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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 • 조폭 • 기생 • 연예인

연쇄 살인 상세 ① 김대두 (17명 살인)ㆍ주영형 (이윤상 유괴살인)

by 당대 제일 2022.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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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두 (1949~ 1976ㆍ향년 26세)"는 한국 최초 연쇄살인마로 55일 동안(1975.08.13.~10.07), 9차례에 걸쳐 모두 17명을 살해하였고, "주영형 (1953~ 1983향년 30전남 광주서울대 체육교육과박사) "는 체육 교사로, 제자인 "이윤상 (당시 13세중학교 1학년)"을 유괴 살해한 사건의 범인이다.

 

1. 1975 :  김대두 (金大斗ㆍ1949~ 1976ㆍ향년 26세) : 17명ㆍ한국 최초 연쇄살인

검거되기 전까지 55일 동안 마구 돌아다니면서, 17(9차례)을 살해했다.   현실 비관사회에 대한 분노가 "분풀이 살인"으로 나타난 셈이다살인행각을 저지르면서 빼앗은 돈은 26,800원에 불과했다.(1975년 당시 쌀 1가마니 값= 18,600원 정도강도 액 : 26,800(양주에서 편취 금액 21,000원이 없었다면, 6,000)

 출 생 : 전남 영암군 학산면 은곡리                  신 체 :  160cm 정도의 왜소한 체구

 피해자 : 17 (9차례 - 3개월 영아(1)어린이(5) 포함), 여성 3명 성폭행

   : 1975.08.13~ 10.07 (55일 간)                    지 역 : 전남경기도서울

 분 노 : 교도소에 있다가 사회에 나오니, 누구도 받아주지 않았다. 남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불빛도 많은데 내 것은 하나도 없다남들보다 끗발 나게 살고 싶었다. 친척과 친구들도 전과자라고 냉대했다.

 유 언 : 지은 죄를 깊이 뉘우친다. 피해자와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전과자들에 대한 사회적 냉대가 시정됐으면 한다피해자와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잡범과 중범죄자, 초범과 재범을 분리 수감하여, 초범이나 잡범이 범죄를 배우지 못하게 해 달라.

김대두

"현장검증"을 하면서 밝혀진, "범행 수법" 자체도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그저 동네에서 떨어진 외딴 집을 골라, 가족 모두를 살해하고, 집안을 뒤져서 금품을 훔쳐가는 수법의 반복이었다"살해방법"도 특별한 살해도구를 가지고 다니지 않고, 집안에 있던 "식칼망치" 등으로 살해했는데, "시신""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심했다고 한다.

4마지기와 밭 1,000평 정도를 가진 가난한 농촌 가정의 34녀 중 장남이었으며, 부모는 그를 대도시의 일류 중학교에 진학시키고, 유학을 보내 잘 키우고 싶었지만, 시험에 떨어졌다. 

대도시 생활을 한 그의 눈높이는 높아져 있었고, 어떻게 해서든 큰돈을 벌어 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국졸 학력농촌 출신특별한 기술도 없고, 160cm 정도의 왜소한 체구의 그에게 사회 벽은 높았다무능함열등감에 빠진 그는 결국 범죄에 손을 대면서, "폭력" 등의 죄로 "전과 2"이 됐다공장을 전전하며 일을 하기는 했지만, "전과자"로 낙인찍히면서 사회에 대한 불만은 점점 커져 갔다. "폭력 전과 2"인 그는 출소 후, 돈이 궁했고, 돈을 빼앗기 위해, 마침내 "전남 광산군"의 한 외딴집에서 시작된 살인은 "서울경기도"로 옮겨져 9차례나 이어졌다현실 비관사회에 대한 분노가 "분풀이 살인"으로 나타난 셈이다.

살인1 : 자신의 고향인 "전남 광산군(, 광주 광산구)"시골 외딴집에 밤에 침입해, 집에서 잠을 자고 있던 남편(안모 씨)를 살해하고, 부인은 중상을 입힌다. 첫 살인 후, 갈취한 돈이 다 떨어져 갈 때 쯤, "순천행 기차"를 탔다가, 우연히 "교도소 동기"를 만난 둘은 "순천 몽탄역"에 내려, 범행계획을 모의했다.

살인2 : 09.07일 새벽, 집주인 "박모 씨" 집에 침입, 돈을 요구하지만, 거절당한다. 이에 화가 난 "김대두교도소 동기"는 집주인 "박씨박씨 부인손자" 살해한다. 3명을 살해하고, 집안을 뒤져 나온 금액은 "250"(당시 버스비와 담배1갑이 10원이었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현재 가치로 10만 원 정도임)이었다 범행 후 이렇게 된 바에야, 돈이 많은 "서울"에서 살인을 저지르자고 의기투합한다 둘은 "서울"에 도착하지만, "살인"을 저지른 직후라, 둘은 서로 잠시 떨어져 있기로 하고, 헤어졌으나, "김대두"는 계속해서 범행을 저질렀다.

살인3 : 09.11, "서울 면목동"에서 1명을 살해하였다.

살인4 : 09.24, "수원"으로 가서, "양모 씨"의 집에 침입했는데, 이때 "양씨양씨 어머니11 여자아이8살 남자아이(4)"1번에 살해하였다.  4명을 죽이고, 그가 얻은 것은 피해자가 팔려고 내놓은 "고추 15"이 전부였다.

살인5 : "경기도 양주" 집에 침입, 집에서 자고 있던 "부부 내외3살 난 아들"을 살해하고, "15 "에게 중상을 입히고, 달아났는데, 이때 훔친 돈은 "21,000"이었다.

살인6 : "경기도 시흥" 주택에 침입해서, "엄마생후 3개월 난 여아"를 살해하는데, 생후 3개월 "여아"는 짓밟아서 살해했다고 하며, 이때 훔친 돈은 "1,500"이었다 "여아" 살해이유는 그냥 "울어대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였다."고 한다.

살인7 : "젊은 부부골프장 캐디"가 사는 집에 침입, 금품을 빼앗고, "부인캐디" 강간했다.

살인8 : 검거 하루 전,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청년을 살해했다.

검거 하루 전,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청년에게 접근해, "공범"을 제의했으나, 청년이 자신의 물건을 훔쳐 달아나자, 그 청년을 살해하고, 그가 입고 있었던 "청바지"를 벗겨 가져갔다.

이때 어리석게도 피해자의 "청바지"가 피범벅이었음에도 "청량리 역" 근처의 "세탁소"에 맡겼다"세탁소"에 피 묻은 청바지를 맡기면서, "세탁소 주인"에게 "친구랑 싸우다가 코피를 흘려서 그 코피가 바지에 묻었다", 어설픈 변명을 하였다"청바지"에 묻은 피는 코피를 쏟았다고 하기엔 너무 많았고, 이를 수상하게 여긴 "하근배(세탁소 직원)"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경찰에 잡힌 직후에 "청바지"에 묻은 피에 대해, 여러 차례 진술을 바꾸었는데, 처음엔 "세탁소 주인"에게 말했던 것처럼 친구랑 싸우다가 피를 흘렸다고 주장했다가, 이후에는 동네 뒷골목에서 불량배들에게 구타를 당해서 피를 흘렸다고 말을 바꾸었다이후, 형사랑 함께 "중국집"에서 같이 탕수육을 먹다가 체념한 듯이 "형사님, 사실 한 놈을 깠습니다(죽였습니다)."라고 자백을 하면서, 그동안 저질렀던 연쇄살인 행각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얼마 후, "김대두"의 진술로 "공범 김해운"도 체포되었다모든 죄를 순순히 인정했으며, 검거 2일 후, "현장 검증"을 실시했는데, ""을 질겅질겅 씹어대며 히죽 웃어대는 모습에 전 국민이 경악했다.

또한 범행수법 자체도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그저 외딴 집에 사는 일가족만을 몰살하고, 얼마 안 되는 돈을 빼앗아 가는 일이 반복되었던 것이다"표창원"이 쓴 "한국의 연쇄살인"에서는 "그가 배운 게 없어서, 그저 자기가 살아온 삶과 유사한 곳에서의 강도 살인의 형태로만 범죄를 저질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1"은 둘 다 사형이었으나, "2"에서는 "김대두"에게만 사형, "공범 김해운"은 다수를 살해하긴 했지만, 1건만 가담했고, "김대두"의 반 강요로 이뤄진 점을 참작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김대두""공범"이 사형을 면하자, "상고"를 포기하여 ""이 확정되었다그러나 그는 "사형 판결"을 받은 뒤, "여성 교화위원"의 교화로 참회했으며, 기독교 세례도 받았다.

당시 죄질이 명백하고, 다수가 살해된 사건의 주범은 "판결 당해 혹은 다음해" 신속히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므로, 이듬해인 1976.12.28일 바로 처형되었다.

 

2.  1980 :  주영형 (朱永炯1953~ 1983향년 30전남 광주서울대 체육교육과박사) :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

1980.1113, 당시 "경서중학교(서울 마포구)" 1학년이었던 "이윤상(당시 13)"이 유괴되어 다음날 살해당한 사건으로,  유부남 (2)박사학위까지 취득한 대단한 엘리트차분한 인상과 상당히 단정한 외모,  "창덕여중" 재직 시절, 교외지도를 빌미삼아 여관에서 성폭행한 여중생이 22명에 달했다.

주영형

학력 : 서울대 체육교육과ROTC(학군14)육군보병 경희대 대학원고려대 대학원(박사 신체 :  178cm몸무게 78kg

 "육군사관학교"에 지원, 필기시험체력검정면접신체검사까지 합격해놓고 입학하지 않았다.

피해자 "이윤상"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왼쪽 다리가 불편했고, 당시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거주하며 "경서중"에 재학하던 상태였다. 1980.11.13일 오후 4시경, 학교 체육교사인 "주영형"과 상담을 하러 간다고 외출한 뒤 실종되었다.

평소 대학 동기와 재미삼아 시작한 도박으로 빚 1,000만원을 지고 빚 독촉을 받게 되자, 비교적 가정이 유복한 "이윤상"을 유괴하여 금품을 뜯어내려 했던 것인데, 범인은 자신이 과거 "창덕여중" 재직 시절부터 불륜관계에 있었던 여고생 모양고 모양을 가담시켰다. 처음에는 이윤상의 누나를 유괴하기 위해서 이양을 통해 접근하였으나 실패하였고, 대신 이윤상을 유괴하고, 현금 4,000만 원을 요구하였다.

(1,000만원 = 서울 평균 아파트 1.5~2채 가격의 거액은마아파트의 분양가와 주택복권 1등 당첨금이 2000만 원이었던 시절)

유괴 다음날인 11.14일 오후 6시경, 범행 아지트인 영등포구의 모 아파트에서 "이윤상""누나를 유괴하려 한 것도 선생님이에요?"하며 고함치자, 명주실 노끈으로 손발을 결박하고 반창고로 입을 틀어막은 뒤 이불을 뒤집어씌웠다. 그리고 곧바로 아파트를 빠져나왔다가 다음날 아침에 확인해 보니 "이윤상"은 이미 질식사해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11.30일경, 이양의 협조를 얻어서 시체를 여행용 큰 가방에 넣은 다음, 이것을 PVC물통에 옮긴 뒤 번호 미상의 용달 트럭을 부른 뒤, 북한강변에 암매장했다.

그러나 돈을 뜯어내기 위한 협박은 "이윤상"이 살해된 뒤에도 그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미리 만든 녹음을 동원해 계속되었다. 당시 범인이 체포되기 전까지는 "이윤상"의 행방은 알 수 없었고, 따라서 일단 살아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사건으로부터 1년이 지난 1981.11.30일에 범인이 체포되었다. 범인은 다름 아닌 피해자가 다니던 학교 체육교사인 "주영형"이었으며, 그와 불륜관계에 있던 여고생 2(당시 17)이 종범(從犯)이었다.

빚 독촉을 받게 되자, 가정환경조사서를 통해 비교적 가정이 유복한 집을 알아낸 뒤 이윤상을 유괴하여 금품을 뜯어내려 했던 것인데, 이 과정에서 과거 여중 재직 시절부터 불륜관계에 있었던 당시 고1 이 모양과 고2 고 모양을 가담시켰다.

범인과 종범 여고생들이 사제간에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큰 충격을 준 사건이다.

또한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살려 보내면 너도 살고, 죽여 보내면 너도 죽는다"는 유명한 말을 한 사건이 바로 이 사건이며, 결국 이 경고는 실행되었다. 그리고 거짓말탐지기를 범죄수사에 최초로 활용한 첫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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