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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 역사 • 사건 • 인물

삼국지 (三國志) ⑧ 배경 : 십상시의 난(189)ㆍ후한 영제

by 당대 제일 2022.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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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상시 (十常侍)의 난"은 후한 189.09.22일에 발생한 사건으로, "십상시 (영제(靈帝)" 때에 정권을 잡아 조정을 농락한 10여 명의 중상시(환관)들)"에 의해 발생하여 무려 2,000명에 달하는 "환관"과 사람들이 죽은 사건으로 "동탁"이 사건을 이용해 권력을 잡았으며권력을 휘두르던 "대장군 하진"이 죽었다.

 

1. 영제 (靈帝156~18933): 중국 후한(後漢)12대 황제

장제 (章帝3대 황제 )의 고손자십상시의 난 (189)ㆍ후한 영제→ 군웅할거 시대→ 3국시대

재위 기간 중, 잇따른 재해와 "황건적의 난" 등으로 "군웅할거 시대"되고, "삼국시대"로 이어졌다"해독정후(解瀆亭侯) 유장"의 아들로, 어머니는 "동태후"이다당숙인 11대 황제인 "환제(桓帝) 유지(劉志)"가 슬하에 자식이 없자, 후계자로 지목되어 13세의 나이로 168년에 제위에 올랐다.

즉위했을 때, "환관 십상시(十常侍)"들이 황제의 귀와 눈을 막고, 국정을 멋대로 처리하여, 곳곳에서 란의 조짐이 보였다. 결국 184, "황건적의 난"이 발발하였다얼마 안 가서 이 반란은 진정되었으나, "영제"는 중병에 걸렸다.

후계자 문제, 어머니 "동태후"와 부인 "하황후(何皇后)", 오빠인 대장군 "하진(何進)" 간의 암투에 휘말리다가 사망하였다"영제 재위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군웅할거 시대"가 열리게 되고, "삼국시대"로 이어졌다.

십상시

2. 십상시 (十常侍): "후한서"에는 12, "삼국지연의"에는 10

중국 후한 말, "영제(靈帝)" 때에 정권을 잡아 조정을 농락한 10여 명의 "중상시(환관)"들 

 후한서 : 장양(張讓)조충(趙忠)하운(夏惲)곽승(郭勝)손장(孫璋)필람(畢嵐)율숭(栗嵩)ㆍ단규(段珪)고망(高望)장공(張恭)한회(韓悝)송전(宋典)

 삼국지연의 : 장양(張讓)조충(趙忠)하운(夏惲)곽승(郭勝)정광(程曠)단규(段珪)ㆍ후람(侯覽)조절(曹節)건석(蹇碩)봉서(封諝)

당시 "후한"의 정치권력은 "십상시"라 불리는 "환관들"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후한 12대 황제 영제"는 무능하고 병약해, "십상시"들의 말을 따랐고, 수많은 충신들을 죽였다 역사서 "후한서(後漢書)"에는 "십상시"들이 많은 봉토를 거느리고, 그들의 부모형제는 모두 높은 관직에 올라, 그 위세가 가히 대단하였다고 쓰여 있다 특히 그들의 곁에서 훈육된 "영제""십상시"의 수장인 "장양(張讓)"을 아버지, 부수장인 "조충(趙忠)"을 어머니라 부르며 따랐다.

이들의 기본적인 전횡은 "매관매직"이었다. 모든 관직에 가격을 붙여 판매를 했다(태수 (2,000만 전)자사 (2,000만 전)삼공 (1,000만 전)현령 (400만 전))

하지만 관직만 팔았을 뿐, 임기는 전혀 보장해주지 않고, 수시로 "독우"를 파견해서 퇴출시키기를 일삼았기 때문에, 지방 수령의 임기는 1년을 넘기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그 때문에 "십상시"에게 돈을 주고 관직을 구매한 자들은 그 돈을 본전이라도 뽑기 위해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징수하여 마구 수탈했고, 이 때문에 도처에서 ""이 일어났다이 난들 가운데 제일 규모가 방대한 것이 바로 다름 아닌 "장각"을 수괴로 옹립한 "황건적의 난"이다.

이렇게 크고 작은 ""이 무수히 발생하자, "십상시"들은 오히려 이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정적(政敵)들을 "황건적"이나 다른 ""을 일으킨 자들과 연루시키는 모함을 저질렀으며, 자신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는 지휘관에게는 싸울 의지가 없고, 오히려 적과 내통한다는 식으로 "무고"하기까지 했다이에 대한 대표적인 피해자가 "노식(유비공손찬에게 글공부를 가르쳤던 스승)"이었다"황보숭주준노식손견조조" 등 당대의 영웅들의 활약으로, "황건적의 난"을 간신히 진압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십상시"는 정신을 못 차리고, 오히려 그들의 공적을 다른 혐의를 만들어서 지워버렸다.

"황건적의 난"에 아무런 기여조차 하지 않은 자기네들이 그 공적을 가로채어, 스스로를 "열후"했으며, 조정 중신들을 모함하고, 뒷돈을 받아먹는 등 만행을 저지르다가, "하진"과 대립하게 되었고, "대장군 하진"을 암살하면서, "십상시의 난"을 일으켰지만, "원소"에 의해 모두 살해당했다(대장군 하진 : 원래 "백정"이었으나, 여동생이 "영제의 후궁"으로 들어가 총애를 받자, 낭중(郞中)영천태수까지 이르렀고, 180년에 누이동생이 마침내 "황후"에 임명되자, 중앙으로 불려와, 시중(侍中) 하남윤대장군에 임명되었다.)

3. 후한 189.09.22일 : 십상시 (十常侍)의 난

"십상시"에 의해 발생하여 무려 2,000명에 달하는 "환관"과 사람들이 죽은 사건으로 "동탁"이 사건을 이용해 권력을 잡았으며, 권력을 휘두르던 "대장군 하진"이 죽었다. 189, "후한 영제"의 병이 깊자, "후한 영제""십상시" 1명인 "건석"과 후계자 자리를 논의하고 "건석""후한 영제"의 황후 "하황후"의 오빠인 "대장군 하진"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그러나 "건석"의 계획은 "사마 반은"에 의해 "하진"에게 발각되고, "후한 영제"가 곧바로 승하하자 "하진"은 자신의 조카 "유변"을 황제로 세우기 위해, "사예교위 원소"에게 5,000명의 군사를 주어 궁궐로 쳐들어가게 한다.

뒤이어 "전군교위 조조"와 신하 "하옹순유정태" 등 대신 30명도 궁궐로 들어가, "태자 유변""후한 13대 황제 소제"로 즉위시킨다한편 "건석""원소"의 군사들을 피해 도망가다가, "십상시"들 중 1명인 "곽승"에게 살해당한다그 뒤 "하진하황후""진류왕 유협"의 어머니 "왕 미인"을 내쫓아 독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그리고 "원소"는 주부 "진림노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각지의 영웅들을 불러 모아, "십상시"들을 죽일 계획을 세우고, 이에 "장양(십상시의 수장)""하진"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한편 이 소식을 들은 "동탁(서량 자사)"20만 대군을 이끌고 올라와, "민지"에 주둔한다.

189.09.22, "십상시"들은 "하태후"의 명령을 위조해, "하진""장락궁"으로 불러들이고, "하진" 결국 "십상시들상방감 거목"에 의해 살해당한다이에 "하진"이 죽자, "하진"의 부하 "오광""청쇄문" 밖에 불을 질렀고, "조조(진군교위)원소 (사예교위)"500명의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쳐들어가고, "원술(원소 동생)"1,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참여하면서 사태는 더욱 커졌다.

"취화루" 아래에서 "조충정광하운곽승" 등이 베이고, 군사들은 "십상시"의 가족들을 모두 였으며, "환관들"도 모두 살해했는데 이 때문에 수염 없는 사람들도 "환관"으로 오해받아 살해당했다"하묘(하진 동생)"도 난입해, "십상시" 1명이던 "조충"을 죽였으나, "오광"에게 가담자로 오해받아 살해당했고, "하진"을 살해했던 "상방감 거목"을 포함해 2,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장락궁"에서 살해당해 "십상시의 난"이라 불리게 되었다.

"십상시"들 중, 남아있던 "장양단규후람조절 하태후"를 납치해 가려고 하나, "중랑장 노식"의 참여로 실패하며, 결국 이들은 "황제 소제진류왕 유협"을 데리고, "낙양 북망산"으로 피신한다"장양단규""소제유협"을 데리고 피신하다가, "하남 중부연리 민공"의 습격을 받아 "장양"연못에 빠져 자결하고, "단규후람조절""소제유협"을 잃어버려, 뒤쫓아온 "민공"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후 "황제 소제진류왕 유협""선비 최의"의 도움으로 구출되어, "원소조조왕윤양표순우경조맹포신" 등의 신하들을 만나, "낙양"으로 향한다이때 "민지"에 주둔하던 "동탁(서량 자사)" "동민(동생)이유(사위)" 함께 대군을 이끌고, "낙양"으로 왔다

"동탁"은 병권을 장악하여, "원소""발해 태수"로 내쫓고, "하진의 어머니무양군을 비롯해, 씨 일족을 모두 멸족시키면서, 하진을 죽게 했다"는 혐의로, 죽은 "하묘"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절단하여, 길에다 아무렇게나 버렸다.

그리고 "진류왕 유협""황제"로 세우려 들고, 이에 "병주 자사 정원"이 양아들 "여포"를 내세워 "동탁"을 막으려 하지만, 도리어 "중랑장 이숙(동탁의 부하)"의 음모로 "양아들 여포"에 의해 살해당하며, "동탁"은 반대하던 "신하 정관"을 죽이고, "황제 유변하태후"를 폐위시켜 살해했으며, "진류왕 유협""후한 14대 황제 헌제"로 즉위시킨다이후 "한나라""반 동탁연합군"을 거쳐, "군웅할거 시대"로 돌입하는데, "하진의 며느리 윤()" 이후, "조조"에게 재가하였으며, "손자 하안"도 어머니가 "조조"에게 재가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조조의 양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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