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三國遺事) : 처용랑 (處容郞)과 망해사 (望海寺)
"처용의 아내는 매우 아름다웠다. 그래서 역신이 그녀를 탐냈다. 역신은 밤마다 사람으로 변신하여, 처용의 집에 몰래 들어가, 그의 아내와 동침하곤 했다"
"처용랑 (處容郎)ㆍ역신 (疫神)" 이야기는 신라 49대 "헌강왕 (憲康王ㆍ재위: 865~886)" 때의 설화로, "삼국유사"의 "처용랑 망해사 (處容郞 望海寺)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설화는 신라의 호화로운 시대적 배경과 함께, "초자연적인 존재와의 만남ㆍ질병을 물리치는 주술적인 힘을 가진 처용가 (處容歌)ㆍ처용무(處容舞)의 기원"을 설명해 주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 설화는 "신라 헌강왕 시대"의 풍요로움과 함께, 인간의 "지혜ㆍ관용"이 초자연적인 존재마저 감화시키는 힘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신비롭고, 교훈적인 이야기입니다.
1. 처용랑 (處容郎)의 탄생ㆍ헌강왕의 시대
① 평화롭고, 풍요로운 "헌강왕" 시대
신라 "헌강왕 (憲康王ㆍ재위: 865~886) 시대"는 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리던 시기였습니다. 백성들은 부유하여 집집마다 기와를 얹고, 숯으로 밥을 짓는 등 생활이 넉넉했고, 거리는 늘 노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② "용왕"과 만남ㆍ망해사 (望海寺)
어느 날, "헌강왕"이 "개운포 (開雲浦ㆍ현, 울산 울주군 일대)"로 나들이를 갔습니다. 이때 갑자기 짙은 안개가 끼고, 바람이 불어, 길이 막히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왕이 신하에게 연유를 묻자, "일관 (日官)"이 "이는 동해 용왕 (東海 龍王)의 조화이니, 마땅히 좋은 일을 행하여 풀면 될 것입니다"라고 아뢰었습니다. 왕이 그 말을 따라 그 자리에 "절"을 짓도록 명하자, 신기하게도 즉시 구름과 안개가 걷혔습니다. 이에 왕은 그곳을 "개운포"라 이름 짓고, 절을 "망해사 (望海寺)"라 불렀습니다.
③ "처용 (處容)"의 등장
"동해 용왕"은 왕의 덕에 기뻐하며, 7명 아들을 거느리고, 왕 앞에 나타나 춤을 추고 풍악을 연주했습니다. 이들 중 한 아들이 "왕"을 따라, "서울 (경주)"로 들어와 왕의 정사를 돕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처용"이었습니다. 왕은 "처용"을 특별히 여겨,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삼게 하고, "급간 (級干)"이라는 벼슬까지 주어, 인간 세상에 머물게 했습니다.
2. 아내를 범한 자에 대한 관용 : 처용랑 (處容郎)ㆍ역신 (疫神)
이야기의 핵심은 "처용의 아내"가 지닌 뛰어난 미모와 그로 인해 발생한 사건입니다.
① "처용 아내"의 미모ㆍ"역신"의 욕심
"처용의 아내"는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반한 "역신 (疫神ㆍ역병을 퍼뜨리는 신)"이 사람으로 변신하여, 밤에 몰래, "처용"의 집에 숨어들어, 아내와 동침했습니다.
② "처용"의 목격ㆍ노래
"처용"은 밤늦도록 바깥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자기 잠자리에 "역신"이 아내와 함께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분노하고 싸움을 벌였을 상황이지만, "처용"은 놀랍게도 화를 내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물러나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③ 향가 "처용가 (處容歌)" 전문 (해독본)
동경(東京) 밝은 달 아래, 밤늦게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내해인데, 둘은 뉘해인고, 본디 내해다마는, 빼앗겼으니 어이하리. (東京明期月良 夜入伊遊行如可 入良沙寢矣見昆 脚烏伊四是良羅 二于隱吾羅可吾隱 奪叱下爲于本乎隱 何如爲理古)
④ "역신"의 탄복ㆍ맹세
"처용"의 노래를 듣고, 춤을 추는 모습을 본 "역신"은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며, "처용"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제가 공(公)의 아내를 사모하여 지금 이처럼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러나 공께서 이를 보고도 노여움을 나타내지 않으시니, 그 관용과 넓은 마음에 크게 감동하고 아름답게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맹세코 이후로는 공의 형상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이로 인해, 나라 사람들은 역병을 피하기 위해, "처용"의 얼굴 형상을 문에 그려 붙여, 삿된 기운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이하는 풍습이 생겼다고 합니다.
3. "처용 설화"의 의미ㆍ가치
① 관용과 포용ㆍ정신
"처용"이 자신의 아내를 범한 "역신"을 보고도, 분노 대신 "노래ㆍ춤"으로 대범하게 대처한 것은 "관용ㆍ포용"의 정신을 상징합니다. 이는 "갈등ㆍ대립"보다는 "이해ㆍ화합"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고대인의 지혜를 보여줍니다.
② 벽사 (辟邪ㆍ나쁜 기운을 물리침)ㆍ주술
"역신"이 "처용"의 모습을 보고, 물러나겠다는 맹세를 한 이후, "처용"의 형상을 문에 붙여 액운을 막는 풍습이 생겨난 것은 "벽사 (나쁜 기운을 물리침)ㆍ진경 (좋은 기운을 불러들임)"의 주술적 의미를 가집니다. 당시 "전염병" 등 예측 불가능한 재앙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와 이를 극복하려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처용무"라는 무형문화유산으로도 계승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③ 왕권의 신성성
"처용"이 "동해 용왕의 아들"이라는 설정은 "왕의 신성성"과 연결됩니다. "헌강왕"이 "용왕"을 만나고 그 아들을 데려온다는 이야기는 "왕"이 초월적인 존재들과 교감하며, 나라를 평안하게 다스리는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④ 사회 통합의 상징
"역신"을 전염병으로 해석할 때, "처용이 역신을 물리친다는 것"은 백성들의 삶을 위협하는 질병과 재앙을 극복하고, 사회를 안정시키려는 지배층의 노력을 상징합니다. 또한, "처용"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랍 상인이나 혹은 신라로 편입된 이주민 세력의 일원"이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어, 이 설화가 당시 신라 사회의 다양한 민족적 요소와 문화적 포용을 반영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⑤ 향가의 정수
"처용가"는 현전하는 향가 중에서도 그 내용의 "독창성ㆍ문학적 아름다움"이 뛰어나며, 고대인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문학적 자료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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