 받은 일이 있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가 "강대국 로마 제국"을 이용하여, 나라를 보전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그녀의 진짜 모습은 남성들을 유혹하는 "요녀"가 아니라, "궁전 밖의 세계"를 다스리고자 한 "여걸"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알렉산드리아 3세"의 장군인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세웠고, 로마의 "옥타비아누스"에게 멸망한다.  이것으로 "이집트 고대사"는 막을 내리고, "로마제국"이 시작되며, "로마제국"의 한 속주로 전락한다.

남편 ① : 클레오파트라와 31살 차 (BC 48년 만남~44년)  / 율리우스 카이사르 (BC 100~44ㆍ향년 56세): 고대 로마의 정치가ㆍ장군ㆍ작가            남편 ② : 클레오파트라와 14살 (BC 42년 만남~30년)  /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BC 83~ 30, 향년 53): 로마 공화정 시대의 정치가장군             자녀 ④ : 카이사르 : 아들 ① : 프톨레마이오스 15세 (카이사리온)  / 안토니우스 : 아들 : 알렉산드로스 헬리오스프톨레마이오스 필라델푸스  /  딸 ① : 클레오파트라 셀레네 2세

4. 이집트 왕조ㆍ문명의 시작 

BC 4400년경 "나일강"에서부터 시작 → 이집트의 흥망성쇠 (고대 지중해 일대의 가장 부유한 식량원)"나일강"은 매년 여름, 시계처럼 정확한 시기에 홍수범람이 발생강에 잠겼던 비옥한 흙에 작물을 심고, 정확한 시기에 수확하는 것이 수천년 동안 지속  BC 4000년경, "나일강" 유역에 2개 왕국(하 이집트)가 발생  BC 3100년경, "메네스" "하 이집트"를 통일하면서, 본격적인 "이집트 왕조"가 시작 (이집트 통일 왕조 : 고왕국ㆍ중왕국ㆍ신왕국)

① 고 왕국 : 3~6 왕조 (BC 2686?~ 2181) : 최초의 융성기ㆍ피라미드 시대

파라오의 권위가 높아져, 이전 왕들의 묘에 비해 60배에 달하는 규모로 피라미드가 거대해 진다. 가장 유명한 피라미드 : 쿠푸왕 피라미드(기자ㆍBC 2550ㆍ스핑크스)

② 제1 중간기 : 7~11 왕조 (BC 2181?~ 2040)

갑작스런 가뭄으로 나일강에 기근이 생기면서, 6왕조(페피2세)를 마지막으로 종료된다. 이후 혼란해진 "이집트"는 민중의 반란ㆍ봉건 제후의 출현이 반복되면서, 146년간 27명의 "파라오"가 난립하게 된다.

③ 중 왕국 : 11~12 왕조 (BC 2040?~ 1750)

"멘투호테프 2세"가 통일에 성공하면서, "제1 중간기"를 수습한 것"중 왕국"시대의 수도는 "멤피스"보다 훨씬 상류에 위치한 "테베"였다 "아문ㆍ라"를 합친 최고의 신 "아문라"신이 탄생하면서, "파라오"들은 그를 위한 신전을 지었고, 사제 계급의 힘이 강해지기 시작한다.  "아시아"와 교류하면서 새 문물이 들어오고, "리비아ㆍ시리아ㆍ누비아"등을 향해 군사원정이 이뤄진다.

④ 제2 중간기 : 13~17 왕조 (BC 1750?~ 1570)

BC 17C 경, "힉소스 인"들에게 정복당한 시기"힉소스 인"들 역시 100년 정도 존속한 "이집트 왕조"로 인정된다 (힉소스 : 우수한 군사기술(청동무기ㆍ불의 전차 등)을 가지고, 이집트 북동쪽으로부터 나일 강 델타 지역의 동부를 침략하여, 고대 이집트의 제2중간기를 개창한 아시아 계통의 호전적인 인종)

⑤ 신 왕국 : 18~20 왕조 (BC 1567?~ 1085): 최고의 전성기ㆍ최대의 국토ㆍ화려한 문화

군사적 확장을 지속해 나갔고, 금ㆍ노예를 얻기 위해 남쪽으로 진출땅을 가장 많이 넓힌 사람은 여자 파라오 "하트셉수트"BC 1479, "하트셉수트"는 군사적 행동이 아닌 무역을 통해, 이집트를 확장했다 "아문 신"의 신탁에 영감을 받아, 홍해를 넘어, 소말리아 지역과 해상교역을 시도했고, 이때 들여온 귀한 "유향ㆍ몰약"은 "종교의식ㆍ미이라 방부처리"에 사용된다.  파라오 "아크나톤(이집트판 김정일)"은 공포를 조장하는 경찰세력을 거느렸고, 일종의 대규모 개인숭배를 조장했다.  이집트를 위한 새로운 신 "아톤"을 창조하여, 종교개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 후, 9살에 파라오가 된 "투탕카멘"은 "아톤" 신으로부터 등을 돌린다. 그는 뼈 질환ㆍ말라리아 등의 합병증ㆍ입천장이 갈라진 구개파열이라는 기형을 앓다가,19살의 나이로 요절한다.  소년왕 "투탕카멘"이 유명한 이유는 1922년 영국인들에 의해, 온전한 무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90살이 넘던 "대신관 출신"의 "람세스 1세"가 왕위에 오른 뒤에, "세티", 그리고 아들 "람세스 2세"부터 "람세스 가"가 11세까지 이어진다.  "람세스 1세"는 "이집트 왕조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람세스 2세(제19왕조)" 때, 110년간 이어진 "이집트 최전성기"를 맞는다.  66년간 재위하며, 사상 전무후무한 많은 기념물을 세운다.  "룩소르 신전ㆍ아부심벨 진전(4개의 거대한 좌상)" 등 수많은 거대한 석상을 남긴다.  그는 "오리엔트"의 양대 강자로, 아시아의 새로운 강적 "히타이트"에 맞서서, 대대적인 아시아 출병에 나선다. 결국 "히타이트(메소포타미아 지역인)"과 강화조약을 맺었고, 이후 40년간 "오리엔트" 세계는 평화를 맞이한다.

⑥ 제3 중간기 : 21~25 왕조 (BC 1070?~ 664)

이집트는 "바다 민족"이라는 이방인의 공격을 받았다가, 1세기가 지나서야 겨우 축출한다.  이 "바다 민족 사태"가 완료된 이후, "상ㆍ하 이집트"로 분열되고, 혼란기가 온다.  이때, "리비아 인ㆍ누비아 인ㆍ아비시니아 인"의 침공을 받으며, 4C 동안 외국인의 지배를 받는다.

⑦ 말기 왕조 : 26~31 왕조 (BC 664?~ 525)

"아시리아"의 도움으로 독립에 성공한 "26왕조"는 "사이스(나일 삼각주 서쪽)"을 중심으로, 100여 년 간 다스린다.  "30 왕조"에서 페르시아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인 "아케메네스 제국(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멸망한다.  "아케메네스 제국"은 3개 대륙에 걸친, 대제국이었다.  BC 332년까지 이집트를 다스렸는데, 순수 이집트계 왕조ㆍ문명은 억압을 당했고, 이 시점부터는 사실상 "순수 이집트 문명"에서는 멀어지게 된다.

⑧ 아르게아스 왕조 (알렉산드로스 3세): BC 525~305

"다리우스 3세(아케메네스 왕조의 마지막 왕)"가 "알렉산드로스 3세(마케도니아(고대 그리스 북부왕국)의 왕"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알렉산드로스 3세"는 "페르시아 제국" 정복 후, "이집트"까지 이르는 대 제국을 만들고, "그리스 문화"가 새로운 제국 전역에 퍼지게 된다. (헬레니즘 시대)

⑨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 BC 305~30

"알렉산드로스 3세"가 사망한 후, 최측근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푸른 눈의 파라오)" 왕조시대가 시작된다. 이집트인들이 "프톨레마이오스"를 파라오로 인정한 이후, "알렉산드리아"를 수도로 삼아, 약 300년간 이집트를 다스린다.  다시 전성기를 맞게 되는데, 수도 "알렉산드리아"는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 이자, 고대 가장 번영한 대도시였으며, 고대 가장 큰 도서관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세계7대 불가사의인 높이 140M 인 "파로스 등대"까지 선진 문명을 이룩한다.  BC 2C 쯤, 군사력 유지에 한계가 온 이집트는 동맹국 "로마"에 의존하게 된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왕인 "클레오파트라 7세" 사망 이후, 왕가는 끝이 났고, "파라오"의 명맥은 완전히 끊기게 되고, 이집트는 "로마의 속주"로 전락한다.

⑩ 로마제국 지배 : BC 30~ AD 640

이집트는 "로마"에 편입된 이후에도, 동방의 중심지이자, 제국의 가장 부유한 숙주로 중요한 위치였다.  "로마제국"의 중요한 곡창지대로, 밀ㆍ세공품ㆍ파피루스ㆍ향수 등을 공급한다.

⑪ 이슬람 시대 : 640~963

이집트를 "이슬람 군"이 정복한다.  전통 문화에, "로마ㆍ그리스ㆍ기독교ㆍ이슬람" 문화까지 뒤섞이며, 현재 이집트 문화 뿌리를 다진다.  이집트를 지배한 "아무르"는 수도 "알렉산드리아"에 매력에 푹 빠져있었지만, "나일강"이 범람할 때마다, "이슬람 제국"으로 가는 길이 두절되는 것을 보고, "멤피스" 근교에 "푸스타트"라는 신도시를 세운다. 이후 3세기 동안, 이집트의 수도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이슬람 제국"의 "우마이야 왕조ㆍ아바스 왕조"를 거친다.  아랍인들은 오랜 기간, 이집트에 정착했고, "콥트 교도들(이집트의 기독교 신자)"는 지배계층에 오르기 위해, "아랍어"를 배우고,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시작한다.

⑫ 파티마 왕조 시대 : 963~1171

10C 초, 극심한 기근이 들어, 군사력이 약해지자, "튀니지"에 세워진 새 왕조인 "파티마 왕조"가 이집트를 차지한다.  "파티마 왕조"는 자신들과 같은 "알리"의 후손만이 "칼리파(이슬람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독자적인 "칼리파" 제도를 운영하면서, 이집트를 넘어, "시리아ㆍ시칠리아"까지 정복해 나갔고, 결국 중동은 "파티마 왕조(서부)ㆍ아바스왕조(동부)"로 양분된다.  969년, "파티마 왕조"는 "이집트"를 새 중심지로 삼게 된다.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도시 "카이로"를 수도로 삼는다.  "카이로"는 대도시화 되고, "알 아즈하르(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도 이때 들어서게 된다.  11C 이후, "파티마 왕조"는 계속된 "십자군 전쟁"에 의해, "예루살렘"등을 점령당하면서, 점차 약화된다.

⑬ 맘루크 왕조 시대 : 1250~1517

결국 "파티마 왕조"는 "십자군 전쟁"의 영웅인 "누르 알 딘ㆍ살라딘"에 의해 종식되고, 새롭게 "아이유브 왕조(1171~ 1250)"가 세워진다.  이후 1250년부터, "맘루크 왕조" 시대가 시작된다. (맘루크 : 노예)  이슬람교로 개종한 "노예 군인들"의 "맘루크 부대"가 쿠데타에 성공한 것이다.  1260년, "몽골 제국군"이 세계정복을 재개하면서, "이란ㆍ이라크"를 정복하고, 이집트를 침공하러 쳐 들어오면서, "아인 잘루트 전투"가 시작된다.  "맘루크 왕조"는 "몽골 제국군"을 격파하였고, 이 전투이후 "몽골 제국"은 분열되고 만다.  이후 "맘루크 왕조"는 이슬람의 실질적 종주국으로 "지중해 상권"을 장악하면서, 크게 번영한다.  15C 초, "포르투갈"이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면서, "인도양 중개 무역"을 하던 이집트 상업이 타격을 입게 된다.

⑭ 오스만 제국 시대 : 1517~1798

1517년, "맘루크 왕조"는 "동유럽ㆍ페르시아"를 정벌하고 돌아온 "오스만제국 셀림1세"에게 정복당한다.  "오스만 제국"은 이미 대포ㆍ머스킷 소총으로 무장해, "동로마 제국"을 박살낸 뒤였기에, 기병중심의 "맘루크"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오스만 제국"의 속주가 된다.  시간이 가면서, "오스만 제국"의 지배가 약해지면서, 남아있던 "맘루크"가 다시 득세하게 된다.

⑮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으로, 잠시 "프랑스 영향권"에 들어가기도 한다.

짧았던 "프랑스 점령기간" 동안, "프랑스 민중혁명사상"이 이집트로 유입되면서, 이집트 "민중봉기"가 발생한다.

 이집트 마지막 왕조 : 무함마드 알리 왕조

1805년, "무함마드 알리(오스만 제국의 이집트 총독ㆍ근대 이집트 아버지)"의 등장  이집트 민중 혁명과 지지를 등에 업고, 총독이 됨 1250년부터 이집트를 지배한 "맘루크" 세력을 숙청하고, 군대를 기반으로, 대대적인 근대적 개혁 단행

1869년 : 수에즈 운하 개통 : 최초로 바다와 바다를 잇는 세계 최대의 운하(192km) → 정부 재정 상태는 거의 파산상태에 빠져, 결국 "수에즈 운하"를 탐내던 "영국"에게 주식을 판다. → "수에즈 운하" 경영권을 손에 쥔 "영국"은 이집트 내정에 깊게 개입하기 시작 → 1914년 영국은 "왕령 식민지"로 병합하려고 시도 → 격렬한 반대로 무산, 그러나 영국의 "완전한 보호령"이 됨 → 이때 세계의 "민족자결주의" 열풍으로, "와프트 당(자유주의 정당)"이 "독립혁명(1919, 이집트 혁명)"을 일으키면서, 1922년 마침내 "이집트 왕국"으로 독립 → 하지만 1936년에도 "수에즈 운하"에는 영국군이 상주한 상태였고, "2차 대전" 기간에도 영국에게 끌려 다니면서, 독립군의 지위를 누리지 못함.

"2차 대전" 종결 후, "영국"이 "팔레스타인"에서 손을 떼자, "유대인ㆍ아랍인"이 서로 차지하려고 충돌 발생 → "이스라엘 독립선언"에 반발한 "이집트ㆍ시리아ㆍ레바논ㆍ이라크ㆍ요르단"이 "아랍연합군"을 결성하여, 공격을 개시하니,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한다. 보잘 것 없는 전력의 "이스라엘 군"과 영국식 교육을 받은 "아랍5개국 정규군"의 싸움이었지만, "이스라엘"은 절박함으로 승리하고, "아랍연합군"은 서로의 불신으로 분열하고, 패배한다. → 당시 이집트 국왕 "파루크 1세"는 사치에 빠져있었고, 나라도 시끄러웠다.  이에 군인 출신 "나세르"가 쿠데타를 일으켜, 1956년 대통령에 취임한다.  결국 이집트에 "군주제"는 사라지고, "공화국"의 역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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