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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 • 현대사)/친일파 • 안중근 • 이토히로부미 • 총독부

사건- 1925.06 : 조선사 편수회ㆍ이병도 교수ㆍ이마니시 류

by 당대 제일 2022.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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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편수회 (朝鮮史 編修會)"는 일본 민족의 우위성을 입증하고, 한국인의 민족의식 말살을 목적으로, 조선사편찬위원회 규정 (1921.12.04, 조선총독부 훈령 제64호)에 따라, 발족한 "조선사편찬위원회"를 확대ㆍ강화하여, 발족시킨 기구이다. 한국사의 왜곡ㆍ교육함으로써, 원활한 식민통치 수행을 위해, 조선총독부 부설로 설치한 "한국사 연구기관"이다.

 

1. 조선사 편수회 (朝鮮史 編修會): 1925.06.09~ 1945.08.15

1925.07.20일,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가 칙령 제218호로 공포한 "조선사편수회관제(朝鮮史編修會官制)"에 따라, 만들어진 "조선총독부" 총독이 직할하는 기관

한국사의 왜곡ㆍ교육함으로써, 원활한 식민통치 수행을 위해, 조선총독부 부설로 설치한 "한국사 연구기관"으로 "조선사 편수회"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식민사관(植民史觀)"에 입각한 "조선사(朝鮮史)"를 편찬ㆍ보급하여, 일제의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려는 어용사가들이 관권을 동원해, 일제가 한국 침략과 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한국사를 왜곡하여 타율적이고, 정체된 사대주의적인 역사로 규정ㆍ왜곡을 자행하였다.

• 설 립 : 1925.07.20 (1922~1925 : 조선사편찬위원회→ 1925~1945 : 조선사편수회)

• 해 체 : 1945.08.15 (광복으로 해산)     • 설립자 : 조선총독부   • 성 격 : 학술기관 (조선사의 편찬과 자료 수집)

• 수 집 : 고문서류(61,469 매)ㆍ고 기록류(3,576 책)ㆍ고 지도(34매)ㆍ고 서화(18권ㆍ53매)

• 저 서 : 1937년까지 975,534원이라는 거금을 투입 (당시 일본돈 2원 = 조선엽전 1천 닢과 동일가치)ㆍ1910년 을사조약 체결 후, 이완용이 받은 금액- 퇴직금 1,458원, 총독부의 은사공채금 15만 원)

• 저 서 :  조선사(朝鮮史): 전 37권(1938)ㆍ조선사료총간(朝鮮史料叢刊): 수집한 사료 가운데, 20종을 택해, 간행ㆍ 조선사료집진(朝鮮史料集眞): 3책, 귀중 기록ㆍ고문서ㆍ사적ㆍ필적ㆍ화상 등을 콜로타이프판으로 간행

이병도

2.  이마니시 류ㆍ조교 이병도 : 조선사 편수회의 핵심인물이며, 역사 왜곡의 핵심주역

① 이마니시 류 (금서룡ㆍ今西龍ㆍ1875~1932ㆍ향년 57세)

"조선사 편수회"의 핵심인물이며. 한국역사 왜곡의 핵심주역ㆍ일본의 "동양사학자"ㆍ사학자 "이병도"의 스승ㆍ1903년 "도쿄제국대학"을 졸업 후, 1906년부터 "경주" 등에서 "고고학 조사"를 하였다. 1913.09월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 때, "평남 룡강군"에서 "세키노 다다시"와 함께 "점제현신사비(秥蟬縣神祠碑ㆍH= 1.33m, B=1.1m의 화강암ㆍ비문에 의해서 낙랑군 점제현의 위치를 알게 됨)"를 발견하였다. 1913년 "교토제국대학"의 강사가 되었고, 1916년에 조교수가 되었다. "북경" 유학 후, 1926년에는 "경성제국대학(서울대 전신)과 교토제국대학"의 겸임교수가 되었다. 1925~1932년까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회원이었고, 한국사를 왜곡ㆍ말살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금서룡 문고(今西龍文庫)"가 있다.

② 이병도 (李丙燾ㆍ1896~1989ㆍ향년 93세)

이마니시 류(금서룡ㆍ今西龍)의 수제자ㆍ조선사편수회(조선총독부 산하)촉탁)에서 수사관보(1925.08~1927)조선사편수회 촉탁역사학자문교부 장관(1960)서울대 문리과 교수(1946)서울대학원장(1954)민족문화 추진회 이사장(1982)다산선생기념 사업회 회장(1984)"윤치영"(내무부장관)의 처남손자- 이장무(서울대학교 총장)이건무(문화재청장)"진단학회" 창설그의 "한국사연구 방법론""조선사편수회"에서 일한 경험으로, "식민사학"의 영향을 받았고, 그로 인해 후학들에게도 "식민사학"을 전수하는데, "앞잡이 노릇"을 했다. 할아버지가 "이완용"이라는 주장과 "이완용 관" 뚜껑을 불 태웠다고 한다.

3. 직제ㆍ직원 명단 (조선인)

(1) 1922.12.28.~ 1925.06.08 : 조선사 편찬위원회 : ① 직 제 : 위원장ㆍ고문ㆍ위원ㆍ간사ㆍ서기ㆍ촉탁위원  ② 위원장 :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政務總監)"

• 고문 : 이완용ㆍ박영효ㆍ권중현    • 위원 : 유맹ㆍ이능화ㆍ어윤적ㆍ정만조ㆍ이병소ㆍ윤영구ㆍ현채ㆍ홍희ㆍ이상영ㆍ이진호    • 간사 : 김동준    • 서기 : 김용적    • 촉탁 : 홍희ㆍ이능화

(2) 1925.07.20~ 1945.08.15 : 조선사 편수회 :  ① 직 제 : 회장ㆍ고문ㆍ위원ㆍ간사ㆍ(수사관ㆍ수사관보)ㆍ서기ㆍ촉탁위원  ② 회 장 :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政務總監)"

• 고문 : 이완용ㆍ박영효ㆍ이윤용ㆍ권중현    • 위원 : 최남선(1928.12.20~ )ㆍ이진호ㆍ유맹ㆍ어윤적ㆍ이능화ㆍ이병소ㆍ윤영구    • 간사 : 김동준ㆍ정교원ㆍ이동진ㆍ손영목ㆍ엄창섭ㆍ김대우ㆍ김병욱    • 수사관 : 홍희ㆍ신석호

• 수사관보 : 이병도 (1925.08.08~ 1927.05.30)ㆍ신석호ㆍ이종명    • 서기 : 현양섭ㆍ김용적   • 촉탁 : 최남선 (1928.10.08~ 1936.06.25)ㆍ이병도 (1927.05.31~ )ㆍ 홍희ㆍ박용구ㆍ육종윤ㆍ권중익ㆍ김태두ㆍ조중관ㆍ신석호ㆍ구찬서ㆍ조한직ㆍ윤용균

4. 연원 및 변천

일제는 데라우치(寺內正毅) 초대 총독 때부터 식민지 통치에 필요한 역사적 자료의 수집 조사를 위해 취조국(取調局)을 두고, 학자들을 고용해 구관제도조사사업(舊慣制度調査事業)과 고적(古蹟)조사사업을 전개하였다. 1915년 구관조사사업을 중추원(中樞院)으로 이관하고, 따로 일본의 식민지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한국사로의 역사 편찬을 위해 중추원에 "편찬과"를 신설하고, "조선반도사(朝鮮半島史)"의 편수 업무를 담당케 하였다그러나 방대한 작업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시일을 끄는 가운데 19193·1독립운동을 맞았다.

민족적 자각과 역사적 각성에 기초한 거족적 저항에 놀란 일제는 이를 계기로 정치적인 유화정책을 쓰는 한편 역사의식을 깨우쳐 한 민족의 민족정신을 함양하는 온상의 역할을 하는 한민족사를 민족혼을 뺀 빈 껍질의 역사로 꾸미기 위하여, "조선사(朝鮮史)" 편찬을 서둘렀다이러한 목적으로 중추원의 조선사 편찬, 사무를 조선총독부의 직할사업으로 추진시키기 위해 1923.12월에 조선총독부 훈령(訓令) 64호로 조선사편찬위원회규정(朝鮮史編纂委員會規程)을 공포하고, 관계 관료와 일본의 어용사학자, 일부 우리 사학자를 간선해 고문과 위원으로 임명해 조선편찬위원회를 조직했다.

조선사편수회는 1924년부터 수차에 걸쳐 위원회를 열어, 한국인의 사서(史書)에 대한 "절멸책을 강구하는 것은 수고는 많으나 효과가 적은 일일뿐더러 반대로 혹 전과를 격려할는지 모른다. 차라리 구사(舊史) 금압에 대하기를 공명 명확한 사서(史書)로 함이 지름길이고 효과는 더욱 뚜렷함과 같지 못하다"는 인식에서 독립의 관청을 설치하고 식민사관에 입각한 "조선사"편찬을 담당케 하기로 결정하였다이리하여 1925.06월에 칙령(勅令) 218호로 조선사편수회관제(朝鮮史編修會官制)를 공포하고 조선사편수회를 발족시켰다.

조선사편수회는 조선총독부 정무총감(政務總監)을 회장으로 하고, 일본과 한국학자를 수사관(修史官), 수사관보(修史官補)로 임명하고 조선사 편수 실무를 담당케 하였다.

5 .기능과 역할

조선사편수회는 "조선사" 편찬을 10개년 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하고, 그 기초 작업으로 사료수집사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그리하여 일본ㆍ한반도ㆍ만주 각지에서 기록ㆍ고문서ㆍ사적(史籍)문집ㆍ영정(影幀)ㆍ고지도ㆍ탁본(拓本) 등을 광범위하게 구입하고, 지방사 자료ㆍ개인 소장의 사료는 차용 등사하는 등의 방법으로 수집하는 한편 한국과 관계가 깊은 쓰시마(對馬島) 도주(島主)의 고문서 자료를 구입하였다(고문서류- 61,469, 고기록류- 3,576, 고지도- 34, 고서화- 18권과 53). 점차 사료가 집적됨에 따라 19276월 조선사편수회는 편수 실무를 다음과 같이 분담케 하였다.

사료 수집사무 : 채방부(採訪部)- 수사관 홍희(洪憙)ㆍ정비부(整備部)- 촉탁 중촌영효(中村榮孝)

사료 편찬사무 : 사적정본(史籍定本)- 촉탁 금서룡(今西龍)사적해제(史籍解題)- 수사관보 고교탁이(高橋琢二)

직관표(職官表): 수사관 홍희

조선사 편찬 (16 편찬부):  편수관- 수사관보 이병도(李丙燾)ㆍ촉탁 금서룡촉탁 중촌영효ㆍ수사관 도엽암길(稻葉岩吉)ㆍ수사관보 학견입길(鶴見立吉)ㆍ수사관보 고교탁이ㆍ촉탁 뇌야마웅(瀨野馬熊)ㆍ편수관은 그 뒤 다소의 변동이 있었다이런 활동에 따라 193837책으로 구성된 "조선사"가 편찬, 간행되었다조선사편찬위원회에서 일본인 위원과 한국인 위원 사이에는 고조선 문제나 민족성 배제 문제를 가지고 상당한 논쟁도 있었으나, 결국은 조선총독부 의도대로 편찬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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