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三國遺事) : 북부여 (東扶餘) 및 동부여 (東扶餘)
"하늘에서 5마리의 용이 이끄는 오룡거 (五龍車)를 탄 천제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해모수 (解慕漱)라 부르며, 북부여의 왕이 되었다. 돌 밑에서 나온 금빛 개구리 형상의 금와는 훗날 동부여의 2번째 왕이 되었다"

1. 동부여의 왕, 금와 (金蛙): "주몽" 신화 속의 주요 인물
"금와왕 (金蛙王)"은 "부여"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로, 특히 "고구려"의 시조 "주몽 (朱蒙)"의 성장 과정과 "고구려" 건국신화에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는 "북부여"의 "해부루 왕 (解夫婁 王)"에 이어, "동부여"를 다스린 왕이며, "주몽의 양아버지"로서, 그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금와왕"의 이야기는 "삼국사기ㆍ삼국유사"등 여러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 "금와왕 (金蛙王)"의 탄생 설화
"금와왕" 자신도 신비로운 탄생 설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삼국유사 - 기이편"에 따르면, "북부여"의 "해부루 왕"은 늙도록 아들이 없자, 산천에 제사를 지내며, 후사를 빌었습니다. 어느 날, "곤연 (鯤淵)"이라는 못가에 이르자, 큰 돌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왕이 그 돌을 옮기자, 돌 아래에 어린아이가 "개구리"처럼 생긴 모습으로 있었습니다. 이에 "해부루 왕"은 아이를 거두어 기르고, 그 모습이 개구리 같고, 황금빛이어서 이름을 "금와 (金蛙)"라고 지었습니다.
이 탄생 설화는 "금와왕"이 평범한 존재가 아님을 암시하며, 고대 국가의 지배자들이 흔히 가졌던 신성한 기원 설화의 한 형태입니다. "돌ㆍ개구리"는 "다산ㆍ풍요"를 상징하기도 하며, 이는 "금와왕"의 통치가 백성들에게 이로움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3. "동부여"의 건국ㆍ통치
"금와"는 "해부루 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북부여의 해부루 왕"은 원래 "동부여"를 건국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부여"의 지배 세력이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나라의 명칭이 "동부여"로 바뀌었음을 시사합니다. "금와왕"은 "동부여"의 2대 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금와왕"의 통치 기간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로 "주몽"의 등장ㆍ성장입니다. "금와왕"이 "태백산" 남쪽 "우발수 (優渤水)"에서 "유화 (柳花) 부인"을 만나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유화 부인"은 "하백"의 딸로, 하늘의 아들 "해모수"와 인연을 맺었으나, "하백"의 노여움으로 버림받아, "우발수"에 버려진 상태였습니다. "금와왕"은 그녀를 궁으로 데려와, 별실에 가두었습니다.
4. "금와왕ㆍ주몽"의 관계
궁에 갇힌 "유화 부인"은 햇빛을 쬐어 "알"을 낳았고, 이 "알"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주몽"입니다. "금와왕"은 이 기이한 "알"을 보고 불길하게 여겨, 버리게 했습니다. "알"을 돼지에게 주었으나 먹지 않았고, 마구간에 버리자 말들이 밟지 않았으며, 들에 버리자 짐승들이 보호하고, 새들이 날개로 덮어 주었습니다. 결국 "금와왕"은 "알"이 신비로운 존재임을 깨닫고 "유화 부인"에게 돌려주었고, "유화 부인"은 "알"을 소중히 보살펴 "주몽"이 태어났습니다.
"주몽"은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재능을 보였는데, 특히 "활솜씨"가 뛰어났습니다. "금와왕"의 여러 아들들은 "주몽"의 비범함을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삼국사기"는 "금와왕의 여러 아들이 주몽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죽이려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몽"이 "부여" 내에서 강력한 경쟁자였음을 보여줍니다.
"금와왕"은 처음에는 "주몽"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그를 보호하는 듯 보였으나, 아들들의 질투와 위협이 심해지자, 결국 "주몽"을 숙청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이에 "유화 부인"은 "주몽"에게 "네가 이 땅에 머물면 해를 당할 것이니, 어서 빨리 다른 곳으로 가 나라를 세우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고, "주몽"은 이를 받아들여 "부여"를 떠나, "고구려"를 건국하게 됩니다.
5. "금와왕"의 역사적 의미ㆍ평가
"금와왕"은 "고구려" 건국 신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통치에 대한 독립적인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주로 "주몽"의 탄생과 성장의 배경으로서 기능합니다. "금와왕"은 "주몽"의 등장과 함께 "부여"의 한 시대를 이끈 왕으로서, "한국 고대사", 특히 "고구려 건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고대 동아시아 북방 민족의 사회 구조ㆍ신앙ㆍ왕권의 성격" 등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제공합니다.
① "주몽"의 조력자ㆍ시련의 제공자
"금와왕"은 "주몽"에게 비범한 혈통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시련을 안겨주어, 결과적으로 "주몽"이 "부여"를 떠나,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의 아들들과의 갈등은 "주몽"의 영웅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② 부여 - 고구려 관계의 상징
"금와왕ㆍ주몽"의 관계는 "부여ㆍ고구려"가 단순한 별개의 국가가 아니라, "혈연적ㆍ문화적"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고구려"가 "부여"에서 분리되어 나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③ 신성한 왕권의 계승
"금와왕" 자신이 신비로운 탄생 설화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그가 "해부루 왕"에 이은 "동부여"의 정통성 있는 지배자였음을 보여줍니다. 비록 "주몽"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지만, 그의 존재는 북방 민족의 신성한 왕권 계승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④ 난생 설화의 반복
"금와왕"의 통치시기에 "주몽의 난생 설화가 발생했다"는 점은 당시 북방 민족에게 "알에서 태어난 영웅"이라는 모티프가 널리 퍼져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생명ㆍ태양에 대한 숭배 사상"과 연결됩니다.
'명언 • 고사성어• 고전• 속담 > 삼국유사 (遺事)ㆍ일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혁거세 (赫居世ㆍ신라의 시조): "알"에서 태어난 빛나는 영웅 (1) | 2025.06.06 |
---|---|
동명성왕 (주몽ㆍ고구려 시조): "부여→ 고구려"로 이어진 "천손"의 서사 (0) | 2025.06.05 |
해모수(解慕漱ㆍ북부여의 시조): "부여" 건국 신화의 서막 (0) | 2025.06.03 |
단군 신화 (檀君王儉) : 한국 민족의 뿌리를 찾아서 (2) | 2025.06.02 |
삼국유사 (三國遺事) : 사라진 역사의 재발견 (1) | 2025.06.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