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배 (崔鉉培ㆍ1894~1970ㆍ76세)"의 "국어학의 연구"는 1910년 봄, 일요일마다 "보성중학교"에서 열리는 "조선어강습원"에서 "주시경 (周時經ㆍ1876~1914ㆍ38세)"의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싹튼 것이라 한다. 5대 국경일 중, "한글날" 노래를 작사했다. "삼일절ㆍ제헌절ㆍ광복절ㆍ개천절" 노랫말은 "정인보"가 작사했다. 그가 강의를 했었던 "연세대 문과대학"에는 "최현배"의 호를 딴 "외솔관"과 "정인보 (鄭寅普ㆍ1893~1950ㆍ57세)"의 호를 딴 "위당관"이 있다.
1. 최현배 (崔鉉培ㆍ1894~1970ㆍ향년 76세)
국어학자ㆍ한글학자ㆍ교육자 (연세대학교 부총장)ㆍ국어운동의 중심적인 인물
• 출 생 : 경남 울산 내상면 • 사 망 : 서울
• 호 : 외솔 • 학 력 : 일본 교토 제국대학교 철학과 → 일본 교토 제국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석사
• 처 : 이장련 • 자 녀 : 4남 • 장남 : 최영해(1914~1981) 아동문학가ㆍ수필가 / 삼남 : 최신해(1919~1991) 정신과의사ㆍ청량리뇌병원 원장 / 손자 : 최동식(1943~ ) 고려대 화학과 명예교수
• 경 력 : 한글학회 이사장(1949년부터 20년간)ㆍ한글전용촉진회 위원장(1949)ㆍ세종대왕기념사업회 대표이사(1957)
• 저 서 : 조선민족 갱생의 도(1926)ㆍ우리말본(1937)ㆍ한글갈(1940)ㆍ글자의 혁명(1947)ㆍ 한글의 투쟁(1950)ㆍ한글 가로글씨 독본(1963)
한글 연구에 일생을 바친 그는 "말본의 체계"를 확립하였고, "한글 전용 운동"에 힘썼다. 국어학 연구ㆍ국어정책 수립ㆍ교육학 연구ㆍ국어운동 추진에 전념하여, 그와 관련한 책(20여 권)에 이르는 저서와 100편에 이르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국어정책 수립과 국어운동에 대한 집념ㆍ활동도 대단하여, 항상 최선봉에서 운동을 추진하고 그에 대한 이론투쟁을 정력적으로 전개하였다. 국어 정책에 대한 그의 주장은 전후 6년에 걸친 "문교부 편수국장" 재직 중, 교과서에서 실행되었다. 이에 대한 시비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만, 현행 각종 교과서에서 한글만으로 가로쓰는 체재를 확립한 일은 그의 업적이다. 국어운동 추진에 있어, 지나치게 급진적인 점도 없지 않으나, "국어문법 체계"를 확립한 국어학자로서, 국어ㆍ한글운동의 이론가ㆍ실천가로서, 민족의 중흥ㆍ민주국가 건설을 외친 교육자로서 남긴 업적ㆍ 공로는 크다.
1926.04월,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교수"로 취임하여, 1938.09월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파면당할 때까지 재직하였다. 1941.05월, "연희전문학교" 도서관직원으로 복직하였으나, 10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사임ㆍ1945년 광복까지 4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1945.09~1948.09월ㆍ1951.01~1954.01월까지, "문교부 편수국장"을 지내면서, 교과서 편찬을 지도하였다. 1954년, "연희전문학교 교수" 자리로 돌아와, 문과대학 학장ㆍ부총장을 역임하고, 1961년 정년퇴임으로, "명예교수"로 추대되었다. 1964.03월부터 2년간 "부산 동아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2008.08월, 학술지 "한국사 시민강좌" 하반기호(43호)에서 건국 60주년 특집 "대한민국을 세운 사람들"을 선발, 건국의 기초를 다진 32명을 선정할 때, 교육ㆍ학술 부문의 한사람으로 선정되었다. 그의 학문ㆍ유지는 "한글학회"를 중심한 학자들에 의하여 계승되고 있으며, 그의 사상을 기리는 모임인 "외솔회"가 1970년에 창립되어, 기관지 "나라사랑"을 발간하며, 해마다 국학연구ㆍ국어운동에 뛰어난 사람에게 "외솔상"을 시상함으로써, 그의 정신을 이어가려 하고 있다.
2. "주시경"의 "조선어 강습원"에서 연구
1915년, "주시경"의 "조선어 강습원"에 들어가 한글을 연구하였다. 그 해 "일본 히로시마 고등사범학교 문과"에 입학하여 1919년 졸업하고, 1922.04월 "일본 경도제국대학문학부 철학과"에 입학, "페스탈로치의 교육학설"이라는 "교육학 논문"으로 1925년 졸업ㆍ대학원에서도 수학하였다. 일제 강점기 이후, "교육학ㆍ국어 운동"과 관련된 1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한글학회의 이사장직"을 맡는 등 한글의 연구ㆍ보급에 힘썼다. 그는 "조선민족의 병폐를 가져온 원인으로 온갖 예절이 조선 사람의 생활을 구속했고, 생기를 잃게 했다"며, "예절 망국론"을 비난하였다.
3. 평가 : 국어연구
업적은 "우리말본ㆍ한글갈"로 집약되는데, 이 책은 "주시경"의 문법연구를 계승ㆍ발전시켜, 20C 전반기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 저술이다. "우리말본"의 전반적인 체계는 중학교 교재로 편찬된 "중등 조선말본(1934)"에 이미 나타나 있었으나, 당시로는 이것을 능가할 문법서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한글갈(1941)"은 한글 연구의 체계화를 추구한 것인데, "역사편ㆍ이론편"으로 되어 있다. "역사편"은 한글제정의 동기ㆍ경위ㆍ한글문헌에 대한 해설ㆍ한글 연구의 역사를 다루고, "이론편"은 "한글창제" 이후, 없어진 글자를 주로 다루어 그 "음가"를 추정한 것이다. "글자의 혁명(1947)ㆍ한글의 투쟁(1958)ㆍ한글 가로글씨 독본(1968)ㆍ고희기념 논문집(1968)ㆍ한글만 쓰기의 주장(1970)" 등 단행본으로 한글전용ㆍ풀어쓰기의 이론을 발표하여, 운동의 이론적 지침서가 되었다. 이 밖에 "국어정화"를 주장하면서, 일본어 찌꺼기를 몰아내는 등 "우리말 도로찾기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의 이론적인 근거는 "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1953)"에 나타나 있다.
교육학적 연구는 대학졸업 논문에서 비롯되는데, 민족주의적인 "국민 계몽사상"을 고취한 "조선민족 갱생(更生)의 도(道)ㆍ1930"가 공개된 최초의 업적이다. 이 책에는 일생을 일관한 애국ㆍ애족의 사상이 뚜렷이 나타난다. 먼저, 우리 민족의 성격상 결함ㆍ질병을 진단하여, 역사적인 원인을 구명하고서, 민족이 되살아날 원리를 말하고, 이어 그 원리를 실천하고 노력할 것을 역설한 것이다. 책에 나타난 그의 정신은 광복 이후에 확대ㆍ발전되어 "나라 사랑의 길(1958)ㆍ나라 건지는 교육(1963)"으로 간행되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정신을 고취하여, 부강한 자유국가ㆍ훌륭한 자주민족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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