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측근 : 한덕수 (1949~ ) 국무총리ㆍ김 & 장 고문
5개 정부 (문민정부(김영삼)ㆍ국민의 정부(김대중)ㆍ참여정부(노무현)ㆍ이명박 정부ㆍ윤석열 정부)에 걸쳐, 보수ㆍ진보 정부를 가리지 않고, 차관급 이상 고위직을 역임한 진기록을 보유한 원로급 관료이다. 2번의 국무총리 (노무현 참여정부ㆍ2007~2008)ㆍ국무총리 (윤석열 정부ㆍ2022~2025)ㆍ김 & 장 법률사무소 고문 (2002~2003) 2025.05.01일, "대통령 선거 출마 (05.02일)"를 위해, 국무총리를 사퇴했다.
1. 5개의 정부와 보수ㆍ진보 정부를 가리지 않는 관료
1949년, "전북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ㆍ서울대 (경제학과ㆍ상과대 수석)"을 졸업하고, "미 하버드 대 (경제학 석사ㆍ1983)ㆍ미 하버드 대 (경제학 박사ㆍ1984)"를 졸업했다. "하버드 대 (경제학 박사)" 출신답게, 외신 기자와의 영어 문답이 가능할 정도로 영어 회화에 능통하며, 실제로 "주미대사"를 역임하는 등 외교관으로도 활동하였다.
1970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경제 관료의 길을 걸었다. "특허청장ㆍ국무조정실장ㆍ통상교섭본부장ㆍ재정경제부장관ㆍ국무총리(참여정부ㆍ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총리)로 재직했다. 2022년,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 임명되면서, 2번째 국무총리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5개 정부 (문민정부(김영삼)ㆍ국민의 정부(김대중)ㆍ참여정부(노무현)ㆍ이명박 정부ㆍ윤석열 정부)에 걸쳐, 보수ㆍ진보 정부를 가리지 않고, 차관급 이상 고위직을 역임한 진기록을 보유한 원로급 관료이기도 하다. "문민정부(김영삼)"에서 "특허청장ㆍ통상산업부 차관"을, "국민의 정부(김대중)"에서 "통상교섭본부장"을, "참여정부(노무현)"에서 "국무총리"를, "이명박 정부"에서 "주미대사"를 역임했다. "박근혜ㆍ문재인 정부"에서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윤석열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돌아왔다.
2023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해임 건의안이 국회를 통과하였으며, 이는 헌정사상 최초의 "국무총리 해임 건의안 통과" 사례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해임거부로 총리직을 유지했다. 2024.12.0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6시간여 만에 해제한 뒤, 여론의 거센 반발ㆍ역풍을 맞자, "국무위원" 전원의 사퇴 표명을 반려하며, 국정 운영에 매진해줄 것을 당부하였다. 12.14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의 가결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고, 12.27일, "한 국무총리 탄핵소추"의 가결로 직무가 정지되었다. 2025.03.24일, 헌재에서 "기각 결정"이 나며, 다시 직무에 복귀하게 되었으며, 04.04일, "윤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21대 대통령 선거" 전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수행하게 되었다.
2. 부인 최아영 (1948~ ㆍ서양화가ㆍ서울대 응용미술학과)
"최현식 (신흥건설 사장)"의 딸로, 증조부는 "목사"로, "죽동교회 (전북 김제)"를 설립했다. 슬하에 자녀는 없다.
① 무속관련 논란 (조국혁신당 논평, 24.12.26)
2024.12.26일, "김보협 (조국혁신당 수석대변인)"은 "한 권한대행"이 "내란 특검법ㆍ김건희 여사 특검법 공포ㆍ헌법재판관 임명 동의"를 사실상 거부한 데 대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부인이 무속적 믿음에 심취해 있다. (그들의) 주술적 믿음이 정책적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 총리의 배우자 최아영의 "무속 사랑"은 언론을 통해 알려질 정도로 깊다. 최씨는 삼청동 총리공관에 2번째 입주하면서는 큰 나무 2그루를 베었다고 한다. 내란수괴 윤석열의 "배후자 김건희"가 여러 명의 법사와 도사 등에게 묻고 결정했던 방식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박지원 의원 (더불어민주당)"은 "한덕수 부인이 무속 세계관에 깊이 빠져 있으며, 김건희 여사 및 최은순 (윤 대통령의 장모)와 함께 무속적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신념을 넘어, "특정 공직자들 간에 무속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박지원 의원 (더불어민주당)"도 "한 대행 배우자가 무속에 심취한 사람으로, 김건희 여사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일종의 무속공동체 아니냐"고 지적했다.
12.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의 부인은 무속에 지대한 전문가"라며, "(한 권한대행 부인은) 미술계의 큰 손으로 김건희 여사, (김 여사 모친인) 최은순씨와 그 무속 속에 살고 있다. 제가 볼 때는 윤석열ㆍ김건희ㆍ한덕수 총리가 이러한 역술인들의 얘기를 듣고 오만방자한 일을 하고 있다. 이렇게 무속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기면 안 되기 때문에, 우정을 버리고, 애국 차원에서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장ㆍ경제수석비서관"으로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한 바 있다.
2022년, "국무총리" 지명 때에도 "총리 후보 배우자와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여성이 강남 유명 점집을 함께 드나드는 사이라는 등의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고, 이에 총리실 인사청문 준비단은 "후보자의 공직 생활 기간 배우자의 명리학에 대한 관심이 후보자의 공적인 의사결정에 미친 일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② 최아영 그림, "효성그룹ㆍ부영주택"에 고가 판매 논란
부인 "최아영"이 "효성그룹ㆍ부영주택"에 수천만 원대의 그림을 판매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송 모씨(효성그룹 명예회장 부인)"가 "최아영"과 "서울대 응용미술학과" 선후배 사이인데,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은 2007~2010년까지 "전경련 회장"을 맡아 일했고, "한덕수" 역시 2009년부터 3년간 "주미대사"를 지내며, "한미 FTA 협상"에 직접 관여한 인물이기에, 정부의 정책수립ㆍ집행에 있어 이해충돌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생긴 것이다. "한덕수"는 "효성그룹ㆍ부영주택"에 미술품이 팔린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던 이유를 묻자, "작품 구매자의 사생활 및 개인정보 보호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③ 최아영, 전시회 남편 찬스 의혹
"한덕수"의 "주미대사" 시절 (2009~2012), 부인 "최아영"이 5번의 전시회를 연 것으로 확인됐다. 전시회 장소는 "워싱턴 총영사관ㆍ주미대사관" 바로 옆에 있는 "한국문화원"이었으며, 이 중 4번이 "주미대사관" 개최였다. 그 전까지 부인 "최아영"은 거의 활동이 없었기에 그가 부인 경력에 도움을 주기 위해, 힘을 쓴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한 2010년, "미국 뉴욕ㆍ워싱턴 DCㆍ서울"에서 차례로 열린 "풀브라이트 장학회 창설 60주년 기념 미술동문전"에 유일한 "스페셜 게스트(특별초대 작가)"로 참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참가 작가 35명 중, "풀브라이트 장학생"이 아닌 사람은 "최아영"이 유일했다. "풀브라이트 전시회 출품 이력"은 국내 예술가들 사이에서 손꼽히는 "스펙"으로 통한다."풀브라이트 60주년 기념행사"는 "주미대사관저"에서 "한덕수" 당시 대사가 직접 주최했다.
3. 논란
① "천황 생일 축하연" 참석 논란
2013년, "주한 일본대사관"이 주최한 "일본 천황 생일 축하연"에 참석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윤석열 정부" 초기, 내각 후보자로 같이 지명된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도 동석했다. 당시 그는 "무역협회 회장"이었고, "박보균"은 "중앙일보 대기자"였다. 또한 "김석기 (한국공항공사 사장ㆍ국민의 힘 의원)"도 참석했다.
② 김 & 장ㆍ무역협회ㆍS-OIL : 고액 보수 수임 논란
공직 퇴직 후, 수십 억대 급여ㆍ고문료를 수임했다. "김 & 장 법률사무소"에서 2002년에 8개월 동안 재직하고 1억 5000만 원을, 2017~2021년까지는 18억 원을 "고문료"로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2012~2015년까지 "한국무역 협회장"으로 재직하며, 급여 (19억 5,000만원), 퇴직금 (4억 원), 법인카드 및 차량 (운전기사 포함)을 제공받았다. 2021.03월부터는 "S-OIL 사외이사"로 재직하면서 8천만 원의 보수를 받았다. 이로 인해 2012년 공직을 떠난 후, 10년 동안 재산이 약 42억 원 증가했다. 여기에 "무역협회장" 시절, 업무추진비 약 1억 8,000만원을 사용한 것도 추가로 확인됐다.
그는 "자신이 받은 연봉 액수가 맞다"고 인정하면서, "고액 연봉 아니냐? 고액 연봉 논란이 있다"는 질문에는 "아무 문제없다. 그건 기자님 생각, 그걸 왜 나한테 묻느냐"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③ 신용카드 사용액 "0 원 (빵원)" 논란
2022.04.07.일, "인사청문 요청안"에 첨부된 "근로소득 원천징수영수증"에 최근 5년간 소득공제 항목인 "신용카드ㆍ현금영수증ㆍ전통시장 사용 내역"과 세액공제 항목인 "의료비ㆍ기부금" 등이 모두 "0 원 (빵원)"으로 기재돼 있었다. 이에 대해 "김 & 장 법률사무소 고문 등을 지내며, 법인카드로 생활비를 충당한 탓에, 개인카드를 아예 사용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이에 그는 "신용카드를 사용했고, 기부금도 납부했다. 신용카드 및 현금영수증 사용에 대해 연말정산을 위한 소득공제 신청을 하지 않았기에,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에서는 금액이 "0 원"으로 표기돼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④ 특급호텔 피트니스 : 공짜 사용 논란
2012년, "한국무역협회장" 취임 이후, 부부가 "특급호텔 피트니스 센터"를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받았다. "강남 인터컨티넨탈 호텔 피트니스 클럽"으로, 부부회원권의 시세는 약 1.1억이며 여기에 연회비 800만원을 별도로 내야 이용 가능하다. "무역협회장" 퇴임 이후, 현재까지도 "피트니스"를 이용하면서, 지난 10년간 약 7,000만원 수준의 "연회비 혜택"을 받았는데, 재산신고에는 이 "사용권"을 누락시켰다.
2022.05.03일, "인사청문회"에서 사용권과 관련해서 "양도도 안 되고, 팔수도 없고, 반납도 할 수 없다. 공직에 있는 동안, 이용을 안 하면 된다. 건강유지권은 저만 주는 게 아니라, 무역협회장을 한 모든 분에게 다 드리는 것이고, 헬스조직이 결정하는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재산으로 올리느냐. 기존 무역협회장들에게도 다 주어지는 건데, 이걸 던져버리면 다른 분들은 뇌물을 받은 거로 오해받을 가능성이 있다. 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⑤ 주미 대사관저 : 부부 동창회 사적 이용 (워싱턴 서울대 동문회ㆍ워싱턴 이화여고 동문회)
"주미대사"로 재직하던 2009.12.05.~06일 "대사관저"에서, 부부의 "사적 동창회 모임"을 열었다. 토요일에는 "부인 최아영"의 고등학교 동창회를, 일요일에는 대규모로 "서울대 동창회 모임 (부부가 서울대 동문)"을 가졌다. 주말 내내 열린 사적행사에 관저 직원들도 동원됐는데, 행사 직후 "워싱턴 한인사회"에서 말이 나왔고, "너네가 무슨 특권이냐?"며, 탄원까지 해, 결국 "외교부"로부터 "주의" 등의 질책을 들은 것으로 확인됐다.
"워싱턴 서울대 동문회ㆍ워싱턴 이화여고 동문회" 측으로부터, "대사관에서 모임을 가지고 싶다"는 요청을 받고, 각각 1차례 시설을 빌려, 모임에 참석했으며, "대사관 직원들의 도움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⑥ "론스타 사태" 연루, "모피아" 논란
2022년, 시민단체인 "투기자본감시센터"는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을 추진하던 2002.11~2003.0 7월까지 (약 8개월 간) "론스타"의 국내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김 & 장"의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총 1억5천여만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며, "론스타의 외환은행 불법매각을 은폐한 책임자"라고 주장했다. 이에 그는 "론스타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정부의 정책 집행자로서 관여한 부분은 있지만, 김 & 장이라는 사적인 직장에서 관여된 바는 전혀 없다. 저는 그 일에 관여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⑦ 저축은행 사태, 책임 논란
2006년 (참여정부 시기), 당시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도로 기업들이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무제한으로 받을 수 있게, "저축은행법 시행령"을 개정해서, 여신 한도 규제를 대폭 완화하였다. 이로 인해, "저축은행"은 수익률이 높은 "프로젝트 파이낸싱 (PF) 대출"을 크게 늘렸고, 실제로 시행령을 개정한 뒤, 28조 원이던 "저축은행 기업 대출"은 55조 원으로 배 가까이로 늘은 바 있다.
결국, 금융위기로 인해, 2011년 "저축은행 연쇄 영업중단 사태"의 시발점이 되고 말았다. 당시 "저축은행 사태"의 피해자만 10만 명, 피해액은 1조 3,000억 원에 이른다. 때문에 당시 규제 완화의 책임자였던 "한덕수"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