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 (李仁ㆍ1896~1979ㆍ83세)"은 1949.07.07일,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되어, "반민특위"를 와해ㆍ해체시켰다. "반민특위 특경대"를 해산시키고, 신변보호를 담당하던 경찰마저도 모두 철수시켜, "더 이상 반민족 행위자의 체포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또한 "반민특위 해체"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반민법 개정안"을 제출하였고, 그나마 기소된 친일파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시켰다.
1. 이인 (李仁ㆍ1896~1979ㆍ향년 83세)
법조인(인권변호사 : 김병로ㆍ허헌)ㆍ독립운동가 (일제 강점기 말기, 창씨개명 거절)ㆍ군정청 검찰청 검찰총장ㆍ법무부장관 (초대)ㆍ반민특위 위원장(반민특위 강제해산)ㆍ법전편찬위원회 부위원장
• 출 생 : 대구 중구 사일동 • 사 망 : 서울 강남구 논현동 • 학 력 : 메이지 대학교 법학부ㆍ니혼 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 호 : 애산 (愛山) • 처 : 고경희 (高慶熙) • 자 녀 : 6남 2녀
• 가 족 : 조부 : 이관준 (李寬俊ㆍ만당ㆍ성리학자) / 삼촌 : 이시영 (李始榮ㆍ우재 (又齋))
• 저 서 : 법률과 경제ㆍ법률과 여성ㆍ애산여적(愛山餘滴)ㆍ반세기의 증언

일본 유학 후, 1923년 변호사시험에 합격, 변호사를 개업하고, 이후 일제 강점기 당시 "김병로ㆍ허헌"과 함께, "독립운동가ㆍ애국자ㆍ사회저명인사들"을 상대로 무료변호를 하여, "민족인권변호사"로 명망을 날렸다. 그가 맡은 변호 건만도 약 1,500여 건에 달한다. 1945.09월, "한국민주당"이 창당되자, 참여하여 당무부장이 되었다가, 10월 미군의 한반도 주둔 이후 "미군정 특별범죄 심사위원회 수석대법관 겸 심사위원장"이 되었다. 1946년, "군정청 검찰청 검찰총장"이 되어, "조선정판사 위폐사건" 등의 수사를 지휘하는 등 좌파 세력의 근절에 노력했으며,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1947년 이후, "단독정부 수립론"이 나오자, "단정론"을 지지하였다. 1949.03월,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인 "장면"이 주미대사 임명으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자, 보궐선거에 출마ㆍ당선되어, "제헌국회의원"이 되었고, 6월에 "법무부장관직"을 사임하였다. 1954년, 제3대 "민의원"에 당선되고, 1960년 "참의원"에 당선되었다.
"제3공화국" 군사정권에 맞서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였으며, 야당 원로로서 범 야당통합을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1962년, "UN인권옹호 한국연맹 이사"에 임명되었고, 1972년 "민족통일촉진회장ㆍ국토통일원 고문 "등을 역임했다.
2. 일화 : "병신회 (丙申)" 회장
약간의 소아마비 증세를 앓고 있었으나, 생활이나 대화하는 것에는 지장이 없었다. 자신의 소아마비를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한다. 1896년 같은 해에 태어난, "이인ㆍ이병도ㆍ윤일선ㆍ김두종ㆍ이희승" 등은 만년에 동갑 모임을 만들어 돈독한 우정을 나누곤 했다. 태어난 해가 "병신(丙申)년"이라, 모임을 "병신회"로 하였다. "병신회"의 회장 선출을 놓고 설왕설래하던 중, "이인"이 "병신회 회장이야 당연히 내가 맡아야지"라고 해서, 만장일치로 "이인"을 회장으로 옹립했다고 한다.
3. 경 력
1922 : 일본변호사 시험에 합격ㆍ2년간 경성법학원 강사 → 1923 : 경성부에서 변호사ㆍ변리사 개업 / 6ㆍ10 만세 운동ㆍ고려혁명당 사건ㆍ의열단 사건ㆍ원산 총파업ㆍ통의부사건ㆍ정의부사건ㆍ신간회 민중대회사건ㆍ수양동우회 사건ㆍ안창호 변호 등과 각종 소작쟁의ㆍ필화(筆禍)ㆍ설화(舌禍)사건ㆍ친일파나 일본관리의 암살사건
1925 : "갈돕회" 총재ㆍ조선어사전편찬회 발기위원 → 1927 : 신간회 중앙위원 → 1930 : 수원고등농림학교 학생들의 "흥농사(興農社)사건"을 변호시, 법정불온변론 혐의로 6개월 동안 변호사 자격정지 및 정직처분ㆍ조선물산장려회 회장
1931 : 조선변호사협회 회장 → 1935 : 조선어사전 편찬을 위한 비밀후원회 조직ㆍ재정지원 → 1936 : 신사참배를 거부로 소환 → 1942 :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ㆍ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수감 → 1945 : 한국민주당 당무부장ㆍ미군정 특별범죄심사위원회 수석대법관 겸 심사위원장 → 1946 : 군정청 검찰청 검찰총장ㆍ이승만 단독정부 수립론 지지 및 참여
1948 : 초대 법무부장관ㆍ법전편찬위원회 부위원장 → 1949 : 서울 종로구 보궐선거(장면)에 출마ㆍ당선되어 제헌국회의원(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반민특위조사위원ㆍ반민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반민법 개정안 제출→ 반민특위 강제해산
1950 :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피신하여 납북 위기 모면 → 1954 : 3대 국회의원 당선ㆍ1957년에는 "이범석" 등과 범야세력 통합운동 → 1960 : 4ㆍ19혁명 시, "이승만" 하야와 체포 학생 석방촉구 대정부 건의안 발표ㆍ참의원 의원(3년) 당선 → 1963 : "민정당" 창당 참여, 범국민단일야당운동 추진에 실패하자, 정계에서 은퇴ㆍ "국민의 당" 창당발기인대회 참석
1965 : "안재홍" 사망 소식을 접하고, 장례식을 집행ㆍ주관ㆍ시신 없는 장례식 진행 → 1967 : 제헌동지회 회장ㆍ고등고시 출제위원회 위원 → 1972 : 유석창 장례위원회 위원장ㆍ민족통일촉진회 결성ㆍ국토통일원 고문→ 1974 : 국토통일원 고문 재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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