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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 일반 • 명리학

역사서 ② 삼국유사 (三國遺事)ㆍ1281년 (고려 충렬왕 7)

by 당대 제일 2022.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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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三國遺事)"는 고려후기 승려인 "일연 (1206~128983)"이 고조선에서부터 후삼국까지의 유사 (遺事)를 모아, 편년체로 서술한 역사서로, 삼국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전해주는 소중한 자료로, 초월적이고 종교적인 입장을 견지한 "야사 (野事)"에 해당한다. "삼국사기 (三國史記)"는 고려후기 관료인 "김부식 (1075~115176세ㆍ묘청의 난 진압)"이 편찬한, 합리적이고 공식적인 입장을 취한 "정사 (正史)"이다.

 

1. 개 요 (59)

"삼국유사""삼국("신라고구려백제)"유사"를 모아서, "고려 충렬왕" 때 명승 보각국사(覺國師) "일연(一然)"1281(충렬왕7)"인각사(麟角寺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화산(華山) 있는 절)"에서 편찬한 삼국 시대의 역사서로, 52책이다.

한국 고대의 "신화민간설화"를 수집하고, 특히 "향가"를 비롯한 "불교" 관계 기사를 수록, "삼국사기" 함께, "고대 문학역사 연구"에 귀중한 문헌이 된다2003, "조선 초기 간행본(국보 306)중종 임신본(국보 306-2)"이 각각 국보로 지정되었다1927, "계명 제18(계명구락부 기관지)", "최남선"에 힘입어 "삼국유사" 전체를 게재하게 하였다.

① 일연 (一然ㆍ속명(본명)- 김견명(金見明)ㆍ1206~ 1289ㆍ 83세)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승려보각국사(普覺國師)- 무극(無極)/ 목암(睦庵)ㆍ 처음의 자는 회연(晦然), 나중에 일연(一然)으로 변경

1281, 왕에게 법설을 강조했고, 1283"국존(國尊)"으로 추대되어, "원경충조"의 호를 받고, 이 해에 "모 봉양"을 위해서 고향에 돌아갔다. 다음해 조정으로부터 토지 백경(百頃)을 받아 경상도 군위의 "인각사(麟角寺)"를 중건했고, 궁궐에 들어가서 "구산 문도회(九山門都會)"를 개최했다.

② 삼국유사 (三國遺事)

조선초 간행본(선초본(鮮初本)국보 제306) 수량 : 3~ 5, 1(조선시대)      소유 : 서울 종로구

3~ 5까지의 3권을 1책으로 묶은 것으로, 푸른 비단으로 개장(改裝)표지 위에 큰 글자로 "三國遺事"라는 제첨(題籤)을 하고, 작은 글자로 "乙亥 昔珠"라고 적혀 있다 본문은 책 전체를 일일이 배접하고, 내용이 손상된 경우는 보사(補寫)되어 있는데, 앞부분 6장이 결락된 3권은 50, 4권은 31, 끝의 4장이 결락된 5권은 26장으로, 도합 107장이다.

현재 학계에서 널리 이용하고 있는 1512(중종7), "경주"에서 간행된 "정덕본"보다 앞선, 14C (조선 초)에 간행된 현존하는 "삼국유사" 중 가장 빠른 "간본"으로 조선 초기 서지학 연구에 움이 되는 것은 물론, "정덕본 삼국유사"의 오류(誤謬)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규장각 본 (국보 제306-2) 수량 : 1~ 5, 2(조선시대)     소유 : 서울대

현재 학계에서 가장 널리 이용하고 있는 "정덕본 삼국유사"로서는 "낙장"이 없는 유일한 책이다 "황의돈 교수"의 소장이었으나, 뒤에 "통문관"을 거쳐, "서울대"로 이관된 것이다.

"삼국유사"의 왕력(王曆)과 권 제1~ 5까지 5권을 2책으로 묶은 것으로, "왕력(15)권제1 (37)2(49)3(56)4(31)5(30)발문(1跋文)" 등 총 219장이다 본문 전체를 일일이 배접하고, 표제(表題)에는 큰 글자로 "三國遺事" 묵서되어 있으며, 표지는 개장한 것으로 격자문양(格子紋樣)의 한지에 주사(朱絲)를 이용한 오침철장(五針綴裝)이다.

국내에 현존하는 다른 "중종 임신본"을 대상으로, "사주 광곽문자의 마멸도"를 비교한 결과, 이 책은 광곽문자의 결락마멸된 부분이 가장 적고, 인쇄도 선명하여, 16C 전기에 인쇄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면에서는 "중종 임신본" 간행 시, "선초본"의 오류를 수정한 것 못지않게 새로운 오류를 일으킨 것도 적지 않아, "조선 초기 간본"과 문자 상 많은 차이를 보인다.

성암고서박물관 (보물 제419-2서울 중구 태평로160-17) 수량- 2, 1(조선시대)

범어사 (보물 제419-3부산 금정구 청룡동 546) 수량 : 4~ 5, 1(조선시대)

고려대 (보물 제419-4서울 성북구 안암로 145)) 수량 : 3~ 5, 1(조선시대)

2. 내 용

"삼국가락국(駕洛國가야)"의 왕대연대, 고조선 이하 여러 고대국가의 흥폐신화전설신앙 및 역사불교에 관한 기록고승들에 대한 설화밀교(密敎) 승려들에 대한 행적고승들의 행정효행을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실려 있는 모든 "설화"는 삼국시대의 것이지만, 유동하던 이야기가 "고려시대"에 와서 문자로 정착된 것이다따라서 흘러 다니던 "설화"의 내용이 "일연"이라는 개인에 의해 작품화된 셈이므로, "고려 설화문학"으로 취급될 수 있다. 수록된 "설화"의 주제는 주로 "신라불교"를 중심으로 편찬되어 있다고대사 연구에서 "삼국사기"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단군 신화"를 비롯하여, "이두(吏讀)"로 쓰인 "향가(鄕歌) 14"가 기록되어 있어, 국어 국문학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향가""균여전(均如傳)"에만 11()가 수록되어 있을 뿐, 다른 전적에는 전혀 전하지 않기 때문에, "향가" 연구에서 "삼국유사"는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제왕운기"와 더불어 "단군 신화"를 전하는 유일한 기록으로, "고려 후기" 대몽항쟁 과정에서 급부상한 단군 신앙동족 의식을 반영한다.

3. 구 성 : 전체 5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5권 내에 다시 9편으로 나뉘어 있다.

"권수""편목 유형"에 따라 구분한 것이 아니라, "분량"에 따라 편의적으로 구분한 것이다1(第一)이 붙어 있는 것이 "왕력기이" 2편인 바, "왕력"은 후대에 덧붙여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왕력(王曆1 1): 간략한 "제왕의 연대기""중국 역대 왕조"를 기준으로, "신라고구려백제가야"를 대상으로 하여, BC 57~ 936"고려 태조"에 의한 후삼국시대의 통일 기 까지를 간적 폭으로 한 "연대표"이다.

기이(紀異1 1): 고조선위만조선삼한칠십이국낙랑군북대방남대방말갈발해가야부여이서국고구려백제 등 "고조선"으로부터 남북국시대 이전지를 다루고 있으며, 36조로 이루어져 있다.

기이(紀異2 2): 통일신라의 출현과 이후 역대 왕들 그리고 기타 등등을 다루고 있으며 총 24. 조선에서 고려 건국 이전까지 존재했던 여러 국가와 여러 왕(특히 신라왕) 대한 기이한 이야기를 연대기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전체 분량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방대하다.

흥법(興法3 3): 삼국에 불교가 처음 전래되고 흥성하는 과정을 기록했다. (8)

탑상(塔像3 4): 불교의 흥성에 따라 삼국(특히 신라)에 주목할만한 사탑이나 불상을 조성했던 사실을 기록했다. (29)

의해(義解4 5): 신라의 고승들이 보여주었던 뛰어난 행적을 통해 그들의 신앙심을 천명. (14)

신주(神呪5 6): 신라 밀교계통 고승들의 기이한 행적을 통해 불교와 무속의 융합 및 호국 불교의 모습 소개. (3)

감통(感通5 7): 불심이 남달랐던 일반 신자와 승려들의 기적 체험을 통해 부처님의 가피력을 천명하였다. (10)

피은(避隱5 8): 구도 과정에서 세상을 등지고 홀로 불법을 닦은 승려들의 행적. (10)

효선(孝善5 9): 세속적 윤리인 효와 불교적 윤리(윤회, 인과응보)의 결합을 통해 신라인의 효행 사례 기록. (5)

4. 삼국사기와의 비교

"삼국사기""정사"라면, "삼국유사""야사"에 해당한다.

이는 "일연""삼국사기를 정사"라고 존중하면서, "삼국사기"에 채 실리지 못한 "단군조선가야 이서국" 등의 기록과 수많은 불교 설화 및 향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삼국유사"는 우선 역사서술의 체재를 "삼국사기"와 달리하고 있다"정사"로서 편찬된 "삼국사기""기전체"로 되어 있으나, 개인의 저술인 "삼국유사"는 내용별로 편목을 나누어, 옛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다기술된 옛 이야기의 주제들은 체재상의 제약 없이 저자에 의하여, 자유로이 선택된 것들이다.

"삼국유사"의 편목 중에는 중국 고승전의 체제를 방불케 하는 것도 있긴 하지만, 반드시 그대로는 아니다가령 "탑상조" 같은 것은 그 예이다"삼국사기"도 일정한 목적 밑에 기사를 선택하고, 이에 대한 편찬자들의 해석을 가미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사"로서의 "기전체"의 성질상, 기존 사료의 재편성이 주된 작업이었다

이에 비해 "삼국유사"는 주제나 사료의 선정이 훨씬 자유로웠다논자에 따라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비교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같은 불교사서인 "고승전" 비교해야 온당하다고 하기도 한다.

시대를 구분하는 방법에서도 차이가 난다.

"삼국사기""상대중대하대"3시기로 구분하며, "성골"이 아닌 "진골"이 집권하기 시작한 "태종 무열왕"부터를 "중대"로 삼았고, 진골과 그 방계왕족간의 왕위다툼이 일어나기 시작한 "선덕왕 이후" "하대"로 보았다.

반면 "삼국유사"에서는 "상고(上古)중고(中古)하고(下古)"3시기로 구분하며, 불교식 왕명과 중앙관제를 도입하고 체제를 정비하기 시작한 "법흥왕""중고"의 시작으로 삼고, 중국식 시호를 받기 시작한 "태종무열왕" 이후를 "하고"로 보았다현대 역사학자들은 대부분 삼국사기의 3시기 구분법을 중심으로 "신라사"를 연구하는데, 삼국유사의 "상고중고"가 삼국사기의 "상대" 안에 포함되므로, "상고중고"를 추가로 구분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5. 조작설

"삼국유사"의 고조선 관련 기록에서 "환인(桓因)"이 원래 "환국(桓國)"이었는데, 일제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이 있다"문정창"의 주장에 따르면, 일제하에서 "삼국유사" 정덕본을 영인하면서, "이마니시 류"가 주동이 되어 한국의 역사를 날조하면서, "환인"으로 고쳤다는 것이다책에는 붓으로 덧칠하여, 원래의 글자를 바꾼 흔적이 있으며, 1904"일본 도쿄 제국대학"에서 출간된 "삼국유사"에는 해당 구절이 "석유환국(昔有桓國)"으로 인쇄되어 있다.

하지만 "삼국유사"와 같은 시대에 씌어진 "제왕운기"에서도 "환국"이 아니라, "환인" 또는 "상제환인"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 평양 조()"에서 인용된 "단군고기(檀君古記)"에도 "()"으로 표기되어 있다.

"정덕본"이 판각(1512)되기 이전에 편찬된 "단종실록(노산군일기) 단종 즉위년(1452) 06.28일 기록 "三國遺史, 有曰 "(古記)"昔有桓因庶子桓雄~ (삼국유사에 이르기를 (고기)에서 옛날에 환인의 서자 환웅이~)"로 기록되어 있어, "정덕본" 이전의 "삼국유사"에도 "환인(桓因)"으로 기록되어 음을 알 수 있다. 도쿄제국 대학본 "삼국유사"에도 "昔有桓國(석유환국)"에 이어 "謂帝釋也(위제석야)"라는 할주가 붙어 있어 "사람"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석"은 불교용어로 "제석환인"은 불교의 신인 "인드라"를 가리키는 용어이다그러므로 "환국"이라는 나라 이름은 그 자리에 들어갈 수가 없다.

"최남선""정덕본"보다 고본(古本)"송석하본(宋錫夏本석남본)"을 비롯하여, "광문회본(光文會本)순암수택본(順庵手澤本)"등을 교감하여, "정덕본의 "자가 원래 ""의 이체자(異體字)"+ "(자의 내부에 가 들어 있는 형태)로 새겨야 하는 것을 실수하여, ""으로 잘못 새긴 오자()임을 고증하였다.

"최남선"의 고증 이래, 한국사학계에서는 "환국"이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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