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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 일반 • 명리학

역사서 ⑦ 환단고기 (桓檀古記ㆍ단군세기ㆍ태백일사ㆍ1911)ㆍ계연수

by 당대 제일 2022.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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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에 출간된 한국의 고대 역사서(4)이며, 이른바 "동이족"에 대한 자부심과 그 위대함을 서술한 것이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상고시대의 정치종교를 서술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 책을 어떠한 관점에서 수용하는가에 따라 한국고대사에 대한 인식은 현저한 차이가 나게 된다. 진위 논란이 있으며, 북한학계 모두 그 내용이 "왜곡된 위서"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책을 "위서"로 간주하는 논자들은 초고는 빨라야 1949년 이후에 성립되었을 것이며, 그 뒤 그 소장자인 "이유립"이 이를 수정, 보충하여, 1979년 세상에 내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 구 성

4권의 각기 다른 시대에 쓰여진 기존 책을 하나로 묶어 탄생시켰다. 삼성기(三聖紀)단군세기(檀君世紀)부여기(北夫餘紀)태백일사(白逸史)

"범례"에 따르면, 1911년에 "계연수(桂延壽~1920평북 선천 출신)"홍범도(洪範圖)오동진(吳東)"의 자금지원으로, "삼성기(三聖紀)단군세기(檀君世紀)부여기(北夫餘紀)태백일사(白逸史)"각기 다른 4권의 책을 하나로 묶은 다음, 스승인 "이기(李沂)"의 교열(校閱)과 감수를 받고, "묘향산 단굴암"에서 필사한 뒤, 인쇄했다고 한다.

그런데 "계연수"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20년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때 "계연수"는 다음 경신년(1980)"환단고기"를 세상에 공개하라는 말을 제자인 "이유립(李裕岦)"에게 남겼다고 한다그래서인지 1979, 수십 부가 영인된 뒤, 1982"일본인 가시마"가 일역(日譯)하고 원문을 게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세간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판본은, "이유립"이 복원한 1979"영인본(광오이해사 발행)"이다"한말~ 일제강점기 초""대종교"가 경전으로 채택한 "삼일신고"1975년에 채택한 "천부경전계경"이 포함되어 있다.

2.  내 용

삼성기 (三聖紀)

"환웅"이라 불리는 왕이 다스린 1565년 동안의 "배달국"과 그 전신이라 하는 3301년간의 "환국" 역사를 다루고 있다.

"안함로(安含老)"가 지은 것과 "원동중(元董仲)"이 지은 2종류가 있었다고 한다. 이 중 "계연수" 집에 소장되어 있던 "안함로" 저작의 "삼성기""상편"으로, "백관묵(白寬默태천의 진사)"로부터 얻은 "원동중""삼성기""하편"으로 하여, "삼성기전"을 구성하였다고 한다.

1457(세조3) "세조"가 팔도관찰사에 "수압령"을 내렸던 책들 가운데, 이 책도 등장한다

한국민족의 기원부터 시작하여 단군조선의 건국과 그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삼성은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을 가리킨다.

단군세기 (檀君世紀)

단군조선(1,09647)의 편년사역대 왕명재위기간치적 등도 서술되어 있다.

"이암(李嵒고려 말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 지냄)"1363, 관직에서 은퇴하여 저술했다고 한다. 이 책도 "계연수""백관묵"으로부터 얻었다고 한다.

부여기 (北夫餘紀)

"북부여"6명의 왕이 있었으며, 이것이 "고구려의 전신"이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樟)"이 저술한 것으로, 본디 "단군세기 합편"으로 전해지고 있었는데 삭주의 "이형식"의 집에서 얻었다고 한다.  "단군세기 합편" 가운데 "단군세기""백관묵"의 소장본과 글자 1자의 차이도 없이 일치했다고 한다.

태백일사 (白逸史)

"환국배달국삼한고구려발해고려"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4권의 책 가운데 가장 분량이 많다.

"단군세기"를 저술한 "이암"의 현손인 "이맥(李陌)"이 편찬하였다고 하는데, "계연수"의 스승인 "이기"가 소장했다고 한다.

우주의 생성을 주로 다룬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환인이 다스렸다는 환국의 역사를 적은 "환국본기(桓國本紀)"환웅의 치세를 서술한 "신시본기(神市本紀)", 단군이 나누었다는 진한(진조선)마한(막조선)번한(번조선) , 마한번한의 역사가 수록되어 있는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천부경(天符經)삼일신고(三一神攷) 등 단군신화와 관련된 경전교리에 관한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 고구려발해고려의 역사 가운데 민족의 자존을 드날린 대외관계사를 중심으로 서술한 "고구려본기대진국본기고려국본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3. "위서(僞書)"로 간주하는 논자들의 입론 (3가지)

"위서"로 간주하는 논자들은 초고는 빨라야 1949년 이후에 성립되었을 것이며, 그 뒤 그 소장자인 "이유립"이 이를 수정, 보충하여, 1979년 세상에 내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책이 편찬된 후 세상에 공개되기까지 약 70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것은 일반의 상식을 뛰어넘는 이례적인 일이다. 뿐만 아니라 "계연수이유립"이 이 책의 공개를 늦추었던 동기가 충분히 납득되지 않기 때문에 그 편찬시기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내용상 관직명인명지명용어 등에 있어 시간적 비약이 지나치게 심하다. 가령, 고구려의 교육기관인 "경당(扃堂)"이나 그 관직인 "욕살(褥薩)"등이 단군조선 때에도 그대로 등장하고 있거니와 "문화원시국가" 등을 비롯한 근대적 용어도 사용되고 있다.

일제시기에 소개된 "신채호의 상고사" 인식체계와 그 용어뿐 아니라, 광복 이후에 작성된 위서로 밝혀진 "단기고사(檀奇古史)" 영향까지 받고 있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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