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선일체 (內鮮一體)"에서, "내 (內)"라 함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전, 그들의 해외식민지를 "외지 (外地)"라 부른 데 대한 일본 본토를 가리키는 "내지 (內地)"의 첫 자이며, "선 (鮮)"이란 조선을 가리키는 말로, 일본ㆍ조선이 "일체(하나)"라는 뜻이다.
1. 내선일체 (內鮮一體): 1937년 일제가 전쟁협력 강요를 위해 취한 조선 통치정책
그들은 이미 1931년 만주사변 때, "일만일체(日滿一體)"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1937년 일본이 중국 침공을 개시하자, 당시 조선총독 "미나미지로(南次郞)"는 이 대륙 침공에 조선을 전적으로 동원ㆍ이용하기 위한 강압정책으로 "내선일체"라는 기치를 들고 나섰다. 한민족의 저항을 초기부터 말살, 차단하려는 철저한 민족 말살정책이었다. 이른바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라는 미명 아래,
• 신사참배(神社參拜) 강요 • "일본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구호를 집회 때마다 제창하는 것을 비롯 • 1938년, 지원병제도로 강제 출병, 조선어교육 폐지 및 일본어 상용 • "동아일보ㆍ조선일보" 등 양대(兩大) 일간지를 비롯한 언론탄압 끝에 조선어로 된 출판물은 전면 강제 폐간시켰다.
• 1940년, 창씨개명(創氏改名)을 강요하고, 또한 어용학자들을 동원하여 내선동조동근론(內鮮同祖同根論)을 주장하며, 그들의 조상이라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의 신위를 가정마다 모셔야 한다."는 양상으로 근원적인 한민족말살정책을 폈다.
• 대륙침공의 전초 기지로서 한반도에 군수산업을 이식하여, 군수물자 생산과 자원개발에 조선인을 징용하여 공장과 광산으로 보냈다. 1940년까지만 해도 국내동원 260여 만 명, 일본 및 점령지역에 72여 만 명에 이르렀다.
이 무렵 일제는 이른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라는 대(對)아시아 침략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한 슬로건을 내걸었으며, 마침내 1941.12월에는 "진주만"을 기습하여 "태평양전쟁"을 발발시켰다. 이런 추이 속에 1942.05월 한반도 징병제, 1943.08월 해군특별지원병제, 10월 학도병제 실시로 젊은이들을 대량 동원시킴으로써 민족말살정책은 극도에 이르렀다. 내선일체란 군국 일제의 전쟁야욕 성취를 위한 한민족말살정책의 대명사였다.
2. 일제의 병력 총동원 (4회)
태평양전쟁이 진행되면서, 일제는 병력 총동원을 위한 조치를 4회나 실시하였고, 친일문학계는 이에 부응하여, 지원병ㆍ징병제도 등의 병력동원을 적극 권장하는 노래가사 만들기 등을 자발적으로 한다. "이광수"는 가요 "지원병장행가"를 작사했고, 주요한은 시 "첫 피"로써 지원병의 죽음을 예찬하였다. 1943.11월, 1달 동안 "유진오"는 "매일신보"에 12편의 되는 학병 관계 사설을 기고했다.
• 육군 특별지원병제 : 1938.02.23 공포, 04.03일 시행
• 해군 특별지원병제 : 1943.05.11 내각 결정에 의해, 10.01일 훈련소에 입소
• 학도병 징집 : 1943.10.01 공포, 1944.01.20일 시행된
• 징병제도 : 1944.04.01 징병검사가 실시
3. 역대 "조선총독부"의 정책→ "일제"의 "조선지배" 방식 변천과정
1890년대 : 경부철도 부설권ㆍ동학혁명 진압 등으로 이권 침탈 (조선총독부가 없었음ㆍ일본공사)
1905년 : "러ㆍ일 전쟁"에서의 "일본" 승리 확실시로, "이토 히로부미"의 외교권 간섭 (조선총독부가 없었음ㆍ일본공사)
< 역대 한국 통감 > • 1대 : 이토 히로부미 (1906.03.02~1909.06.14) • 2대 : 소네 아라스케 (1909.06.14~1910.05.30) • 3대 : 데라우치 마사타케 (1910.05.30~1910.08.29)
1910년대 : 한일합방ㆍ토지조사 사업ㆍ무단통치 (1대 총독 : 데라우치 마사타케(1910.10.01~1916.10.14))
1919년 : 3ㆍ1운동 진압 (2대 총독 : 하세가와 요시미치(1916.10.14~1919.08.12))
1920년대 : 산미증식 계획ㆍ문화통치 (3대 총독 : 사이토 마코토 (1919.08.13~1927.12.10))
1929년 : 독립운동 탄압으로 인한 "문화통치"의 종료 (5대 총독 : 사이토 마코토 (1929.08.17~1931.06.17))
1930년대 : 일본의 전체주의화ㆍ만주사변ㆍ조선의 병참기지화 (6대 총독 : 우가키 가즈시게 (1931.06.17~1936.08.05))
1936년 : "중ㆍ일 전쟁" 위한 조선의 병참기지화 가속ㆍ창씨개명 시행 (7대 총독 : 미나미 지로 (1936.08.05~1942.05.29))
1942년 : "태평양 전쟁" 위한 조선의 병참기지화 가속ㆍ조선인 대거 동원 (8대 총독 : 고이소 구니아키 (1942.05.29~1944.07.21))
1944년 : 태평양 전쟁의 방어전을 수행 및 종전 후 식민지 처리 (9대 총독 : 아베 노부유키 (1944.07.24~1945.09.28))
4. 연 표
• 1909.12.04 : "일진회"에서 "한일합방을 요구하는 성명서" 상주문 제출
• 1910.03.14 : 토지조사사업 시작 → 06.30 : "헌병" 경찰제도 발족 → 08.22 : "한일병합" 조약 체결 → 10.01 : "조선총독부" 설치 (09.30일, 총독부 및 소속 관제에 대한 관제 공포)
• 1911.08.23 : 제1차 조선교육령 (국어를 일본어로 한다)
• 1912.01.01 : 표준시 UTC 8:30분에서 UTC 9:00로 변경 → 04월. :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 확정 → 09.09 : "흥친왕 이재면" (고종 형) 사망
• 1914.03.01 : 행정 구역 개정 (부에서 군면 제도)
• 1917.03.22 : "이준용"(흥친왕 이재면 아들ㆍ흥선대원군 적장손ㆍ 고종의 정치적 라이벌) 사망
• 1919.01.21 : "고종" 황제 사망 → 03.01 : "3ㆍ1운동" 시작(~ 1919.05) → 08.20 : "헌병" 경찰제도 폐지 → 10.05 : 김성수- 경성방직주식회사 설립
• 1920.03.05 : "조선일보" 창간 → 04.01 : "동아일보" 창간 → 12.27 : 총독부- 산미 증산 계획
• 1925.11.22 : 제1차 "조선공산당" 조직 미수 사건
• 1926.04.01 : "경성제국대학" 개설 → 04.25 : "순종" 황제 사망ㆍ인산 후, "영친왕"이 이왕직 세습 → 06.10 : "6ㆍ10만세" 운동 → 06월. :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
• 1927.02.16 : 사단법인 "경성 방송국"- "라디오" 방송 시작 → 05.02 : "조선 질소주식회사" 설립 → 08월 : 제3차 "조선공산당" 사건 → 1928.08. : 제4차 "조선공산당" 사건
• 1929.11.03 : "광주학생" 사건 (~ 1930.03월) → 1930년 : "언문 철자법" 제정 → 1930.05.30 : "간도 5ㆍ30" 사건 → 1931.07.02 : "만보산" 사건 → 09.18 : "만주사변" 발발
• 1932.01.08 : 애국단원 "이봉창"- "도쿄"에서 "천황" 암살미수 사건
• 1932.04.29 : 애국단원 "윤봉길"- "상하이 훙커우공원" 의거
• 1936.08.09 :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 1937.06.04 : "김일성"- "보천보 습격사건(普天堡 襲擊事件)"을 일으키다. "만주"에서 활동하던 "동북항일연군" 소속의 최현ㆍ김일성 부대와 박달ㆍ박금철의 조국광복회 등이 "함남 갑산군 보천면 보전리(량강도 보천군 보천읍)"를 일시적으로 습격하고 퇴각한 사건, 한국의 일부지역이 일제로부터 일시적으로 해방되었다는 의미가 있다.
• 1937.07.07 : "중ㆍ일 전쟁" 발발 → 10.02 : "황국신민의 서사" 제정
• 1938.02.26 : "육군 특별지원자" 법령 공포 → 03.04 : "조선 교육령" 개정으로 "한국어 수업"을 필수에서 제외
• 1940.02.11 : "창씨 개명" 실시 → 1941.03.31 : "국민 학교" 규정 개정ㆍ"한국어 수업" 폐지 → 12.08 : "태평양 전쟁" 발발
• 1942.10.01 : "조선어학회" 사건 → 1944.04.01 : 제1회 "징병 검사" 시작 → 1944.08.23 : "여자 정신대 근로령" 공포
• 1945.08.09 : 소련군- 대일본 참전ㆍ두만강을 넘다 → 1945.08.15 : "일본 정부" 항복ㆍ포츠담 선언 수락 → "소비에트 연방"이 "청진시"에 "일본군"과 전투로 인해, "조선총독부"가 "여운형"을 임명하여, "여운형"은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결성
• 1945.08.16 : 소련군- "청진시" 점령 → 1945.08.21 : 소련군- "평양" 진주 → 1945.08.25 : 미군- "인천" 상륙
• 1945.09.06 : "여운형" 등- "조선 인민공화국" 수립 선언 → 1945.09.07 : 미군- "극동 군사령부", "한국 군정" 선언 (즉시 "독립" 부인) → 1945.09.09 : "조선총독부"- "항복 문서"에 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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