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심덕 (尹心悳ㆍ1897~1926ㆍ29세)"은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가수로, "사의 찬미(한국 최초 대중가요)"를 불렀다. 1926년, "레코드 취입"을 위하여, "오사카"에 있는 "닛토(日東) 레코드 회사"에 갔다가, 08.03일에 "김우진 (1897~1926ㆍ29세ㆍ유부남(부인ㆍ자녀 있음)ㆍ극작가ㆍ와세다 대학 학생)"과 함께,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가는 연락선 "도쿠주마루(德壽丸)에 탑승했으며, 4일 새벽 4시, "쓰시마 섬"을 지나던 중, 자살하였다.
1. 윤심덕 (尹心悳ㆍ1897~1926.08.04ㆍ향년 29세)
일제 강점기 성악가 (활동 : 1924~1926 (3년))ㆍ한국 최초의 "소프라노"ㆍ가수ㆍ"사의 찬미(한국 최초 대중가요)"를 불렀다. "나혜석(화가)"와 함께, 1920년대의 "신(新)여성"을 대표하는 인물ㆍ키가 크고, 목이 긴, 서구 형 외모에,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 출 생 : 평양 • 사 망 : 현해탄 (쓰시마 섬을 지나던 중) • 사 인 : 자살ㆍ애인 김우진(1897~1926ㆍ29세ㆍ유부남(부인ㆍ자녀 있음)ㆍ극작가ㆍ와세다 대학 학생)와 투신 정사 (情死)
• 학 력 : 숭의여학교 (평양) →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 중퇴 → 도쿄 음악학교 (최초의 조선인 학생ㆍ조선총독부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 • 장 르 : 서양 고전음악ㆍ대중가요
"평양"에서 4남매 가운데 2째 딸로 태어났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진남포"로 이주하여 자랐다. 아버지 "윤호병"과 어머니 김 씨는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 "신교육"을 받도록 했다. 윤심덕은 "숭의여학교"를, 언니ㆍ여동생은 "이화학당"을, 남동생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윤심덕의 형제들은 모두 음악에 재능이 있었다. 여동생 "윤성덕"은 "피아니스트"이고, 남동생 "윤기성"은 "바리톤 성악가"였다.
1920년, "조선기독교 청년회연합회"에서 주최한 "도쿄 음악학교 동창회의 음악회"에서 "피아노 듀엣 곡"의 일종인, "네 손을 위한 피아노 작품"을 연주했던 사람이 "윤성덕"이다. "평양"의 "숭의여학교"를 졸업한 후, 처음에는 의사나 교사가 되기 위해,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ㆍ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에 다녔다가, "음악 공부"에 뜻을 두었다. "조선총독부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도쿄"로 건너간 뒤, "아오야마가쿠인"을 거쳐, "도쿄 음악학교"를 졸업했다. 그녀는 "도쿄 음악 학교" 최초의 "조선인 학생"이었다. 활달한 성격이라, "도쿄"의 남자 유학생들과 잘 어울렸다. 1921년, 유학생들이 계획한 순회공연에 참여했다가, "김우진"을 만나게 되었다.
1924년, "도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였고,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로서 전성기를 맞았다. 한국 최초의 "대중가요"로 꼽히는 "사의 찬미"를 녹음하여,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교사로 임용되지 않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혼담이 깨지는 등, 개인적인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았다. "부호의 첩이 되었다"는 스캔들로 도피까지 한 끝에, 애인 "김우진"의 권유로 "토월회"에 들어가 배우로 일하게 되었다.
2. 애인 김우진과 정사( 情死ㆍ연인끼리의 동반 자살)
1926년, "레코드 취입"을 위하여, "오사카"에 있는 "닛토(日東) 레코드 회사"에 갔다가, 08.03일에 "김우진"과 함께,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가는 연락선 "도쿠주마루(德壽丸)에 탑승했으며, 4일 새벽 4시, "쓰시마 섬"을 지나던 중, 자살하였다. 당시 "동아일보(1926.08.05.일자 사회면)"에서 이들의 자살을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지난 3일 오후 11시에, 하관(시모노세키)을 떠나, 부산으로 향한 관부연락선 덕수환(배 이름)이 4일 오전 4시경에 쓰시마 섬 옆을 지날 즈음에, 양장을 한 여자 1명과 중년 신사 1명이 서로 껴안고 갑판으로 돌연히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였는데, 즉시 배를 멈추고 수색하였으나, 그 종적을 찾지 못하였으며, 그 선객 명부에는 남자는 전남 목포시 북교동 김우진이요, 여자는 윤심덕이었으며, 유류품으로는 윤심덕의 돈지갑에 현금 140원과 장식품이 있었고, 김우진의 것으로는 현금 20원과 금시계가 들어 있었는데, 연락선에서 조선 사람이 "정사(情死ㆍ연인끼리의 동반 자살)"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더라."
3. 김우진 (金祐鎭ㆍ1897~1926.08.04ㆍ향년 29세)
일제 강점기 연극인ㆍ연극 이론가ㆍ1920년대 "한국 신극 운동"의 주도자ㆍ극예술 협회/ 동우회 순회연극단을 이끌었다. 작 품 : 정오(正午)ㆍ이영녀(李永女)ㆍ산돼지(희곡)
• 출 생 : 전남 장성군 • 사 망 : 현해탄 (쓰시마 섬을 지나던 중) • 사 인 : 자살 - 애인 윤심덕(1897~1926, 29세)과 투신 정사(情死)
• 학 력 : 목포 공립 보통학교 → 일본 구마모토 농업학교 →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1924) • 부 모 : 김성규(부농ㆍ장성 군수ㆍ목포에서 무안 감리)와 순천 박씨의 장남
한국 최초로 "근대극" 다운 "희곡"을 남겼으며, 서구의 "표현주의 문예이론"을 수용하는 한편, 이를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버나드 쇼의 사회 문제극"과 "스트린드베리의 표현주의 극"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희곡 작품은 1910년대 극의 주류였던 "가정극"의 문제의식을 깊이 받아들이고, 그 속에 담겨 있는 "개혁 의지"를 사회 현실적인 차원에서 확대하려는 두 갈래 양상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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