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 한국 • 외국 (2020~ 이후)

이재명 캠프 : 윤여준 (1939~ ) 환경부장관ㆍ언론인

당대 제일 2025. 5. 1. 14:20
반응형

원로 정치인 중, "김종인 (1940~ )"과 더불어, 진영을 넘나들며, 활발히 자문ㆍ참모로 활동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다만 "박근혜"는 반대했다. 전반적인 성향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면서도, 경제적 개입에는 반대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자"에 가까운 듯하다. 2005.04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선대위"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에 "윤여준 (1939ㆍ환경부장관)ㆍ강금실 (1957ㆍ법무부장관)ㆍ정은경 (1965ㆍ초대 질병관리청장)"이 합류했다.

1. "동아일보ㆍ경향신문"에서 기자생활ㆍ대사관 공보관

1939, 충남 논산시 광석면 오강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윤석오 (尹錫吾)"는 대지주이자, 역사학자 "정인보 (1893~1950)"에게서 수학한 한학자로, 815광복 이후, "송진우"의 추천으로 "이승만"의 비서로 일했으며, 정부가 수립된 후에는 "총무처 차관"을 지내기도 했다. 그 덕에 그는 7살 때까지 "논산"에 살다가, 어린 시절 "경무대"를 드나들며, "이승만" 내외의 귀여움을 받았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단국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시절 "419혁명"에 참여했다.  대학졸업 후, "동아일보ㆍ경향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1977, "김성진 (문화공보부장관)"의 제안으로, "주 일본 한국대사관 공보관"에 임용되었고, "주 싱가포르 대사관"에서도 공보관으로 일했다. 1983년 귀국, "문화공보부 홍보조정실 보도담당관ㆍ국회의장 공보보좌관ㆍ청와대 공보수석실 공보비서관"을 지냈다. "청와대"에서는 "이순자 여사"에 대한 공보관리를 맡았다. "6공화국"에서는 "정무비서관ㆍ정무장관 비서관ㆍ안기부장 특보"를 지냈다.

1994, "김영삼 대통령"의 눈에 띄어, "청와대 대변인 겸 공보수석"으로 발탁됐다. "김 대통령""김현철"의 국정개입을 사과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을 때, 담화문을 작성했다. 1997, "환경부장관"에 임명됐고, 1998년부터 "이회창 (국무총리)"의 참모로 활동했다.

2. 정치 경력

① 2000년,  16대 총선의 "공천학살"

2000, "한나라당""16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을 지휘하며, 승리를 이끌었다. "공천학살"로 유명한 이 총선에서 "이기택ㆍ김윤환"을 필두로 "황낙주ㆍ신상우ㆍ오세응ㆍ백남치" 등의 거물급 의원들을 쳐내게 된다. "이회창""한나라당"을 장악하면서 "대세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그도 "전국구"로 원내에 입성한다. 2002"16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회창의 선거 전략가"로 활동한다결국, "16대 총선의 공천학살""16대 대통령 선거" 패배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는 분석 또한 만만치 않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윤여준" 때문에 "이회창"이 패배

당시 "노무현 후보""정몽준"과 단일화해 승리를 이룬 반면, "공천학살"로 인해 보수 진영이 분열, "2차 이인제 사태"와 같은, 표 분산 효과가 일어났다고 보는 분석이다. 이로 인해 "이회창"이 총선만 승리하고, 대선에 연달아 패배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로 꼽히기도 한다.

"15대 대선"에서, "김대중"과 맞붙은 "이회창""이인제"라는 돌발변수에 약 40만표의 차이로 패배했고, 돌발변수가 없는 "16대 대선"에서 "노무현"과 맞붙은 "이회창"은 양강구도에서 오히려 더 큰 표차인 55만표 차이로 패한다. "이회창" 대권 실패의 결정적 원인이 "15대 대선"에서 "이인제"였다면, "16대 대선"에서는 "윤여준"이었다는 얘기가 나올 만하다.

2006년,  "오세훈 서울시장" 공동선대위원장

2003, 여의도연구원 여의도연구소장, 2006"오세훈 서울시장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이끌었다그가 맡은 선거 중, 딱히 뭔가 보여주지 않고, 마무리한 선거는 뭘 해도 이길 만한 선거였던 "2006년 서울시장 선거" 정도이다.

④ 2011년,  안철수의 멘토ㆍ결별

"청춘콘서트"를 함께하며, "안철수"와 가까워졌으며, 2011"서울특별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안철수"가 출마 의사를 밝혔다가 번복하자, "박원순"에게 양보하는 구도를 만들자고 하여, 군소 후보였던 "박원순"을 지지율 1위 주자로 만들고 퇴장하기도 했다.

2011, "서울특별시장" 선거 과정 중, "안철수""윤여준 전 장관이 제 멘토라면, 제 멘토는 김제동ㆍ김여진 등 300명쯤 된다."라고 한 말 때문에, "안철수"와 관계가 멀어진 것이 아니냐는 추정을 하기도 했다.

2012,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경선 캠프"에 합류

"문재인"이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이후, "국민통합공동위원장"으로 선거 운동에 나섰다. 마지막 찬조연설을 "윤여준"의 연설을 재방송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10년을 가까이 해도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선거운동을 잘 하는 사람"으로 실명 언급 한번 없이 묶어내면서, "문재인 후보""2시간만 이야기해도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 통치력이 있는 사람"으로 상대화했던 당시의 연설은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17대 총선ㆍ18대 대선"에서 그의 모습은 역시 "전세를 뒤집지는 못해도, 팽팽하게 하는 것"이 장기인 것이 드러난다.

2014,  안철수와 재결합ㆍ결별

2014, "안철수"의 신당인 "새정치추진위원회 의장"으로 "안철수"와 다시 손을 잡았다. 그러나 "안철수"가 후신인 "새정치연합ㆍ민주당"의 통합을 추진하면서 또 다시 결별한다.  2016년 초,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이후, "안철수"가 신당창당을 추진하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안철수"가 접촉을 시도했다. 본인도 꽤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2016.04, "20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안철수"에게 실망하여 비판을 하고 거리는 두는 모습을 보였다. 20대 총선을 앞두고는 비례대표를 선정하는 자리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2018.06, 인터뷰에서는 "안철수"가 이젠 오히려 "새 정치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치를 접는게 좋겠다"고 했다. 노골적으로 "안철수는 민주주의를 모르는 사람인데, 어떻게 민주공화국의 지도자가 되겠냐"라고 꼬집었을 정도다.

⑦ 2024.11월,  윤석열 비판

2024.11, "윤석열 정부" 임기 전반기에 "통치력 부재가 확연하게 드러났다""윤석열"을 혹평하면서, "이러다 내년 봄 큰 고비 맞을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후 "김현정의 뉴스쇼 (CBS 라디오)"에서 "윤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예상했던 이유에 대해 "(윤 대통령이) 봄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고 본 사람이 나뿐이겠나. 국정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게 드러났으니, 많은 분들이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라며, 진행자가 "대통령이 술을 굉장히 즐겼다고 하더라"고 하자, "들리는 말로는 거의 매일 밤 새벽까지 마셨다더라. 판단력이 이미 흐려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술을 그렇게 먹고 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겠나"고 꼬집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