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安昌浩ㆍ1878~1938ㆍ60세)"은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실력양성론"과 함께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 실력을 키우는 것이 "독립의 발판"이라 생각하여, "점진학교(1899)ㆍ대성학교(1908)ㆍ난징 동명학원(1926)"을 설립하였다.
1. 안창호 (安昌浩ㆍ1878~1938ㆍ향년 60세)
독립운동가ㆍ교육자ㆍ정치가ㆍ개혁가ㆍ계몽운동가ㆍ"윤봉길의 훙커우 공원 폭탄투척 사건" 이후, 체포 / 투옥ㆍ"미국 한인교포사회"의 지도자였던 그는 "이승만ㆍ서재필ㆍ박용만" 등과 경쟁 / 갈등관계에 있기도 했다.
• 출 생 : 평안남도 강서군 초리면 봉상도(도롱섬) • 사 망 : 경성부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 (현, 서울대학교 병원)
• 사 인 : 출옥 후 병사(간경화ㆍ소화불량ㆍ폐렴 등 합병증) • 학 력 : 구세학당 보통부 졸업
• 호 : 도산 (島山)- 태어나고 자란 "도롱섬"에서 따서, 붙인 것이다.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ㆍ도산공원은 그의 호를 따서, 이름 지었다.
• 별 칭 : 산옹 (山翁)ㆍ섬메ㆍ신도생(新島生)ㆍ자명- 치삼 • 별 명 : 안광택(安廣宅)ㆍ안창호(晏彰昊)
• 처 : 이혜련 (李惠練ㆍ당시 19세ㆍ안창호- 24세) • 자 녀 : 3남 2녀 • 종 교 : 개신교 (장로교)
그는 이상적인 정치인으로 "유길준"을 지목했다. "흥사단ㆍ대한인국민회" 등 재미 한인단체를 조직ㆍ주관하였고, 여러 청년들을 감화시켜, "독립 운동"에 투신하게 했다. 일제 강점기 후반, 그의 "실력 양성론"은 "윤치호ㆍ이광수ㆍ최남선ㆍ송진우ㆍ김성수ㆍ조병옥ㆍ장택상ㆍ안호상" 등에게 두루 영향을 주었다.
구한 말, "만민공동회"에서 강연을 하였으며, "배워서 익히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하였다. 이어 교육을 통한 "교육 입국론"을 제창하여, 각종 학교의 설립과 양성에 노력하였다. 또한 "실력양성론"과 함께,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 실력을 키우는 것이 독립의 발판이라 생각하여 "점진학교(1899년)ㆍ대성학교(1908년)ㆍ동명학원(1926, 중국 난징)"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일본 제국"의 영향력이 강대해지자, "미국"으로 망명, 이후 "미국 사회"에서 활동하였다.
1919.04월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ㆍ주도하였다. 1926.05.03일, 그가 "상하이"에 도착하기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그를 "국무령"으로 선출해놓고 있었다. 5월 "임시의정원"에서 "양기탁"의 후임으로 "안창호"를 "국무령"에 선임하자, "기호파 계열"은 그의 "국무령 취임"을 극렬 반발했고, 05.16일 "상해"로 돌아온 "안창호"는 "국무령" 직에 취임하지 않았다.
"기호파 계열(이승만 직계ㆍ조소앙(이승만 지지)ㆍ기호파 중심(김구ㆍ안공근ㆍ김규식ㆍ김보윤 등)"은 "서북파"인 "안창호"가 "국무령"이 되는 것을 반대하였다. "김규식"은 "기호파"는 아니었으나, "기호파"와 연대하여, "안창호"의 취임을 반대했다. 결국 "안창호"는 국무령에 선출된 지, 13일 만에 사퇴하여, 사태를 수습하였다. 7월 "임시의정원"의 "집정 최창식"에 의해 "국무령"으로 추대된 "홍진"이 내각을 구성했을 때, "기호파(김구ㆍ조소앙)ㆍ중가파(안공근ㆍ오영선)"등이 입각을 반대하여, 결국 "안창호"가 내각 구성을 도왔다고 한다.
1921년부터는 임시정부가 "창조론ㆍ개조론"이 나뉠 때, "개조론"을 주장하였으며, "국민대표자회의"가 강제 해산된 뒤, "미국"으로 망명, 이후 "미국사회"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독립운동 방법을 놓고 "무력투쟁론ㆍ민족개조론ㆍ외교독립론"으로 나뉠 때, "민족개조론"을 주창하였으며, "민족개조론"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는 스스로 힘ㆍ실력을 키우고, 그 실력을 기반으로 할 때만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다고 봤던 것이다. 또한 "실력 양성론"을 주장하여 경제적, 사회적인 실력을 길러야 만 독립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1932년, "윤봉길의 훙커우공원 폭탄투척 사건" 이후, "일본제국 영사관" 경찰의 불심검문에 체포되어 송환,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어 형문을 받았고, "고문 후유증"으로 "경성제국 대학병원"에 입원했으나, "소화불량ㆍ간경화ㆍ폐질환"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합병증"으로 출옥 직후 사망한다.
2. 흥사단 (興士團ㆍYoung Korean Academyㆍ상징 : 기러기(새))
1913.05.13일, "안창호"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한 민족운동단체이다. 8도 대표를 발기인으로 하여 창립되었고, 민족이 세계 최고의 일등국민이 되고, 인류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모범 민족이 되기 위하여, 국민 개개인의 "인격혁명"을 통하여, "민성혁신(民性革新)ㆍ민력증강(民力增强)"을 도모함으로써, 민족 번영의 기초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공립협회ㆍ신민회(구국운동 비밀결사단체)"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신민회" 산하 "청년학우회"가 "흥사단"의 전신이다. "흥사단(興士團)"이라는 명칭은 1907년, "유길준(兪吉濬ㆍ1856~1914ㆍ57세)"이 설립한 "흥사단"을 이어받은 것이고, 이념과 목적은 1907년에 조직된 "신민회"와 1909년 조직된 "청년학우회"를 계승한 것이다.
1907.11.30일에 발표된 유길준의 "흥사단 취지서"에 의하면, 문명의 진보 속도는 국민의 지식 계발과 도덕의 수양 정도에 따라 결정되며, 국민의 지식 계발과 도덕의 수양 정도에 따라 결정되며, 국민의 지식 계발과 도덕의 수양은 교육을 통하여 가능하다고 했다. 또한 흥사단이 기르고자 하는 선비(士)는 직업과 신분을 초월하여 전문지식과 염치와 도덕을 갖추고 개인의 이익보다 공익을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창립에서 해방시기까지, 조국 광복과 새로운 나라 건설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을 위한 조직적 재정후원ㆍ일꾼양성을 통해 민족독립의 사명을 완수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민족부흥을 위한 민족의 힘을 양성"하는데 있고,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인격훈련ㆍ단결훈련ㆍ민주시민훈련"을 동맹수련(同盟修練)해야 하며, 국민 모두가 "민족사회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개개인이 건전한 인격자가 되기 위하여 4대 정신으로 무장할 것을 주장한다.
① 무실 (務實) : "율곡 이이"가 지은 "격몽요결(擊蒙要訣)" 속의 "논무실위수기지요(論務實爲修己之要)"라는 제하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용어로, "참되기 운동ㆍ거짓말 안 하기" 운동이다.
② 역행 (力行) : "행하기를 힘쓰자"는 뜻으로, 실천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것이다.
③ 충의 (忠義) : 사물이나 일을 대할 때에는 정성을 다하며, 사람을 대할 때에는 "신의와 믿음"으로 대하여야 한다.
④ 용감 : 옳음을 보고 나아가며, "불의를 보고 물러서지 않는 용기"를 말한다.
일제강점기 때, 흥사단은 "안악사건ㆍ105인사건ㆍ3.1운동ㆍ동우회사건" 등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는 등 독립운동에 직접 간접으로 참여하였다. 1926년, 월간지 "동광(東光)"을 창간하여, 1933년까지 40호를 속간하기도 하였다. 1912년 창간의 "신한민보"도 흥사단 경영으로 국민교육과 계몽에서 일익을 담당하였다. 1949년, 본부를 국내로 이전하고, 1961년 "5·16군사정변" 때까지 "금요강좌"와 "새벽"지를 통한 사회교육에 진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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