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三國遺事) : 원종흥법 (原宗興法)과 염촉멸신 (厭髑滅身)
"형리가 칼을 들어 이차돈의 목을 베었다. 그러자 이차돈의 목에서 붉 은 피가 아닌 흰 피가 한 길이나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그의 머리가 멀리 금강산까지 날아가 떨어졌다. 이 광경을 본 주변의 사람들은 모 두 혼비백산했다. 또한 멀쩡하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천지 가 진동하고 비바람이 몰아쳤다"
"이차돈 (異次頓ㆍ거차돈 (居次頓)ㆍ염촉 (厭髑)ㆍ504 (506)~ 527 (528))"은 신라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공인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그의 "순교 (殉敎)"는 단순히 한 인물의 죽음을 넘어, 신라의 "종교적, 사회적 대전환"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삼국사기ㆍ삼국유사"에 그 내용이 전해지며, 특히 "삼국유사"는 그의 죽음을 더욱 신비롭고 감동적으로 묘사합니다. "이차돈의 순교"는 신라 역사상 가장 극적이고,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로, 한 인물의 숭고한 희생이 "종교ㆍ사회"의 큰 변화를 이끌어낸 상징적인 사건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1. "이차돈"의 시대 배경 : 불교 수용의 난항
"이차돈"이 살았던 시기는 신라 "법흥왕 (法興王ㆍ재위: 514~540)" 때입니다. 이미 "고구려 (372년)ㆍ백제 (384년)"에 불교를 공식적으로 수용하여, 국가 통치 이념으로 삼고 있었지만, "신라"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① 강력한 토착 신앙
신라는 오랫동안 "박혁거세, 김알지, 석탈해" 등 신라의 시조들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천강 (天降) 사상"과 씨족 공동체의 "토착 신앙"이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② 귀족 세력의 반대
기존의 토착 신앙을 바탕으로, 권력을 유지하던 보수적인 귀족 세력은, 외래 사상인 "불교"가 자신들의 "기득권"과 충돌할 것을 우려하여, 불교 수용을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③ 왕권 강화의 필요성
"법흥왕"은 이러한 귀족 세력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며,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하고자 했습니다. "불교"는 왕을 "전륜성왕 (轉輪聖王ㆍ불법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왕)"으로 비유하며 왕권을 신성화하고, "업보 (業報)ㆍ윤회 (輪廻) 사상"을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데 효과적인 사상이었습니다. 따라서 "법흥왕"은 불교 공인을 강력히 추진했습니다.
2. 이차돈의 결단ㆍ순교 계획
불교 공인을 강력히 추진하던 "법흥왕"도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때 "이차돈"이라는 젊은 관리가 나섭니다. 그는 "내사사인 (內史舍人ㆍ왕의 측근 비서)"로 "법흥왕"의 총애를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① 왕을 위한 희생
"이차돈"은 불교 공인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희생할 것을 자원했습니다. 그는 왕에게 "제가 죽음으로써 불교가 공인될 수 있다면, 기꺼이 제 몸을 바치겠습니다."라고 아뢰었습니다.
② 계획 수립
"이차돈ㆍ법흥왕"은 치밀한 "순교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차돈"은 먼저 "법흥왕"의 명을 받은 것처럼 위장하여, "흥륜사 (興輪寺) 터"에 불당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③ 귀족들의 반발ㆍ이차돈의 도발
불당 건축 소식을 들은 귀족들은 "왕께서 불당을 짓는다는 명을 내린 적이 없다"며, 격렬히 반발했습니다. 이에 "이차돈"은 "왕명을 어길 수는 없다"며, 더욱 과감하게 불당 건축을 추진했고, 귀족들과 대립했습니다. 결국 귀족들은 왕에게 "이차돈을 잡아 죽여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④ 왕의 고뇌ㆍ처형 명령
"법흥왕"은 "이차돈의 처형"을 주저하는 척하다가, 마침내 귀족들의 압력에 못 이기는 척, "이차돈"의 목을 베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는 이미 "이차돈ㆍ법흥왕"이 약속한 시나리오였습니다.
3. 이차돈의 숭고한 죽음ㆍ기적
527.09.15일, "이차돈"은 "서천 (西郊) 벌판"에서 처형당하게 됩니다. 이 죽음의 순간, "경이로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① 목이 잘리자, 하얀 피가 솟구치다.
"참수 집행관"이 "이차돈"의 목을 베자, 보통 사람의 피처럼 붉은 피가 아니라, "새하얀 피 (白乳)"가 솟아올라, "약 1장 (丈ㆍ약 3M) 높이"까지 치솟았습니다. 이는 "이차돈"이 성스러운 존재임을 나타내는 기적적인 현상이었습니다.
② 머리가 날아오르고, 꽃비가 내리다.
잘린 머리는 멀리 날아가, "금강산 (경주 금강산ㆍ현재는 "낭산"으로 알려짐)"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갑자기 "꽃비 (散花)"가 내렸고, 땅이 흔들리는 듯한 "지진"도 일어났습니다.
③ 죽음을 통한 감화
이러한 초자연적인 현상을 목격한 사람들은 크게 놀랐고, "이차돈"이 불교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성인"임을 깨달았습니다. 백성들은 "불교의 신성함ㆍ이차돈의 숭고한 정신"에 감화되었습니다.
④ "이차돈"의 "흰 피 (흰 젖)"의 해석
• "불교"에 따르면, "아라한 (阿羅漢)"이라는 "이상 (理想)의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수다원 (須陀洹)ㆍ사다함 (斯陀含)ㆍ아나함 (阿那含)"등 "위계 (位階)"가 있다. 이때 각 단계별로 많은 "신체적 변화ㆍ능력"이 생기는데, "능엄경의 유가수련증험설 (瑜伽修煉證驗說)"에는 "3번째 아나함의 경지에 오르면, 붉은 피가 하얀 기름으로 변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런 내용에 맞춰, "불교가 국교화"된 뒤, "이차돈"이 순교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고 후대에 전설이 붙었을 수 있다.
• "이차돈 순교비" 제작에 참여한 이들이 "현우경"의 "찬제파리품 본생담" 혹은 "부법장인연전"의 이야기를 차용하였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찬제파리품"은 "두 손ㆍ두 다리ㆍ양쪽 귀ㆍ코"가 잘린 곳에서 흐르던 피가 "흰 젖"이 되었고, 상처는 씻은 듯이 회복되는 기적을 서술하고 있다. "부법장인연전"에서는 "사자 (師子)"라는 비구가 목을 베인 자리에서 "흰 젖이 솟구쳤다"는 내용이 나온다.
• 기타 : 목에서 흰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면, "척수액"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지혈증"으로 혈액 내 "지방 함량"이 높아, 굳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혈액"이 "흰색"에 가까운 사람도 있다고 한다.
4. 불교 공인ㆍ이후의 영향
"이차돈"의 숭고한 죽음과 기적은 "불교 공인"에 대한 귀족들의 반대를 무마시키고,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① 불교 공인
"법흥왕"은 "이차돈의 순교" 이후, "불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흥륜사" 건축을 재개하는 등 불교 진흥에 힘썼습니다.
② 왕권 강화
"불교 공인"은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법흥왕"은 스스로 "성법왕 (聖法王)"이라 칭하며, "불교적 군주"로서의 위상을 확립했습니다.
③ 문화적 발전
"불교 공인" 이후, 신라의 불교문화는 급속도로 발전하여, "황룡사ㆍ불국사ㆍ석굴암" 등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남겼습니다.
④ 민족적 동질성 강화
"불교"는 신라의 다양한 부족 세력을 통합하고, 백성들의 정신적 구심점을 마련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명언 • 고사성어 • 고전 • 속담 > 삼국유사 (遺事)ㆍ일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광법사 (圓光法師): 중국 책의 기록 (2) | 2025.07.13 |
---|---|
고구려 말기, 멸망 전조 : 보장왕 (寶藏王)ㆍ보덕화상 (普德和尙) (2) | 2025.07.12 |
신라 불교 전래의 선구자들 : 묵호자 (墨胡子)ㆍ아도 (阿道) (4) | 2025.07.10 |
마라난타 (摩羅難陀) : "백제 불교"의 시작을 알린 "인도 승려" (1) | 2025.07.09 |
순도 (順道) :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스님 (2) | 2025.07.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